[Artist]김윤섭 소장의 바로 이 작가 - 이이남

[한경 머니 = 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미술사 박사] 한국 현대미술이 세계 미술 시장에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대략 2007년 전후다. 특히 홍콩 크리스티 경매나 몇몇 크고 작은 국제적인 미술 행사에서 우리의 젊은 작가들이 두각을 나타냈다. 신출내기로만 치부됐던 20대의 신진 작가들까지 어엿한 작가의 반열에 올라 주목 받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그 주인공 중 한 명이 이이남 작가다.
이이남 LED 영상 작품. <인왕제색도>
이이남 LED 영상 작품. <인왕제색도>
">
지난 2009년 3월 삼성전자는 신제품 ‘삼성파브 LED TV’를 출시하면서 매우 흥미로운 행사를 벌였다. 세계적인 미디어아티스트로 급부상하고 있는 이이남 작가의 작품을 LED TV에 담아 전시해 큰 눈길을 끌었다. TV 두께가 29mm로 얇으며,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빛의 화질’을 보여준다는 LED TV에 이 작가의 움직이는 ‘영상회화’ 작품을 접목한 것이다. 삼성전자와 이 작가는 향후 5년 동안 LED TV에 <수련>과 <해돋이>, <신-묵죽도> 등 세 작품을 장착하기로 하고 독점 계약을 맺어 국내는 물론, 전 세계 삼성 매장에서 선보이게 된다. 작품이 내장된 LED TV는 TV 프로그램을 시청하지 않을 경우 별도의 채널을 통해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방식이다. 상품을 작품으로 탈바꿈시킨 가히 획기적인 문화마케팅의 성공 사례로 여겨진다.

7년 전 한 매체에 기고했던 글 중 일부분이다. 글에서처럼 40대에 막 접어든 이 작가는 당시에도 이미 스타작가 반열에 들었다. 더구나 삼성전자가 글로벌 경쟁력을 담보할 만한 파트너로 한국의 젊은 미디어아티스트를 선택했다는 점 역시 주목할 만했다. 결과적으로 그 선택은 현명한 ‘윈윈(win-win) 전략’이었다. 삼성전자나 이 작가 모두 이를 계기로 중요한 성과를 거두게 됐다. 이 작가는 신성장 동력으로 각광받기 시작한 매체인 ‘LED’를 그 누구보다도 먼저 미술작품에 효율적으로 활용한 선두주자다. 더구나 TV나 컴퓨터 본체에 의존했던 미디어아트를 기성 액자 형식에서도 구현할 수 있음을 확인시켜준 역할도 남다른 의미였다.

사실 LED(Light Emitting Diode, 발광다이오드)는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쓰여 왔다. 하지만 2006년 전후 휴대전화나 모니터 시장이 급격히 성장하면서, 그 존재감이 미술 영역까지 옮아온 것이다. LED의 장점은 무엇보다 전력소비가 백열전구의 20%에 불과하며, 유해물질이 없어 친환경적이다. 또한 수명도 10만 시간(형광등의 100배)에 달해 한 번 설치하면 교체나 유지보수가 거의 필요 없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미디어아트가 대중적으로 널리 사랑받지 못한 이유는 바로 수명 때문이었다. 이런 맹점이 LED의 상용화로 단번에 해결된 것이다. 더구나 이 작가의 경우 설치 방식이나 작품의 콘텐츠 구성 면에서 영상과 회화의 경계를 오묘하게 넘나들며, ‘영상회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사례로 꼽힌다.

이 작가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듯, 동서양 고전의 명화 관련 모티브를 근간으로 삼아 왔다. 최근에는 단순히 미적 감성을 넘어 전쟁이나 사회적 갈등, 자연과 인간의 상생 등 보다 거시적인 주제로까지 확장되는 분위기다. 특히 어떤 주제든 상관없이 그림에 등장하는 소재들(풍경이나 구름, 꽃, 인물, 무기 등)을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게 연출한 애니메이션 기법이 작품의 특징 중 하나다. 그는 LED가 아트의 소재로 쓰일 때 기존 회화와 어떤 차별성과 개성 넘치는 독창성을 구현할 수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저는 소통을 중시합니다. 그래서 관람객이 작품에 충분한 시간을 두고 머물며 감상하는 부분을 크게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그런 방법론을 찾기 위해 평소 습관적으로 메모와 스크랩을 많이 합니다. 일상에서 접하는 모든 이미지 중에 영감을 주는 것들을 스크랩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스크랩들은 작업실 벽면이나 제가 자주 볼 수 있는 곳들에 비치해 놓죠. 그 과정에 늘 영감을 공유하고 작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곤 합니다. 그렇게 콘셉트를 선정한 이후엔 그 작품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를 수집하고, 그 자료들을 바탕으로 디지털 작업화하게 됩니다.”
이이남 LED 영상 작품. <디지털 8폭 병풍>
이이남 LED 영상 작품. <디지털 8폭 병풍>
">
이 작가의 작품들은 철저히 가상을 실제처럼 느끼게 연출된 허구적 영상일 뿐이다. 하지만 그 몇 십초, 몇 분의 영상들은 몇 시간 이상의 긴 여운과 감흥을 선사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매우 세심하고 탄탄하게 짜인 구성력 때문이다. 또한 흥미를 유발시키는 해학성과 혼용 혹은 융합의 미학이 덧붙여졌다. 그렇고 그런 고전회화로 치부될 모티브에 특유의 감각과 현대적 관점이 가미되면서 ‘이이남식 스토리텔링’이 완성된다. 그만의 직관적인 관점은 동양을 넘어 서양에서 더 큰 호응을 받는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영상회화 혹은 디지털회화 형식을 선보여 온 지난 10여 년 동안 35회의 개인전 이외에 무려 800여 회의 국내외 주요 기획단체전에 초대된 놀라운 기록이 그 점을 충분히 증명해준다.

이 작가의 원래 전공은 조소였다. 2000년에 들어서 전공을 살려 고무찰흙을 활용한 클레이애니메이션으로 영상 작업에 입문한 이후, 2006년부터 명화를 이용한 미디어아트 작업을 시작하게 된다. 2007년엔 삼성전자와 아트 컬래버레이션 제휴로 LED TV 모니터 시대를 열어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영상 작품을 시작한 지 불과 7년 만에 세계 최고 기업인 삼성전자의 글로벌 마켓 공식 파트너가 됐다. 그가 그 준비 기간을 얼마나 치열하게 보냈을까는 미뤄 짐작하고도 남는다. 지금은 미디어 기술의 발달과 거의 동시간대에 맞춰 새로운 작품들을 선보이고, 어떤 측면에서 그의 예술적 감각이 디지털 LED TV 기술에 영감을 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작가의 작품은 작품마다 6개의 에디션이 있다. 제작된 작품의 기본 틀은 TV 모니터다. 따라서 작품 가격의 차이는 TV 모니터 크기를 기준으로 삼는다. 예를 들어 4~5년 전에 2800만 원이었던 55인치 크기 작품은 현재 4200만 원 선에 가격이 형성돼 있다.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인지, 이 가격은 국내와 해외에서 거의 동일하게 적용된다. 최근에는 스위스 리트베르트뮤지엄에서 전시를 가졌고,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도 전시가 이어졌다. 오는 9월엔 부산 비엔날레 전시와 중국 베이징 화이트박스 갤러리에서 개인전이 예정돼 있으며, 11월의 벨기에 지브라스트라트 전시와 아부다비 아트페어 등 몇몇 굵직한 전시를 앞두고 있다. 지극히 한국적인 정체성과 동양적인 철학성을 바탕으로 서양의 감성 기호를 사로잡은 이이남, 그의 작품에 대한 기대감은 오늘보다 내일이 더 궁금하다.

아티스트 이이남
동서양 감성 융합한 LED 미디어아트의 개척자
이이남(1969~)은 조선대 미술대학에서 조소 전공으로 학사, 석사를 마치고,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영상예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그동안 베를린, 카타르, 뉴욕, 홍콩, 서울 등에서 35회의 개인전을 가졌으며, 800여 회의 국내외 주요 기획단체에 참여했다. 더불어 제8회 광주미술상(2002년), 광주시립미술관 올해의 청년작가상·신세계미술상대상·하정웅청년작가상(2005년), 대한민국 올해의 청년작가상(2009년), 선 미술상(2010년) 등을 수상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미디어아티스트로서 국제무대에서 역량을 펼치는 한편, 삼성전자 전속 협찬 작가, 2013 광주 미디어아트 페스티벌 예술감독, 서울 G20 정상회의 선정 작가, K-아트 프로젝트 선정 작가, 2014 동아시아 문화도시 영상감독, 2015 광주 유니버시아드 미술총감독, 유네스코 창의도시 자문위원, 광주문화재단 미디어아트 페스티벌 자문위원, 세계자연보전총회 홍보대사 등으로도 활약했다. 현재는 전남대 문화전문대학원 겸임교수로 활동 중이다.

김윤섭은…
김윤섭은 미술평론가로서 명지대 대학원에서 미술사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및 서울시립미술관 작품가격 평가위원, (사)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전문위원,대한적십자사 문화나눔프로젝트 아트디렉터, 교보문고 교보아트스페이스기획위원, 숙명여대 미술대학 겸임교수 및 서울시 공공미술 심의위원,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