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G STORY]뉴 상속 모델, 신탁의 고민
최근 재산 상속의 한 방편으로 유언대용신탁의 활용이 모색되고 있지만 상속인들의 최소 상속지분을 규정한 유류분이 이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불완전한 법체계에 대한 보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신탁이라고 하는 것은 위탁자가 수탁자와의 신임 관계를 토대로 재산을 그에게 처분하고, 일정한 목적을 위해 그 재산을 관리, 처분 등을 하게 하는 법률관계를 말한다.

신탁을 설정하게 되면 수탁자가 그 재산을 안전하게 유지, 관리해 위탁자에게 수익을 내주고, 위탁자가 사망하면 신탁상 정해진 바에 따라 재산을 승계시켜줘 유산을 둘러싼 분쟁을 감소시켜준다.

상속인이 제한능력자이거나 장애가 있는 때에는 상속재산이 유지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는데 신탁을 설정함으로써 상속재산을 수탁자에게 귀속시키고, 상속인에게는 수익권의 형태로 그 이익을 향유하게 함으로써 상속재산을 보존하고 상속인의 안정된 생활을 보장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또한 유증이나 상속이 개시될 무렵 예견하지 못한 사정들이 이후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는데, 신탁은 이러한 상황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유증이나 법정상속과 같은 단편적인 재산 승계 방식과 많이 대비된다.

신탁, 유류분을 침해했나
누구든 자신이 소유한 재산을 생전에 처분할 자유가 있을뿐더러 사후 처분의 자유도 인정된다. 하지만 유류분 권리자가 갖는 유류분은 이에 대한 중요한 제약이 되고 있다. 유류분 제도는 피상속인의 재산 처분의 자유와 법정상속인의 이익을 조정하기 위한 입법적 결단이다.

상속 개시 후 유류분 권리자가 그 권리를 포기할 수는 있지만 당사자 간의 합의에 의해 변경하거나 어느 한쪽을 배제할 수 없으며, 이는 피상속인이 신탁을 설정한 경우에도 다르지 않다.

물론 신탁 설정으로 피상속인의 재산이 감소한 사실만으로 유류분의 침해가 있거나 신탁의 효력이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피상속인이 생전신탁이나 유언신탁을 설정해 유산의 전부나 일부가 신탁재산으로 수탁자에게 이전되고, 그로부터 발생하는 이익이 수익자에게 귀속되는 과정에서 유류분 침해가 문제될 수 있다.

유류분의 침해 행위는 반환청구권을 발생시키게 되는데 유류분반환청구권의 행사 여부는 어디까지나 유류분 권리자의 자유에 속한다. 하지만 위탁자가 의도한 대로 재산 승계가 이뤄지게 하기 위해서는 신탁 설정 시 유류분의 침해 여부를 사전에 엄밀히 검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신탁법은 유류분과의 관계에 대해 명시적인 규정을 두고 있지 않기 때문에 유류분의 침해 여부나 그에 따른 반환 청구는 민법의 영역이다.

유류분의 침해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유류분이 확정돼야 하며, 유류분 권리자가 실제 얻은 상속 이익이 이에 미치지 못하는 때에는 그 부분만큼 유류분 침해가 있게 된다.
[BIG STORY]뉴 상속 모델, 신탁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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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e
예컨대 피상속인 A씨가 자신의 재산(주택 10억 원, 상가 15억 원, 유가증권 5억 원, 예금 5억 원)에 대해 신탁을 설정하면서 생전에는 자신을 수익자로, 사후에는 배우자 B씨와 미성년 자녀 C, D를 수익자로 정했다고 하자.

B씨에게는 주택과 예금을, C와 D에게는 상가와 유가증권을 동일하게 나누어주면서 C와 D 각자 25세가 될 때까지는 배우자 B씨가 신탁수익을 관리하도록 정했다면, A씨는 생존한 동안 수익자로서 신탁재산상의 이익을 누리며, 사후에는 배우자 B씨와 자녀 C, D가 수익자로서 신탁재산 및 그로부터 발생하는 이익을 받게 할 수 있다.

별도의 상속채무나 특별이익 등이 없다고 가정했을 때 법정상속분은 배우자 B씨가 15억 원, 자녀 C와 D가 각각 10억 원이며, 유류분은 그의 2분의 1인 7억5000만 원 및 5억 원이 되는데 이 경우 각 상속인의 유류분에 대한 침해는 없다.

만약 A씨가 상속인이 아닌 제3자 E씨를 단독 수익자로 지정했다면 배우자 B씨와 자녀 C, D에 대한 유류분 침해가 발생할 수 있다. 또 E씨와 함께 상속인을 수익자로 지정한 때에도 상속인의 신탁수익이 유류분에 미치지 못한다면 그 부족분에 대한 유류분 침해가 발생하게 된다.

하지만 신탁은 신탁재산으로부터 발생하는 이익의 내용이나 그 귀속 형태를 얼마든지 다각적으로 설계할 수 있기 때문에 유류분의 침해 여부 및 반환 청구에 있어서 이들 요소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신탁 수익자에 유류분 청구 가능할까?
유류분 침해에 따른 반환 청구는 그 대상이 되는 증여나 유증을 받은 자를 상대로 한다. 그러므로 신탁재산으로부터 이익을 향유하는 수익자가 유류분반환청구의 상대방이 될 것이다.

하지만 유언대용신탁이나 유언신탁에서는 수익자가 연속되고 수익권의 내용이 다양하게 설계될 수 있어서, 유류분 권리자로서는 단기소멸시효가 완성되기 이전에 누구를 상대로 얼마만큼 반환 청구를 할 수 있는지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아직 현존하지 않거나 확정되지 않은 수익자를 어떻게 취급할 것인지, 제3자가 수익자 변경권을 가지는 경우 이러한 요소들을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도 불분명하다. 이러한 경우 유류분을 침해하는 수익권의 기초가 되는 신탁재산으로부터 유류분을 반환받도록 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유류분반환청구에 있어서 그 반환 대상이 원물인지 아니면 가액인지에 대해서도 여러 학설로 나뉜다. 다수의 견해는 원물 반환을 원칙으로 하며, 판례도 반환 의무자는 통상적으로 증여나 유증으로 받은 재산 그 자체를 반환해야 한다고 하지만 원물 반환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그 가액 상당을 반환하도록 한다.

신탁원본을 받은 수익자 또는 신탁재산의 소유자인 수탁자에 대한 유류분반환청구에 있어서는 원물 반환을 해야 하겠지만 신탁재산의 일부나 전부를 반환한다면 신탁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워 신탁이 종료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피상속인의 의사에 따른 재산 승계라고 하는 점에서 신탁은 여러 장점이 있다. 하지만 유류분은 이에 대한 중요한 한계가 되고 있다. 이를 감안할 때 신탁을 통해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자에게, 원하는 형태로 재산을 승계시키고자 하는 경우 전문가와 상담을 통해 유류분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설계할 필요가 있다.

신탁을 설정하는 경우 유류분 침해 여부와 관련해 신탁재산이나 수익권을 어떤 형태로 반영할 것인지, 반환 청구에 있어서 누구를 상대방으로 하고 또 무엇을 반환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제기될 수 있다.

이러한 불명확한 법 상태는 관련한 분쟁을 지속적으로 야기하게 될 것이며, 나아가 재산 승계 수단으로서의 신탁에 대한 실효성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 이에 따라 신탁의 특수성을 고려해 유류분과 관련한 각 요소들을 어떻게 평가, 반영할 것인지에 대해 향후 신탁법에서 보다 명확한 기준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최수정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