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송년회로 꽉 찬 스케줄을 보내고 있는데 기분 좋게 모임을 마친 후 엉뚱하게 밀려오는 고독감에 가슴이 뻥 뚫려 버리는 느낌을 받는다며 당황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흥겨운 송년 파티 후에 찾아오는 외로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느낌, 역설적이다.
[Big story] 외로움에 사무칠 땐 물끄러미 내 맘 바라보기
사랑을 해도 외롭다는 고민에 대한 사연을 자주 접하게 된다. 주변에 이야기하기도 어려운 고민이다. 팔자 좋은 소리 하고 있다는 이야기나 듣기 때문이다. 왜 사랑을 해도 외로울까? 외로움이 결핍의 감정이라면 연애를 하는 데도 찾아오는 외로움을 해결하기 위해선 남자친구를 교체해야 한다. 나랑 잘 안 맞든가 아니면 나를 외롭지 않을 정도로 충분히 사랑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외로움이 찾아온 것일 테니 말이다. 그런데 정도의 차이일 뿐 남자친구를 바꿔도 외로움은 계속 찾아온다. 외로움은 단순한 결핍의 감정이 아닌 태어날 때부터 갖고 태어나는 기본적인 감정이기 때문이다.

사실 사랑과 외로움은 반대말이 아니다. 친구처럼 함께 인생을 걸어가는 동반자 관계다. 우린 태어날 때부터 외로움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으로 돼 있다. 유전적 경향도 50%는 있어, 태어나길 더 외롭게 태어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외로움의 유전자를 더 깊이 가진 사람은 연애를 해도 그 외로움이 항상 내 곁에 머물러 있게 되는 것이다.

지나친 기분 전환 좋지 않아요
외로움이나 우울 같은 감정 반응에 우리들이 지나치게 부정적인 느낌을 갖고 있다 보니 그런 느낌들이 찾아올 때면 그 기분을 날려 버리기 위해 기분 전환이라는 심리 기법을 사용하게 된다. 기분 전환이란 말은 가볍게 보이지만 사실은 강력한 마음에 대한 조정 기법이다. 뇌의 에너지를 상당히 태우면서 억지로 감정 변화를 시도하는 마음 관리법이다.

간간히 기분 전환을 쓰는 것은 나쁘지 않지만 기분 전환을 지나치게 쓰다 보면 오히려 뇌의 에너지가 방전돼 ‘번아웃 증후군(Burn-out Syndrome)’이라 불리는 소진증후군이 찾아올 수도 있다. 에너지가 소진돼 지친 뇌의 문제는 행복에 대한 역치가 올라가 버리는 것이다. 과거에 즐거웠던 일들이 재미없어져 버린다. 즐거웠던 친구와의 만남도 시들해지고 일도 재미없고 전반적으로 이전보다 사는 게 재미없어진다. 심해지면 세상사가 회색빛처럼 무미건조해진다. 기분 전환이란 기법을 많이 쓰는 달이 있으니 바로 지금 송년회 시즌이다. ‘위하여’ 건배를 들며 기분을 고취하나 그때마다 에너지가 빠져나가게 돼 오히려 반작용으로 밀려오는 허탈감에 소진증후군이 우울증으로까지 진행되기도 한다.

왜 기분 전환을 우리가 자주 사용하게 됐을까? 외로움이나 우울 같은 감정 신호를 결핍에 의한 부정적인 감정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외로우면 내 인생은 불행한 것이라고 내 뇌에서 해석해 버리니 에너지를 태워서라도 억지로 긍정적인 감정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사실 인생의 본질은 썩 기쁘지만은 않다. 외롭고 우울하다. 그런데 우리 마음엔 역설적인 충전장치가 있어 외롭고 우울할 때 억지로 기분 전환하지 말고 그 기분을 즐길 때 억지 전환에선 느낄 수 없는 깊은 긍정성이 마음에서 올라온다.

역설적 마음 충전법, 물끄러미 내 마음 바라보기
재즈를 좋아하지 않아도 들어보면 익숙하게 느껴지는 노래 중 하나인 ‘My Funny Valentine’. 노래 제목만 들으면 경쾌한 리듬과 톤이 예상되는데 실제 곡은 느리고 슬프고 우울하다. 가사 내용도 슬프다.

‘나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조금만 더 밸런타인데이로 있어줘요, 조금 더. 매일 매일이 밸런타인데이랍니다.’

왜 이런 우울한 사랑 노래가 오랫동안 사랑받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억지로 기분을 좋게 만드는 기분 전환보다 사랑 때문에 우울할 때 오히려 우울한 사랑 노래를 들으면 역설적인 긍정성이 생기는 것도 한 가지 이유라고 생각한다. 이런 현상을 ‘보편적 인간의 속성(common humanity)’으로 설명하는데 쉽게 풀면 인생 다 똑 같다는 이야기다. ‘내 사랑은 왜 우울하지. 나만 실패한 것인가’ 하는 느낌에 빠졌을 때 우울한 사랑 노래를 듣다 보면 ‘아, 나만 사랑이 힘든 것은 아니구나. 사랑이란 것이 워낙 힘든 것인가 보다’ 하는 내 삶을 한 발짝 떨어져서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내가 하는 사랑이 부족해서 힘든 것이 아니라 워낙 사랑은 힘든 것이라는 철학적 성숙이 마음에 찾아오는 것이다. 어찌 보면 사랑은 그 맛에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강력한 긍정성마저 생길 수도 있다. 이런 철학적 성숙이 주는 느낌은 논리적으로 나를 설득한다고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영화, 미술 작품, 소설 같은 문화 콘텐츠에 내 감성을 젖게 할 때 찾아오기 때문이다. 문화 콘텐츠의 캐릭터에 내 감정이 투사돼 그 캐릭터에 담긴 내가 나를 바라봐주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바쁜 연말이지만 짬을 내어 ‘내 맘 바라보기’를 하며 한 해를 되돌아보자.

글·사진 윤대현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