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깨우는 그림이 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누운 채로 처음 만나는 그림이다. 정감이 넘치고 소담한 여느 시골 풍경이 그려졌다. 앞쪽의 오른편엔 개나리꽃이 한 무더기 피어 있고, 앞뒤로 늘어선 감나무들엔 제법 파릇하고 여린 새순들이 올라오고 있다. 아무리 피로감에 지친 아침이라도 이 그림만 한 청량제가 따로 없다.
임동식, ‘마른 넝쿨 거두어내는 아이들’, 53×73cm, 캔버스에 유채, 2013년
임동식, ‘마른 넝쿨 거두어내는 아이들’, 53×73cm, 캔버스에 유채, 2013년
이 그림의 남다른 매력은 바닥에 있다. 과수원 밭 전체가 수선화 꽃으로 빼곡하다. 마치 저 멀리까지 샛노란 별들이 땅에 내려앉은 듯하다. 낮에 본 달이 더 신비롭듯, 지상엔 온통 지지 않은 별빛으로 몽환적인 정경이 연출된다. 봄처녀 수줍은 듯 멀리 숨어 핑크빛 붉은 입술들을 살짝 내보인 진달래 무리는 보너스다. 임동식이란 원로화가의 ‘마른 넝쿨 거두어내는 아이들’이란 유화 작품이다.

왜 그토록 이 그림 앞에선 무장해제가 될까? 딱 그림만한 창문으로 바깥 풍경을 내다보는 것처럼 빨려 들어간다. 그곳엔 잊힌 기억들이 기다린다. 너무 오래전에 돌아가시어 아련해진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나 고사리손으로 어머니의 밭일을 돕던 기억들이 바로 어제의 일이 된다. 참으로 신기할 따름이다. 지나고 보면 인생의 참맛은 유년기의 기억이었던 듯하다.

“하얀 민들레 꽃씨 속에 바람으로 숨어서 오렴/ 이름 없는 풀섶에서 잔기침하는 들꽃으로 오렴/ 눈 덮인 강 밑을 흐르는 물로 오렴/ 부리 고운 연둣빛 산새의 노래와 함께 오렴.”

이해인 수녀님의 시(詩) ‘봄 편지’다. 시처럼 고향도 봄을 닮았다. 특히 고향에 대한 유년의 기억은 마음속의 봄과 같아 시들지 않는다. 그래서 마음속에 담아둔 고향은 지지 않는 꿈처럼 늘 새롭게 나를 자극해준다.

임동식 화백의 그림 역시 고향을 그린 것이다. 충남 공주에 거주하며 자연을 벗 삼아 화폭에 담는 임 화백은 해방둥이다. 홍익대 회화과와 독일 국립함부르크미술대 자유미술대학을 졸업하고, 1970년대 중반 이후 30여 년간 야외 설치와 퍼포먼스, 음향 작업, 회화 등 다양한 작품 세계를 선보여 왔다.

임 화백은 매우 일찍부터 ‘자연과의 교감’을 중시하는 작품 세계를 선보였다. 홍익대 졸업 후에도 공주의 금강 백사장에서 ‘금강현대미술제’를 시작하고, ‘자연에 나를 던진다’는 의미를 담은 미술그룹 ‘야투(野投)’를 결성했다. 독일 유학에서 돌아온 다음엔 지금의 공주시 신풍면 농촌마을 원골에 터를 잡고, 감나무로 둘러싸인 곳에 소박한 집을 지은 후엔 주변에 온갖 꽃을 심었다. 그렇게 농사일과 함께 ‘예즉농(藝則農), 농즉예(農則藝)’를 뜻 삼아 시골 촌부의 삶 자체를 예술 행위의 연장선으로 삼게 됐다.

전위적인 작품을 일삼던 그가 갑자기 풍경화가로 전향한 사연도 우연하고 이채롭다. 고향에 돌아온 그는 동갑내기로 지척에 살았으면서도 유년 시절부터 한 번도 마주치지 못했던 우 사장이란 새로운 친구를 만나게 된다. 어느 날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살고 있는 친구의 삶 속에서 ‘자연화가’로서의 모습을 발견한다. 새 친구 역시 진정한 예술가의 길에 대한 고민에 빠졌던 임 화백에게 풍경을 그려보길 권하게 된다. 어쩌면 그의 그림에서 볼수록 꾸밈없이 순박한 자연의 속살 향이 느껴지는 것은 그 이유일 것이다.

또한 임 화백의 풍경화가 특별히 뽀송뽀송한 느낌을 전하는 이유는 기름을 거의 섞지 않은 유화물감을 가느다란 세필로 살살 얹듯 그린 표현 기법 때문이다. 엷게 층층이 쌓인 물감의 흔적은 마치 자연의 공기가 부드럽게 감싸는 듯 심리적인 안정감을 선사한다. 여기에 활짝 핀 수선화 밭을 지나다가 ‘고개 숙인 꽃들이 나에게 경례하는 것 같아 모자를 벗고 꽃들에게 머리를 숙였다’는 표현의 작가적 심성은 자연에 대한 마음이 얼마나 애잔한지 짐작하게 한다. 그래서 임동식의 그림엔 도심 생활에 지친 영혼을 위로해줄 ‘고향발 아로마’가 넘친다.

무수히 찍힌 파란색 점들은 보고 싶은 이들의 얼굴
김환기, ‘2-X-73#321 Air and Sound1’, 코튼에 유채, 264×208cm, 1973년
김환기, ‘2-X-73#321 Air and Sound1’, 코튼에 유채, 264×208cm, 1973년
임화백의 구상 작품과는 전혀 다른 조형 기법의 비주얼이지만, 속내가 너무나 한 몸처럼 닮은 작품이 또 있다. 한국 현대미술 1세대인 김환기 화백의 뉴욕 시대(1963~1974년) 점화 추상 작품이다. 그냥 겉보기엔 파랗다! 가운데에 흰 줄이 간 위아래로 온통 파란 바탕의 심플한 그림이다. 이 그림은 김화백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한 전시도록의 표지 작품이다. 그만큼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정말 단순한데, 왜 그리 큰 사랑을 받을까? 그런데 신기하게도 누구에게 설명 듣기도 전에 그 매력에 푹 빠지기까진 일순간이었다.

김화백은 1963년 50세의 나이로 뉴욕에 건너간 후 1974년 그곳에선 생을 마감했다. 작고할 때까지 11년간의 ‘뉴욕 시대’는 그에게 화가 생활의 정점을 선사했다. 이미 한국 화단에서 최고의 위치에 섰던 김 화백은 상파울루비엔날레에 한국 대표로 참가했다가 그 길로 귀국하지 않고 뉴욕행을 선택한다. 홍익대 교수직도 전화로 사임했을 정도였다. 세계무대에서 ‘제대로 된’ 화가의 길을 걷고 싶었던 그가 결국 발견한 것은 ‘고국이자 고향의 그리움’이었다. 무수히 찍힌 파란색 점들은 보고 싶은 이들의 얼굴이요, 눈동자나 마찬가지였다.

‘내가 찍는 점, 저 총총히 빛나는 별만큼이나 했을까. 눈을 감으면 무지개보다 더 환해지는 우리 강산….’ 1970년 1월 27일 김 화백의 일기 내용이다. ‘이제까지의 것은 하나도 안 좋아. 이제부터의 그림이 좋아. 저 정리된 단순한 구도, 저 미묘한 푸른 빛깔, 이것이 나만이 할 수 있는 세계.’ 그는 푸른색 추상 시리즈를 완성하고 뉴욕 시대의 정점으로 말년을 맞는다. 1970년대 이후 그의 푸른 화면은 고향까지 펼쳐진 하늘이요, 바다였다. 그만의 청색엔 ‘생명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스스로 ‘나는 외롭지 않다. 나는 별들과 함께 있기에…’라고 되뇌던 김 화백의 붓 끝은, 마치 고향의 향기를 피워낼 작은 씨앗을 파종하는 도구와 같았다.

김화백의 이 뉴욕 시대 추상 작품 ‘2-X-73#321 Air and Sound1’이 너무 좋아 간신히 구했는데, 같은 작품을 판화로 만든 것이다. 비록 1m 남짓의 작은 크기의 작품이지만, 거실 한쪽에서의 존재감은 절대적이다. 하늘과 바다를 밀어낸 흰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새 유년시절 뛰놀던 바닷가로 안내한다. 망연히 바라봄의 행복감을 느끼기에는 주말 오후 나른하게 따뜻한 차 한 잔과 함께하면 제격이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싸운다. 알은 곧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소설로 손꼽히는 ‘데미안’의 한 구절이다. 이 명저 ‘데미안’의 작가인 헤르만 헤세는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있음을 일깨워주는 것, 그것이 모든 예술의 궁극적인 목적이다”라고 강조했다. 일상에서 받은 상처는 물리적으로 쉽게 지우기 힘들다. 간혹 지친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대상을 만날 수 있다면 그 또한 인생의 큰 행복일 것이다. 내게 요즘 임동식 화백과 김환기 화백의 그림이 그 주인공이다.

그림으로 사색하다
김경민 ‘돼지가족’, 김덕기 ‘행복한 거리’, 김정수 ‘진달래’, 모용수 ‘사랑합니다’(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김경민 ‘돼지가족’, 김덕기 ‘행복한 거리’, 김정수 ‘진달래’, 모용수 ‘사랑합니다’(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가족
김경민은 본인의 가족 이야기를 조각 작품으로 옮긴다. 남편과 아이들을 등에 업고 있는 작품 ‘돼지가족’은 억척스럽던 우리 어머니의 모습 그대로다.

가족 전체가 행복한 나들이에 나섰다. 보고 있기만 해도 웃음꽃이 절로 나는 김덕기의 ‘행복한 거리’는 평소 단란한 가족의 일상을 그렸던 것처럼 우리 모두의 행복을 기원하고 있다.

김정수의 ‘진달래’ 속 여린 진달래 꽃잎에 물든 연분홍빛은 봄의 투명한 생명성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담았다. 반가운 봄소식을 처음 알리는 진달래 꽃잎처럼 어머니라는 이름만으로 가슴이 아련하다.

새벽녘 정화수를 떠놓고 가족의 안위를 빌어주던 어머니의 모습이 아직도 선연하다. 그 모습은 그 어떤 형용사로도 표현하기 힘든 숭고함이다. 모용수의 ‘사랑합니다’엔 평범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사랑에 대한 철학이 담겼다.

성찰
강요배 ‘설중옹’, 문성식 ‘겨울새’, 박성수 ‘욕심을 버리면 가벼워져요’,케이티 김 ‘chanel-Paris’, 황주리 ‘식물학’(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강요배 ‘설중옹’, 문성식 ‘겨울새’, 박성수 ‘욕심을 버리면 가벼워져요’,케이티 김 ‘chanel-Paris’, 황주리 ‘식물학’(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눈을 맞고 바위에 올라 앉아 있는 강요배의 ‘설중옹’은 그 어떤 그림보다도 더 인생을 되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다. 뜨겁고 화려한 계절을 보낸 늙은 호박은 그대로 인생의 축소판이다.

마른 나뭇가지 위에 앉은 부엉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문성식은 ‘겨울새’라고 이름을 붙였다. 간혹 꿋꿋이 홀로 있고 싶은 이에겐 벗과 같은 그림이다.

‘욕심을 버리면 가벼워져요’ 어차피 빈손으로 와서 다시 그대로 갈 것을 알면서도, 그 욕심을 포기하지 못하는 우리의 어리석음을 박성수는 드로잉으로 질책한다.

첫발을 내딛는 순간만 극복한다면, 그다음은 좀 더 수월하다. 사진가 케이티 김은 ‘chanel-Paris’에서 이제 막 무대로 나서기 직전 모델의 백스테이지 모습을 포착했다.

황주리 작가가 그려내는 일상은 대개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는 일상을 고기 잡듯 채집한 옴니버스 스타일이다. 그녀의 그림 ‘식물학’을 마주하고 있으면 어린 시절 전혀 뜻밖의 종합선물을 받은 듯 뿌듯하다.

자화상
변웅필 ‘한 사람으로서의 자화상’, 장욱진 ‘자화상’, 오원배 ‘무제’.
변웅필 ‘한 사람으로서의 자화상’, 장욱진 ‘자화상’, 오원배 ‘무제’.
변웅필의 ‘한 사람으로서의 자화상’이다. 우리에게 선입견을 줄 수 있는 요소들인 머리카락, 눈썹 등을 없앴다. 우린 언제나 ‘다름’과 ‘틀림’의 잣대에서 갈등하게 된다.

연미복을 차려 입은 신사가 황금빛 밀밭의 붉은 길을 걸어온다. 밝은 하늘과 행복한 새의 가족이 뒤를 따른다. 평생 단순한 삶을 살았던 장욱진 화백다운 ‘자화상’이다.

높다란 구조물 위에 불안하게 방치된 한 청년. 자신의 존재감마저 미약해 반투명한 모습이다. 오원배의 청년 그림(무제)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인간 내면의 불안정하고 연약한 모습을 위로한다.

김윤섭 미술평론가·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