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살은 쏘옥, 스트레스 훌훌, 실적은 쑥쑥

증시 등락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투자 수익률에 노심초사 하는 모습.

금융업계 종사자들에게 연상되는 이미지다. 조직 운영의 책임까지 더해지면 그 스트레스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 그러나 여기, 달리기 시작하면서 강인한 정신력과 체력을 갖게 됐고, 이로 인해 삶이 360도 달라졌다고 말하는 금융업계 리더들이 있다. 방선희 마라톤교실에 ‘재학’ 중인 마라토너 5인방이 전하는 ‘나의 마라톤 도전기’.
(왼쪽부터) 최영수 유안타증권 전무, 성건웅 유진투자선물 대표, 이윤규 LS자산운용 대표, 구본용 에버베스트파트너스 대표, 박연익 KDB산업은행 가산지점 팀장.
(왼쪽부터) 최영수 유안타증권 전무, 성건웅 유진투자선물 대표, 이윤규 LS자산운용 대표, 구본용 에버베스트파트너스 대표, 박연익 KDB산업은행 가산지점 팀장.
“하나 둘, 하나 둘, 헛 둘, 셋, 넷….” 꽃샘추위가 절정에 달한 지난 2월 28일 오전 7시. 과천관문운동장에 모인 이윤규 LS자산운용 대표, 구본용 사모투자운용(PEF)사 에버베스트파트너스 대표, 성건웅 유진투자선물 대표, 최영수 유안타증권 전무가 칼바람에 꽁꽁 언 손과 발을 녹여 가며 몸 풀기에 한창이었다. 이들은 과천관문운동장 트랙 3000m를 30분 동안 달리고, 스트레칭을 한 후 마라톤 코치의 주도에 따라 곧바로 3시간 코스의 청계산 등반에 나섰다. 이들은 이렇게 일주일에 2번, 방선희 전 마라톤 국가대표가 운영하는 방선희 마라톤교실에서 기초체력 훈련부터 실전 달리기까지 다양한 코칭을 받는다. 올 한 해 있을 국내외 마라톤대회에서 완주라는 결실을 맺기 위해 연초부터 부단히 몸을 만드는 중이다.

이윤규 대표와 구본용 대표, 성건웅 대표, 최영수 전무, 박연익 KDB산업은행 가산지점 기업금융2팀장(박 팀장은 이날 훈련에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했다)은 금융권에서 ‘마라톤 마니아’로 명성이 자자하다. 이제 입문 1년 차인 ‘새내기’ 최영수 전무부터 42.195km 풀코스만 245번 완주했다는 13년 차 베테랑 박연익 팀장까지 이들 5인방은 ‘금융’과 ‘마라톤’이라는 공통분모 아래 끈끈한 우정을 이어가고 있다.


워커홀릭 금융맨 5인, 마라톤으로 뭉치기까지
이들 가운데 방선희 마라톤교실에 가장 먼저 등록한 건 구본용 대표였다. 구 대표는 2000년에 처음 마라톤의 세계에 눈을 떴다. KTB투자증권 부사장 출신인 그는 10여 년 전만 해도 업무에 파묻혀 지내던 날들이 대부분이었다. 어쩌다 쉬는 날 운동이라도 할라치면 운동장 한 바퀴 도는 것조차 힘들었다. 심각성을 느낀 구 대표는 40대 초반에 달리기를 시작했다. 오래달리기를 꾸준히 하자, 어느덧 5~6km는 너끈히 뛸 수 있게 됐다. 2002년 중앙마라톤 하프대회에 출전해 1시간 44분 16초를 끊은 게 생애 최초의 마라톤 기록. 계속 달라다 보니 풀코스를 완주하고 싶은 욕심도 생겼다. 본격적으로 마라톤 풀코스에 도전하기에 앞서 2004년 방선희 마라톤교실을 찾아가 트레이닝을 받기 시작했다. ‘마라토너의 몸’을 갖게 된 그는 작년 춘천마라톤까지 지금껏 29번 풀코스에 도전해 한 번도 중도에 포기한 적이 없었다. 구 대표는 “2010년 11월 중앙마라톤을 3시간 8분 46초에 완주하는 최고기록을 세웠을 때 정말 행복했다”고 말했다.
[CEO COMMUNITY] 금융업계 마라토너 5인방 ‘내가 달리는 이유’
구 대표는 2006년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보스턴 마라톤대회에서 우연히 이윤규 대표와 조우하게 된다. 일면식은 없었지만, 서로 한 업계에 몸담으면서 ‘마라톤을 즐기는 사람’이라는 정도는 알았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본다고 했던가. 구 대표는 이 대표에게 방선희 마라톤교실 입문을 권했고, 이 대표는 그렇게 두 번째 멤버로 모임에 합류했다.

이윤규 대표는 한국투자신탁운용 총괄운용본부장, 사학연금공단 자금운용관리단장을 거쳐 2년 전 LS자산운용 대표이사 사장으로 왔다. 그가 마라톤에 입문한 계기는 다이어트다. 2001년 한국투자신탁운용에 총괄운용본부장으로 있던 시절 불규칙한 생활과 스트레스로 인해 몸무게가 82kg로 불어났다. 그는 살을 빼기 위해 등산과 골프 등 여러 운동을 했지만 다이어트에 번번이 실패했다. 그래서 당시 한창 열풍이 불던 마라톤에 도전했다. 첫 하프마라톤을 1시간 45분에 완주하니 점점 자신감이 생겼다. 그렇게 마라톤의 매력에 빠져 지금껏 풀코스만 29차례 완주했다. 보스턴 마라톤과 뉴욕 마라톤 출전 경험도 보유하고 있다. 2008년 울트라마라톤에 도전해 100km를 9시간에 뛰었다. 아마추어 마라토너로서 꿈을 모두 이룬 셈이다. 혼자만 뛰는 게 아니라 마라톤을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해 페이스메이커(기준이 되는 속도를 만드는 선수) 역할도 많이 했다. 자격증까지 갖고 있을 정도다.

성건웅 대표는 평소 친분이 있던 이윤규 대표의 권유로 3년 전 모임에 들어왔다. 그는 2011년 12월 우리투자증권(현 NH투자증권) 홀세일사업부 대표를 마지막으로 오래 몸담았던 우리투자증권을 떠나면서 적적함을 달래기 위해 조금씩 달리기 시작한 게 지금까지 왔다. 춘천이 고향이니 춘천 마라톤은 한 번 나가봐야겠다고 결심하고 혼자 연습하던 차에 이윤규 대표를 만났다. 방선희 마라톤교실에서 체계적으로 교육을 받은 후 성 대표는 춘천 마라톤대회 풀코스를 재작년에 4시간 40분, 작년엔 5시간 3분에 완주했다. 성 대표는 “처음에는 몸도 좋지 않아 두려움이 앞섰다”며 “이 대표가 없었으면 나는 지금도 마라톤에 도전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고마운 마음을 표했다.
[CEO COMMUNITY] 금융업계 마라토너 5인방 ‘내가 달리는 이유’
최영수 전무(IB사업부문장)는 구본용 대표의 소개로 작년 이 모임에 합류한 경우. 아직 시작한 지 1년밖에 안 된 새내기지만 선배들(?) 사이에서는 ‘마라톤 유망주’로 통한다. 이제 20km 정도 달리기 시작했으며, 누구보다 열심히 훈련에 매진하고 있다.

이날 개인 사정상 훈련에 참석하지 못한 박연익 팀장은 ‘좀 뛴다’ 하는 마라톤 동호인들 사이에서도 인정받는 베터랑 마라토너다. 2002년 전주 군산마라톤대회에서 15km 부문에 참가한 것을 시작으로 마라톤에 입문해 지난 13년 동안 무려 245번의 완주 기록을 가지고 있다. 1년에 20차례 이상 마라톤에 도전한 적도 있다. 일주일에 80~90km 정도 달리며 꾸준히 트레이닝하는 것이 비결이다. 박 팀장은 “2010년에 출전한 하이서울마라톤이 100번째 마라톤 풀코스 완주였는데 그때 기억이 가장 많이 남는다”며 “마라톤은 좋은 기록을 내는 것보다는 즐기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매번 깨닫고 있다”고 말했다.


함께 뛰는 마라톤, 실적 오르고 배 들어가니 살맛 나
5인방의 마라톤 이력은 실로 대단했다. 나이와 경력은 제각각이지만 모두 겉모습에서 에너지가 넘쳐흘렀다. 중년들의 적인 뱃살도 없고, 피부에서는 윤이 났다. 도대체 마라톤의 어떤 점이 이들을 하루라도 달리지 않으면 입 안에 가시가 돋게 만드는 것일까. 이들은 공통적으로 스트레스 관리를 첫손에 꼽았다.

“금융투자업은 스트레스를 무척 많이 받는 직업입니다. 골프도 많이 치는데, 이게 또 다른 비즈니스라 운동은커녕 더 스트레스가 쌓이는 경우가 많아요. 저는 마라톤을 시작하면서 상념이 많이 없어지고 스트레스 지수가 쑥 낮아졌습니다. 생각도 긍정적으로 바뀌고 적극적으로 행동하게 됐죠.”(성건웅 대표)
과천관문운동장에서 열린 방선희 마라톤교실에 참석한 (왼쪽부터) 구본용 대표, 최영수 전무, 이윤규 대표, 성건웅 대표.
과천관문운동장에서 열린 방선희 마라톤교실에 참석한 (왼쪽부터) 구본용 대표, 최영수 전무, 이윤규 대표, 성건웅 대표.
이윤규 대표 역시 달리면서 일주일 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정리하고 또 다음 일주일에 무엇을 할지 계획한다. 이 대표는 “일주일에 훈련 양이 70km 정도 되는데, 시원한 바람을 가르면서 뛰다 보면 신기하게 복잡하던 머릿속이 비워지면서 아주 상쾌해진다”고 말했다. 힘든 훈련을 하며 체력도 좋아지니 일을 하는 데 있어서도 시너지가 난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박연익 팀장은 “몸이 건강해지니까 일도 열심히 할 수 있다”며 “요즘에는 저녁에 술자리가 있어도 아침에 가볍게 일어나고, 주중에 일이 많아도 주말엔 집안일도 도맡아 할 정도로 체력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여기저기 아프지 않은 데가 없어 별명이 ‘종합병원’이었던 성건웅 대표도 “좋은 공기 마시면서 뛰는 습관을 들이니 면역력이 강해져 감기도 잘 안 걸린다”며 웃었다.

구본용 대표는 금융 투자와 마라톤은 공통점이 제법 많다고 했다. 특히 구 대표가 다루는 사모펀드의 경우 5~10년씩 장기간 운용을 하기 때문에 마라톤 할 때와 같이 긴 호흡을 가지고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한 회사에 투자해 자금을 회수하기까지 짧게는 3년, 길게는 5년이 걸립니다. 그 과정에서 업 앤드 다운도 심하고요. 42.195km를 달리다 보면 온갖 오르막과 내리막을 다 만나게 되고 그 속에서 희로애락을 경험하죠. 그래야 비로소 피니시 라인에 도달합니다. 마라톤을 하며 얻는 교훈이 투자와 경영에도 굉장히 많은 도움이 됩니다.”(구본용 대표)

5인방은 이왕 마라톤으로 뭉친 만큼 앞으로는 의미있는 활동들도 해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 첫 번째가 시각장애인 마라토너와 함께 뛰는 가이드러너인 ‘해피 레그(happy leg)’ 활동이다. 앞이 보이지 않는 이들이 잘 달릴 수 있도록 손목을 끈으로 묶어서 함께 뛰는 일종의 자원봉사로, 이윤규 대표와 구본용 대표, 박연익 팀장과 같은 오랜 경력의 마라토너들은 이미 실천하고 있다.

“마라톤은 사실 더불어서 하는 운동이에요. 다 같이 갈 때 훨씬 쉽게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죠. 방향을 잃지 않게 곁에서 함께 뛰어주는 페이스메이커의 역할은 그래서 중요합니다.”(이윤규 대표)

박연익 팀장은 지체장애 아동들과 함께 달리기도 하고, 형편이 어려운 육상 꿈나무들을 찾아가 장학금을 전달하기도 한다. 결국, 달리는 것은 혼자이지만, 실제로는 달리는 중에도, 달리기가 끝난 후에도 혼자가 아닌 셈이다.


이윤경 기자 ramji@hankyung.com | 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