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 경방 사장의 ‘The Classic’ 12th

[CLASSIC ODYSSEY] 낭만주의, 음악을 통한 감정의 발현
레오나르도 번스타인은 이런 말을 했다. “음악은 음악이다.” 필자는 이것이야말로 음악을 간단하게 잘 정의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고전주의니 낭만주의니 하는 음악 사조의 구분이 무의미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더구나 고전주의 시대에도 낭만 요소가 있었고, 낭만주의 시대에도 고전주의 형식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음을 상기해보면 더욱 그렇다. 그렇다손 쳐도 음악사에서 낭만주의 시대를 논하지 않을 순 없다. 오랜 시기에 걸쳐 수많은 작곡가들이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활동했던 그 찬란한 호황기를 들여다보자.


클래식 음악의 역사는 바로크, 고전주의, 낭만주의, 그리고 근·현대음악으로 이어진다. 일부 시도가 있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피아노가 사용되기 전인 바로크 음악, 소나타 폼을 중심으로 한 고전주의, 그리고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운 감정 표현이 먼저였던 낭만주의, 이전 시대에서 벗어나 보다 다양하고 새로운 시도들이 행해진 근·현대음악 등 각 음악 사조를 정의하는 표현들은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린 말이기도 하다. 역사에서 편의상 무슨 무슨 시대니 구분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어디 역사라는 게 ‘자, 지금부터 시작!’ 할 수 있는 것이던가. 역사도 그럴진대 하물며 음악이야 말해 뭐할까. 고전주의니 낭만주의니 하는 건 분명 필요한 구분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각 시대에 속한 클래식 음악들이 반드시 고전적이기만 하거나 낭만적이기만 한 것은 절대로 아니란 얘기다.
전기 낭만주의를 이끈 멘델스존
전기 낭만주의를 이끈 멘델스존
클래식 음악의 양적·질적 호황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 사조의 구분이 분명 필요하다고 했던 건 그만큼 시대적으로 음악이 확연히 달라지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시대가 더 중요하니 덜 중요하니 따질 순 없지만 적어도 낭만주의 시대가 시기적으로도 길고, 전 세계에 걸쳐 수많은 작곡가들이 동시대에 활동했던 클래식 음악의 호황기였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낭만주의 음악에 대해 논하기 전에 일단 그 시대 배경부터 볼 필요가 있다. 베토벤 이후 슈베르트부터 시작해 슈만, 멘델스존, 쇼팽, 리스트, 바그너에서 브람스, 차이콥스키, 구스타프 말러,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라흐마니노프에 이어지는 낭만주의 시대는 문화적으로 상당한 변혁기였다. 산업혁명이 본격적으로 꽃을 피우면서 전 세계 경제가 바뀌었고, 사상적으로도 카를 마르크스가 태어나 공산주의 이론을 만드는 등 변화의 중심에 있었다. 이처럼 음악사적으로 음악사 외적으로도 상당히 중요했던 시대의 음악이니 한 마디로 말한다는 건 참으로 어렵지만, 고전주의와 차별화되는 낭만주의 음악의 가장 큰 특징은 ‘형식보다 표현’을 중시한다는 데 있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또 모순이 발생한다. 고전주의 시대에도 분명 낭만적 요소가 있었고, 낭만주의 시대에도 고전주의의 ‘발견’이라 일컬어지는 소나타 폼에 충실한 곡들이 없지 않았으니 하는 말이다.

쉬운 예를 들어, 고전주의 시대 음악가로 분류되는 베토벤의 작품 중에는 낭만적 요소가 많은 곡들이 더러 있어 고전주의 시각에서 보면 가히 ‘파괴적’이라 할 만하다. 대표적인 곡이 바로 ‘비창 소나타 2악장’과 ‘전원 교향곡’이다. 고전주의에서 중시하는 소나타 폼은 무언가를 표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기승전결의 구성을 갖고 음악에만 집중해야 하는 형식이다. 그런데도 베토벤은 표현에 적극적이었다. 형식을 뛰어넘고 극복한 베토벤의 곡들은 그렇게 이미 낭만주의의 시작이 되고 있었던 셈이다. 따라서 본격적인 낭만주의 시대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슈베르트가 베토벤에게 음악적으로 상당한 영향을 받았던 것 또한 그리 이상할 것 없다. 어쩌면 고전주의가 형식을 중요시한다는 말조차 정확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 어차피 형식이란 사람들을 설득하기 쉽고 듣기 좋도록 만들어진 것이므로, 오히려 ‘기승전결’이 아니라 ‘승기전결’이 더 감동적이라면 그게 ‘답’일 수 있는 셈이니까.

앞서 말했듯 낭만주의 시대에는 워낙 많은 음악가들이 활동을 했기 때문에 그들의 작품을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지만, 전기 낭만주의를 이끈 대표적인 이들인 슈베르트와 슈만, 쇼팽과 멘델스존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슈베르트
슈베르트
슈베르트는 멜로디에 있어 모차르트와 마찬가지로 뛰어난 천재였다. 슈베르트 곡의 특징 중 하나는 음악이 끝나는 줄 모르게 끝난다는 점인데, 그런 면에서 형식에 전혀 얽매이지 않는 낭만주의 음악의 색깔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슈베르트의 여덟 번째 교향곡이자 사후에 발표돼 가장 많이 연주되는 ‘미완성 교향곡’ 또한 제목 그대로 1, 2악장밖에 없고, 즉흥적 요소가 많은 곡들도 적지 않다. 재밌는 건 그토록 자유분방한 슈베르트도 피아노 소나타 중에 몇 곡은 소나타 폼에 맞는 곡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슈베르트뿐만 아니라 피아노 명곡이 많은 쇼팽도 마찬가지였는데, 이는 낭만주의 음악가들에게서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했다.


슈베르트에서 멘델스존까지 전기 낭만주의 음악가들
슈베르트가 베토벤의 영향을 받은 낭만주의였다면, 슈만은 베토벤과 완전히 다른 낭만주의를 선보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고전적 요소가 완전히 배제된 낭만주의 음악은 슈만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다. 다만 아쉽게도 슈만은 남긴 곡이 많지 않다. 작곡가로서 출발이 늦었을 뿐만 아니라 정신병을 앓은 데다 오래 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낭만주의에서 슈만이 차지하는 비중은 적지 않다. 내면적이면서도 파괴적인 슈만의 곡들은 오래 들어야 이해할 수 있을 정도지만, 딱 한 곡만을 남긴 피아노 콘체르토는 필히 감상해보길 권한다.
슈만
슈만
전기 낭만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바로 멘델스존이다. 당시 모차르트 이후 최고의 천재라는 평가를 받았던 멘델스존은 일찍 재능을 발견한 것이나 못 다루는 악기가 없는 것이나 모차르트와 비슷한 구석이 많았다. 다른 점이라면 자유분방한 모차르트와 달리 멘델스존은 그야말로 경건하고 모범생 스타일이었다는 점. 그도 그럴 것이 멘델스존은 모든 것을 다 갖춘 집안에서 태어나 일찍 발현된 재능을 더 빛낼 수 있는 충분한 환경에 놓여 있었다. 멘델스존의 부친은 유럽을 장악한 은행가였으며, 할아버지는 유명한 철학자였다. 더구나 부모는 교양이 풍부하고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으니, 행운아 중에 행운아였다. 그 덕분에 멘델스존은 음악 외에도 문학, 철학, 자연과학 등 각 분야에 대해 공부하며 지식적으로 깊이가 있었다. 지휘법을 새로 만든 명지휘자였으며, 바흐와 헨델의 문헌을 정리하는 등 음악학자로서도 뛰어난 사람이었다. 또 독일의 괴테, 영국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 공 등과도 친분이 두터웠다.

그토록 재능이 뛰어나고 재능을 뒷받침해줄 백그라운드가 탄탄했던 멘델스존은, 그러나 엄청나게 많은 곡을 남겼음에도 연주되지 않는 곡들이 연주되는 곡보다 훨씬 더 많다. 왜일까. 이에 대해 필자는 두 가지 분석을 해본다. 하나는 멘델스존이 38세에 요절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그가 너무 바쁜 삶을 살았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점이다. 요절의 원인 또한 휴식 없이 자신의 에너지를 너무 많은 분야에서 소진해버렸기 때문이라고 추측해본다면, 결국 그에게 주어졌던 좋은 환경이 오히려 음악에만 집중할 수 없게 만들었던 건 아닐지. ‘세상은 참으로 공평하다’고 말해버리기엔 천재 멘델스존의 삶에 대한 안타까움이 크지만, 낭만음악의 정수를 보여주는 바이올린 콘체르토와 너무나도 유명한 서곡 ‘핑갈의 동굴’, 교향곡 4번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한여름 밤의 꿈’, ‘결혼행진곡’ 등에서 그의 흔적을 느껴볼 수밖에.


정리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