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화 시대가 도래하고 물질적 재화보다 인간의 창의성과 상상력의 가치가 중요시됨에 따라 금융의 역할과 형태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금융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상품의 다양성과 플랫폼의 변화다.
[INVEST STRATEGY] 아이스 버킷 챌린지와 금융의 진화
금융이 진화한다. 금융은 ‘경제적 가치를 가진 재화를 필요로 하는 곳에 중개한다’는 기본 업무를 바탕으로 다양하게 발전해왔다. 정보화 시대가 도래하고 물질적 재화보다 인간의 창의성과 상상력의 가치가 중요시됨에 따라 금융의 역할과 형태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금융의 패러다임이 급변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미국 시장에서 엿볼 수 있는 금융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상품의 다양성과 플랫폼의 변화다. 상품의 다양성은 인간의 금융상품화다. 플랫폼의 변화는 페이스북(Facebook)이 자금 중개의 새로운 장을 열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강조하고자 하는 점은 인간을 거래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금융회사의 고유 영역이 SNS로 옮겨가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금융상품화
전 세계적으로 자원이 고갈되는 상황에서 인적 자원의 가치는 나날이 재평가되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 인적 자원을 활용한 부가가치 창출 노력이 시도되고 있다. 금융회사는 속성상 지속 성장이 가능한 아이템을 놓치지 않고 활용하고 있다. 인간의 금융상품화가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페이스북의 주식을 사고 주주가 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미식축구 스타인 버넌 데이비스(Vernon Davis)의 지분을 사들여 그의 주주가 될 수 있게 됐다.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스포츠 브로커리지업체인 판텍스(Fantex)는 주식시장과 같이 스포츠 스타들을 유가증권화해서 대중이 사고팔며 지분을 보유할 수 있게 했다. 지난 4월 28일에 상장된 데이비스의 주식은 개인들에 의해 매매되며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8월 18일에는 주당 0.7달러의 배당금을 주주들에게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시가 배당수익률 6. 9%에 달할 정도로 높다.

아직은 상장 이후 평균 거래량이 140주에 불과해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고 볼 수 없다. 판텍스는 미식축구 선수 모하메드 사누의 상장도 준비하고 있다. 향후 상장 인물의 범위도 음악가, 유명 인사 등으로 넓히겠다는 계획이다. 한 개인에게 주식의 개념을 도입해 주주를 공모하고 배당금도 지급한다는 점에서 사모 형태의 음원 수익에 의존했던 ‘보위본드’보다 진화했다는 평가다.


자금 중개의 새로운 장, 페이스북
금융 산업에 예견되는 또 다른 큰 변화는 플랫폼의 변화다. 이미 은행 지점을 통한 고객과의 대면 거래 비중은 급감하고 있는 추세다. 기존 은행 창구가 개인이 직접 찾아가 대출 상담을 받고 은행이 제시하는 조건에 따라 자본을 지급받는 통로였다면 이제는 소셜 미디어가 그 자리를 대신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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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의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투자자를 모집하는 일은 이미 보편화된 지 오래다. 최근 SNS를 통한 자금 조달의 혁신을 보여준 사례가 있다. 바로 ‘아이스 버킷 챌린지(Ice Bucket Challenge)’다. 미국루게릭병협회(ALS Association)라는 단체에서 처음 시작한 이 운동은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을 위해 기부금을 조성하려는 의도로 출발했다. 자기 머리 위에 얼음물을 붓거나 24시간 이내에 미국루게릭병협회에 100달러를 기부해야 된다는 게임과도 같은 미션은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열풍의 첨병이 바로 페이스북이다. 마크 저커버그, 빌 게이츠 등 유명 인사들의 참여와 페이스북의 파급력에 힘입어 아이스 버킷 챌린지의 모금액은 현재 1억 달러에 이른다. 작년 동 기간 모금액의 20배에 달한다고 한다. 아이스 버킷 챌린지라는 열풍의 한가운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금융회사의 고유 업무라고 여겨졌던 자금 중개의 일부 역할이 SNS로 옮겨갔다는 것이다.

더 중요한 점은 은행이 제시한 대출 조건에 따르는 수동적 입장에 있던 자금 수요자들이 SNS상에서 자신들의 니즈(needs)에 맞춰 직접 투자자를 유치하는 능동적 입지로 급속히 선회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지금 은행의 고유 업무인 자금 중개 기능이 SNS로 이전되는 기로에 서 있다. SNS의 확산에 너무 무섭고 섬뜩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인간 증권거래소가 된 소셜 미디어
인간의 금융상품화와 SNS의 자금 중개 역할 강화라는 두 가지 금융 산업의 변화가 한데 어우러진 예가 있다. 클라라 아라노비치는 영화감독을 꿈꾸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는 영화 공부를 하는 데에만 집중하고 싶었지만 현실적인 여건으로 인해 집중력이 흐트러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는 불특정 다수에게 자신의 미래에 투자할 것을 권유했다.

아라노비치는 자신의 인적 사항과 향후 계획을 인터넷에 올렸다. 그리고 백커(backer)라고 불리는 투자자들의 투자를 이끌어냈다. 아라노비치의 가능성을 높게 산 15명의 투자자들로부터 펀딩 받은 돈은 5만 달러였다. 그는 투자에 대한 대가로 투자자들에게 10년간 연소득의 5%를 배당금으로 지급하기로 약속했다.

개인이 스스로 금융상품이 돼 투자를 유치하고 배당금을 지급하는 형태는 SNS라는 플랫폼을 통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아라노비치와 같이 자신의 미래 가치만 가지고 투자자를 찾는 사람들을 위한 클라우딩 펀드가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아라노비치를 도와준 업체는 페이브(Pave)였다. 아라노비치와 투자자들을 성공적으로 매칭시킨 페이브 외에도 업스타트(Upstart), 커뮤러스 펀딩(Cumulus Funding) 등 비슷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터넷업체들이 늘고 있다.

프랑스 작가 자비에 도라송은 ‘휴먼 스톡 익스체인지(Human Stock Exchange)’라는 만화를 통해 인간이 상장돼 거래되는 미래를 이미 예상한 바 있다. (2012년 작 ‘곧, 인간이 상장된다H$E-Demain, L’etre humain sera cote en bourse)’가 그것이다. ‘인간 증권거래소’라는 개념은 인간의 금융상품화와 SNS를 통한 자금 중개, 수요자가 공급자를 직접 정하는 대출 조건 등 향후 전개될 금융 산업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한계점도 존재하나 가능성은 무궁무진
인간의 금융상품화와 새로운 금융 플랫폼으로서의 SNS가 문제점이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인간은 자유 의지를 가진 존재라는 점에서 인간을 기초로 설계된 금융상품은 높은 변동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데이비스가 심각한 부상으로 선수 생활에 종지부를 찍게 된다면 미래 투자 수익에 대한 보장은 전혀 없다. 한 개인에게 투자를 한 뒤 그 개인의 지분을 갖게 됐다고 해서 기업에 투자한 것처럼 경영권을 갖게 되는 건 아니다. 또 아라노비치가 영화감독의 꿈을 접고 가정주부가 돼도 이를 저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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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문제점 외에도 금융업을 영위하기 위한 SNS의 플랫폼이 안정적인지에 대한 의문도 여전한 논란거리다. 최근 차량 운전기사와 승객을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연결해주는 우버(Uber)가 논란을 일으킨 것도 이러한 불안정성의 연장선상에 있다. SNS를 통한 신상 정보 유출 등의 우려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SNS가 금융회사의 역할을 완전히 대체한다는 것은 현재로서는 무리가 있다.

그렇지만 완전한 대체는 아니더라도 금융회사가 하던 역할을 일정 부분 수행하는 것은 ‘시간 문제’다. 인간을 기초로 한 금융상품의 수익 보장과 SNS의 안정성 확보 등 해결해야 할 부분도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사례들처럼 이미 금융의 진화를 위한 새로운 시도들이 지속되고 있다. 이는 거스를 수 없는 대변화가 맞다. 주식시장에서는 이러한 시장의 성장성을 반영해 관련 업체들의 주가는 급등하고 있다.

2013년 초 이후 미국을 대표하는 금융회사들의 주가는 정체 상태다. 반면 페이스북의 주가는 3배 가까이 상승했다. 아이스 버킷 챌린지 붐 이후에는 7% 가까이 상승했다.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면 편승해 향유하는 것이 옳다. 이미 대세는 기울었고, 대변화를 인지해야 한다.


양기인 신한금융투자 리서치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