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묘약’ 초콜릿이 단순 디저트를 넘어선 지 오래다. 커피나 와인처럼 원산지를 따져 맛을 보고, 예술품으로서 초콜릿 아트를 감상하는 애호가들도 늘고 있다. 그야말로 하나의 문화가 된 셈이다. 미각과 시각, 촉각까지 마비시킨 그 치명적인 매력, 무엇이기에.
[HAND-MADE CHOCOLATE] 초콜릿, 문화가 된 神의 음료
초콜릿은 예로부터 고급 음식의 대명사였다. 초콜릿은 본래 검고 진한 액체였는데, 고대 아즈텍의 왕 몬테즈마는 건강을 위해 이 ‘신이 내린 음료’를 하루 50잔 이상 마셨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 명성황후가 러시아 공관원에게 선물로 받은 초콜릿을 처음으로 맛봤다고 전해진다. 해방 직후까지도 초콜릿은 일부 특권층만이 향유할 수 있는 귀한 먹을거리였다.

과자부터 음료까지 초콜릿이 흔하디흔해진 요즘, 다시금 초콜릿 시장에 고급화 바람이 불고 있다. 카카오 버터 함유량이 30% 이상인 커버추어를 녹여 만든 수제 초콜릿은 물론 카카오 콩을 직접 수입해 오리지널 카카오의 맛과 영양을 그대로 살린 빈투바(bean-to-bar) 등 수준 높은 초콜릿들이 대중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외형도 업그레이드 됐다. 초콜릿이 네모나거나 동그랗다는 말은 더 이상 성립되지 않는다. 초콜릿 장인 쇼콜라티에가 세심한 공예 실력을 발휘해 아기자기한 모양이나 색깔을 입힌 제품들은 한 편의 예술품을 떠올리게 한다.

고급 수제 초콜릿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전문점은 빠르게 늘고있다. 강남, 홍대, 대학로 일대 수제 초콜릿 전문점은 줄잡아 50여개에 달한다. 고디바(벨기에), 레더라(스위스), 로이스(일본), 토이셔(스위스) 등 해외 프리미엄 브랜드들도 국내에 연착륙하고 있다.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은 지난해 12월 국내 최초 초콜릿 편집숍을 열었다.

개당 2000~4000원으로 결코 싸지 않은 가격에도 고급 수제 초콜릿이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소비자의 의식 수준이 점차 높아지면서 우리나라 사람들도 초콜릿의 원재료인 카카오 고유의 맛을 즐기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초콜릿 전문점 ‘샤또 쇼콜라’ 한예석 대표는 “커피와 디저트 열풍과도 무관하지 않다”며 “초콜릿의 인기는 원두커피의 인기와 동반 상승하고 있는데, 식품 본연의 맛을 느끼기 위해 원산지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몇 년 새 많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출장이나 여행 등 외국을 많이 다니면서 세계 곳곳에서 맛본 고급 수제 초콜릿을 국내에서 찾기 시작한 것도 한 이유다.

수제 초콜릿 전문점이 국내에 하나둘 생기기 시작한 것은 2000년. 1세대 쇼콜라티에 한예석·김성미 씨가 문을 연 ‘샤또 쇼콜라’, ‘빠드 두’ 등이 초기 수제 초콜릿 전문점이다. 비싼 가격 탓에 강남, 목동을 중심으로 둥지를 틀었고, 4~5년 후인 2005년 즈음부터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한 대표는 “소비자들이 공장에서 만들어낸 완제품이 아닌 직접 손으로 만든 부드럽고 진한 초콜릿의 매력에 눈을 떴다”며 “한 알에 1000원이면 당시만 해도 비싼 가격이었는데 한 번 맛본 사람들이 다시 찾아와 매장에 제품이 동날 정도로 인기를 얻었다”고 회상했다.


최상품은 에콰도르산 싱글 오리진 카카오빈
수제 초콜릿은 쇼콜라티에가 직접 여러 종류의 커버추어 초콜릿을 블렌딩(배합)하고 부재료를 첨가해 만들어내는 작품이다. 초콜릿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카카오 콩을 선별하고 볶아낸다. 이 과정에서 카카오 콩 특유의 향을 살려낸다. 볶은 콩은 분쇄하고 껍질을 골라내 분리하며 초콜릿의 풍미를 위해 다량의 지방분이 함유된 카카오니브(카카오 콩의 껍질과 배를 제거하고 남은 살)를 배합한다. 우유나 코코아 버터와 같은 미립화 과정을 거치고 반죽기로 장시간 반죽한다. 코코아 버터가 안정되면 온도를 조절해 틀에서 굳힌다.

제조 과정에서 원산지별 카카오는 각양각색 초콜릿 맛을 구현해낸다. 카카오는 에콰도르, 베네수엘라, 탄자니아, 가나산이 상품(上品)으로 꼽히고,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 아시아산은 상대적으로 질이 떨어진다.

수제 초콜릿은 단순 커버추어를 녹여 만드는 것에서 카카오 콩을 직접 수입해 볶고 갈고 녹여 오리지널 카카오의 맛과 영양을 그대로 살리는 ‘빈투바’ 시대로 진화했다. 보통 카카오빈은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 등에서 자란 것을 섞어 만드는데, 오리진 초콜릿의 경우 한 지역에서만 나는 것으로 만들어 희소가치를 높였다. 특히 에콰도르 단일 생산지에서 채집된 순종 원료인 싱글 오리진 카카오빈으로 최고의 초콜릿을 만들 수 있다. 전 세계 생산량의 10%밖에 안 돼 가격은 비싸지만 향이 좋고 카카오 함량이 높은 최상급 유기농 초콜릿으로 태어난다.
[HAND-MADE CHOCOLATE] 초콜릿, 문화가 된 神의 음료
와인·위스키와 찰떡궁합…충치 예방, 신경 안정에 도움
이처럼 카카오 함량이 70% 이상으로 높고 첨가물을 최소화한 다크 초콜릿은 건강에도 좋다. 초콜릿은 흔히 치아를 상하게 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최근 일본 오사카대 오오시마 타카시 박사는 “카카오 콩의 껍질에 충치를 발생시키는 구강 내 박테리아의 성장을 방해하는 성분이 있다”고 발표했다. 또 초콜릿에 들어 있는 타닌과 코코아폴리페놀은 구강 내 박테리아 번식을 막아 충치를 예방하는 데 효과가 있다. 카카오빈 속 카페인은 중추신경을 가볍게 자극해 가라앉은 기분을 밝게 해준다. 당분은 혈당치를 정상화하고 뇌의 움직임을 활발하게 해 신경 안정과 스트레스 완화에도 도움을 준다.

또 초콜릿 속 페닐에틸아민은 사랑의 감정을 깊게 해준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 때문에 18세기 유럽에서 초콜릿은 ‘사랑의 묘약’으로 통했다. 밸런타인데이 등에 연인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는 것도 여기에서 비롯됐다. 그 밖에 카테킨, 타닌, 폴리페놀 등은 체내세포를 공격, 활성화산소 프리라디칼을 제거해 암과 노화를 방지한다.

애호가들은 초콜릿을 다양한 형태로 즐긴다. 샴페인이나 화이트와인, 진하게 로스팅 된 커피와 곁들이면 맛과 향이 더욱 부드럽고 풍부해진다. 김현미 쇼콜라티에는 “단맛의 초콜릿에는 더 강한 단맛의 와인을, 다크 초콜릿에는 과일 향이 풍부한 모스카토 다스티 계열의 와인을, 아몬드가 씹히는 프랄린 초콜릿에는 향이 비슷한 와인을 곁들이는 것이 좋다”고 마리아주를 추천했다.

단맛과 쓴맛이 조화를 이룬 카카오 함량 70%의 초콜릿은 카베르네 쇼비뇽, 메를로 품종의 레드 와인과 함께 즐기면 좋다. 카카오 함량 85%의 초콜릿은 위스키처럼 알코올 도수가 높은 주류와 함께 즐기면 초콜릿의 풍부한 향을 느낄 수 있다. 카카오 함량 90%의 쓴맛 초콜릿은 상큼한 샴페인이나 달콤한 디저트 와인과 잘 어울린다.

초콜릿을 먹을 땐 녹차나 원두커피로 입을 깨끗하게 한 다음 그 맛과 향을 음미하면 더 맛있다. 한 대표는 “입 속에 오래 두고 천천히 녹여 먹는 것도 좋지만 내 경우는 우적우적 씹어 먹으면서 부드러운 식감과 더불어 달고 씁쓸한 초콜릿의 매력을 즐기는 편”이라며 “제대로 만든 수제 초콜릿은 밀도가 높아 진한 풍미가 입 안 가득 꽉 채워주는 느낌인데, 와인의 ‘풀보디’를 연상케 한다”고 말했다.

‘국내 1호 초콜릿 박사’로 불리는 제주초콜릿박물관 주진윤 회장은 “국내에서 커피 열풍이 이미 무르익은 상태라면 초콜릿을 즐기는 문화는 이제 막 성장기에 접어들었다”며 “앞으로는 쇼콜라티에의 예술적인 초콜릿을 단순히 맛보는 것을 넘어 원산지별로 카카오빈을 브랜딩하고 자가 로스팅해 즐기는 초콜릿 DIY족도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INTERVIEW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베키아 에 누보’ 김혜령 지배인
미국·벨기에·프랑스·이탈리아… “4國4色 초콜릿 맛보세요”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델리 베키아 에 누보가 지난해 12월 국내 최초로 초콜릿 편집숍을 오픈했다. 세계 미식 초콜릿의 표준인 벨기에 ‘베노아 니앙’부터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아메데이’, 미슐랭 3스타 셰프가 찾는 쇼콜라티에 프랑수아 프랄뤼가 만드는 프랑스의 ‘프랄뤼’, 퓨전 초콜릿 선구자 미국의 ‘추아오 쇼콜라티에’ 등 4개국의 90여 종 초콜릿이 선을 보인다.

초콜릿 편집숍을 오픈하게 된 계기는.
“최근 ‘기호식품’인 초콜릿의 인기가 갈수록 높아지고 소비자 취향 역시 까다로워지고 있다. 카카오 함유량을 따지거나 원산지를 확인해 구매하는 고객들도 많다. 이러한 수요를 감안해 초콜릿 편집숍을 국내 최초로 선보이게 됐다.”

편집숍의 특징은.
“전 세계의 독특한 초콜릿 제품을 소개한다는 점이다. 입점한 브랜드 모두 카카오 원두부터 완제품까지 직접 관리해 품질 인증을 받은 빈투바 업체들이다. 제품­마다 특징과 철학을 비교하며 즐겨도 좋다.”

어떤 제품이 있나.
“미국 추아오 제품은 음식과 초콜릿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이색적인 맛을 즐길 수 있다. 베이컨, 포테이토, 팝콘 등이 초콜릿과 조화를 이룬다. 벨기에 베노아 니앙 제품은 차와 꽃을 입혀 초콜릿에 향을 가미하는 제조법으로 유명하다. 초콜릿 모양도 굉장히 유니크해 선물용으로도 알맞다. 프랑스 프랄뤼 초콜릿은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에 들어가는 프리미엄 제품들이다. 중남미, 아시아, 아프리카 최고 품종의 카카오빈을 사용해 프랄뤼 가문 전통 방법으로 만든 산지별 10가지 초콜릿 맛을 볼 수 있다. 이탈리아 아메데이는 크리오요와 트리니타리오종 카카오만 추출해 발효시켜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미국 브랜드 초콜릿은 부드러운 맛, 프랑스나 벨기에 쪽 제품은 진하고 강렬한 풍미가 있다.”

주 소비층은.
“트렌디한 여성들이 많지만 생각보다 남성 마니아층도 두텁다. 이들은 단맛이 강한 것보다는 카카오 함량 70% 이상의 진한 맛을 좋아한다. 그동안 먹어보지 못한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도 크다. 제3세계 쿠바산, 마다가스카산 초콜릿 등이 인기가 좋다.”

초콜릿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프리미엄 초콜릿이 하나의 기호식품으로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 커피 문화가 믹스 커피에서 원두커피, 산지별 자가 로스팅으로 발전한 것처럼 초콜릿 역시 비슷하게 성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장을 밝게 전망하고 있다.”


이윤경 기자 ramji@hankyung.com│사진 서범세 기자│촬영 협조 샤또 쇼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