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The Classic’ 1st
클래식, ‘고전음악’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클래식이 많이 대중화됐음에도 여전히 소수 계층의 전유물이라는 편견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주변을 한번 보세요. 이런 표현은 참으로 미안하지만 클래식이 ‘널려’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다 같은 클래식이 아니죠. 어디선가 마구 쏟아져 나오는 클래식과 내가 직접 음반을 골라, 혹은 공연장에 찾아가 듣는 클래식은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부분이 어렵습니다. 누구의 어떤 음악을 어디서 어떻게 들어야 하느냐. 그래서 클래식은 ‘아는 만큼 들리는’ 법이지요. 김준 경방 사장이 들려주는 ‘The Classic’ 연재를 시작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모차르트, 베토벤, 쇼팽, 브람스처럼 누구나 아는 클래식의 ‘대명사’뿐만 아니라 클래식이란 범주에 속한 모든 것들에 대해, 심지어 그 행간까지 읽어냄으로써 클래식의 진짜 깊은 맛에 한 걸음 더 다가가기 위함이랄까요. -편집자 주 내가 클래식 애호가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몇몇은 이런 질문을 던진다. “클래식이 경영에 어떤 영향을 끼칩니까?” 물론 클래식이 정서에 끼치는 영향은 과학적으로 이미 증명된 바다. ‘태교 클래식’이라고 해서 클래식이 엄마와 태아에게 끼치는 효과는 익히 알려졌고, 자폐증 치료에도 클래식이 활용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심지어 클래식을 들려주면 식물이 더 잘 자라고, 가축에게 클래식을 들려주는 농가도 있다고 하니, 더 말해 뭣하랴.그러니 클래식이 경영에도 분명 ‘화학작용’을 일으켜 에너지를 줄 것이란 점에 대해서는 반박할 생각이 없다. 다만, 클래식에 기대어 뭔가를 얻고자 하는 심산으로 비즈니스 하듯 접근한다면 클래식이 주는 진정한 즐거움을 깨닫기는 어려울 게다. 클래식이 가져올 부수적인 산물들은 더더욱. 그것이 지혜든 사유든 아니면 힐링이든.
하여 그저 순수한 마음으로 많이 듣는 것만이 클래식을 알아가는 단순하고도 명확한 길이다. 처음엔 지겹지만 듣다 보면 들리고 더 듣다 보면 빠져들고 더, 더 듣다 보면 진가를 깨닫게 되는 것이 바로 클래식이니까.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브람스가 그랬다. 초등학교 때는 정말 어렵고 싫었는데, 대학 때 다시 들으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브람스뿐만 아니라 클래식은 모든 곡이 다 그런 식이다. 음악가들 사이에는 이런 말이 있다. 연주가들이 처음엔 모차르트로 시작해서 마지막에 모차르트로 끝낸다는 것이다. 누구나 아는 모차르트지만, 배우며 배울수록 들으면 들을수록 그 표현의 깊이가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뜻이다.
부친에게 물려받은 클래식 DNA
본격적인 클래식 이야기에 앞서 클래식과의 인연에 대해 먼저 고백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에게 클래식은 생활 그 자체다.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많은 시간을 보내고 연주가들과 만나 음악 이야기를 나누는 즐거움이 크다. 클래식이 없는 내 삶이란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라고나 할까. 만일 내게 클래식이 없었더라면, 경영자로서의 삶이 무척이나 무미건조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클래식을 좋아하게 된 데는 아버지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아버지는 음악에 관심이 많은 정도를 넘어 오페라에 있어서는 거의 준전문가 수준이었다. 아버지가 노래를 잘 하신다는 것은 재계에서는 익히 알려진 사실이었다. 아버지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음악을 배우셨는데, 할아버님이 노해서 악보를 불태워버리고 판을 갖다 버렸을 정도로 너무 심취했었다는 이야기를 훗날 할머님을 통해 들은 적이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음악에 대한 아버지의 열정은 굉장했다. 연희전문을 졸업하고 미국 켄터키 주에 있는 베리아칼리지에 다시 입학한 아버지는 화학을 전공하면서도 음대 클래스에서 수업을 들었다고 한다. 그 옛날 아버지의 사진을 보면 음대생들과 같이 오페라 공연도 했는데, ‘라 트라비아타’의 남자 주인공 알프레도 역할을 할 정도였다. 유타주립대에서 박사 과정을 밟을 때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를 보고 싶어서 뉴욕까지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크리스마스 시즌 2~3주를 머물며 오페라를 봤다고 하니 그 애정의 깊이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나는 그저 판에서만 음악으로 듣는 거장들을 아버지는 당시 실제로 보고 들었으니 클래식 애호가 입장에서는 정말 부러울 따름이다. 아버지는 나와 함께 클래식을 들을 때마다 “이 부분에선 마리아 칼라스가 이렇게 움직였지”라는 식으로 메트로폴리탄에서 봤던 경험들을 이야기해 주시곤 했다. 당시 메트로폴리탄은 최대 호황기를 맞고 있었고 전설적인 지휘자, 오케스트라들의 무대가 풍성했으니 아버지에게는 더없이 값진 경험이었을 터다.
상황이 이러니 내가 어렸을 때부터 클래식을 듣는 건 너무 당연했다. 늘 클래식 음악이 집 안에 흐르고 있었고, 아버지가 소장했던 음반들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것도 아버지 덕분이었다. 아버지의 최대 콤플렉스는 피아노를 못 친다는 것이었는데, 당시 초등학생이던 나와 함께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해 8년을 배우시더니 웬만한 곡의 반주를 할 수 있는 실력까지 갖추셨다. 그런 아버지에게 다른 건 몰라도 음악 실력은 아버지보다 낫다는 인정을 받았으니 그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오케스트라의 명성은 지휘자에 좌우된다
개인적인 이야기는 이쯤하고, 지휘자에 대한 이야기로 본론을 시작한다. 지휘자는 경영자와도 종종 비유되는데, 음악을 처음 듣는 사람들은 지휘자 역할에 의문을 갖는다. 정말 지휘자에 따라 음악이 달라질까, 오케스트라에서 지휘의 중요성은 어느 정도일까, 굳이 따지자면 오케스트라와 지휘자 중에 누가 중요할까 등등.
연주가들은 무대에서 관객들을 만날 때가 제일 떨리는 순간인 반면, 지휘자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만날 때 가장 긴장한다고 한다. 자신의 지휘나 음악적 해석을 관중에게 인정받기 전에 먼저 단원들에게 인정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단원들을 통솔하고 그들을 통해 자신의 음악 색깔을 표현하는 것, 바로 여기에 지휘자의 매력이 있다.
지휘의 역사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없다. 모차르트나 베토벤 시대에는 직접 지휘를 했다는 얘기도 있지만 근거는 없다. 그러다 지휘자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된, 즉 최초의 지휘자로 손꼽히는 사람이 바로 한스 본 뷜러다. 이후 오케스트라의 정점을 세운 이들이 바로 빌헬름 푸르트벵글러를 포함해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브루노 발터 등이다. 이 세 사람은 꼭 기억해야 할 이름들이다.
유명 연주가들의 경우 곡만 들어도 누구의 연주인지 알 수 있는 것처럼 지휘도 마찬가지다. 대표적인 예가 토스카니니와 푸르트벵글러다. 그런 이유로 나는 굳이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중 누가 중요하냐고 물으면 지휘자의 손을 든다. 지휘자에 따라 소리가 달라지는 오케스트라가 굉장히 많은 까닭이다. 토스카니니는 자신만의 시그널이 분명한 반면 푸르트벵글러는 마치 물 흐르듯 음악을 이끈다. 푸르트벵글러가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서 오랫동안 지휘를 했는데 익숙하지 않은 연주자가 그의 지휘를 보면 언제 들어가야 할지 모를 정도였다고 한다. 어떤 인터뷰어가 한 단원에게 푸르트벵글러는 무엇이 다르냐고 물었을 때 이런 대답을 했다. “무대에 그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베를린 필은 달라진다.” 지휘자에 대한 대단한 존경심의 표현이 아닐 수 없다. 단원들은 그가 무대에 나타나는 순간 함께 연습했던 순간들이 생각난다고 했다. 푸르트벵글러가 30년 가까이 베를린 필에서 지휘를 하면서 수많은 명곡을 남겼던 데는 바로 이렇게 지휘자와 단원들이 ‘혼연일체’ 되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휘자 한 사람이 갖는 ‘힘’은 미국의 오케스트라를 통해서도 증명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오케스트라들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린 게 바로 유럽에서 활동하던 지휘자들이었던 것. 그들이 미국에 건너갔다 전쟁으로 미국에 머물게 되면서 미국의 삼류 오케스트라들은 완전히 변모의 시기를 맞게 되는데 대표적인 예가 토스카니니와 브루노 발터다.
독일 뮌헨을 중심으로 활동하다 미국으로 넘어간 브루노 발터는 미국의 음악 수준을 한층 올려놓았고, 심지어 토스카니니는 그를 위해 NBC에서 오케스트라를 창단해 주기까지 했다. 이후 토스카니니가 이끄는 NBC 심포니오케스트라는 세계를 휩쓸며 최고의 위치에 올랐고, 토스카니니가 후계자를 세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뒤에는 오케스트라가 아예 해체됐다. 말 그대로 토스카니니의, 토스카니니에 의한, 토스카니니를 위한 오케스트라였던 셈이다.
최고 수준의 오케스트라도 역시 좋은 지휘자가 필요하고, 그에 따라 위치가 달라지기는 마찬가지다. 대표적으로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을 들 수 있다. 베를린 필을 이끌던 푸르트벵글러가 갑자기 죽은 뒤 카라얀이 뒤를 잇게 됐지만, 사실 푸르트벵글러가 자신의 후계자에 대해 말할 때 “카라얀이 아니면 된다”고 말할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푸르트벵글러는 어땠는지 몰라도 카라얀은 그의 소리를 너무나 좋아했다. 솔직히 음악가로서는 카라얀이 푸르트벵글러를 능가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경영적인 면에서는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클래식 음악을 상업화하고 브랜드화하는 데 성공하면서 더불어 클래식의 저변 확대에도 기여했다. 일부는 비즈니스맨으로서의 성공을 폄하하고 비판하는 시각도 있지만, 전체 오케스트라를 이끌어가는 지휘자에게는 분명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지휘자는 마치 경영자가 경영을 하며 모두의 마음을 읽는 것처럼 때론 독심술도 필요하고 공부의 양도 엄청나야 하며 단원 한 명 한 명, 악기 하나하나를 모두 장악하고 있어야 한다. 지휘자들 중에 인문학을 전공한 사람이 많고, 음악을 했더라도 여러 악기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이 많은 건 그래서다. 그만큼 지휘자들이 느끼는 고뇌와 희열도 클 터. 악기 하나를 실수 없이 연주하는 것도 어려운데 수십 명의 단원들이 지휘에 맞춰 한 음을 낼 때의 희열은 의사가 죽어가는 환자를 살릴 때의 그것과 비교할 수 있으려나.
지금 시대에 토스카니니, 푸르트벵글러 같은 대가급 지휘자가 흔치 않다는 것은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아,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지휘를 알고 보면 클래식이 다르게 들리니, 가능하면 공연장에서 직접 보고 듣는 게 ‘최선의 감동’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정리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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