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적인 가업승계, 명문가의 길

전 세계적으로 장수 기업이 가장 많다는 일본.

일본 제국데이터뱅크가 2010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창업한 지 100년 이상 된 장수 기업은 일본 전국에 2만2200개사에 달하는데, 그중 98% 이상이 중소기업이었다. 이들은 가업승계를 통한 후계 경영으로 전통과 기업 정신을 지키면서도 혁신이라는 화두를 잊지 않았다.
이즈미리키제작소의 7대 시노다 사장이 자사의 칼을 소개하고 있다.
이즈미리키제작소의 7대 시노다 사장이 자사의 칼을 소개하고 있다.
일본 내 가장 오래된 기업은 곤고구미로, 서기 578년에 쇼토쿠 태자가 시텐노지 건립을 위해 백제에서 초청해온 곤고 시게비츠(한국명 유광중)가 시조로 추정되며 1400년 이상 지속됐다. 둘째로 오래된 기업은 전통 꽃꽂이의 진흥과 전파를 목적으로 하는 이케노보카도카이로, 587년에 창업된 바 있다.

일본의 상위 장수 기업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본 장수 기업의 업종은 소매업이 제일 많은 6279개사로 전체의 28.3%를 차지한다. 둘째로 많은 업종은 제조업으로 5447개사, 전체의 24.5%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장수 기업이 가장 많이 분포된 지역으로 역사의 도시 교토를 들 수 있다. 구보타 쇼이치 호세이대 교수의 연구 결과(2010년)에 따르면 장수 기업의 특징으로는 우선 명확한 기업 이념과 경영 원칙에 근거해 시대적 흐름에 맞춰 변한다는 점이 있다. 장수 기업 중 승계를 통한 후계 경영을 하는 기업이 많은 이유도 바로 기업 이념을 가장 잘 계승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교토에 장수 기업이 많은 까닭

1871년 창업한 우치다사진주식회사(오사카시 소재)는 우치다 가문에 6대째 내려오고 있는 사진관이다. 이 회사의 역사는 에도시대 말기에 서양에서 건너온 사진기술을 배워 메이지 정부고관의 사진을 찍었던 우치다 규이치에서 시작됐다. 규이치는 서양에서 들어온 사진기술을 배워 그 후에 요코하마, 아사쿠사에서 사진관을 개점했다. 메이지정부의 고관 이외에 가부키 배우 등의 사진을 촬영하면서 최고급 수입 자재로 사진을 인화했다. 사진의 세부 구성까지 신경 쓰는 우치다의 센스에 사업이 번창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32세에 타계한 우치다 규이치 초대사장의 뒤를 이어 친족인 우치다 도리노스케 사장이 2대 사장이 됐다. 그는 1871년 오사카 덴만궁 옆에 사진관을 개업해 140년 역사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우치다사진주식회사는 시대의 변화와 함께 오사카조폐국, 오사카덴만궁 등 유명 정부기관의 사진을 도맡았고, 전쟁 시기에는 군인들의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전쟁 후에는 결혼이 한꺼번에 대량으로 진행되면서 혼례 사진으로 발전을 거듭했다. 우치다사진주식회사의 역사는 항상 시대의 흐름과 같이 했다고 현 6대 우치다 마사히코 사장은 말한다.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성격은 우치다 가계에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인 것 같습니다.”

영업사진관으로 현재 모습의 기초를 다진 것은 현 사장의 아버지 5대 우치다 히로오 사장 때다. 우치다 히로오 사장은 1971년에 컬러 사진을 가장 빨리 받아들여 현상을 자사 내에서 처리하도록 개발하고, 1995년에는 자체적으로 디지털 제본 앨범을 생산하기 시작하는 등 새로운 기술을 빨리 받아들여 성장의 기초로 삼았다. 우치다 히로오 사장이 업계에 가장 혁신적으로 도입한 것은 종업원의 처우 개선이다. 당시의 카메라맨은 주인집에서 살면서 저임금, 장시간 노동이 매우 당연시 됐으나 이러한 열악한 노동환경에서는 우수한 카메라맨이 성장할 수 없다고 생각, 이를 파격적으로 개선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현재 30개소 이상의 스튜디오에서 디지털화가 완료됐으며, 210명의 종업원 중에 80% 이상을 카메라맨이 차지하고 있다. 남보다 빨리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려는 우치다 가문의 노력으로 140년 넘게 사진관이 유지되며 번창하고 있다.

사카이시에 위치한 사카이토지라는 브랜드의 칼로 유명한 이즈미리키제작소도 1805년 창업 이래 가업승계를 바탕으로 오랜 역사를 유지하고 있다. 역사가 약 200년이 넘은 장수 기업인 이곳의 특징 역시 7대에 걸친 전통을 이어 발전시키면서 시대의 요구에 맞게 조금씩 사업 영역을 넓혀왔다는 것이다. 이즈미리키제작소는 1805년에 괭이, 쟁기 등의 제조에서 시작해 칼 제조로 성장한 장인 기업이다. 일본 천황의 결혼이나 출산 등의 행사 시에는 이즈미리키의 칼을 봉헌하고 있다. 현재의 시노다 사장은 7대 사장으로 오랜 역사를 배경으로 장인들이 쓰는 칼로 시장에 승부해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전통을 배경으로 갖춘 칼이라고 해도 오랜 전통만 앞세워서는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다. 따라서 이즈미리키는 새로운 소재로 칼을 다양하게 만드는 노력을 해왔다. 또한 이름을 알리기 위한 마케팅 노력으로 일본 인기 아이돌 그룹 스맙(SMAP)이 진행하는 요리 프로그램에 자사 제품을 사용하도록 했으며 세계 각국의 요리 경연대회 등을 찾아다녔다. 그 결과 전문가용 칼 시장에서 인지도를 높일 수 있었다. 즉, 전통을 가지고 끊임없는 경영 혁신을 해온 셈이다.

장인이 쓰는 칼, 요리사들이 쓰는 칼로 유명한 이즈미리키는 최근 브랜드화를 시작했다. 섬세한 칼날 처리 기술을 살려 제품도 다양화했다. 사카이토지라는 브랜드를 루이비통, 샤넬과 같은 명품 브랜드로 만드는 것이 7대 시노다 사장, 이즈미리키의 목표다. 시노다 사장에게 오랫동안 장수할 수 있었던 비결을 묻자 “욕심내지 않고 할 수 있는 분야에서 조금씩 다각화했던 게 아닐까”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즈미리키가 칼과 관련 없는, 전혀 새로운 분야에 도전했다면 아마 오랫동안 남아 있지 못했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가업을 이어가면서 끊임없는 혁신을 추구해온 결과인 것이다.
[명문가의 길] 장수 기업의 천국, 일본- 전통과 경영 혁신의 끊임없는 조화
좋은 기업을 물려주고 싶다는 의지가 사업 승계 원동력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간장 브랜드인 깃코만도 오랫동안 대를 이어오고 있다. 일본 에도시대 때부터 간장을 제조하기 시작한 식품회사인 깃코만은 1630년 시골의 간장회사로 시작해 현재까지 380년 동안 창업자 가문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깃코만의 장수 비결은 최고의 제품을 향한 혁신 정신이었다. 일본의 전통 간장을 일본에만 국한하지 않고 세계적인 조미료로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던 것. 그 결과 1868년 처음으로 간장을 수출하게 됐는데 당시 세계에 수출한다는 것만으로 대단한 혁신이었다. 오늘날 깃코만은 미국 주방에서도 가장 친숙한 상표가 됐고 100여 개국에서 2000여 종의 제품을 판매하는 세계 최대의 식품회사가 됐다.
그러나 오랜 역사가 이 모든 성장을 뒷받침해준 것은 결코 아니었다. 가족 경영을 하는 만큼 그 안에서 갈등도 많았다. 일례로 깃코만이 300년의 역사로 접어들던 1900년대 초에 가족은 여러 계파로 나뉘었다. 이는 1917년 ‘모지 가족교서’를 채택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권력 분쟁으로 인해 가족 간 분열과 갈등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17개 항으로 된 이 조서는 회사 운영 시스템 전반에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 지금도 지켜지고 있다. 깃코만의 가족교서에는 창업자의 정신과 가족의 신념이 깃들어 있으며 모든 기업 활동의 중심이 되고 있다. 향후 깃코만이 500년, 1000년을 이어갈 정신적 유산인 셈이다.

오사카시의 사업승계부분을 담당하는 공익재단법인 산업창조관의 야마노 치프프로듀서는 “장수 기업일수록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경영 자원을 베이스로 시대에 맞춰 업태 변환, 신규 산업, 신규 시장 진입 등의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며 “가족에게 가업을 물려주는 것이 일반적인 사업 계승의 스타일이기 때문에 선대가 일구어 온 기술, 노하우를 후세에까지 물려주고 싶다, 좋은 경영 상태로 회사를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다는 것이 사업 승계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최근 일본 정부는 기업이 친족 간 사업을 승계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상속세와 증여세의 유예 제도를 검토해 더 완화된 기준을 적용할 방침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후계 경영을 통해 전통을 소중히 하고 가업을 존중하면서 이를 지켜가려는 기업 정신은 우리나라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경미 코트라 오사카무역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