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인터뷰- (주)에프비 솔루션즈 대표 김선화 박사

국제공인재무설계사(CFP) 출신의 김선화 박사는 가업승계와 상속·증여를 컨설팅하며 가족기업(family business)에 대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하게 됐다. 미국가족기업협회 정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한국인 최초로 패밀리 비즈니스와 패밀리 웰스 컨설턴트 인증을 받았다. 가업승계를 고민하는 경영자들로부터 큰 관심을 받고 있는 그에게 100년 기업으로 가는 길을 물었다.
[명문가의 길]100년 가족기업의 비밀, 가족 헌장에 있습니다
가족기업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대한항공 등에서 일하다 CFP 자격증을 취득한 후 다양한 컨설팅을 했습니다. 주로 상속·증여와 관련된 절세 차원의 컨설팅과 강의를 했습니다. 그런데 컨설턴트 입장에서는 좋은 플랜이라고 생각하는데, 고객들의 만족도는 크지 않은 듯했어요. 그 즈음 미국으로 출장을 갔는데 패밀리 비즈니스에 대한 책이 있더라고요. 그때부터 가족기업의 승계 문제를 연구하게 됐어요.”

국내에서도 가업승계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하지만 학문적으로 가족기업을 연구한 경우는 거의 없는 듯합니다.

“그런 이유로 연구가 쉽지는 않았어요. 서울종합과학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에도 국내외를 오가면 연구를 계속했습니다. 미국가족기업협회에 참여해 세계의 가족기업 전문가들과 세미나를 했습니다. 협회 회원들은 아시아인은 거의 없고 대부분이 유럽과 미국인들입니다. 2년 동안 협회에서 연구한 덕에 가족기업 승계 분야인 패밀리 비즈니스와 상속·증여와 관련된 패밀리 웰스 자격을 취득할 수 있었습니다.”

패밀리 비즈니스와 패밀리 웰스 자격증의 차이는 뭡니까.

“패밀리 웰스는 한마디로 웰스 매니지먼트라고 보시면 됩니다. 상속·증여, 세무 등 자산관리 전반을 컨설팅하는 거죠. 전 세계적으로 이 분야도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어요. 외국에서는 주로 패밀리 오피스에서 이 분야를 맡죠. 전 세계적으로 약 1만 개의 패밀리 오피스가 있는데, 향후 2만5000여 개까지 늘 거라는 보고도 있습니다. 외국 패밀리 오피스들은 일차적으로 투자 원칙을 정한 후 큰돈을 벌기보다 절세와 시중금리에 추가 수익률 2% 수준에서 포트폴리오를 구성합니다. 패밀리 비즈니스는 가족기업의 상황에 맞는 가업승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현대적 의미의 기업 역사가 짧다 보니 아시아에서는 이제야 가업승계에 관심을 갖는 듯합니다.

“그렇죠. 한국은 빨라야 2~3대가 기업 경영에 참여하고 있으니까요. 반면 유럽 기업들은 4~5대 이상 이어온 기업은 물론 10대 이상을 대물림한 기업도 많거든요.”

한국에서도 가업승계에 대한 수요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죠. 미국은 기업의 92%가 가족기업입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에 속하는 기업 중에도 가족기업이 30% 이상을 차지합니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는 30년 전부터 가족기업에 대한 연구가 본격화된 겁니다. 프랑스, 영국, 독일 등도 전체 기업의 60% 이상, 이탈리아는 90%가 가족기업입니다. 한국도 한국거래소(KRX)와 코스닥 시장에 등록된 기업의 70% 이상이 가족기업입니다. 문제는 1~2대가 물러날 시점이 됐다는 점이에요. 가업승계에 대한 관심은 갈수록 늘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가족기업에 대한 인식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닙니다.

“재벌가 세습이나 구시대적 유물 등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가족기업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한 조사에 의하면 S&P500 내 가족기업의 평균 실적이 전체 평균을 뛰어넘는다고 합니다. 유럽 기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가족기업이 비가족기업보다 성과가 우수하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눈여겨볼 점은 가족이 소유권만 갖고 경영에 소극적으로 참여한 기업보다 가족 일원이 최고경영자(CEO)나 회장을 맡고 있는 기업의 성과가 더 높았다는 점입니다. 이는 특별한 주주로서 오너그룹의 기업에 대한 헌신이 배경이 됩니다. 전문경영인의 경우 1, 2년 단기 성과에 연연할 수밖에 없지만 오너그룹은 기업의 영속성과 장기적 성과를 봅니다. 따라서 20~30년 장기 플랜에 따른 투자가 가능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한국에서는 오너 경영에 대해 불신이 뿌리 깊은 듯합니다.

“많은 한국인들이 미국 기업은 무척 합리적일 거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 기업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우리 입장에서 비민주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차등의결권입니다. 미국에서는 오너 가족의 기업 지배를 위해 1주가 1000배 이상의 의결권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포드입니다. 포드의 창업주 가족이 가진 지분은 극히 일부지만, 그 작은 지분으로 기업을 지배하도록 돼 있습니다. 유럽의 대표 장수 기업인 발렌베리만 해도 오너 일가가 20% 지분으로 40% 차등의결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차등의결권보다는 가업승계에 따른 세제 혜택에 초점이 맞춰진 듯합니다.

“그 또한 혜택 범위를 넓혀야 한다고 봅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많은 국가들이 상속세가 없습니다. 독일만 해도 10년 이상 고용을 유지하면 상속세를 면제해줍니다. 이 같은 세제 혜택과 함께 차등의결권 등을 통해 작은 지분으로도 기업을 지배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합니다.”

그런 시스템을 갖춘다고 가족 간 분쟁이 사라질까요. 한국에서는 세대를 이어가면서 형제간, 가족 간 분쟁이 끊이지 않는 게 현실입니다.

“미국이나 유럽 기업들도 가족 간 분란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경험을 통해 분쟁을 사전에 방지하는 합리적인 시스템을 찾았습니다. 우선 올바른 가업승계를 위해서는 가족과 기업을 동시에 볼 필요가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기업을 연구하는 곳은 여렷 있지만, 가족을 연구하는 곳은 거의 없거든요. 합리적인 가업승계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가족을 중심에 둬야 합니다. 사람의 차이가 아니라 가족기업은 태생적으로 서로 싸우게 돼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가족이 결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그 후에 기업을 지배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기업에 인수·합병(M&A) 되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가족기업이 100년을 이어가려면 건강한 가족과 튼튼한 기업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시스템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일반 기업은 지배구조가 이사회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반면, 가족기업은 가족의 형태가 지배구조처럼 만들어져야 합니다. 장수 가족기업들은 대부분 가족 헌법(family constitution)을 갖고 있습니다. 가족 헌법에는 누가 회사에 들어가서 일을 하며, 주식은 어떤 때 팔 수 있는지 등의 규정이 정해져 있습니다. 345년 전통의 독일 기업 머크가 대표적입니다. 머크는 기업을 공개하면서 전체의 30%만 상장하고, 나머지 70%는 가족이 소유하도록 했습니다. 가족이 보유한 70%는 가족에게만 팔 수 있도록 가족 헌법을 규정했고요. 그리고 가족에게 어떤 특혜도 제공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그 덕에 머크는 분란 없이 지금까지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패밀리 비즈니스 컨설팅의 핵심은 가족 지배구조 시스템을 갖추는 거라고 볼 수 있겠네요.

“그렇죠. 나중에 생길 수 있는 불안요소를 사전에 차단하는 거죠. 대부분의 기업 분쟁은 아버지 사후에 생기니까요. 사전에 여러 상황에 따른 솔루션을 마련해 두지만, 그래도 분쟁이 생기거든요. 그런 이유는 가족들의 생각은 배제한 채 회장 생각만으로 솔루션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외국 기업들은 어떤 식으로 해법을 찾습니까.

“외국에서는 가족 구성원 모두를 만납니다. 그런 다음 전체 회의를 통해 방향을 정한 후 거기에 맞는 시스템, 다시 말해 가족 헌장을 만듭니다. 가족 헌장에는 회사에서 일하려면 어떤 자격 조건을 갖춰야 하고, 주주로서 어떤 의무를 져야 하는지 등을 담게 됩니다.”

현재 가업승계를 고민하는 기업가들에게 어떤 충고를 해주시겠습니까.

“1대에서 2대로 넘어갈 때 형제와 사촌들끼리 만나는 자리를 자주 만들어야 합니다. 자손들에게 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려줄 필요도 있고요. 어려서부터 회사 얘기를 많이 들은 자식은 다른 일을 하더라도 회사가 힘들면 회사에 헌신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주식은 한 명에게 물려주기보다 지주회사를 만드는 게 합리적이라고 봅니다. 무엇보다 가족 간 화합이 중요해요. 유럽의 가족기업들은 가족 화합을 무엇보다 우선에 둡니다. 그 점을 한국 기업들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신규섭 기자 wawoo@hankyung.com 사진 김기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