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MESSAGE

힐링이 유행하면서 그 솔루션으로 공감(共感)이 화두가 되고 있으나 공감은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은 심리·생물학적 프로세스다.

문제는 모두가 누군가에게 감성 에너지를 나누어 줄 수 없을 만큼 지쳐 있다는 것, 공감 에너지의 수요와 공급에 심한 불균형이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는 점이다. 공감을 넘어서는 보다 원초적이고 무조건적인 힐링 파워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연민(憐憫)’이다.
빠른 삶에 살짝 브레이크를 밟을 때, 초초함이 아닌 따뜻한 자기 연민(self-compassion)의 감성이 느껴져야 한다.
빠른 삶에 살짝 브레이크를 밟을 때, 초초함이 아닌 따뜻한 자기 연민(self-compassion)의 감성이 느껴져야 한다.
정신신체의학(mind-body medicine)이라는 영역이 있다. 말 그대로 몸과 마음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분야인데 필자의 전공이기도 하다. 이쪽 영역을 연구하는 하버드 의대 교수를 초청했을 때 들었던 연구 결과인데 흥미롭다. 불쌍하지만 실험을 위해 하얀 생쥐들의 등에 화상을 입혔다. 그리고 세 가지 다른 환경에서 관찰했는데 첫 번째 환경은 친구 쥐들과 함께 두었고, 두 번째는 혼자 외롭게 있게 했다. 마지막 환경은 하얀 솜을 옆에 두고 함께 있게 했다.

그 결과 첫 번째, 친구들과 함께 키운 쥐는 금방 화상 상처가 아물었다. 거기에 비해 혼자 외롭게 키운 쥐는 상처가 아예 아물지 않았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따뜻한 느낌을 주는 솜이라도 옆에 넣어 준 마지막 환경의 쥐는 혼자 외롭게 키워졌음에도 화상 상처가 완벽하진 않지만 상당히 치유됐다. 솜에 치료적 효과가 있었던 것일까.



감성 에너지의 결핍으로 ‘공감’ 원해

‘기분 전환’은 현대인들이 주로 사용하는 스트레스 해소 기술이다. 가족들과 재미있는 영화를 본다든가 놀이동산에 가는 것들이 이것이다. 회사에서 대표적으로 사용하는 기분 전환 활동은 회식이다. company의 어원이 com(together)+ pany(bread) 즉, ‘함께 빵을 먹는’이라는 뜻이니 우리말로 하면 ‘한솥밥 먹는 식구’일 것이다.

그런데 요즘 회식의 기분 전환 효과가 옛날만 못하다. 심지어 직장인들에게는 스트레스 요인인데, 필자가 한 직장에 직무 스트레스에 관한 설문을 시행했더니 회식이 스트레스 요인 중 첫째로 나왔다. 조심스럽게 최고경영자(CEO)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대표님, 직원들이 회식으로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받는다고 하네요”라고 하자 CEO가 예상 밖의 반응을 보인다. “아니 그렇게 많이 하는 데도 부족하대요?” 직원도 어렵고 CEO도 어려운 세상이다.

그 CEO는 이상한 분이 아니다. 평균 이상 직원을 향한 마음을 가지고 있고 노력한다. 문제는 공감의 결여인데 직원의 입장에서 그 감성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이것을 비판만 할 수 없는 게 세대 차이가 나는 젊은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란 쉬운 일은 아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지 않아 갈등과 다툼이 있겠는가.

힐링이 유행하면서 그 솔루션으로 공감(共感)이 화두가 되고 있으나 공감은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은 심리·생물학적 프로세스다. 내 마음의 여유, 즉 감성 에너지가 충분히 충전돼 있을 때 우리 뇌는 누군가에게 공감할 수 있다. 에너지의 흐름을 나에게서 주변의 타인에게 돌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힐링이 유행이라는 것은 에너지가 넘쳐흐르는 데서 온 것이 아니다. 감성 에너지의 풍요로움이 아닌 결핍으로 인한 통증의 반응으로 ‘나 좀 공감해 줘’라는 메시지인 것이다. 문제는 모두가 누군가에게 감성 에너지를 나누어 줄 수 없을 만큼 지쳐 있다는 것, 공감 에너지의 수요와 공급에 심한 불균형이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는 점이다. 사랑을 원하는 이 많으나 그 사랑 에너지가 충분하지 않다.

앞의 연구로 돌아가 보자. 쥐들도 공감 능력이 있는 것일까. 동료 쥐들과 따뜻한 공감을 나눈 것이 치료에 도움이 됐다고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공감은 감성 에너지를 활용하나 이성적 사고가 동반돼야 하기 때문이다. 쥐들에게 남의 입장이 이해되는 이성적 사고가 있을 수 없다. 울음소리는 있어도 정교한 언어 시스템이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무생물인 흰 솜에 무슨 공감 능력이 있겠는가. 공감을 넘어서는 보다 원초적이고 무조건적인 힐링 파워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연민’이다.



최후의 힐링 전략은 ‘연민’이다

우리 감성의 뇌 안에는 연민-안전 시스템(compassion-safeness system)이 존재한다. 연민 시스템과 반대 축에서 작용하는 것이 불안-생존 시스템(anxiety-survival system)이다. 불안은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신호다. 문제는 과하게 불안 시스템만 작동한다는 것이다. 아드레날린, 코르티솔 같은 불안 시스템이 내뿜는 스트레스 호르몬은 단기적인 위기 극복에는 최고이나 오랜 시간 끊임없이 흘러나오게 되면 마음과 몸을 망친다. 화상 입은 쥐의 상처를 아물지 않게 한다. 몸 안의 안 좋은 세포가 잘 아물지 않을 때 생기는 병이 암이다.

연민 시스템이 만들어 내는 대표적인 항스트레스 호르몬이 옥시토신이다. 마음을 이완시키고 공격이 아닌 힐링 상태로 몸을 만든다. 앞의 쥐 실험에서 옥시토신을 측정했더니 동료와 함께 한 쥐에서 많이 분비됐고, 외롭게 홀로 둔 쥐는 옥시토신이 분비되지 않았다.

가짜 솜마저도 충분하지는 않으나 옥시토신 분비를 유발했다. 이 연구만 보면 기분 전환을 위해 회식보다는 전 직원에게 곰 인형을 선물하고 하루 15분씩 꼭 안도록 하는 것이 업무 스트레스 관리에 더 효율적일 듯하다.

항스트레스 호르몬인 옥시토신은 남녀 모두에게 있지만 여성에겐 더 특별한 기능이 있으니 출산할 때 자궁을 수축해 주고 유선을 자극해 엄마젖이 나오게 한다. 그야말로 모성애 호르몬이다. 엄마 자궁 안에서의 조건 없는 따뜻한 케어, 연민의 안정감을 우리 감성 메모리는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엄마와 태아 관계에 무슨 이성적 공감이 있겠는가. 그것은 무조건적인 받아들임, 연민이다.

연민은 감성 에너지가 바닥나도 할 수 있는 최후의 힐링 전략이다. 그냥 상대방을 온 마음으로 안아 주는 것이다. ‘더 빨리, 더 높게, 더 크게’라는 구호로 속도를 내지 않으면 불안한 것이 현대인이다. 속도는 불안 시스템의 상징이다. 브레이크를 밟으면 불안하기에 계속 가속 페달을 밟는 게 우리의 모습이다.

감속을 두려워 말자. 자녀, 배우자, 동료 등 소중한 이들에게 “난 도대체 네 행동이 이해되지 않지만 무조건 사랑한다”며 꽉 안아주자. 그럴 때 우리 마음의 연민 시스템이 작동하고 우리 마음에 안식과 육체의 건강을 가져다준다. 빠른 성취보다 쉽지 않은가. 천천히 몸과 마음으로 안아만 주면 된다.



글·사진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