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INTERVIEW

글로벌 홍보대행사 버슨마스텔러코리아의 마거릿 프랜시스 키 대표는 독일과 미국 등 해외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성인이 돼서 한국에 왔다. 한국에서 대학원을 다니고 첫 직장을 얻었던 키 대표는 벌써 한국 생활 15년 차다. 이제는 한국의 사회, 경제, 문화, 그리고 정치까지 속속들이 이해할 정도로 한국통이 됐다. 특히 2012년 대선 때는 박근혜 캠프에서 외신 담당 대변인으로 활약했다. 그를 만나 지난 대선 때의 경험과 한국 사회에 대한 전반적인 생각을 들어봤다.
마거릿 프랜시스 키 대표는…
1973년생. 1996년 미국 워포드대 영문학·사회학과 졸업.
1999년 연세대 국제대학원 국제관계학 석사.
1999년 현대산업개발 해외재무팀, 현대자동차 해외홍보팀.
2001년 에델만코리아 근무.
2009년 에델만재팬 사장.
2012년 박근혜 캠프 외신 대변인. 2010년~현재 버슨마스텔러코리아 대표

지난 대선 때 박근혜 캠프 외신 대변인으로 활동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어떤 경험이었나요.

“두 달간 대선 캠프에서 활동했는데 매우 급박하게 돌아가는 정치 현장에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는 기회였어요. 대한민국 역사에 있어 중요한 순간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찬 일이었죠. 대선 캠페인에서 미디어 전략을 제대로 세우고 펼치기 힘들 정도로 정신없이 상황이 진행됐어요.

어머니가 한국인이었지만 한국의 정치 역사에 대해서는 잘 몰랐어요. 한국 정치는 지역색이 매우 강하고 여당과 야당의 대결 구도가 치열한데 그 부분에 큰 관심이 갔습니다. 한편 국내 미디어와 해외 미디어의 관심사는 크게 달랐습니다. 그 사이에서 이슈를 적절히 조율하는 역할이 제 일이었어요.”

외신들이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에 대해 관심을 갖는 내용은 무엇이었습니까.

“가장 큰 관심사는 한국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같은 여성 지도자가 탄생할 수 있을까라는 거였어요. 한국을 비롯해 중국, 일본, 싱가포르 등 아시아의 지도자가 모두 바뀌는 중요한 시기에 여성 대통령이 어떻게 국제관계를 형성해 나갈 것인지가 관심사였죠. 그리고 아시아에서 비교적 큰 경제 규모를 갖고 있는 한국에서 박 후보가 당선되면 어떻게 경제를 끌어갈지에 대한 질문이 많았어요.

한국 미디어는 경쟁 후보와 안철수 서울대 교수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지만, 외신은 한국의 상황을 늘 북한 문제와 연계해 지켜봤어요. 박 후보가 차기 대통령이 된다면 대북관계, 대중관계, 그리고 한·미관계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가 주요 주제였어요. 또한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정치 스타일과 어떻게 다를지, 어떻게 박근혜 대통령만의 정치색을 만들어 갈지를 전망하는 기자들이 많았어요.”

대선 캠프에서 외신 대변인으로 활동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면.

“외신들로부터 당시 박 후보에 대한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어요. 하지만 매시간 스케줄이 꽉 차 있어서 인터뷰 잡기가 쉽지 않았죠. 유일하게 미국 시사 잡지 타임이 두 달간의 요청 끝에 커버스토리에서 박 후보를 다루기 위한 인터뷰만, 그것도 딱 15분간 할 수 있었죠. 타임지 기자와 사진기자는 인터뷰 전 3시간 동안 준비하고 셋업한 후 인터뷰를 진행했어요.

사진 촬영 때 박 후보의 오른쪽 턱에 있는 상처가 나와도 괜찮으냐고 묻자 그는 매우 털털하게 상관없다고 했어요. 보통 최고경영자(CEO) 등 거물 인사는 인터뷰할 때 매우 까다롭잖아요. 하지만 박 후보는 그 상처가 자신의 역사를 담고 있다며 과거를 극복한 상처로 매우 자연스럽게 인식하고 있는 모습이었어요.”
정치에 대한 관심은 어느 정도인가요. 혹시 한국 정치에 참여하고 싶은 생각이 있나요.

“박근혜 캠프에서 외신 대변인을 제의받았을 때 버슨마스텔러 본사 경영진에게 참여해도 될지 문의했죠. 회사의 글로벌 CEO가 미국 전 대통령인 클린턴 캠프에서 활동한 적이 있어 회사의 허락을 얻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죠. 한국 정치에 입성하려면 매우 강해야 할 것 같아요. 언론의 여러 검증도 넘어서야 할 거예요.

그 대신 한국 정계에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오랜 시간 머무르는 것 같아요. 한국 정치에 뜻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생각해보니 매우 험한 세계에서 제가 이겨낼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제가 즐기고 잘할 수 있는 일은 경영이고 홍보·마케팅이에요.”

홍보 전문가로서 박근혜 대통령의 이미지를 어떻게 만들어가는 것이 좋다고 봅니까.

“박 대통령은 영어에도 매우 능숙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첫 여성 대통령이기도 하지만 국제 감각이 뛰어난 첫 대통령이기도 합니다. 제가 처음 한국에 온 1995년과 비교할 때 지금의 한국은 매우 달라요. 경제, 문화 등에 있어 세계 최고 수준에 있죠. 이제 다음 레벨로 도약할 때예요. 이런 시점에서 국제적 이미지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한국의 평판을 더 국제적으로 드높이고 한국의 첫 여성 대통령으로서 세계적인 리더십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특히 현재 동북아 관계는 복잡하게 얽혀 있어요. 중국, 일본, 북한과 맞닿아 있는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에서 더욱 강하고 국제관계에 유연한 한국으로 만들어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성 CEO로서 여성 리더십에 대한 생각은.

“한국은 여성 전문직 비율이 낮고 여성 임원의 연봉도 남성에 비해 낮아요. 미국 야후의 마리사 메이어는 임신 중에 CEO가 됐는데, 한국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죠. 한국 여성은 남편, 집, 제사, 학원 등 신경 쓰는 게 너무 많고 다른 나라 여성에 비해 몇 배로 더 일을 하고 있어요. 한국 여성은 매우 열정적이고 스마트해요.

그래서 한국 경제 발전에 있어 잠재력이 매우 강하죠. 저는 한국에서 커리어를 쌓으면서 매우 능력 있는 여성들과 함께 일할 기회가 많았어요. 남성 리더십의 경우 매우 목적 지향적이죠. 어떠한 결정을 내릴 때 두려움 없이 밀고 나가요. 저는 남성 상사를 모시면서 이런 점을 많이 배웠어요. 여성 리더십은 함께 일하는 구성원을 모두 아우르며 엄마처럼 이끌어 나가는 장점이 있어요. 이러한 남성과 여성 리더십을 융합하고 조율해 나가며 리더십을 키우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해요.”
욕심쟁이 정신이 있어서 한국이 이렇게 성장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반면 이런 압박과 좌절 때문에 한국의 자살률이 높다는 점이 씁쓸해요.
욕심쟁이 정신이 있어서 한국이 이렇게 성장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반면 이런 압박과 좌절 때문에 한국의 자살률이 높다는 점이 씁쓸해요.
칼럼니스트로도 한국 사회에 대한 색다른 의견을 보여 왔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지내면서 가장 안타까운 점이 무엇입니까.

“한국의 ‘욕심쟁이’ 정신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해봤어요. 모든 구성원이 더 상위 레벨로 가기 위해 밤낮없이 자신을 끊임없이 채찍질하죠. 밤·주말 없이 학원에 다니며 청소년기를 보내고 성인이 돼서는 명문대, 대기업, 결혼, 좋은 아파트, 아이 양육, 재테크 등으로 이어지는 마치 길을 따라 걷는 삶을 살아요. 여기서 탈락하면 좌절이 매우 크죠.

예술가가 되고 싶은 사람, 여행에서 큰 의미를 찾는 사람 등 다양한 삶이 있어야 사회가 더 발전할 텐데 말이죠. 평균 이상에 도달해야 한다는 압박감, 그리고 다다르지 못했을 때의 실망감이 악순환 되는 것 같아요. 이런 욕심쟁이 정신이 있어서 한국이 이렇게 성장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반면 이런 압박과 좌절 때문에 한국의 자살률이 높다는 점이 씁쓸해요.”

글로벌 홍보대행사에서 일하기 전 한국 기업에서도 일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때 느낀 한국 기업 문화는 어땠습니까.

“1999년 즈음 한국 대기업에서 일했는데 그때 한국의 문화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어요. 당시만 해도 회사에 외국인이 많지 않아 저를 신기하게 대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한국의 기업 문화는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리더가 이끌고 구성원들은 토를 달지 않고 묵묵히 따라 끝내 성취해내죠. 이 점이 한국이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었던 배경인 것 같아요.

회의할 때 상무만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잔소리하고 다른 사람들은 말이 없는 것을 봤어요. 토론, 창의적 사고, 독립적인 생각은 없었어요. 다음 레벨로 성장하는 데 있어 이런 기업 문화는 문제가 될 수 있어요. 사무실 분위기가 너무 경직돼 있는 만큼 회식의 중요성도 이해하게 됐어요. 술자리를 통해 딱딱한 분위기를 풀어주고 스트레스를 해소해 나갔죠. 3차까지 마시고 모두 술 취해도 다음 날에는 8시에 모두 정확하게 나타나죠. 한국의 기업이 이런 식으로 지속되고 성공을 이뤄나갈 수 있다고 봤어요.”

개인적으로 최근 몰두하거나 빠져 있는 것은.

“미국에 있던 열 살배기 아이가 최근 한국에 왔어요. 일과 아이를 모두 돌보려니 매우 바빠요. 나를 위한 시간이 많이 없어요. 저는 마라톤을 즐기는 편인데 달리는 시간만큼은 생각에 집중할 수 있는 철저히 저를 위한 시간이죠. 한강변은 저에게 있어 최고의 장소입니다.”
가족 이야기를 들려주십시오.

“영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는 모두 미국에 계세요. 매일 아침 어머니와 통화하고 주말이면 꼭 아버지와 통화하죠. 저는 아버지 사업 때문에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살았어요. 1988년 서울 올림픽 때 어머니가 TV에서 태극기를 보며 펑펑 우는 것을 봤어요.

한국에 대한 자부심과 한(恨)을 그때는 이해 못했는데 한국에 오래 살면서 이제는 이해가 가요. 자주 환경이 바뀌고 다른 인종과 함께 어울려 살았기 때문에 아버지는 저를 보호하려는 경향이 강했어요. 늘 ‘다른 사람과 다른 것은 아름다운 것’이라며 ‘당당하게 어깨를 펴라’고 주문하셨었죠. 미국에서 지내면서 미국인도 한국인도 아니라는 주변 아이들의 말에 속상해할 때 늘 아버지 말씀은 큰 힘이 됐어요.”

향후 이루고 싶은 것, 혹은 가까운 미래의 계획은.

“한국에서 느끼는 좋은 점이 너무 많아요. 해외에 좋은 한국 이미지를 알리는 일에 뿌듯함을 느껴요. 한국 기업의 해외 진출을 돕고, 글로벌 기업이 한국을 이해하는 데 더 많은 일을 하고 싶습니다.”



이진원 기자 zinone@hankyung.com
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