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IC ART STORY

‘꽃향기’, 1894년, 98×67.5cm, 캔버스에 유채, 개인 소장
‘꽃향기’, 1894년, 98×67.5cm, 캔버스에 유채, 개인 소장
꽃이 만발한 들판에 한 여자 아이가 꽃향기를 맡고 있다. 지그시 눈을 감은 그 모습은 마치 꿈꾸는 듯하다. 그런데 그 아이의 모습이 왠지 현실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기껏해야 너덧 살에 불과한 아이가 꽃향기에 취한 듯한 모습은 아무리 봐도 어색하다. 그것은 20대 여인에게나 어울리는 포즈다. 들판을 빼곡히 메운 무성한 꽃무리도 작위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아이는 발 디딜 틈도 없는 꽃의 홍수 속에 파묻힌 모습이다.

이 그림은 벨기에 화가인 레옹 프레데릭(Leon Fredelic·1856~1940)의 ‘꽃향기’다. 프레데릭은 무슨 이유로 이런 작위적인 그림을 그린 것일까. 그가 살았던 19세기 말 벨기에는 유럽에서도 공업화와 도시화가 그 어느 곳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지역 중 하나였다.

공업화는 여러 문제를 야기했다. 공장에서 내뿜는 매연으로 도시의 오염은 극에 달했고 주거환경은 나날이 악화돼갔다. 이런 비위생적 환경은 특히 아이들의 양육에 치명적이었다. 당시의 통계에 따르면 1890년께 벨기에 농촌 아이 1000명 중 203명이 다섯 살이 되기도 전에 사망했고, 도시의 경우는 이보다 훨씬 더 심각해서 1000명 중 무려 336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거의 3명 중 1명이 피지도 못한 채 사라진 것이다.

프레데릭이 이 그림을 그린 것은 그런 암울한 현실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고자 하는 열망을 드러내기 위해서였다. 그는 수많은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원인을 산업화와 도시화에서 찾았다. 그가 꿈꾼 사회는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날 수 있는 오염되지 않은 전원 속의 지역공동체였다. 그것은 곧 자연의 품 안에 안긴 삶이었다. ‘꽃향기’는 그런 작가의 꿈을 펼쳐낸 것이다.

혹자는 꽃은 화려한 자태를 뽐내지만 한나절밖에 지속할 수 없는 한시성을 지녔기 때문에 이 그림에서도 인간 운명의 부질없음을 상징하고 있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그러나 작가가 화폭 한가득 수많은 종류의 꽃들을 배치한 것은 그런 한시성보다는 활짝 피어난 대지의 생명력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리라. 이 점은 각각의 꽃에 내포된 상징적 의미, 즉 꽃말과 연결시켜 생각해볼 때 더욱 그렇다.

얼핏 보면 들판은 온통 서양장미(cabbage rose)에 점령당한 듯하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의외로 많은 종류의 꽃들이 화면을 장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이가 냄새를 맡고 있는 꽃은 비단장미(rosa sericea)이고 그의 머리 위에 보이는 것은 들장미다. 머리맡에는 붉은 튤립, 왼쪽 하단에는 노란 수선화, 발아래에는 히아신스가 각각 그려져 있다.

들장미는 순진무구함을 상징하고, 붉은 튤립은 ‘사랑’이라는 꽃말을 지녔다. 또 노란 수선화는 고대에는 죽음을 의미했지만 기독교에서는 부활과 영생을 상징한다. 특히 히아신스는 대지의 여신이자 여성의 수호신인 데메테르의 꽃이다. 이런 상징성을 종합해보면 그림은 결국 아이들이 대지의 여신의 가호 아래 화려한 꽃처럼 활짝 피어나길 기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생명의 기원’, 1890년, 캔버스에 유채, 필라델피아 미술관
‘생명의 기원’, 1890년, 캔버스에 유채, 필라델피아 미술관
그런 프레데릭의 열망은 1890년 작인 ‘생명의 기원’에서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물의 발원지인 깊은 산골짜기에 가득 메운 수많은 사내와 계집아이들은 장차 꽃피울 생명성에 다름 아니다. 그들은 청정한 자연 속에서 천진하기 이를 데 없는 표정으로 즐겁게 장난치고 있다. 핑크빛 피부는 앞으로 장밋빛 인생이 펼쳐질 것이라는 희망의 상징이다.

대지에 생명의 축복을 내리는 것은 곧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다. 1897년 작 ‘자연’은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어머니의 모습을 통해 대지의 여신을 형상화한 것이다. 여신의 몸은 온통 꽃으로 뒤덮여 있어, 대지에 생명을 불어넣는 주체로 묘사돼 있다. ‘꽃향기’에서 묘사된 꽃이 한시성을 지닌 부정적 상징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아이로 상징된 인간은 자연의 따스한 품 안에서 비로소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작가는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자연’, 1897년, 캔버스에 유채, 댈러스 미술관
‘자연’, 1897년, 캔버스에 유채, 댈러스 미술관
‘호수, 고요한 물’, 1890~99년, 206×282cm, 캔버스에 유채, 브뤼셀 벨기에 왕립미술관
‘호수, 고요한 물’, 1890~99년, 206×282cm, 캔버스에 유채, 브뤼셀 벨기에 왕립미술관
프레데릭의 이런 자연 찬미는 후기로 갈수록 신비로운 모습을 띠게 된다. 특히 세 폭짜리 그림인 ‘시내’의 오른쪽 날개 ‘호수, 고요한 물’은 후대의 초현실주의 회화를 연상케 한다. 그림을 보면 폭포수가 유입되는 호수 아래 수많은 아이들이 겹겹이 포개져 깊은 잠에 빠져있는 풍경이 전개되고 있다. 그 사이로 백조들이 드나들며 마치 자신이 낳은 아이들인 양 돌보고 있는 것 같다. 생명체를 잉태하는 자궁으로서 자연을 묘사한 것이지만, 그림은 작가의 의도와는 다르게 보는 이로 하여금 마치 아이들의 무덤 풍경을 보는 것 같은 공포심을 유발한다.

한편에선 프레데릭의 작품이 사회주의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목적 아래 제작된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그는 젊은 시절 사회주의에 공감, 그런 상징성을 작품에 담기도 했다. ‘꽃향기’에서 보이는 들장미는 사회주의자의 상징으로 이 작품은 벨기에에 사회주의가 정치권에 성공적으로 진입한 1894년에 제작돼 그런 해석에 무게를 실어준다.

그러나 그의 작품 전반을 흐르는 메시지는 산업화로 인한 인간성 상실에 대해 반성을 촉구하는 것이라고 보는 게 옳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을 가꾸는 것은 곧 행복한 인간 삶의 바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프레데릭의 그림이 전해주는 메시지는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그가 갈망했던 행복한 세상은 여전히 우리의 숙제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정석범 한국경제신문 문화전문기자.
프랑스 파리1대학에서 미술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려대, 홍익대, 명지대 등에서 강의했고 저서로 ‘어느 미술사가의 낭만적인 유럽문화기행’, ‘아버지의 정원’, ‘유럽예술기행록’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