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IC ART STORY

카를 슈피츠베크 외골수 괴짜가 그려낸 비더마이어 시대 유럽의 풍속도
야자수가 울창한 열대우림의 한가운데에서 한 사내가 나비 채집에 한창 열중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더 이상 수집할 나비가 없었던 걸까.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머나먼 열대우림으로의 모험을 감행한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나비를 찾아 헤매던 그의 눈앞에 드디어 목표물이 나타났다. 그런데 아뿔싸! 이건 나비가 아니라 괴물이로세. 크기가 웬만한 새보다도 더 큰 나비를 보고 사내는 흠칫 놀라 눈을 부릅뜨고 입을 벌린 채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다.

그의 놀라움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가 이 여행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를 살피면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등 뒤에 잔뜩 짊어진 배낭, 오른쪽 어깨에 두른 채집통과 수통, 왼손에 움켜쥔 우산, 햇빛을 가리기 위한 선캡에서 오른손에 단단히 움켜쥔 채집 그물까지 무엇 하나 빠진 게 없다. 그는 마치 나비 잡는 일에 자신의 온 삶을 건 듯하다. 그런 그 앞에 느닷없이 초대형 나비가 나타났으니 망연자실할 수밖에. 그는 눈을 부릅뜨고 입을 벌린 채 그 기막힌 상황을 그냥 멀거니 구경할 수밖에 없다.

바바리아(현재의 남부 독일과 오스트리아 일대)의 화가 카를 슈피츠베크(Carl Spitzweg·1808~1885)가 그린 ‘나비 채집꾼’은 현실과는 담을 싼 외골수의 세계다. 그림이 그려진 비더마이어 시대(1815~1848)는 중앙 유럽에서는 그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 정치적 격동기였다.
카를 슈피츠베크 외골수 괴짜가 그려낸 비더마이어 시대 유럽의 풍속도
반(反) 나폴레옹 동맹으로 수상에 오른 메테르니히는 군주제를 강화하고 18세기 후반 이래 싹튼 자유주의를 철저히 억압했다. 출판과 예술 활동은 혹독한 검열과 탄압을 받았다. 이런 권위주의 체제 속에서 그동안 상당한 표현의 자유를 누렸던 예술은 정치·사회적 현실 대신 소소한 일상을 묘사하거나 전원을 예찬하는 쪽으로 방향을 돌리게 된다. 당시 현실에 문을 닫은 채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나비 채집꾼’을 그린 슈피츠베크는 그중에서도 비더마이어 시대가 낳은 최고의 외골수였다. 부유한 상인의 차남으로 태어난 그는 원래 뮌헨대에서 약학을 전공했는데 아플 때 소일거리로 그림을 그리다 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아버지로부터 유산을 물려받은 후부터 미련 없이 약사 일을 걷어치우고 본격적으로 그림 수업에 나선다. 그는 아버지의 유산으로 파리, 런던, 베네치아, 프라하 등 세계 예술의 명소들을 잇달아 방문, 명작을 모사하면서 자신만의 회화 세계를 가꿔나간다. 특히 그는 네덜란드의 풍속화(‘장르화’라고 한다)와 영국의 풍자 화가인 윌리엄 호가스의 신랄한 풍자 정신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카를 슈피츠베크 외골수 괴짜가 그려낸 비더마이어 시대 유럽의 풍속도
슈피츠베크는 뮌헨 서쪽의 중세도시 로텐부르크에 정착했는데 그는 외부인과 교류를 끊은 채 다락방에 홀로 기거하며 마치 수도사처럼 절제하며 살았다고 한다.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는 틈틈이 그는 유럽 각지를 여행했는데 특히 도보 여행을 즐겼다고 한다.

당대인으로서는 드물게 유럽의 주요 도시들을 두루 섭렵했지만 주변에서 그러한 사실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가난한 시인(1839)’은 그런 그의 외골수 기질을 그린 자화상 같은 작품이다. 땔감조차 없는 한겨울 다락방에서 침대에 기대 펜을 입에 문 채 손가락으로 시의 운율을 셈하고 있는 가난한 시인은 바로 슈피츠베크 자신의 모습이다.

그의 외골수 같은 삶 못지않게 그의 작품 속에도 외골수들로 가득하다. ‘선인장 친구’에서 보듯 정원에 온갖 선인장을 가꾸며 그들과 무언의 대화를 나누는 사람, ‘동굴 속의 광석채집자’에서처럼 자신의 취미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괴짜는 그 대표적인 예다. 그의 그림이 유난히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이런 외골수의 세계를 직설적으로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나비 채집꾼’에서처럼 상상적 요소를 결합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그림 감상은 괴짜와 함께 떠나는 신비로운 여행이다.

그렇다고 슈피츠베크가 외부 세계와 완전히 담을 쌓은 것은 아니었다. 다락방의 창 밖으로 거리를 내다보는 그의 모습이 자주 목격됐다는 얘기가 전해오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의 작품들 속에는 범상한 사람은 알아차릴 수 없는 신랄한 풍자가 바탕에 흐르고 있다. 그의 걸작 중 하나인 ‘책벌레’는 그 대표적인 예다.
카를 슈피츠베크 외골수 괴짜가 그려낸 비더마이어 시대 유럽의 풍속도
그림에서 머리가 하얗게 센 주인공은 지금 자신의 지적 호기심을 채우느라 여념이 없다. 사다리 꼭대기에 올라선 그는 오른손과 왼손에 한 권씩 든 것도 모자라 왼쪽 팔과 다리 사이에도 각각 한 권씩을 끼운 채 위태로운 모습으로 서 있다. 그는 자기 생각에 너무나 몰두한 나머지 돋보기를 챙기는 것도 잊은 채 눈을 책에 밀착해서 보고 있다.

주머니 밖으로 나온 손수건도 그가 얼마나 몰두해있는지 잘 보여준다. 서재의 규모는 사다리 아래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크다. 천장 아래 책장 위에 쓰여 있는 ‘형이상학(metaphysics)’이라는 표지는 서가가 주제별로 분류될 정도로 규모가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편 그의 관심사가 현실 세계보다는 비현실적인 관념 세계에 쏠려 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변화를 외면하고 박제화된 과거의 권위적인 세계에 매몰된 구세력에 대한 신랄한 비판인 것이다.

슈피츠베크는 작품을 통해 당대의 현실 세계를 향해 신랄한 풍자의 펀치를 날렸지만 정작 그런 풍자 정신을 알아챈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작품의 신비로운 분위기와 너무도 사랑스러운 캐릭터에 매혹돼 사람들은 감히 그를 비난할 마음을 먹을 수 없었던 것이다. 권위적인 독재자 히틀러가 그를 너무도 좋아한 나머지 아파트 벽을 그의 작품으로 장식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정석범 한국경제신문 문화전문기자. 프랑스 파리1대학에서 미술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려대, 홍익대, 명지대 등에서 강의했고 저서로 ‘어느 미술사가의 낭만적인 유럽문화기행’,

‘아버지의 정원’, ‘유럽예술기행록’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