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은 온도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다. 따라서 와인을 보관하는 데는 온도 관리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와인 보관을 위한 최적의 기후 조건을 알아본다.
[와인 제테크] 와인과 온도
2012년 여름은 런던 올림픽이 전 세계를 뜨겁게 달구었다. 한국 또한 연일 계속되는 금메달 소식에 전 국민이 함께 즐거워했다. 올림픽 경기에 빠지면서 자연스럽게 지구 반대에 위치한 런던의 날씨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런데 매일 뉴스 시간에 나오는 런던의 날씨를 보면서 뭔가 이상한 점은 발견하지 못하셨는지. 지난 여름 런던의 기온은 서울의 10월 날씨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은 런던 올림픽이 개최되기 일주일 전부터 올림픽이 끝나는 날까지 메인 스타디움이 있던 런던의 기온(최저 기온/최고 기온)과 서울의 기온을 정리한 표를 보면 알 수 있다.
[와인 제테크] 와인과 온도
특급 와인 보관에 최적의 기후를 가진 런던

런던 올림픽이 개최되는 동안 런던의 최저 기온은 영상 8도에서 17도의 분포를 보였으며 최고 기온은 18도에서 26도였다. 같은 기간 서울의 기온과 비교해보면 매일 10~15도 정도 낮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날씨는 한국의 봄, 가을 날씨에 해당한다. 같은 날짜의 서울 날씨를 보면 엄청나게 더웠던 8월 초의 여름이 다시 생각난다. 서울의 낮 최고 기온이 연중 최고인 36도를 기록하던 때에도 런던의 날씨는 최고 기온이 20도 정도를 넘지 않았다. 이런 기온은 와인을 보관하기에 기가 막히게 좋은 날씨다.

와인을 보관하기에 적당한 온도는 어느 정도일까. 요즘은 와인 셀러를 구비해놓은 집들이 꽤 많은데 와인 셀러의 온도는 보통 13~18도를 유지한다. 런던의 여름 날씨는 이런 와인 셀러의 온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자연 상태에서 온도가 와인을 저장하기에 적당한 온도를 유지한다는 것은 장기 보관하면서 숙성시켜야 하는 특급 와인의 저장 비용 및 리스크를 크게 줄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 런던에서는 비바람만 막을 수 있으면 와인을 보관할 수 있지만 서울에서 와인을 보관하는 데는 엄청난 전기료를 지불해야 한다.

36도가 넘는 온도에서는 강력한 에어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엄청난 리스크도 감내해야 한다. 예를 들어 지난 여름 건축된 지 30년 가까이 된 아파트 단지에서 전력 용량을 초과해 단지 내 전원이 끊어져버렸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는데 이런 아파트에서 와인을 보관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와인 셀러에 보관됐던 와인들을 전기가 끊어지고 나면 36도의 고온에 노출돼 와인 품질에 변화를 가져왔을 것이다. 게다가 마침 전기가 끊어졌을 때 여름휴가를 떠나서 집에 아무도 없었다면, 그래서 3일 후에 돌아와서 작동되지 않는 와인 셀러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와인을 발견한다면. 이런 상황은 정말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그런 면에서 런던은 와인을 보관하기에 참으로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이런 환경상의 이점을 이용해 런던 주변에는 와인을 저렴하게 보관해주는 보세창고들이 성업 중에 있고 이곳마다 수천만 상자의 와인이 병 안에서 숙성되며 개봉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 런던은 프랑스에서 생산된 최고급 와인의 40%가 보관되고 유통되는 곳이다. 많은 유통량을 감당할 수 있는 천혜의 보관 조건이 갖추어져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와인 제테크] 와인과 온도
[와인 제테크] 와인과 온도
특급 와인들이 저장돼 있는 런던 주변 보세창고 전경. 런던은 와인 보관을 위한 천혜의 기후 조건을 갖고 있다.
특급 와인들이 저장돼 있는 런던 주변 보세창고 전경. 런던은 와인 보관을 위한 천혜의 기후 조건을 갖고 있다.
와인은 저장만큼 운송에도 공을 들여야

와인의 온도는 저장만이 아니라 이동 중에도 매우 중요하다. 프랑스에서 수출된 와인은 한국에 오는 데 대략 27~30일이 걸리는데 그 이동 경로를 살펴보자. 보르도에서 출발한 와인은 보르도의 외항인 아르브항에서 선적돼 이베리아반도를 돌아 지브롤터 해협을 지나 지중해로 들어선다. 지중해를 가로지른 배는 다시 수에즈 운하를 지나 홍해를 거쳐 인도양에 들어선다. 대양을 건넌 배는 다시 말레카해협을 지나 남지나해를 거쳐 부산항에 입항하게 된다.

인도양을 지나면서는 적도 가까운 뜨거운 바다를 지나게 되는데 이때 컨테이너 내의 온도는 60도를 넘기도 한다. 물론 와인을 전문적으로 선적해주는 해운사는 알아서 와인이 들어 있는 컨테이너는 해수면 아래에 선적해주지만 잘못 걸려서 햇볕을 직접 받는 곳에 선적됐다면 쩔쩔 끓는 온도를 거의 한 달 동안 꼼짝없이 견뎌내야만 한다. 이런 온도를 견디고 한국에 도착한 와인을 시음해보면 우선 코르크가 위로 튀어올라와 있고, 코르크 옆면에도 와인이 묻어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경우는 와인이 끓어올라 내부 압력이 증가해 와인이 밖으로 새어나간 경우다.

이를 방지하게 위해 요즘은 냉장컨테이너를 이용해 와인을 운반하는 경우도 있다. 일본의 경우 일반 컨테이너로 운송한 와인과 냉장컨테이너를 이용해 운송한 와인을 구분해 판매하곤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그런 경우를 볼 수가 없다. 물론 가끔 와인을 사랑하는 수입사들이 냉장컨테이너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아직까지 일본처럼 일반화돼 있지는 않은 것이 현실이다.

바닷길 외에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이용하는 방법도 고려해볼 수 있다. 하지만 아주 오랫동안 구소련은 서유럽과 물자 운송을 단절해왔기 때문에 프랑스에서 러시아로 가는 화물열차편은 거의 소멸해 구하기가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물론 프랑스에서도 중량이 많이 나가는 화물은 모두 바닷가 항구로 운송하도록 시스템이 발달했기 때문에 거꾸로 내륙을 거쳐서 러시아로 들어가는 열차편은 많지 않다.

어쨌거나 열차편에 와인을 실어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통해 한국으로 들어온다면 (물론 북한을 지나가야 하는 문제가 있어 아직은 실현 가능성이 없지만) 대략 40일 정도가 소요된다. 오히려 선박을 이용하는 것보다 더 오래 걸린다. 게다가 시베리아 철도는 광궤여서 표준궤를 사용하는 우리나라에서는 러시아와의 국경선에서 환적해야 하는 문제도 있다.

열차를 이용하는 것은 고속철도(KTX)를 새로 깔아 시베리아를 시속 300km 이상의 고속으로 달릴 수 있게 된 이후에나 고려해볼 일이다. 어쨌거나 시베리아를 고속철로 횡단하더라도 한겨울 혹한기에는 이용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여러 모로 해양 운송이 와인을 운반하기에는 가장 적당한 운송수단인 것은 틀림없는데 다만 온도를 제어하기 위해 냉장컨테이너의 이용이 좀 더 확산돼야 할 것 같다.

와인은 보관과 운송에 있어 온도를 각별히 고려해야 하는 꽤나 까다로운 물건임에 틀림없다. 이런 까다로운 점이 와인을 더 특별한 존재로 부각시키는 것은 아닐까.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네 장미를 그토록 소중하게 만든 것은 네가 장미에게 바친 시간 때문이야.”

어린 왕자에게 장미가 소중한 것처럼 우리에게 와인이 소중한 것은 우리가 와인을 알아가기 위해 바친 시간 때문이 아닐까. 와인이 얼마나 까다로운 존재인지 알아가기 위해 바친 시간만큼 우리에게 와인은 소중한 존재로 다가오는 것 같다.


김재현 하나금융 WM센터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