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아시아?
일본과 아시아.‘일본은 아시아가 아니다’라는 묘한 의미의 이 말은, 서방 패션업계에서는 공공연하게 회자되는 말이다. 사실상 그들은 시장 개척과 마케팅 활동을 일본과 아시아, 이렇게 두 그룹으로 나누어 진행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중국의 명품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세계 패션 시장에서 더 이상 중국 바이어의 입지를 무시할 수 없는 이 순간에도 시장은 여전히 중국보다는 일본과 아시아로 구분된다. 이렇게 특별대우를 받고 있는 일본은 어떤 스타일일까. 그리고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
일본은 브리티시, 유러피언, 아메리칸 그 밖의 모든 패션 문화가 공존하는 시장으로 어떤 새로운 것이라 하더라도 다 받아들이는 것이 특징이다. 그런데 무엇을 가져와 어떻게 접목해도 결국 일본답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패션계에서 ‘재패니스 스타일’이란 용어가 생겼다. 하지만 문제는 재패니스 스타일이라 하면 여러 모습이 떠오르지만, 딱 꼬집어 “이거다”라고 말할 게 없다는 사실이다. 아이러니하다. 패션 선진국 일본을 대변하는 ‘모다 이탈리아’
7월 중순에 도쿄 에비수 지역 웨스틴호텔에서 ‘모다 이탈리아(Moda Italia)’라는 전시회가 있어 2013년 FW(가을·겨울) 트렌드도 파악할 겸 참석하게 됐다. 모다 이탈리아는 우리나라와 대만, 베트남, 러시아 동쪽(블라디보스토크와 사할린 지역) 등 일본 주변 지역과 일본의 머천다이저(MD)들을 위해 이탈리아 업체들이 도쿄에서 개최하는 전시회로,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을 하는 업체가 주류인데 그 가운데는 자기 브랜드를 가진 업체도 있다.
매년 1월과 7월 두 번씩 일본에서 열리는데 41회째인 금년에는 특히 많은 전시업체가 참여해 150여 개의 업체가 총 5개 층에 걸쳐 전시를 했다. 이 전시회는 특히 메이커(생산자)나 에이전트, 셀렉트숍 운영자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관련 업계에 종사하는 10여 명의 MD들이 참관했다. 필자는 이번 기회에 어떤 것이 일본적인 것일까 관찰해 보기로 했다. 패션업계 종사자들과 직장인들(신바시·도쿄역 앞의 마루노우치), 패션 피플들(오모테산도·아오야마)의 시내 격인 긴자의 명품거리, 시부야와 신주쿠의 백화점들을 돌아보면서 일본인과 아시아인들의 차이와 그들이 추구하는 멋 내기 포인트가 무엇일까 하고 언제나 그렇듯이 이번에도 시각의 차이를 의식해 최대한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했다.
패션업계 종사자들은, 이번 전시장에서 보니 남성은 중성적인 것에 여성미가 더해진 부드러움, 여성은 우아함보다는 로맨틱하고 아방가르드한 경향이 강하며 남녀 모두 디테일을 매우 중시 여긴다는 느낌을 받았다(리본 하나, 가방 하나, 스카프 하나에 집착하는 코디네이션이 그렇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시아 각국의 참여자들, 우리나라 전문가들(참여한 MD들)은 비교가 불가하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일본인들은 확실한 자기 색을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이 표현 방식이 어색하지 않고 매우 강렬해 보는 이로 하여금 한 사람과 그 사람의 스타일이 밀착돼 이질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능력이 있다. 마치 그 한 사람을 위한 옷같이 말이다.
패션인답다. 개개인이 기본적으로 추구하는 경향을 떠나 멋을 내는 테크닉과 열정, 프로페셔널리즘만을 생각해보면 우리는 갈 길이 멀구나 싶었다. 아직은 차이가 너무 나기 때문이다. 재패니스 스타일은 우리나라보다 도회적이며 다양한데, 일본이 패션 선진국인 것만은 확실하다. 우리가 비판은 하더라도 개방된 기간을 생각하면 그들이 저만치 앞서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도 그만큼 큰 격차는 또 그만큼 분발할 수 있는 에너지가 되겠지 하며 위로해 본다. 개성파 스트리트 패션 vs 고집에 가까운 보수적 비즈니스 슈트
패션 피플들이 많은 오모테산도 거리로 옮겨가니, 이것이 일본 패션피플이구나 싶다. 메인 스트리트를 거니는 사람들, 카페에 앉은 사람들, 길가 벤치 역할을 하는 쇠 봉에 기대어 앉아 있는 사람들….
모두가 하나같이 시티 웨어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너무나 잘 소화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특히 남성들이 컬러를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하게 사용하는데 액세서리와 가방, 구두 등을 적절히 활용할 줄 아는 것이 놀랍다. 각자의 취향에 맞는 베이스 스타일 위에 자기 색을 확실하게 입힌다.
그래서인지 런던의 본드 스트리트, 파리의 에비뉴 몽테뉴, 밀라노의 비아 몬테 나폴레오네 등의 풍경이 여기저기 눈에 띄면서도 또 다른 묘한 느낌이 드는 참 재미있는 장면이다. 일본에서 하나의 트렌드를 잡아내기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스트리트 패션의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단, 발견할 수 있는 공통점은 슬림하고 펑키하다는 것이다. 한껏 멋 내고 지나가는 다양한 연령대의 남자들을 구경하니 눈이 즐겁다. 이것이 현대의 세련된 일본 도시인의 모습일까. 화이트칼라가 많은 도쿄 마루노우치 빌딩 주변은 요즘 일본 직장인들의 비즈니스 스타일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 곳이다. 블랙 계열의 아주 슬림한 일본의 전형적인 비즈니스 슈트 일색인데, 중간색과 네이비 스트라이프 슈트 등이 간간히 보이긴 하지만 ‘무거운 손가방을 든 검정 옷의 가느다란 남자들’, 그것을 벗어나긴 어려운 모양이다. 색상처럼 실루엣에도 약간의 변화가 올 수 있을까. 도쿄의 샐러리맨들은 너무 보수적이다.
십수 년을 같은 스타일을 유지하다니. 왜 고집을 부릴까 궁금하다. 그들의 화려하고 개성 강한 스트리트 패션에 비하면 비즈니스 슈트는 고루하기 짝이 없다. 한 가지 반가운 것은, 일본에 스트라이프가 돌아왔다는 것이다. 가끔 마주치는 그레이 슈트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는데, 스트라이프의 유행이 굳건한(?) 그들의 ‘고집’을 조금 꺾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자기 관리·패션 투자에 열정적인 일본 남성들
긴자 명품거리, 신주쿠 백화점들을 누비는 수많은 인파들의 일상적인 쇼핑과 생활을 보면 오모테산도와 마루노우치처럼 표현 방법만 다를 뿐이지 역시 일본이다. 도쿄의 남자들 가운데서 중간 형태의 스타일을 찾기란 어렵다.
가느다란 젓가락 라인과 밀리터리의 강한 마초 스타일, 짙은 계열의 심플하고 단정한 슈트와 유니섹스 스타일을 넘어 여성스럽기까지 한 라인에 수많은 디테일, 작고 날렵한 서류백과 힘겨워 보이는 빅백(무거운 빅백도 손으로 들어줘야 제 맛인가. 보고 있는 내 눈이 다 지친다), 브라운 톤의 정통 스타일 구두와 군화 같은 신발, 모던과 정통, 유행에 민감하면서 바뀌기를 거부하는 모습 등에서 ‘도쿄 냄새’가 난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지만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집하는 그들. 세계 모든 스타일을 가져와 일본화하는 능력. 일본과 아시아. 서방에서 그렇게 부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도쿄 남자들은 세계 어느 도시보다 자기 관리에 철저하다. 비즈니스맨들은 수입의 15% 이상을 패션에 투자한다고 한다. 투자가 많으니 더더욱 자기 개성을 나타내려고 하는 것 같다. 백화점 남성관이 별도로 있는 것은 대수도 아니며 어떤 곳은 남성관이 몇 개 층을 차지하기도 하니 도쿄 남자들의 멋 내기 정도를 알 수 있다. 아동복과 사이좋게 나눠 쓰는 우리나라의 남성관을 생각해보니 ‘일본과 아시아’는 조금 더 갈 것 같다. 글쓴이 이영원은…
대한민국 핸드메이드 남성복의 아이콘 ‘장미라사’의 대표. 옷이 좋아 옷을 맞추고, 입고, 즐기고, 선물하는 재미에 365일 빠져 있는 사르토리알이다. 내 집 드나들 듯 한 덕에 유럽은 눈감고도 다닐 수 있다는 그는 옷이 곧 문화라는 철학으로 한국 수제 남성복의 자존심을 지켜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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