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는 돈의 흐름을 흐트러뜨리는 가장 큰 요인이다.
특정국의 경제 여건이 좋다 하더라도 돈의 흐름이 명확하지 못하면 외국인들은 투자 자금을 회수한다.

올해는 나라 안팎으로 선거가 많이 치러진다. 그래서인지 연일 뇌물사건이 터지면서 부패가 각국의 경제 성장과 증시 발전에 걸림돌로 등장하고 있다. 우리도 국제 금융시장에서 이 문제를 투자 장애 요인으로 지목해 주목된다.

일반적으로 한 나라의 뇌물과 부패 정도는 시장경제 원리가 활성화되지 못한 국가에서 심하게 나타난다. 이런 국가에서는 시장경제 원리에 맞지 않는 행정 규제와 정치적인 영향력으로 독점적 이윤인 경제적 지대(rent)가 발생한다. 이를 얻어내기 위해 사회구성원들은 치열한 로비활동을 전개하고 이 과정에서 뇌물과 부패가 만연하는 소위 ‘지대추구형 사회 (rent oriented society)’가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오랫동안 각국이 뇌물과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노력해 왔으나 선진국, 개도국 가릴 것 없이 이 문제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오히려 규모가 커지고 횟수가 더 잦아지는 듯한 분위기다. 우리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뇌물 등과 같은 비경제적인 요인이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실제로 독일의 국제투명성기구 (TI)가 발표한 각국의 부패지수(CPI)와 뇌물공여지수(BPI)를 보면 우리는 두 지수 모두가 후진국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말에 발표된 CPI는 43위로 2010년에 비해 오히려 4단계나 떨어졌다. 우리처럼 한번 개선됐다가 다시 악화되면 체감적으로 느끼는 부패 정도는 약 2배에 달한다.

특히 2∼3년마다 뇌물을 주는 쪽인 기업 등을 대상으로 직접 설문조사를 통해 작성되는 BPI가 그 나라의 부패 정도를 파악하는 데 중시된다. 지난해 말 발표된 BPI를 보면 우리는 조사 대상 28개국 중에서 13위를 차지해 2008년 조사 때에 비해 개선되지 않았다. 오히려 TI의 자료를 바탕으로 발표하는 홍콩의 정치경제위험자문공사(PERC)의 부패지수를 보면 민간 분야에서 조사 대상 아시아 16개국에서 최하위를 기록해 충격을 주고 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그레이 베커 교수는 뇌물과 부패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각종 규제와 인가, 공무원의 자유재량권 등을 꼽고 있다. 관료의 질, 공공부문의 임금 수준, 정당의 자금 조달 등은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연일 터지고 있는 뇌물과 부패 사건도 이런 각도에서 보면 이해된다.

한 나라의 경제 성장과 증시 발전에 뇌물이나 부패가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시장경제 기반과 행정 체계가 갖춰지지 않은 경제 발전 초기에는 관료들에게 급행료를 치르는 것이 오히려 효율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대개 1인당 국민소득이 3000달러 이하인 저소득 개도국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문제는 경제와 증시 발전 단계가 높아질수록 뇌물과 부패는 시장 기능을 마비시키고 외부불경제를 초래하면서 경제 성장과 증시 발전을 저해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특히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에 접어들 때 뇌물과 부패 고리를 청산하지 못하면 한 나라의 경제가 좀비(zombie) 국면에 처하면서 성장이 멈춘다.

부패는 돈의 흐름을 흐트러뜨리는 가장 큰 요인이다. 특정국의 경제 여건이 좋다 하더라도 돈의 흐름이 명확하지 못하면 외국인들은 투자 자금을 회수한다. 특히 신흥국에서 이 같은 성향이 뚜렷하다. 글로벌 시대에‘권력층의 부패’를‘나라를 팔아먹는 매국론’으로 정의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미국 소비자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부채를 축소하고 저축을 늘려 왔다.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미국 소비자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부채를 축소하고 저축을 늘려 왔다.
최근 잇달아 발표되는 각국의 수정 전망치가 들여다보면 그 어느 때보다 좀비 국면을 우려하는 시각이 많아졌다. 대부분 예측기관들은 비관론보다 더 무서운 것이 좀비론이라며 향후 세계 경제의 앞날을 가늠할 수 있는 중대한 변수로 꼽고 있다. 좀비 경제를 낳게 하는 가장 큰 주범은 권력층의 부패다.

좀비란 본래 조직이론에서 나온 용어다. 직장에 출근하지만 기업의 목적인 이윤 창출에는 전혀 기여하지 못하는 근로자를 일컫는 말이다. 모든 정책도 정책당국의 신호대로 정책수용층이 반응해야 의도했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잘 작동되지 않는다면 위기 극복은 그만큼 지연되고 세계 경제는 다시 침체 국면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스티븐 로치 모건스탠리 회장은 이미 오래전에 미국 경제 앞날의 최대 적(敵)으로‘좀비 소비자’를 꼽았다. 총수요 항목별 국민소득(GDP) 기여도에서 민간소비가 70%를 차지하는 미국 경제 구조상 정책당국의 의도대로 소비자가 반응하지 않는다면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없다.

4년 전 금융위기 이전까지 소비지향 생활패턴의 전형으로 여겨졌던 미국 소비자들이 좀비 현상을 보이는 것은 디레버리지(deleverage) 행위 때문이다.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미국 소비자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부채를 축소하고 저축을 늘려 왔다. 헤지펀드 업체인 시브리즈 파트너스의 더글러스 카스 대표는 미국 국민의 디레버리지 행위를 스크루(screw), 즉 ‘쥐어짠다’라는 표현까지 썼다.

미국 경제가 앞으로 일본 경제처럼 ‘5대 함정’에 빠져 잃어버린 10년에 빠질 것이라는 시각이 대두되고 있는 것도 좀비 소비자 우려 때문이다. 5대 함정이란 무엇보다 정부의 의도대로 경제주체들이 반응하지 않아 모든 정책이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정책 함정(policy trap)을 들 수 있다. 그중에서 경기 부양 방안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통화정책은 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에 빠져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처럼 정책 함정과 유동성 함정에 빠지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주체들이 과도한 부채에 시달려 소비나 투자를 하지 못하는 빚의 함정(debt trap)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또 경제 구조를 개혁하는 문제도 최종 목표인 경쟁력 개선 여부와 관계없이 구호만 반복적으로 외치는 구조조정 함정(structure trap)에 빠져 있는 점도 같은 맥락이다. 어떤 나라든 이런 상황에 놓이면 경제주체들이 미래에 대해 느끼는 불확실성이 증대돼 예측기관들은 전망이 또 다른 전망을 불러일으키는 불확실성 함정(uncertainty trap)에 빠지게 된다.

일본 경제가 좀비 국면에 처한 지는 오래됐다. 1990년대 이후 거듭된 정책 실패가 가장 큰 요인으로‘제로(0)’금리와 GDP의 230%에 달할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국가 채무 등이 장기간 좀비 국면을 대변해 주는 후유증이자 상징물이다. 경제 구조적으로 5대 함정에 장기간 빠져 있는 것도 주요 원인이다.



최근 하락세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내수 비중은 다른 나라에 비해 여전히 큰 편이어서 내수 확대 없이는 좀비 국면에서 탈피하기 사실상 어렵다.



앞으로 일본 경제가 재차 우려되고 있는 좀비 국면을 탈피하기 위해서는 내수 부진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관건이 될 가능성이 높다. 수출의 성장기여도는 1970년대 이후 0.5∼0.8%포인트 수준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는 데 비해 내수기여도는 1970년대 3.8%포인트, 80년대 4.0%포인트에서 1991∼2008년 중 0.6%포인트로 급락했다. 그 결과 GDP에서 내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1990년 89.6%에서 2008년에는 82.5%로 크게 하락했기 때문이다.

최근 하락세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내수 비중은 다른 나라에 비해 여전히 큰 편이어서 내수 확대 없이는 좀비 국면에서 탈피하기 사실상 어렵다. 내수 부진이 고용과 임금 불안정성 증대, 인구 고령화 진전 등 당장 해결하기 곤란한 구조적 요인들에 주로 기인하기 때문이다. 재정 여건도 크게 악화돼 1990년대처럼 정부가 민간 수요를 적극적으로 대체해 촉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간 나오토 정부 조기 하야 이후 들어선 노다 정부는 수출 등을 통해 내수 부진을 보완하고 장기간 침체에 빠진 경기를 되살리기 위해 엔고 저지책에 나섰다. 취임 이후 엔화를 약세로 돌려놓기 위해 10조 엔 이상의 시장 개입만 하더라도 수차례에 달했다. 하지만 유럽 재정 위기라는 복병이 지속되면서 효과를 거두지 못함에 따라 좀비 국면에 몰리고 있다.

모든 위기국들은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서면 불가피하게 외부 수혈을 받게 된다. 바로 구제금융이다.이후‘국제통화기금(IMF) 신탁통치’니 해서 국치(國恥)를 겪지만 이때도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 구제금융의 대가로 위기 극복 의지를 국제적으로 보여주면 가능하다.

하지만 그리스는 국제 금융시장에서 이미 ‘좀비 위기국’으로 취급당하고 있다. 지난 2년 동안 수차례에 걸쳐 구제금융을 받았음에도 그리스 국민은 개혁과 구조조정을 통해 고통을 분담하기보다는 같은 상황에 처해 금 모으기를 했던 한국 국민과 달리 오히려 금을 사기 위해 줄을 서는 웃지 못할 광경이 벌어지고 있다.

모든 경제 현상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그레샴의 법칙’이 잘 통용된다. 유럽 국가처럼 무늬만 회원국과 건전한 회원국을 ‘통합’이라는 한 바구니에 담아 놓으면 건전한 회원국들도 썩게 된다. 이미 유럽 재정 위기가 장기화됨에 따라 현재 유로랜드 회원국이라 하더라도 이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무늬만 회원국’들이 많아지고 있다. 더욱이 지금까지 이 무늬만 회원국들을 끌어가는 과정에서 이제는 ‘건전한 회원국’들까지 전염되는 임계상황을 맞고 있다.

그런 만큼 그리스가 더 이상 고통을 부담하지 않는다면 다른 회원국들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유럽통합에서 탈락시키는 충격요법이다. 조지 소로스 등이 제시하는 ‘투 트랙(two track)’, 즉 건전한 회원국들은 계속 통합단계를 밟아가고 차제에 무늬만 회원국들은 탈락시키는 방안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 경제 내에서도 재계를 중심으로 ‘최근에는 제대로 된 정책이 제때에 나오지 않는다’라는 비판이 많다. 앞으로 어떤 대책을 추진하든 간에 의도했던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정책수용층들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선거 등을 겨냥해 포퓰리즘적인 정책을 쏟아내다 보면 우리 경제도 좀비 국면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스가 더 이상 고통을 부담하지 않는다면 다른 회원국들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유럽통합에서 탈락시키는 충격요법이다.
그리스가 더 이상 고통을 부담하지 않는다면 다른 회원국들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유럽통합에서 탈락시키는 충격요법이다.
우리도 이제는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 시대에 접어들었다. 수출 규모로는 세계 7위다. 하지만 뇌물과 부정부패 사건은 연일 꼬리에 꼬리를 물고 터져 나오고 있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대부분 사회지도층 인사와 연루돼 있어 일부 국민 사이에는 한풀이성 소비와 같은 위기 일탈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정책당국은 대외 여건이 악화될 때마다 각종 판단지표로 가능성이 낮게 나오는 데도 위기설에서 자유롭지 못한 원인을 곰곰이 따져봐야 한다. 여러 요인 가운데 잦은 정책 변경, 정부에 대한 신뢰 부족, 부정부패 등으로 시스템 위기 극복이 지연되는 과정에서 실물경기가 완전히 회복되지 못하는 데 있다는 것이 국제 금융시장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결국 우리 경제와 증시 안정을 위해서는 뇌물과 부패 고리를 반드시 차단해야 한다. 여러 방안이 있겠으나 현 시점에서 최소한 네 가지 조치는 시급히 전제가 돼야 한다. 무엇보다 대통령을 포함한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솔직하고 뚜렷한 공약이 있어야 하고 어떤 뇌물과 부패도 용인하지 않을 것임을 보여줘야 한다.

각종 규제와 조세 혜택과 같은 정책들을 축소하는 동시에 필요한 규제는 자의적이지 않도록 제도화해 뇌물과 부패에 대한 수요를 줄이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 공급 측면에서도 부패와 관련된 정치인과 공무원에 대한 신상필벌이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갈수록 문제가 될 정당의 자금 조달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해야 뇌물과 부패 정도를 줄일 수 있다.


한상춘 한국경제 객원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