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론 지역 최고의 와인 명가 보카스텔

2002년도 가을, 프랑스 3대 와인 산지 중 한 곳인 론 지역은 태풍으로 많은 와이너리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태풍 피해로 좋은 와인을 만들지 못 할 거라고 판단한 보카스텔(Beaucastel)의 주인 페렝(Perrin) 가문은 100억 원 이상의 손해를 감수하면서 2002 샤토뇌프 뒤 파프 루주(Chateauneuf du Pape Rouge·레드 와인)를 생산하지 않았다.

와인 명가는 결코 돈과 타협하지 않는다. 아무리 큰 손해를 입는다 하더라도 절대 품질을 포기하는 법이 없다. 그런 이유로 와인 명가들은 몇백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신뢰와 명성을 유지해 올 수 있는 것이다.

보카스텔 와이너리는 16세기까지는 평범한 농장이었다. 그러다 1909년 페렝 가문이 이 와이너리를 사들이면서 와인 명가로 거듭난다. 와이너리를 인수한 페렝 가문은 ‘결코 돈과 타협하지 않는 품질에 대한 자부심’과 ‘가장 자연적인 유기농 와인의 생산’을 통해 오늘날 쟁쟁한 와인들이 산재해 있는 론 지방에서 최고의 와인 명가가 됐다.
로버트 파커로부터 100점 만점을 얻은 명주 오마주 아 자크 페렝 1998년 빈티지.
로버트 파커로부터 100점 만점을 얻은 명주 오마주 아 자크 페렝 1998년 빈티지.
로버트 파커로부터 극찬을 받은 오마주 아 자크 페렝

론 지역의 명가 와이너리 샤토 드 보카스텔. 세계적인 와인 평론가인 로버트 파커는 그가 발행하는 와인 전문지인 와인 애드보케이트(The Wine Advocate)에 “보카스텔이 남론 지역의 가장 오래된 레드 와인 생산자라는 사실 이외에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론 밸리에서 가장 훌륭하고 뛰어난 샤토뇌프 뒤 파프 생산자라는 것이다”라고 얘기한 바 있다.

1909년부터 100년 남짓 그 전통을 이어오며 가장 뛰어난 샤토뇌프 뒤 파프를 생산하는 페렝 가문의 샤토 드 보카스텔 와이너리에 얽힌 흥미로운 일화가 하나 있다.

샤토 드 보카스텔의 3대손인 자크 페렝(Jacques Perrin)은 당대 가장 훌륭한 와인메이커로 평가되는 인물이다. 자크의 서거 이후 그 아들들인 프랑수아 피에르와 장 피에르 형제가 아버지에게 헌정하기 위해 특별한 샤토뇌프 뒤 파프 와인을 만든다. 이름하여 ‘오마주 아 자크 페렝(Hommage A Jacques Perrin)’. 오마주는 프랑스어로 존경, 경의를 뜻하며 이 와인은 출시가 목적이 아니라 가족끼리 자크를 기리며 마시기 위해 만든 와인이다.
샤토 드 보카스텔은 100여 년이 넘도록 가족 경영의 전통을 이어오며 와인 명가의 자존심을 지켜왔다.
샤토 드 보카스텔은 100여 년이 넘도록 가족 경영의 전통을 이어오며 와인 명가의 자존심을 지켜왔다.
그러던 중 세계적인 와인 평론가인 파커가 이 와이너리를 방문했는데 프랑수아와 장 피에르 형제는 새로운 빈티지 와인의 시음이 끝난 후 라벨도 붙이지 않은 이 와인을 내놓았다. 그리고는 “이 와인은 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만들었으며 가족끼리 마시는 와인이니 부디 점수를 매기지 말아 달라”고 간청했다. 그러나 파커는 이 놀라운 와인을 시음해 보고 이듬해 “내가 시음해 본 최고의 레드 와인 중 하나(one of the greatest red wines I have ever tasted)”라는 극찬과 함께 100점을 주었다. 이후 보카스텔 측에 이 와인의 시판을 독려해 오마주 아 자크 페렝이 세상에 나오게 됐다.

오마주 아 자크 페렝은 1989년 첫 빈티지를 포함해 1990, 1998, 2007년까지 4개의 빈티지가 파커로부터 100점을 받았고 그 외 어느 빈티지나 훌륭한 평가를 받아왔다. 명주 중 명주로 손꼽히는 이 와인은 한 해 5000병 정도로 소량이 생산되며, 국내에는 겨우 24병만이 신동와인을 통해 들어온다.
[Wine Story] 돈과 타협하지 않는 와인에 대한 자부심
오마주 아 자크 페렝뿐 아니라 샤토 드 보카스텔의 와인들은 최고의 평가를 받고 있다. 샤토뇌프 뒤 파프 루주뿐 아니라 블랑(화이트) 또한 파커가 “보카스텔보다 나은 샤토뇌프 뒤 파프 화이트는 찾기 어렵다”라고 할 정도로 최고의 품질을 자랑한다.

특히 그는 아셰트 출판사의 ‘와인 가이드’에서 샤토뇌프 뒤 파프 루산 비에유 비뉴(Chateauneuf du Pape Roussanne Vieilles Vignes)를 “살면서 자신의 인생을 바꾸는 만남이 있듯 이 와인이 바로 그런 와인이다”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이 와인은 수령이 80년 이상 오래된 포도나무에서 수확한 루산 품종으로만 만드는데, 신비로운 복합미와 함께 꿀, 볶은 견과의 풍미를 선사한다. 숙성 초기에도 대단히 흥미롭지만 10년 이상 숙성하면서 와인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훌륭한 모습으로 변한다. 이 와인은 부르고뉴 그랑 크뤼 수준의 가격에 팔리며, 세계에서 루산 품종의 정수를 가장 잘 담아낸 와인으로 알려져 있다.
[Wine Story] 돈과 타협하지 않는 와인에 대한 자부심
제초제·살충제·산화방지제를 쓰지 않은 유기농 와인

샤토 드 보카스텔은 100여 년이 넘도록 가족 경영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곳이며 ‘와인은 자연적인 재료들로만 만들어져야 한다(Wine must be made from natural ingredients)’는 한결 같은 철학으로 유지돼 오고 있다.

이러한 철학으로 와인을 만들기 때문에 샤토 드 보카스텔의 와인은 가장 건강하고 자연스럽게 익은 포도들로만 만들어진다. 포도 수확량도 당연히 적다. 더 나아가 1956년부터는 제초제와 살충제를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법으로 와인을 생산해 오고 있다.

샤토 드 보카스텔은 산화방지제를 넣지 않고 독특하게 와인을 만드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유기농으로 키워 놓고 정작 와인을 병에 담을 때 화학첨가물을 넣으면 안 된다는 지론 때문이다. 이를 위해 1945년부터 부르고뉴 지방의 와인연구소와 제휴, 와인이 산화되는 원인이 와인 속의 효소인 ‘엔자임’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또 포도를 특정 온도에서 짧은 시간 가열하면 이 엔자임을 제거할 수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1951년 포도를 으깨기 전 약 90초간 섭씨 80도의 뜨거운 파이프를 통과시키는 기술로 특허를 받았으며 1959년부터는 모든 제품에 이 공법을 적용해 산화방지제를 넣지 않는다.
루산 품종의 정수를 가장 잘 담아낸 와인으로 평가되는 샤토뇌프 뒤 파프 루산 비에유 비뉴.
루산 품종의 정수를 가장 잘 담아낸 와인으로 평가되는 샤토뇌프 뒤 파프 루산 비에유 비뉴.
보통의 와인은 산화방지제로 이산화황(SO₂)을 사용한다. 간혹 이산화황을 지나치게 많이 넣은 저가의 와인에선 와인을 따자마자 이산화황 냄새가 확 풍기기도 한다. 이 이산화황은 두통을 유발하기도 한다. 물론, 소량의 이산화황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와인이 발효되면 자체적으로 이산화황이 발생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보카스텔은 자연 발생되는 이산화황을 제외하고 어떤 첨가물도 들어가지 않은 와인을 만드는 것이다.

샤토 드 보카스텔은 이렇게 재배한 13가지의 포도를 모두 블렌딩해 와인을 만든다. 큰 슬로베니아 오크통에 담아서 와인을 생산하고 13가지 포도 품종을 각각 따로 수확해 별도로 제조과정을 거친 후 보관하다 6월이 지나면 블렌딩을 시작한다. 샤토뇌프 뒤 파프를 생산하는 와이너리 중에는 13가지 포도 품종을 전부 재배하기 힘들어 몇 가지 대표적인 품종만을 사용해 와인을 만드는 곳이 많다. 하지만 샤토 드 보카스텔은 13가지 모두를 블렌딩하는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품종 중에서는 무르베드르와 그르나슈의 비율이 높다.

특히 무르베드르 품종을 가장 중시하는데, 무르베드르는 만생종 품종으로 10월 10일경 수확이 가능하다. 포도나무당 포도송이가 너무 많으면 잘 익지 않아 생산량이 많지 않다. 그래서 다른 많은 와이너리들은 무르베드르 품종을 사용하지 않거나 소량만 사용한다. 이 품종은 산도가 낮은 반면 산화가 천천히 진행돼 신선도가 오래 지속된다. 무르베드르의 타닌은 레드 와인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집중감을 주고 아로마는 동물향이 나는 것이 특징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풍부해진다. 특히 샤토뇌프 뒤 파프 오마주 아 자크 페렝의 경우 무르베드르의 블렌딩 비율을 60%까지 높여 만든다.


글 신규섭 기자 wawoo@hankyung.com 사진 제공 신동와인(www.shindongwi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