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 준비는 직장생활과 함께 해야 한다’는 필자의 지론에 대해 의아해하는 이들이 많다. ‘퇴직하기 1~2년 전부터 시작하면 되지 사회 초년생에게 무슨 노후 준비를 하라는 것이냐’, 대부분 이런 표정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일찍 시작해야 하는가.
커피 한 잔 값에서 시작하는 노후자금 마련법
가장 큰 이유는 일찍 시작할수록 노후 준비가 쉬워지기 때문이다. 쉬운 예로 노후 자금 마련이 그렇다. 하루 커피 한 잔 값(4000원)만 아끼면 한 달이면 12만 원, 30년이 지나면 적잖은 돈이 된다. 20~30대부터 계획을 세워 다른 용도의 자금과 분리해서 모으기만 한다면 노후자금을 마련하는 것이 이렇게 쉬워진다.
우리나라나 일본처럼 금융·투자 교육이 제대로 돼 있지 않은 나라에서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왜 투자를 하세요”라는 질문을 한다면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그걸 질문이라고 하십니까. 돈 벌려고 하지요”라고 대답한다.
반면에 선진국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이런 질문을 하면 “노후를 대비해서”라는 대답이 대부분이다. 나이든 투자자들뿐 아니라 20~30대 젊은 투자자들도 같은 대답을 한다. 이들은 20년, 30년, 40년 장기 설계를 하고 노후 자금을 마련해 놔야 하는 이유와 그 방법에 대해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후에 대비한 자산 형성 방식이 종래보다 복잡해졌다는 점 또한 노후 준비를 일찍 시작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우선 종래에는 노후 대비 자산 형성 방식 자체가 복잡하지 않았다. 몇십 년 동안 두 자릿수 금리시대가 지속돼 왔기 때문에 여유 자금은 금융기관에 예금만 해두면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 어느 정도 목돈이 마련되면 그 돈과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받은 돈을 합해 부동산에 투자만 하면 그것으로 자산 형성은 끝날 정도였다. 부동산 가격이 장기 상승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오랫동안 지속돼 온 부동산 불패신화의 영향으로 우리나라 가계의 자산 구조는 지나치게 부동산에 편중됐다. 전체 가계 자산 중 부동산 비율은 80% 정도나 된다. 참고로 미국의 부동산 비율은 35%, 일본은 40% 정도밖에 안 된다. 부동산 시장의 전망으로 보나 자산관리의 원칙으로 보나 우리나라 가계의 자산 보유 구조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따라서 각 가계에서는 부동산과 금융 자산의 적정 비율을 계산해보고 금융 자산의 비중을 높이는 방법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금융 자산도 지금과 같은 저금리·고인플레 시대에는 리스크가 따르더라도 고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투자 상품 중심으로 늘려가야 한다. 이 모두 젊은 시절부터 투자에 관한 공부를 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노후 자금의 중심이 되는 3층 연금 즉,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도 마찬가지다. 주위에서 보면 ‘노후 자금으로 몇 억 원 정도 있어야 되는가’에 대해 관심을 갖는 분들이 많다. 그러나 100세 시대에는 몇억 원의 노후 자금을 마련하는 것보다 3층 연금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기본 생활비 정도를 보장받는 게 더 중요하다. 그런데 이 연금은 단기간의 불입만으로는 필요한 만큼의 연금을 받기가 어렵다. 직장 초년병 시절부터 시작해서 최소한 20~30년 이상은 불입해 나가야 기본 생활비 수준을 보장받을 수 있다.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를 경험한 선진국의 직장인들은 30~40년 동안 좀 더 돈을 벌기 위한 인생을 살 것인지, 자아실현을 위한 인생을 살 것인지, 사회 환원적인 인생을 살 것인지, 아니면 이 세 가지를 병행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준비한다.
사회 초년병 때부터 준비하는 은퇴 생활
노후 생활을 어렵게 하는 건강 문제도 그렇다. 미국과 일본에서 퇴직자들을 대상으로 퇴직 후 생활비가 실제로 줄었는지를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안 줄었다’는 대답이 30~40%를 차지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조사를 한다면 결과는 비슷할 것이다. 바로 병원비와 간병비 때문이다. 따라서 젊은 시절부터 건강에 주의하는 한편, 언제 아플지, 치료비가 얼마나 들지 모르는 건강 리스크는 젊은 시절부터 특수질병보험에 가입해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녀교육비를 줄이는 문제 또한 중요하다. 지난해 미래에셋 퇴직연금연구소가 퇴직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조사 대상자의 60% 정도가 노후 자금을 충분히 마련하지 못한 채 퇴직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후 자금 마련을 못한 원인 중 60%는 자녀교육비 때문이라는 대답이었다. 우리나라 가정의 대부분은 자녀교육비를 줄이지 못하면 노후 자금 마련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입시 경쟁 사회에서 자녀교육비를 줄인다는 게 말처럼 쉬운가. 자녀 교육이 시작되기 전 젊은 시절부터 부부가 같이 자녀 교육에 대한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 부부가 공통된 인식과 소신을 갖고 대응하지 않으면 해결이 불가능한 문제라고 해야 할 것이다.
다음에는 퇴직 후에도 할 수 있는 일을 준비하는 문제다. 우리가 100세까지 산다고 가정할 때, 20대 후반에 취직해서 60세에 퇴직한다면 일하는 기간은 삼십 수 년인 데 반해 은퇴 기간은 무려 40년이나 된다. 부족한 노후 자금 때문에도 그렇지만, 건강을 위해서나 보람 있는 삶을 위해서라도 퇴직 후에 무슨 일이든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주위에서 보면 똑같이 몇억 원의 노후 자금을 보유하고 있더라도, 퇴직 후에도 규칙적으로 일을 하면서 관리하는 사람과 할일이 없는 사람은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우리보다 먼저 이런 경험을 한 선진국의 직장인들은 30~40년 동안 좀 더 돈을 벌기 위한 인생을 살 것인지, 자아실현을 위한 인생을 살 것인지, 사회 환원적인 인생을 살 것인지, 아니면 이 세 가지를 병행할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하고 준비를 한다.
평균 수명이 70~80세일 때는 ‘공부-취업-은퇴’라는 삶의 방식이 일방적이었다면, 인생 100세 시대는 ‘공부-취업-공부-재취업’과 같은 순환형 삶의 방식으로 바꾸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가장 확실한 노후 대비는 ‘평생현역’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이 평생현역이 되는 일 또한 20~30대부터 준비해 나가지 않고서는 대응이 불가능하다.
마지막으로는, 혼자 살아야 할지도 모르는 노후에 대비하는 문제다. 2010년 말 현재 일본에서 혼자 사는 노인의 수는 465만 명으로 65세 이상 노인인구의 16% 정도를 차지했다. 노인 6명 중 1명이 혼자 살고 있는 셈이다. 반면에 우리나라에서 혼자 사는 노인의 수는 2010년 현재 102만 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아직 혼자 사는 노인의 숫자 자체는 일본에 비해 그다지 많지 않다. 우리나라의 노인인구 비율(11%)이 일본(23%)의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것은 전체 노인인구 중에서 차지하는 혼자 사는 노인 비율은 우리나라(19%)가 일본(16%)보다 훨씬 높다는 것이다. 노인 5명 중 1명이 혼자 살고 있는 셈이다. 전체 인구 중에서 차지하는 75세 이상의 후기 노령기 인구 비율은 우리나라가 4%인 데 비해 일본은 11%에 이른다. 그런데도 혼자 사는 노인의 비율은 우리가 일본보다 높다는 것이다. 후기 노령기로 갈수록 혼자 사는 노인의 수가 더욱 더 빨리 늘어난다는 점을 감안할 때, 10~20년 후 우리나라도 지금의 일본처럼 초고령사회로 들어서게 되면 혼자 사는 노인들이 얼마나 늘어나겠는가.
앞으로 오는 인생 100세 시대에는 우리 사회에서도 혼자 사는 노후가 주요한 삶의 형태로 자리를 잡게 될 것이다. 누구나 언젠가는 혼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혼자 사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도시화가 진전될 때 핵가족화 문제를 우려하는 시각이 많았지만 핵가족은 새로운 가족 형태로 성장해 주류를 이뤘다. 혼자 사는 삶도 마찬가지 길을 걷게 될 것이다.
따라서 우선은, 혼자 살게 될지도 모르는 노후에 대한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다음에는 혼자 살더라도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것, 새로운 공동체로 편입하기 위해 자신에게 맞는 취미생활을 갖는 것, 혼자서 의식주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독립심 등이 필요한데 이런 준비는 젊은 시절부터 해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일러스트·추덕영
강창희 미래에셋 투자교육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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