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KET ISSUE KOSPI
3월 들어 외국인 매수세가 약해지면서 코스피의 상승세도 둔화됐다.이에 따라 외국인의 매매 동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변화 조짐 보이는 외국인 매수세
외국인 투자자는 지난 1월 유가증권 시장에서 6조3060억 원어치의 매수 우위를 나타냈다. 월간 기준으로는 사상 최대 규모의 순매수였다. 이어 2월에도 4조2715억 원어치를 사들였다. 대다수 전문가들의‘상저하고(上低下高)’전망을 깨고 연초부터 주가가 급등한 데는 외국인의 힘이 컸다. 코스피 지수는 지난해 말 1825.74에서 1월 말 1955.79로 급등했고 2월 초 2000을 돌파했다.
하지만 주간 단위로는 2월 하순부터 외국인 매수 강도가 약해지는 모습이 다. 2월 첫째 주 1조3672억 원, 둘째 주 1조1324억 원에 달했던 외국인 순매수 규모는 셋째 주 6534억 원, 넷째 주 7601억 원으로 축소됐다. 3월 들어서는 매도 우위로 전환하는 조짐이 나타났다. 외국인은 3월 5일부터 8일까지 4일 연속 매도 우위를 보이는 등 첫 일주일간 1조484억 원어치를 순매도했다.
단기 급등에 따른 국내 증시의 밸류에이션(기업 실적 대비 주가) 매력 약화와 기업 실적 악화, 경기 둔화 조짐 등이 이 같은 변화의 배경으로 풀이된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코스피 지수가 작년 말 대비 10% 이상 오르면서 국내 주식은 더 이상 싸다고 볼 수 없는 수준이 됐다”며 “1분기 기업 실적 전망도 불투명해 외국인 매수세가 약해졌다”고 말했다. 박 팀장은 “외국인은 국내 주식을 지난해 하반기 팔았던 것 이상으로 되샀다”며 “기업 실적 개선 등 새로운 호재가 나타나야 추가 매수에 나설 것”으로 전망했다.
연초 사들인 주식 차익 실현 과정
외국인의 순매도 전환 움직임에 대해 아직은 일시적인 차익 실현 과정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매수 강도가 약해지기는 하겠지만 대규모 순매도세로 급격히 전환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일선에서 외국인 투자자를 상대하는 증권사 국제영업 담당자들은 한국 경제나 국내 증시에 대한 외국인의 시각이 부정적으로 바뀐 것은 아니라고 전한다. 전재현 신한금융투자 국제영업부 과장은 “연초 유입된 자금이 일부 차익을 실현하고 빠져나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며 “외국인이 한국 증시를 부정적으로 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외국인 사이에서 일종의 ‘손바뀜’이 진행 중이라는 해석도 있다. 오성진 현대증권 리서치센터장은 “1~2월 프로그램 매매를 통해 들어왔던 단기 자금이 빠져나가고 3월부터는 장기 투자 성격의 롱텀펀드가 들어오기 시작했다”며 “외국인 매수의 상당 부분이 프로그램 매매였던 만큼 이 자금이 빠져나가는 과정은 이미 예견됐던 일”이라고 설명했다.
외국인 매수세가 지속될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은 풍부한 유동성을 첫 번째 근거로 꼽는다. 유동성이 풍부한 환경에서는 위험자산 선호도가 높아져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 증시에 자금이 몰린다는 것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지난해 12월과 올해 2월 두 차례에 걸친 장기대출프로그램(LTRO)을 통해 민간 은행에 1조 유로를 공급했다.영란은행(Bank of England)과 일본은행도 양적완화를 지속하고 있다.
이재훈 미래에셋증권 시황분석팀장은 “저금리의 선진국 자금을 빌려 기대수익률이 높은 신흥국에 투자하는 ‘캐리 트레이드(carry trade)’ 투자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팀장은 “외국인 투자가 주춤해진 것은 3월 초 신흥국 통화가치가 약세를 보이면서 캐리 트레이드 투자의 수익성이 악화됐기 때문”이라며 “중장기적으로는 신흥국 통화가 강세를 보일 가능성이 높아 캐리 트레이드성 외국인 투자가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했다.
그리스에 대한 2차 구제금융이 승인되면서 유럽 재정위기가 시스템 위기로 번질 위험이 낮아진 것도 외국인 투자를 기대할 수 있는 배경이다. 중국이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7.5%로 낮추면서 경기 둔화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지만 실제 성장률은 8% 중후반을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원·달러 환율 1100원, 2분기가 고비
그렇다면 외국인은 언제쯤 매수세를 마무리하고 매도세로 전환할까. 전문가들은 원·달러 환율 1100원이 고비가 될 것으로 분석했다. 토러스투자증권이 2003년 이후 환율 구간별 외국인 주식 매매를 분석한 결과 원·달러 환율이 1100원 이하일 때는 외국인이 국내 주식을 순매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외국인은 국내 주식에 투자할 때 주가 상승에 따른 수익과 함께 원화 강세(환율 하락)에 따른 환차익을 기대한다. 외국인 입장에서는 국내 주식 매수 시점에 비해 매도 시점의 원·달러 환율이 낮으면 달러로 환산한 주식 가치가 높아져 더 큰 수익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환율이 지나치게 낮아졌을 때는 추가 하락 여지가 제한돼 환차익을 얻을 수 있는 폭도 좁아진다. 환율 하락으로 국내 기업의 수출 경쟁력이 약해지면 무역수지가 악화되면서 환율이 상승, 외국인은 환차손을 입을 수도 있다.
오태동 토러스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미국계 펀드 자금의 계절적 흐름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 팀장은 “미국계 주식형 펀드는 4분기부터 자금 유입이 증가해 다음해 1월과 4월 큰 폭으로 유입된 후 여름에는 유입 규모가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며 “외국인의 본격 매도 전환 여부는 2분기 이후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 은행들이 오는 6월 말까지 1150억 유로의 자본을 확충해야 한다는 점도 변수다. 은행들이 시중 자금을 흡수하는 만큼 금융 시장에 풀리는 자금은 줄어들기 때문이다.
중소형주 중심 종목별 장세 전망
시장의 고민은 외국인이 매도세로 돌아서거나 순매수 규모를 줄였을 때 뒤를 이을 매수 주체가 마땅치 않다는 데 있다. 국내 기관투자가와 개인투자가는 주식을 적극적으로 매수하기 어려운 여건에 처해 있다는 분석이다.
주택 가격이 하락하고 전세 가격이 급등하면서 가계의 주식 투자 여력이 크게 약화됐다. 가계의 주식 투자 여력이 줄어들면 주식형 펀드를 운용하는 자산운용사들의 ‘실탄’ 역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 하반기 급락장에서 저가 매수에 나섰던 국민연금 등 연기금도 주식을 대규모로 매수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올 들어 주가가 급등하면서 연기금 운용자산 중 주식 비중이 이미 연말 목표치에 근접했기 때문이다. 다만 코스피 지수가 2000선 아래로 떨어졌을 때는 연기금이 추가 매수에 나서면서 지수 하단을 떠받치는 역할을 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외국인 매수세가 약해져 수급에 공백이 생길 경우 중소형주가 대형주에 비해 강세를 보일 것으로 내다봤다. 중소형주는 외국인의 매매 비중이 대형주보다 낮기 때문이다. 오성진 센터장은 “지수 상승세가 둔화된 가운데 종목별 장세가 펼쳐질 것”이라며 “업종 1등주에 비해 덜 오른 2등주와 실적 개선이 예상되는 종목이 유망하다”고 말했다.
유승호 한국경제 기자 us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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