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urmet & People

계절 따라 입맛 따라 맛집을 찾아다니는 게 필자의 일이라지만 이번 달만큼은 보다 특별한 맛집을 찾았다. 특별한 사람들이 선보인다는 이국적인 유럽 요리 소식이 봄바람에 실려 왔기 때문이다. 오래전 미국으로 입양됐던 존 블란디(John Blandi)와 프랑스로 입양된 마티유 빌네브(Mathiew Villeneuve), 두 셰프가 들려주는 특별한 사연과 요리 이야기다.

서울 논현동에 자리한 ‘카페 네스트(Cafe Nest)’를 찾은 날은 봄바람치고는 너무 냉정하다(?) 싶을 만큼 차가운 바람이 옷깃을 가만 두지 않던 날이었다. 바람을 밀어내며 문을 열고 들어선 레스토랑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주방 식구들. 출입문과 마주하고 있는 통유리로 완전히 개방된 주방 안에서 훤칠한 두 남자가 빙그레 손님을 맞는 미소를 보냈다.
해외 입양아 셰프 마티유 빌네브(왼쪽)와 존 블란디. 두 사람은 룸메이트이자 카페 네스트 셰프로 호흡을 맞추고 있다.
해외 입양아 셰프 마티유 빌네브(왼쪽)와 존 블란디. 두 사람은 룸메이트이자 카페 네스트 셰프로 호흡을 맞추고 있다.
10대에 입문한 요리의 베테랑들

‘카페 네스트’는 해외 입양아 후원단체인 사단법인 둥지가 지난해 10월에 오픈한 레스토랑. 그래서 이름도 ‘네스트(둥지)’다. 친부모가 좋아서, 이유 없이 어머니의 나라가 좋아서 다시 찾은 해외 입양아들의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차원에서 오픈했다. 둥지에 문을 두드린 사람 가운데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서 자란 해외 입양아들 중 유독 요리사와 웨이터, 웨이트리스가 많았다고. 이안순 둥지 대표는 친부모를 찾기까지 경제적 어려움으로 밑바닥 생활을 하는 해외 입양아들을 두고 볼 수만은 없어 레스토랑을 오픈했고, 셰프 자리는 현지에서 정통 요리를 배운 해외 입양아들에게 내주고 있다.

각각 미국과 프랑스로 입양됐던 존 블란디(한국명 노창수)와 마티유 빌네브(한국명 백영호)는 지난 1월경 식구로 합류한 신입 셰프들. 말이 신입이지 두 사람 모두 열여섯, 열일곱부터 요리를 시작한 베테랑들이다. 미국으로 입양됐던 블란디는 운이 좋게도 한국에서 친부모를 만났다. 어릴 적 한국에 왔다가 부모를 찾지 못하고 프랑스로 돌아갔다 지난 1월에 다시 한국을 찾은 빌네브는 여전히 친부모 소식을 수소문 중이다.

“한국에 처음 왔던 것은 2005년이었어요. 그때 친어머니를 만나고 미국으로 돌아갔지만 한국이 너무 좋더라고요. 한국어도 좀 더 완벽하게 배워야겠다 싶어서 지난해 다시 돌아왔어요. 이곳에선 입만 다물고 있으면 전 한국 사람이잖아요. 미국에선 늘 설명을 해야 했죠. 동양인이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이유 말예요. 한국은 안전하고 대중교통도 편리하고 무엇보다 사람들이 좋아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자란 블란디는 로스앤젤레스(LA) 소재 요리학교인 ‘더 키친(The Kitchen)’에서 웨스턴 요리를 전공했다. 하지만 그의 손맛은 요리학원에서 배운 것이 다가 아니다.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태국인 부모에게 입양된 그는 집에서 늘 할머니와 어머니께 요리를 배웠다. 그는 “요리는 그저 생활의 일부”였다고 말한다.
“한국인으로 한국에 사니 행복할 수밖에요” 해외 입양아 셰프 존 블란디 & 마티유 빌네브
할머니께 물려받은 ‘절대 미각’과 손맛

블란디보다 세 살 연하인 빌네브 역시 청소년 시절에 요리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빌네브의 요리 선생 역시 할머니. 워낙에 손맛 좋은 할머니는 ‘절대 미각’을 물려주셨고, 그는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요리사로서의 길을 걷게 됐다. 빌네브의 경우 프랑스를 근거지로 스위스, 스페인, 모로코 등지를 돌며 셰프 생활을 해 프랑스 정통요리에 일가견이 있다. 현재 카페 네스트 주방에서 나올 때마다 입이 쩍 벌어지는 찬사를 받고 있는 요리들은 빌네브의 레시피로 탄생한 이국적인 메뉴들. 미국서 요리를 전공한 블란디는 입에 짝짝 달라붙는 수제 파스타가 전문이다. 격투기로 다져진 팔뚝을 보니 파스타 면도 잘 뽑을 것 같다.

화려한 상권에 위치하지도 않은 레스토랑은 입소문으로 물어물어 찾는 손님이 대부분이다. 두 셰프의 친구들을 비롯해 이들과 같은 입장에 처한 해외 입양아 등이 그들. 아직까진 적자를 기록하는 레스토랑이지만 재료로 장난치지 않는 두 사람의 정직한 레시피와 손맛은 한 번 다녀간 손님의 발목은 반드시 잡는 묘한 마력을 지녔다. 두 사람 공히 한국어를 배워야겠다는 투철한 목표가 있기에 레스토랑을 찾는 손님들과의 훈훈한 대화는 살아 있는 ‘한국어 수업’이다. 하지만 두 사람 중 빌네브는 아직 풀어야 할 숙제 하나를 풀지 못했다. 바로 그가 한국을 다시 찾은 이유, 그것이다.
디저트용 빵 속에 버섯과 매시트포테이토, 안심을 넣고 통째로 오븐에 구워내는 소 안심 웰링턴 요리. 푸짐한 양에 놀라고 빵과 함께 잘라 먹는 안심의 독특한 맛에 엄지손가락 두 개가 절로 올라간다는 히트 메뉴다.
디저트용 빵 속에 버섯과 매시트포테이토, 안심을 넣고 통째로 오븐에 구워내는 소 안심 웰링턴 요리. 푸짐한 양에 놀라고 빵과 함께 잘라 먹는 안심의 독특한 맛에 엄지손가락 두 개가 절로 올라간다는 히트 메뉴다.
“최근에 둥지 대표님께서 아버지와 관련한 서류를 발견하신 것 같아 친부모님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어요. 만약 아버지께서 저를 찾기 꺼리신다 해도 전 괜찮아요. 그저 먼발치에서 얼굴 한 번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아요.”

미각을 호강시킨 퀴진의 향연 뒤에 이어진 진한 아쉬움. 스물여섯 청년의 소망이 이뤄질 때면 셰프 빌네브가 만드는 요리가 더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것 같다. 그때까지 룸메이트이자 동료인 두 사람은 열심히 도마를 두드릴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더더욱 행복해질 권리는 두 사람에게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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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를 발라낸 광어 살에 랩을 씌워 모양을 만들어 익힌 후 파슬리, 샐러리 퓨레, 블랙 커런트 소스로 맛을 낸 광어 요리. 주전자에 담긴 광어 스톡을 중간 중간에 곁들이면 일품이다.
뼈를 발라낸 광어 살에 랩을 씌워 모양을 만들어 익힌 후 파슬리, 샐러리 퓨레, 블랙 커런트 소스로 맛을 낸 광어 요리. 주전자에 담긴 광어 스톡을 중간 중간에 곁들이면 일품이다.
정통 유럽 요리로 미식가를 사로잡다 Cafe Nest


해외 입양아 셰프의 남다른 손맛을 맛볼 수 있는 카페 네스트(Cafe Nest)는 단품 요리도 단품 요리지만 제대로 된 코스 요리를 즐기고 싶을 때 제격인 레스토랑이다. 마티유 빌네브가 선보이는 정통 프랑스 요리에 아시안과 이탈리안 퀴진이 전공인 캘리포니아 출신의 존 블란디가 호흡을 맞추며 계절에 맞는 신선하고 이국적인 요리를 선사하기 때문이다.
쫄깃한 베이컨과 수제 파스타가 만나 고소하면서도 크리미한 베이컨 크림 파스타
쫄깃한 베이컨과 수제 파스타가 만나 고소하면서도 크리미한 베이컨 크림 파스타
그렇다고 메뉴판이 복잡한 것은 결코 아니다. 오늘의 수프 한 가지, 애피타이저 세 가지, 메인 요리 세 가지, 디저트 세 가지, 그리고 파스타 다섯 가지 정도가 전부다. 메뉴의 숫자로 승부하기보다는 계절에 맞는 신선한 재료로 핵심 메뉴만을 선보인다는 전략. 하지만 주문 전에 매니저에게 메뉴 설명을 요청하면 스멀스멀 올라오는, 주체할 수 없는 식탐에 세 가지 중 한 가지를 고르는 것도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닐 것이다. 동행하는 사람과 다양하게 주문해 나누며 식사를 즐기는 것이 노하우겠다.
사과와 오이가 1층에, 발라 낸 홍게 살을 2층으로 얹어내는 게살과 패션프루트 코코 밀크
사과와 오이가 1층에, 발라 낸 홍게 살을 2층으로 얹어내는 게살과 패션프루트 코코 밀크
미소와 와사비로 맛을 낸 연어 샐러드. 잔뜩 모양을 낸 사과 프레젠테이션이 재미있다.
미소와 와사비로 맛을 낸 연어 샐러드. 잔뜩 모양을 낸 사과 프레젠테이션이 재미있다.
블란디와 빌네브가 강력하게 추천하는 메뉴는 소 안심 웰링턴 요리. 큼지막한 접시에 턱 하니 얹어 나오는 모양새가 마치 햄버거를 연상케 하는데 고기는 어디 갔느냐는 걱정은 마시라, 빵 속에 안심이 숨어 있다. 양에 놀란 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맛에 또 한 번 놀랄 ‘작품’이다. 육류가 꺼려진다면 광어 요리가 좋겠다. 뼈를 발라내고 익힌 광어 살을 패션프루트(passion fruit) 소스와 크림과 믹스한 샐러리 뿌리, 허브와 함께 먹으면 건강식이 따로 없다. 접시 위에 있는 주전자 속 액체의 정체가 궁금하다면 광어 살을 즐기는 중간에 컵에 한 번 따라서 마셔 보면 알게 된다. 광어 살을 고아 만든 스톡(stock)이라는데 그 맛이 마치 시원한 광어지리탕 같다.
여성 고객들은 맛보는 순간 십중팔구 탄성을 지른다는 바질 아이스크림. 바질의 진한 향기는 온데간데없고 향긋함과 부드러움만이 남은 맛이다.
여성 고객들은 맛보는 순간 십중팔구 탄성을 지른다는 바질 아이스크림. 바질의 진한 향기는 온데간데없고 향긋함과 부드러움만이 남은 맛이다.
넛츠를 올려낸 담백한 디저트
넛츠를 올려낸 담백한 디저트
카페 네스트 수제 파스타는 가벼운 점심 메뉴로 그만이다. 동행한 여성에게 점수를 따야(?) 하는 남성이라면 후식으로 센스 만점인 바질 아이스크림을 주문하길. 향긋하고 부드러운 맛은 오묘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데, 중요한 것은 둘이서 나누고 싶지 않을 정도로 맛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인으로 한국에 사니 행복할 수밖에요” 해외 입양아 셰프 존 블란디 & 마티유 빌네브
Information

위치 서울시 강남구 논현동 218-19
영업시간 오전 10시 30분~저녁 11시 (오후 3시~5시 50분은 휴식시간, 일요일 휴무)저녁 오후 5시 30분~11시. 주말 종일 영업
가격 코스 요리 광어 요리 4만2000원, 웰링턴 안심 스테이크 4만4000원, 닭고기 요리 4만2000원, 애피타이저 1만2000~1만3000원, 메인 요리 2만3000~2만5000원, 디저트 1만2000~1만3000원, 핸드메이드 파스타 1만4500~1만5800원, 런치 스페셜 파스타 1만 원
기타 와인 20여 종, 주차는 50m 근방 공용 주차장 이용
문의 02-545-3217

글 장헌주 기자 chj@hankyung.com 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