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트칠드가(家)는 18세기 이후 현재까지 250년 이상 전 세계 금융을 쥐락펴락해온 명문 가다. 로트칠드가는 탄탄한 재력을 바탕으로 와인 분야에서도 탁월한 성취를 이뤘다. 바롱 에드먼드 로트칠드는 와인 명가 로트칠드가의 일원으로 수준 높은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한때 “로트칠드가의 지원 없이는 어떤 왕도 전쟁을 일으킬 수 없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럽에서 로트칠드가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로트칠드가는 유럽뿐 아니라 미국에도 영향력을 펼쳐 미국 대표 은행가 J.P. 모건, 철강의 카네기, 철도의 해리먼, 석유의 록펠러도 로트칠드가의 자금을 받아 거부가 될 수 있었다. 또한 미국 화폐 ‘달러’를 발행하는 연방준비은행(Fed)의 최대 주주도 로트칠드 가문이다. 이를 증명하듯 미국 화폐에는 로트칠드 가문의 상징적인 문양인 화살이 그려져 있다.

로트칠드가의 영향력은 와인업계에도 예외가 아니다. ‘최고 중의 최고’라고 손꼽히는 보르도 그랑 크뤼 1등급에 빛나는 샤토 라피트 로트칠드(Chateau Lafitte-Rothschild)의 라벨 위에도 가문의 상징인 화살 문양이 새겨져 있다. 샤토 라피트 로트칠드는 원래 샤토 라피트였는데, 1868년 로트칠드가의 제임스 로트칠드 남작이 샤토(포도원)를 사들이면서 샤토 라피트 로트칠드가 됐다. 이때부터 샤토 라피트의 병에 화살이 새겨졌다.
로트칠드가의 관리 아래 생산되는 바롱 에드먼드 로트칠드는 고품질을 자랑한다.
로트칠드가의 관리 아래 생산되는 바롱 에드먼드 로트칠드는 고품질을 자랑한다.
로트칠드의 상징, 화살 문양의 유래

로트칠드가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화살 문양은 가문의 1세대와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로트칠드가의 시작은 유태인인 마이어 암셀 로트칠드다. 그에게는 다섯 아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각각 영국 런던, 독일 프랑크푸르트, 오스트리아 빈, 이탈리아 나폴리 등 세계 각지에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죽음을 직감한 마이어 암셀 로트칠드는 다섯 아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았다. 그리고 각자에게 화살을 하나씩 나눠 준 뒤 부러트려 보라고 주문했다. 다섯 아들 모두 쉽게 화살을 부러트렸다.

아버지는 다시 화살을 하나씩 나눠 준 뒤 이번에는 화살 하나가 아니라 다른 네 사람의 화살을 모아 다섯 개를 동시에 부러트리라고 지시했다. 다섯 명의 아들 누구도 다섯 개의 화살을 동시에 부러트리지는 못했다. 이를 본 아버지는 입을 열었다.

“너희들이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더라도 모두 힘을 합하면 이 다섯 개의 화살처럼 어느 누구도 부러트릴 수 없는 힘을 갖게 될 것이다.”

죽음을 앞둔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 화살을 통해 중요한 교훈을 전달했다. 이는 뿔뿔이 흩어져 있던 형제들을 결속시키고 가업인 금융업을 통해 국제적인 금융재벌로 거듭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Wine Story] 세계 최고 금융 가문, 로트칠드가의 명문 와이너리
4대손이자 보르도 최대 부호 벤저민 로트칠드의 와인

다섯 아들은 아버지의 유언을 실천했다. 모두 다시 각자의 생활 터전으로 돌아갔지만 런던에 살던 셋째 아들 네이선을 중심으로 자본을 모으기 시작했고, 네이선이 죽은 뒤에는 막내 제임스가 그 일을 맡았다. 제임스는 가문을 위해 샤토 라피트 인수를 주도했고, 샤토 라피트 로트칠드를 탄생시켰다. 이때부터 로트칠드 가문의 와인에는 화살표가 그려졌다.

제임스는 샤토 라피트를 인수한 지 불과 석 달 만에 사망하기는 했지만 후손들은 성공적으로 샤토를 일으켰다. 바롱 에드먼드 로트칠드, 도멘 바롱 드 로트칠드, 바롱 필립 드 로트칠드 등이 이렇게 설립됐고, 현재 이들은 세계 와인의 중심인 보르도 최고의 위치에 올라 있다.

특히, 제임스의 아들 에드먼드는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바롱 에드먼드 로트칠드’를 설립하고 잠재력이 우수한 샤토들을 매입해 ‘바롱 에드먼드 로트칠드’의 이름으로 와인을 생산했다.
현재 바롱 에드먼드 로트칠드의 주인은 제임스의 4대손이자 보르도 최대 부호 중 한 사람인 벤저민 로트칠드다.
현재 바롱 에드먼드 로트칠드의 주인은 제임스의 4대손이자 보르도 최대 부호 중 한 사람인 벤저민 로트칠드다.
에드먼드는 처음 매입한 샤토 말매종을 새롭게 만들어 변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포도원을 개간하고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포도 재배 전문가인 에밀 페뇨(Emile Peynaud) 교수의 컨설팅을 통해 새롭게 포도나무를 식재했다. 샤토 말매종은 메독의 와인 생산지역인 물리스에 위치한, 메독에서 가장 오래된 포도원 중 하나다. 중세시대부터 이 지역의 종교단체 등이 포도를 재배해온 상징적인 샤토다. 로트칠드가의 관리로 농축된 향미, 벨벳 같은 질감, 탁월한 균형감으로 긴 여운을 남기는 고품질의 와인으로 거듭났다.

현재는 제임스의 4대손이자 보르도 최대 부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벤저민 로트칠드가 ‘바롱 에드먼드 로트칠드’를 이어 최상의 기준에 의한 최고 품질의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그는 2003년에 생테밀리옹의 샤토 드 로헵(Ch. des Laurets)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목표로 매입, 세계적인 와인메이커인 미셸 롤랑의 조언을 통해 품질을 업그레이드시켰다.

이와 함께 대대적인 셀러 리노베이션을 통해 현대적이고 효율적인 시설을 갖추었다. 포도원은 몽타뉴 생테밀리옹과 퓌스겡 생테밀리옹 등 두 지역에 걸쳐 있는데, 퓌스겡 생테밀리옹에서는 샤토 드 로헵 와인을, 몽타뉴 생테밀리옹에서는 샤토 드 말랑장(Ch. de Malengin) 와인을 생산한다.

또한 그는 해외 와인 생산에도 관심을 가져 생테밀리옹 그랑 크뤼인 샤토 다소와 함께 아르헨티나에 ‘플레차스 로스 안데스’ 와이너리를 설립했다. 남아공에서는 남아공 최대 부호 가문이자 카르티에, 몽블랑, 피아제를 소유한 명품 그룹인 리치몬드 그룹의 루퍼트 패밀리와 합작해 남아공 프리미엄 와인 ‘루퍼트 & 로트칠드(Rupert & Rothschild)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이렇게 생산된 바롱 에드먼드 로트칠드의 와인들에는 로트칠드가의 상징인 ‘다섯 개의 화살’ 문양이 새겨져 있다. 또 명품 샤토 라피트 로트칠드의 향취를 느끼면서 가벼운 지갑으로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는 와인이라는 특징을 지녔다. 특히 샤토 말매종의 경우 100만 원이 넘는 샤토 라피트 로트칠드에 입맛만 다시던 소비자들에게 충분히 매력적인 대체재가 되고 있다. 이 와인은 가문 자사 행사에 하우스 와인으로 내놓는데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면서도 부담 없이 마시기에 제격이다.


추천 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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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토 말매종

12세기 수도승에 의해 처음 포도나무가 심어졌으며, 에드먼드 로트칠드 남작이 1973년 매입한 후 1974년부터 새 포도나무로 교체돼 이 빈야드의 부흥이 시작됐다. 이렇게 탄생된 샤토 말매종은 우아하고 기품 있으며 여성적인 와인이다. 미디엄 풀보디의 부드럽고 좋은 구조감과 검은 베리류, 감초, 스모키한 아로마가 코와 입을 사로잡는다. 와인 전문 잡지인 와인 스펙테이터로부터 2005년 빈티지는 93점을, 2006년 빈티지는 90점을 획득했다. 2006년 빈티지는 디켄터로부터 ‘HIGHLY RECOMMENDED’를 의미하는 별 4개를 획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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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차스 로스 안데스 ‘그랑 말벡’

바롱 에드먼드 로트칠드와 생테밀리옹 그랑 크뤼 샤토 다소의 파트너십에 의해 아르헨티나에 탄생된 와이너리다. ‘플레차스’는 스페인어로 화살표를 의미하며 라벨에도 로트칠드 가문의 상징인 5개의 화살 문양이 라벨에 그려져 있다. ‘그랑 말벡’은 멘도자 지역 포도의 왕으로 일컬어지는 말벡 품종을 세심한 생산 과정을 통해 고품질의 와인으로 신선한 과일향과 체리향, 자두향 등 화려하고 신선한 향미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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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퍼트 & 로트칠드 바로니스 나딘

에드먼드 로트칠드 남작의 아내이자 바롱 에드먼드 로트칠드의 소유주인 나딘 남작부인의 이름을 딴 헌정 와인이다. 약 20년 이상의 포도나무에서 생산되는 샤르도네로 만들어졌다. 반짝이는 황금빛 컬러에 우아한 구조감과 감귤류와 꿀의 향을 품고 있다. 깨끗한 미네랄과 미감을 살리는 산도와 오크의 절절한 조화가 돋보인다.


글 신규섭 기자 wawoo@hankyung.com
사진 제공 (주)길진인터내셔널(www.kilj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