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사람들이 거울을 통해 자신의 외모를 들여다본다면 동서양 화가들은 자화상으로 자신의 인생을 표현하고자 했다.
평범한 사람들이 거울을 통해 자신의 외모를 들여다본다면 동서양 화가들은 자화상으로 자신의 인생을 표현하고자 했다.
요즘 인터넷의 발달로 동서양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있지만 여전히 문화적 차이는 많다. 동서양의 문화를 비교할 수 있는 대표적인 것이 그림이다. 그림은 한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모든 것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의 가장 큰 욕망은 남에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일이다. 생존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킬 수밖에 없는데 자신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이 얼굴이다. 얼굴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삶의 궤적을 남기고 있어서다.
윤두서, <자화상>, 1710년, 20.5×38.5cm, 종이 수묵담채, 국보 240호, 개인 소장
윤두서, <자화상>, 1710년, 20.5×38.5cm, 종이 수묵담채, 국보 240호, 개인 소장
한국화 중에서 자화상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담고자 했던 인물이 윤두서(尹斗緖·1668∼1715)다. 그의 작품 중 그의 인생이 녹아 있는 <자화상>은 우리나라 초상화 가운데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눈은 또렷하면서도 매섭고 턱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뻗어 나가는 수염은 불처럼 타오르는 것 같다. 인중을 중심으로 차분하게 정돈된 콧수염과 턱수염 사이로 보이는 입술은 꼭 다물고 있다.

망건과 탕건의 윗부분과 목 아래 신체는 보이지 않고 정면 가득 얼굴이 차지하고 있지만 눈꼬리가 올라간 것과 동체의 흑백이 분명한 것은 살아 있는 선비 정신을 나타낸다. 매서운 눈은 부드러운 수염과 대조를 이루고 있는데 수염은 그의 감성적인 성격을 보여준다.

윤두서는 고산 윤선도의 증손자로 일찍이 진사 시험에 합격했으나 벼슬은 하지 않고 평생을 시와 그림 그리는 일로 보냈으며, 그림은 조선 중기 화풍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 이 작품에서 의관을 제대로 갖추어 입지는 않았지만 탕건을 꼭 조여 매 관자놀이가 들어가 있는 것은 단정했던 그의 성품이 드러나 있다.

윤두서가 초상화를 통해 자신의 정신세계를 보여주었다면 사람들에게 자신의 성공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했던 화가는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urer·1471~1528)다. 뒤러는 서양화 역사상 최초로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선전하는 도구로 자화상을 제작했다. 뒤러가 자화상을 통해 자신을 홍보한 작품이 <모피 코트를 입은 자화상>이다.
뒤러, <모피 코트를 입은 자화상>, 1500년, 67×48.7cm, 목판에 유채, 뮌헨 알테 피나코텍 소장
뒤러, <모피 코트를 입은 자화상>, 1500년, 67×48.7cm, 목판에 유채, 뮌헨 알테 피나코텍 소장
모피 코트를 입은 뒤러가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초상화법을 이용해 정면에 자신의 얼굴을 배치하면서 좌우 대칭으로 얼굴을 그렸다(그리스도 초상화법이란 그리스도의 얼굴을 완벽하게 좌우 대칭으로 표현하는 방식을 말한다).

뒤러가 이 같은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한 것은 신을 닮은 인간은 화가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최초의 창시자라면 화가는 제2의 창조자, 신의 모방자라는 것이다. 뒤러의 이러한 생각은 이탈리아에서 경험한 새로운 인문주의적 자의식이 바탕이 됐다.

이 작품에서 뒤러는 모피를 통해 자신의 부유함을 나타냈으며 잘 다듬어진 헤어스타일과 수염으로 귀족의 모습을 표현했다.

뒤러는 북유럽 미술과 르네상스의 혁신적인 요소를 결합시킨 화가다. 그는 오른쪽 배경에는 라틴어로 자신에 대해 설명하는 글을 남겼는데 자의식이 강했던 그는 그림과 동시에 글을 써놓음으로써 자신의 모습이 영원히 남아 있을 것임을 나타내고자 했다.

그는 자신의 존재를 다시 한 번 강조하기 위해 그림 왼쪽 어두운 배경에 1500년이라는 제작연도와 알브레히트 뒤러의 이니셜인 AD를 써놓았다. 시대나 문화를 막론하고 사람들은 자신이 꿈꾸었던 인생을 살기 바란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갈수록 인생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투쟁보다는 인생과 타협해 평범하게 살기 바란다.

야망보다 인생과 타협하는 자신을 그린 작품이 렘브란트 반 라인(Rembrandt van Rijn·1606~1669)의 <자화상>이다. 말년에 제작된 이 자화상에서 렘브란트는 오래 입어 닳아서 갈색을 띠고 있는 자주색 벨벳 가운을 입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정면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그의 부드러운 시선과 달리 입은 꼭 다물고 있다. 두 손을 모으고 있는 자세는 운명에 대한 순종을 의미한다.
렘브란트, <자화상>, 1669년, 86×70cm, 캔버스에 유채, 런던 내셔널 갤러리 소장
렘브란트, <자화상>, 1669년, 86×70cm, 캔버스에 유채, 런던 내셔널 갤러리 소장
반백의 머리를 가려주는 모자의 흰색 테두리와 훤하게 드러나 있는 이마는 어두운 배경과 대조를 이루면서 냉소를 짓고 있는 인물을 강조한다. 꼭 다문 입술은 자기 운명에 대한 불만과 체념, 그리고 냉소를 나타내고 있다.

렘브란트의 예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작품은 자화상으로 화가로서 입문하던 생애 전반기에서부터 시작해 가난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었던 생애 후반기에까지 이어진다. 44년이라는 창작 활동 기간 동안 그는 근심에 찬 모습, 환희에 찬 모습, 상냥한 모습, 자신만만한 모습, 오만한 모습, 환멸에 찬 모습 등 다양한 내면을 스스럼없이 표현했다.

하지만 그의 자화상은 자신의 삶만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렘브란트는 자화상을 통해 화가로서의 자부심을 확실하게 보여주고자 했다. 또한 그가 말년에 작품을 통해 가장 표현하고 싶었던 주제가 고독이었는데 그것과 가장 어울리는 사람이 자신이었기에 자화상을 선택한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거울을 통해 자신의 외모를 들여다본다면 동서양 화가들은 자화상으로 자신의 인생을 표현하고자 했다.


박희숙 _ 화가. 동덕여대 졸업. 저서 <그림은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