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은 자유분방한 연애로 화가들에게 다양한 작품 소재를 제공했다.
[강지연의 그림 읽기] 명화 속 바람피우는 신들의 다양한 모습
성경 이야기만큼이나 명화 속에 많이 등장하는 주제인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들에 대해 한 가지 짚고 넘어가 보자. 현대사회에서도 자유연애가 성행하고 있지만 이 신화 속 고대 신들만큼이나 자유롭게 연애하기도 힘들어 보인다.

양다리에 불륜은 물론이고 신의 힘을 빌려 인간과의 로맨스도 자주 이루어졌으니 자식들도 엄청 나서 나중에 족보 구성하기도 힘들 지경이다. 오늘날 간통죄가 합헌인지 아닌지를 놓고 논쟁하는 시대가 도래했지만 현재까지 법적으로 무죄(?)인 신들도 별로 없는 게 사실이다. 연애라면 단연 사랑과 미의 여신, 비너스를 빼놓을 수 없겠다. 아름다운 미모로 주변에 남자가 끊이지 않았던 비너스. 그녀에게도 남편이 있었다. 남편을 두고 바람을 피웠던 그녀에게는 어떤 속사정이 있었는지 신화 속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자.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Velazquez), <불카누스의 대장간>
(The forge of Vulcan), 1630년, 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소장

아내가 바람났다. 그런데 그 사실을 누군가 와서 알려준다면. 그때의 기분이 과연 어떨까.
그리스 신화에서 유명한 이야기인 이 대장간의 장면을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는 그림으로 고스란히 옮겨놓았다. 그림 속 남자들은 모두 웃통을 벗고 열심히 일하는 중이었다. 쇠를 벌겋게 달구고 두드리며 구슬땀을 흘리던 그들에게 머리 위로 후광이 비치는 누군가가 나타나 말을 건다.

그의 말을 듣고 모두가 놀랐지만 역시 가장 놀란 사람은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마치 그의 분노와도 마찬가지로 시뻘겋게 쇠를 달구고 있는 대장간의 주인 불카누스다. 그가 방금 들은 말은 그의 아내가 다른 남자와 침대 위에서 뒹굴고 있다는 충격적인 증언이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거슬러 올라가보면, 원래 불카누스는 모든 신들의 왕 제우스와 여왕 헤라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었다(비너스의 그리스 식 이름이 아프로디테인 것처럼, 대장간의 신 불카누스 역시 그리스 식 이름인 헤파이스토스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태어날 때부터 미남, 미녀인 다른 신들과는 달리 그는 추남에 절름발이였다. 못생긴 외모 때문에 어머니인 헤라마저 얼굴을 찌푸리며 그를 버렸다. 못생겼다는 이유로 어머니에게서까지 버림받은 남자. 그런데 추남인 불카누스에게도 뛰어난 재능 한 가지가 있었다. 그는 누구보다도 강력한 무기와 갑옷을 만들 수 있는 대장장이였는데, 그 유명한 트로이 전쟁에서 아킬레스가 입었던 갑옷 역시 불카누스가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불카누스는 자신을 버린 어머니에게 복수하기 위해 대장간에서 열심히 무언가를 만들었다. 겉보기에 정말 화려하고 아름다운 황금 의자를 만들어 어머니 헤라에게 보낸 것이다. 이 의자는 사실 무서운 함정으로, 일단 앉으면 일어설 수 없도록 하는 장치가 돼 있었다. 어머니 헤라는 의자에 앉아 꼼짝할 수 없게 되고 나니 아들이 요구하는 것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인 비너스를 아내로 삼게 해달라는 아들. 결국 불카누스는 비너스와 결혼하게 된다(사실 불카누스의 출생과 결혼에 얽힌 이야기는 여러 설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각색돼 이것과 좀 다르게 흘러가기도 한다).

억지로 한 결혼, 그것도 추남에 절름발이와 한 결혼생활이 행복할 리가 없었다. 더구나 비너스는 소문난 미남 킬러였다. 묵묵히 대장간 일에 열중하는 불카누스에 만족하지 못한 비너스는 바람을 피우기 시작했다. 그중 젊고 늠름한 전쟁의 신 마르스(그리스 식 이름은 아레스)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만났는데, 심지어 불카누스가 땀 흘려 대장간에서 일하는 동안 집으로 마르스를 끌어들여 밀회를 즐겼다.

그림 속 장면은 이를 보다 못한 태양의 신 아폴론이 대장간으로 가서 불카누스에게 “지금 당신 아내가 전쟁의 신 마르스와 함께 당신 집 침대에서 뒹구는 중이네”라고 폭로하는 것이다. 태양의 신답게 머리에 후광이 비치는 아폴론. 깜짝 놀라 그를 쳐다보고 있는 불카누스는 얼굴이 좀 나이 들어 보이긴 하지만 대장장이답게 근육질의 몸매를 하고 있다.

스페인의 궁정 화가 벨라스케스는 이 드라마틱한 장면에서 대장간 안의 작은 물건들까지 사실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이야기에 더욱 긴장감을 부여했다. 그들이 다루고 있는 쇠나 선반 위 물병의 반질반질한 윤기는 감탄할 만한 표현이다.

아침 TV 드라마에 나오는 것 같은 이 장면 다음 이야기가 궁금한가.
불카누스는 자신의 집에 특수한 그물침대를 제작해 갖다 놓았다. 비너스와 마르스가 이 침대에 눕는 순간 보이지 않는 그물에 얽혀 꼼짝달싹 못하게 되자, 불카누스는 다른 신들을 자기 집으로 불러 알몸으로 뒤엉킨 그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창피를 주었다. 그러나 그는 이것이 비너스가 마르스와 앞으로는 대놓고 당당하게 바람을 피울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는 걸 미처 몰랐다.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비너스와 마르스>
(Venus & Mars), 1483년, 영국 런던 내셔널 갤러리 소장
[강지연의 그림 읽기] 명화 속 바람피우는 신들의 다양한 모습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의 그림 속 비너스는 연인 마르스와 함께 있다. 불륜관계에도 불구하고 둘은 전혀 부정해 보이거나 육체적으로 서로에게 탐닉하는 듯한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림 속 비너스와 마르스는 그저 평온한 한 때를 함께하는 사랑하는 남녀의 모습일 뿐이다. 누드가 아닌 얇고 우아한 드레스를 입은 비너스는 기품과 아름다움이 넘치고, 살짝 잠들어 있는 연인 마르스를 조용히 바라보고 있다. 달콤한 잠에 빠져있는 군신 마르스는 투구와 무기, 갑옷을 내려놓고 무장해제 돼 있다.

그런데 도대체 어딜 봐도 바람피우는 것 같지 않은 두 남녀. 남편인 불카누스가 보면 한참 열 받을 그림이다. 보티첼리는 왜 이 둘의 관계를 고상한 그림으로 나타냈을까. 바로 보티첼리가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에 답이 있다. 그가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사랑의 위대한 힘으로, 사랑의 신 비너스와 전쟁의 신 마르스의 관계를 통해 부드러움이 무력을 이긴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실제로 비너스는 옷을 입고 있지만 마르스는 옷을 벗고 있다. 차가운 바람은 외투를 더 단단히 여미게 하지만 따뜻한 햇살은 외투를 벗게 하는 법. 사랑의 힘은 위대한 것이다. 그들 주위를 장난꾸러기 사티로스들이 무기를 들고 장난치고 있어 그림의 분위기가 더욱 평화롭게 느껴진다.

아무튼 비너스와 마르스가 함께 있는 그림은 세속적이거나 관능적인 그림이 많지만, 이 그림은 유독 그들의 관계를 사랑으로 묘사한다. 보티첼리는 이 그림을 결혼식 선물로 의뢰받아 제작했기 때문에 더욱 사랑의 의미를 강조했을 것이다. 물론 그들이 서로 사랑하지 않았다는 건 아니다. 그러나 결혼이란 제도가 두 남녀 간의 신실한 믿음을 전제로 한다는 점을 생각할 때, 이 그림이 결혼선물로 적합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 든다.



베첼리오 티치아노(Vecellio Tiziano), <다나에와 금빛 소나기>
(Danae and the Shower of Gold), 1554년, 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소장
[강지연의 그림 읽기] 명화 속 바람피우는 신들의 다양한 모습
사실 신들의 바람기를 이야기할 것 같으면 모든 신들의 왕인 제우스 역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의 여성 편력을 살펴보면 아내인 헤라가 질투의 화신이 된 것도 이해가 간다. 신과 인간을 가리지 않고 아름다운 여인이라면 일단 건드리고 보는 제우스. 때로는 헤라의 눈을 피해 여러 모습으로 변신도 마다하지 않는데, 그의 눈에 어느 날 미모의 공주 다나에가 들어온다.

아르고스의 왕이었던 다나에의 아버지는 언젠가 딸이 낳은 손자가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예언을 듣고 딸을 높은 탑에 가두어 놓아 남자들의 접근을 원천 봉쇄했다. 그러나 제우스는 황금 구름으로 변해 탑으로 잠입하는 데 성공한다. 이는 탑으로 접근하기 위한 방법이었지만 아내인 헤라의 눈을 피해 바람을 피우기 위한 변신이기도 했다.

이탈리아의 거장 베첼리오 티치아노는 제우스가 변신한 구름이 금빛 소나기를 뿌리는 장면을 그림으로 그려냈다. 그림 속 침대 위에 누드로 누워있는 여자가 공주 다나에다. 그녀의 곁에 있는 늙은 유모는 큐피트의 역할을 대신해 하늘에서 내려오는 금빛 소나기를 천을 들고 받아내고 있다.

이는 상당히 에로틱한 표현이다. 금빛 소나기는 남성의 정액을 상징한다. 다나에가 침대 위에 옷을 벗고 누워 금빛 소나기를 맞고 있는 장면은 바로 그녀와 제우스의 정사를 의미한다. 다나에는 이로 인해 제우스의 아이를 임신하게 되고 왕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손자가 자신을 죽일 거란 신탁을 들었던 왕은 그 아이를 죽이고 싶었지만 제우스가 자신에게 벌을 내릴까 두려워 다나에와 아이를 함께 궤짝에 넣어 바다로 흘려보낸다.

세리포스 섬으로 흘러간 궤짝을 한 어부가 발견했고, 다나에와 아이는 그곳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그녀의 미모 때문에 그곳의 왕 역시 다나에와 결혼하고 싶어 한다. 그녀의 아들 페르세우스가 결혼하는 데 방해가 될 것 같아 이리저리 궁리하다 결국 왕은 페르세우스에게 무시무시한 괴물 메두사의 목을 가져오라고 시킨다.

페르세우스가 우여곡절 끝에 메두사의 목을 가지고 돌아와 보니 왕이 결혼하자고 다나에를 괴롭힌 탓에 어머니 다나에는 어디론가 도망가 숨어 살고 있었다. 화가 난 페르세우스는 메두사의 목으로 왕을 돌로 만들고 다시 어머니를 찾아 나선다.

어머니인 다나에를 만난 그는 다시 외할아버지가 있는 고향 아르고스로 돌아가는데, 외할아버지는 손자가 자신을 죽일까 봐 두려워 아르고스에서 도망친다. 후에 원반던지기 경기에 참가한 페르세우스가 자신이 던진 원반이 관중석으로 날아가 관중 한 명이 맞아 죽게 되는 일이 발생하는데, 그 사람은 바로 허름한 옷을 입고 있던 자신의 외할아버지였다. 이로써 예언은 이루어졌다.

거장 티치아노는 이 관능적인 주제에 매혹돼 다나에를 소재로 세 번이나 그림을 그렸다. 이 그림에 얽힌 일화가 하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또 하나의 위대한 화가 미켈란젤로가 이 그림을 본 뒤 티치아노에게 가서 경의를 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그 방을 나온 후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티치아노의 기법에 대해 혹평했다고 한다.

불륜을 저지르는 장면을 남편과 다른 사람들에게 목격당하고도 꿋꿋한 여자나 어떻게든 바람을 피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남자. 신화 속의 신들은 지극히 인간적이지만 확고한 자유연애주의자들이기도 했다. 아침 드라마 속 불륜 이야기를 욕하면서도 사람들이 호기심을 갖고 보는 것처럼 그들의 이러한 이야기 역시 신화에 사람들이 더욱 흥미를 가지게 하는 양념 역할을 톡톡히 했을 것이다.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신화, 그리고 인간이 그려낸 그림 속 신들의 모습은 당연하게도 인간과 닮아 있다. 화가들은 그래서 더욱 이러한 주제들을 오랫동안 그려오지 않았을까. 그림을 보며 다시 한 번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되돌아본다.



강지연 _ 교사. <명화 속 비밀이야기>, <명화 읽어주는 엄마> 저자‘귀차니스트의 삶(http://blog.naver.com/oilfree07)’ 운영.oilfree0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