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가을 미국은 스산하기 그지없었다. 2007년 여름 베어스턴스(Bear Stearns)라는 미국 굴지의 투자은행(IB)이 주택담보부대출(MBS)로부터 발생한 부실로 인해 파산하면서 금융 및 자본시장의 불안감이 가중된 이후 급기야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예고된 시장의 혼란이었고 실패였지 않았나 싶지만 당시에는 전 세계 금융인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그 공포는 전주곡에 불과했다. 금융시장은 끝도 없는 나락으로 추락하면서 2008년 말 급기야는 AAA등급의 자산담보부채권(ABS)의 신용스프레드가 AAA등급 미국 국채 대비 8%포인트에서 12%포인트까지 치솟는 심각한 신용경색으로 달려갔고, 2009년 2월 시티은행의 주가가 1달러 이하로 떨어지는 수모를 겪었다. 결국 미국 정부는 엄청난 규모의 공적자금을 투입하면서 시티은행과 보험사인 아메리칸인터내셔널그룹(AIG)을 구하기에 이르렀다.
[스토리 경제학] 스마트 머니 vs 덤 머니?
화재가 발생하면 집주인은 대피하느라 경황이 없다.
불구경 하는 사람은 화재가 난 집 구석구석을 보고 있다.
집주인이 미처 가져나오지 못한 보석함을 챙긴다.



2008년 리먼 사태가 준 교훈

필자는 2008년 당시 국내 금융투자기관들과 같이 라스베이거스에서 있었던 부실자산 세미나에 참석했다. 이미 10년 전 거대한 금융 쓰나미를 겪었던 한국의 금융인들은 뼈아픈 금융 및 산업 구조조정을 경험한 바 있기에 미국 경제의 향후 방향성에 대해 유경험자로서의 여유를 가지고 세미나에 참석할 수 있었다. 세미나의 주제가 시의적절해 보였으나 예상보다 참석 인원은 많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도 방파제가 무너져 바닷물이 밀어닥치고 있으니 한가하게 세미나에 참석할 여유가 없어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업계 전문가들은 1980년대 초에 시작됐다가 1995년경에야 마무리가 됐던 저축대부조합(S&L) 위기를 떠올리며 어떻게 부실자산을 처리하고 어떻게 투자해야 할지 등에 대해 나름 열띤 토론을 벌였다. 토론자 및 참석자들의 어투와 태도에 공포심과 기대감이 섞여 있었다. S&L 위기의 한가운데서 금융기관 및 자산의 부실화와 그 사후 진행을 봤던 경험자들은 향후 사태예측에 대한 섣부른 언급을 오히려 아꼈다.

세미나 참석 후 위기의 진앙지 뉴욕으로 향했다. 맨해튼 미드타운의 파크애버뉴에서 바라본 뉴욕은 가을 분위기와 어우러져 그야말로 처연하기 그지없었다. 한 달 전에 예약해야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유명 이탈리안 레스토랑은 예약 없이 당일에 들어가도 테이블을 잡는 데 전혀 지장이 없었고 월가의 고급 아파트는 해고된 IB의 직원이 월세를 내지 못하고 야반도주하는 바람에 현관문에 주인 없는 잡지들만 나뒹굴었다.

2년 반이 지나고 2011년 봄이 됐을 때 다시 뉴욕에 갔다. 뉴욕은 평온을 찾은 듯했다. 물론 더블딥의 가능성에 대한 설왕설래가 금융인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지만 어느 정도 금융위기는 진정이 되고 상당히 견실한 회복세로 접어든 듯한 모습을 보였다.

2009년 1월 1달러이던 시티은행 주가는 2011년 1월 5달러까지 회복됐다. 같은 시기 JP모건(JP Morgan)의 주가는 16달러에서 48달러로 상승했고, 포드자동차는 2달러에서 18달러까지 상승했다. AIG 역시 12달러까지 하락했다 60달러로 회복된 후 40달러대에서 거래되고 있었다. 2년 사이에 대부분의 금융주와 산업주가 작게는 100%에서 크게는 1000%대까지 상승했다.



불난 집에 버려진 보석함 찾기

투자론에 역발상(contrarian view)이라는 투자 관점이 있다. 시장이 달아오를 때 과열됐다고 판단해 오히려 비관적으로 행동하고, 시장이 냉각됐을 때 바닥을 다진다고 보고 오히려 낙관적으로 행동하는 전략이다. 그런데 말이 쉽지 그런 태도를 견지하며 투자하기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다들 시장이 달아오를 때 여지없이 투자에 들어가게 마련이다. 금융이론에서는 양떼이론(herding theory)라고 해서 다른 무리를 본능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는 심리적 상황을 설명한다. 사실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무리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 그게 당시에는 편안하기 때문이다.

화재가 발생하면 불난 집의 주인은 대피하느라고 경황이 없다. 그 짧은 순간에 본인이 가장 중요시 여기는 것을 챙겨서 가까스로 대피하게 된다. 불구경하는 사람은 오히려 여유롭다. 망원경으로 화재가 난 집의 구석구석을 살펴볼 수 있고 집주인이 미처 가져 나오지 못한 보석함이 보일 수도 있다.

10여 년 전 아시아에 불어 닥친 외환 및 금융위기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경황이 없을 때 미국과 유럽의 불 구경꾼은 망원경을 가지고 여유롭게 관찰을 하다가 보석함을 많이 가져갔다. 불난 집에서 살짝 가져오다 보니 공짜인 경우도 꽤 있었고 사더라도 불에 그을린 보석함을 헐값에 사갔다. 제일은행, 한미은행이 그랬고 지금의 외환은행도 그런 상황이며 만도기계, 진로 등 많은 기업이 외국인 투자자의 보석함이 됐다. 이들 투자자들은 얼마 후에 제값을 받고 팔았고 아주 훌륭한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그런데 거의 정확하게 10년이 지난 즈음에 보석함을 가져갔던 사람들의 집, 특히 미국에서 불이 나기 시작했다. 사람은 다 똑같은지 그들은 황급히 대피하기에 정신이 없었고 그 와중에 역시 많은 보석함들이 버려지거나 헐값에 팔렸다. 이번에도 역시 불구경 전문가들은 망원경으로 좋아 보이는 보석함을 찜하더니 재미를 톡톡히 봤다. 그중에는 아시아의 투자자들도 꽤 섞여 있어서 10년 전의 상황이 반전돼 나타나는 것 같기도 하다.

이는 아시아의 부가 그동안 더욱 많이 성장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기도 하다. 5년 전 아시아의 투자자가 미국의 유명 펀드에 가입하면 펀드매니저가 아시아의 돈을 덤 머니(dumb money·눈먼 돈)이라고 해서 무시하던 기억이 난다. 그러던 그들이 지난 몇 년간은 우리나라에 돈을 구하러 오느라고 정신이 없다. 그중 일부 투자를 받기라도 하면 아시아로부터 스마트 머니(smart money)를 투자받았다고 마케팅하며 다른 투자자에게 알리고 있다. 10년 새 금융계의 강산이 크게 바뀌었다.



반복되는 금융위기에 가져야 할 투자 전략

지금의 상황은 어떤가. 이제는 그러한 위기 상황이 유럽에서 재연되고 있다. 하루하루 주식과 채권 시장은 유럽 발 뉴스에 귀 기울이며 일희일비하고 있다. 남유럽의 PIIGS (포르투갈·아일랜드·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 국가들의 위기가 북유럽의 맹주국가들과 유럽연합(EU) 전체를 공포에 떨게 하며 향후 대책 마련에 부심케 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금융위기 때와는 상황이 좀 다른 듯하다. EU 가입 국가가 많다 보니 해결책을 고민할 때 각 가입국은 자기 나라의 이해득실을 따져 먼저 주판알을 튕기느라 배가 산으로 가는 느낌도 감출 수 없다. 발 빠른 투자자들은 벌써 유럽 금융기관이 처분하는 부실자산을 보기 시작했고 EU에서 시행하는 구제금융을 활용해 투자할 것은 없는지 기웃거리고, 행여나 국가가 가진 알짜배기 자산을 민영화할 때 숟가락을 담가보고자 하기도 한다. 불난 집을 관찰하는 망원경이 다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금융위기는 항상 반복돼 왔다. 길게는 5년 짧게는 3년을 주기로 반복됐다. 그 이유는 너무나도 명백하다. 자산의 가격이 본질가치 대비 발산(divergence)과 수렴(convergence)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거시경제 사이클이 반복되면서 금융시장의 유동성이 풍부해지면 모든 사람들은 단기성 자금 을 조달해서 장기성 투자에 열광한다. 그러면서 부동산 등의 자산은 버블을 보이고 어느 순간 뮤직체어 게임의 음악이 멈추었을 때 시장은 정반대로 돌아가며 이번에는 모든 자산은 본질가치 밑으로 급락하고 만다.

장소도 한 곳에 집중되지 않고 이 대륙 저 대륙 넘나들며 발생해 왔다. S&L 위기, 블랙먼데이, 멕시코 페소위기, 러시아 재정위기, 아시아 금융위기, IT 닷컴 버블 붕괴, 이라크전쟁 등등. 그런데도 그런 위기상황에서 사실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불구경을 통한 보석함 투자로 인해 수익을 내기보다는 오히려 보석함이 제일 비쌀 때 그것도 빚을 내서 딸자식 혼숫감용으로 사놓았다가 정녕 자식 혼사 때에는 쓰지도 못하고 불나면 홀라당 털리고 마니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 보석함 장사요 거래인 듯하다.

위기는 어느 한 지역에서만 집중적으로 나타나지 않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그 이유도 너무 명확하다. 금융시장은 글로벌하게 통합돼 가고 있기에 어디서 동맥경화로 인한 혈관 파열이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선진국일수도 있고 개발도상국일 수도 있다.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사이클에서 보석함을 잘 건질 수 있는 냉정함과 여유로움을 다시 한 번 가질 필요가 있음을 이번 미국과 유럽의 금융위기는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일러스트·추덕영
이동훈 삼정투자자문 전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