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체는 물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인생 100세 시대에는 연금이 물과 같은 존재다. 물이 생명체에 반드시 필요하듯이 국민연금, 개인연금, 퇴직연금 등 연금 3종 세트는 긴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현대인들에게 생존을 보장하는 물과 같은 존재다.
물에 비추어 본 연금제도의 가치
생물체는 물을 떼놓고는 생각할 수 없는 존재다. 생물체는 여러 물질로 구성돼 있는데, 물은 보통 생물체 중량의 70~80%를 차지한다. 인간의 신체에서도 물은 매우 중요하다. 이렇게 소중한 물도 따지고 보면 수소(H) 원소 2개와 산소(O) 원소 하나가 빚어낸 합작품일 뿐이다.

청정에너지원인 수소처럼 퇴직연금은 노후 소득을 보장하는 에너지원이다.


연금과 물이 비슷한 두 가지 속성

인간이 만들어낸 수많은 물건과 제도 중에서 물과 유사한 성질을 지닌 것은 뭘까. 사람에 따라,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만 오늘날에 가장 잘 어울리는 대답은 연금이 아닐까 싶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물과 연금제도의 구성 체계가 유사하기 때문이다. 물이 수소 원소 두 개와 산소 원소 한 개로 구성돼 있는 것처럼, 연금제도 역시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이라는 사적연금 두 개와 국민연금으로 구성돼 있다.

수소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가벼운 원소로 무색, 무미, 무취의 기체다. 한 마디로 휘발성이 강하다. 사적연금 중 수소의 이런 특성에 가장 가까운 것은 개인연금이다. 개인연금은 자신의 손에 들어온 돈 중에서 일부를 아껴 가입해야 하기 때문에,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언제든지 납입을 중단하거나 해지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인내와 뚝심이 필요하다.

또한 수소는 연소하더라도 공해물질을 내뿜지 않아 석탄, 석유를 대체할 무공해 에너지원으로 촉망받고 있다. 퇴직연금이야말로 수소의 이런 특징에 딱 들어맞는다. 퇴직연금은 퇴직금을 기본 재원으로 하기 때문에 평소 생활에 별다른 지장을 초래하지 않으면서 노후의 소득 보장을 강화시켜 준다. 그야말로 청정 노후소득원 아닌가. 청정에너지를 성공적으로 개발하기까지는 수차례의 실패를 감내해야 한다. 실패의 뒤에는 탄탄대로가 열려 있다.

퇴직연금도 이와 비슷하다. 우리나라 근로자들은 평균 5~6년마다 직장을 옮겨 다닌다. 이때 그동안 쌓아온 퇴직연금을 찾아 쓰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를 절제하고 개인 퇴직 계좌나 내년 7월부터 도입될 개인형 퇴직연금 계좌로 옮겨놓고 계속 유지하면 은퇴 이후에 경제적으로 큰 걱정을 덜 수 있다.

물과 연금제도는 그 체계뿐만 아니라 속성까지 너무나 닮았지 않은가. 물이 최고의 선이라면 연금제도는 인생 100세 시대 최고의 선임에 분명하다.

둘째는 물과 연금 모두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물 없이 생존할 수 있는 기간은 일주일 정도에 불과하다. 인체에 물이 부족하면 탈진 상태에 이르고, 신진대사가 되지 않아 체내에 독소가 누적돼 사망에 이르게 된다.

실제로 이런 이유로 사망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흔하다. 유엔환경계획(UNEP)에 따르면 물이 없어서 숨지는 어린이만도 하루 평균 5000명을 넘는다고 한다. 물이 값이 나가지 않을 만큼 흔한 물질이라고 해서 허투루 볼 수 없는 대목이다.

연금 역시 마찬가지다. 요즘은 생존에 필요한 물품들을 자급자족하는 시대가 아니다.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많은 사람들은 생존 기술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생존을 위해서는 다른 사람이 생산한 것을 돈 주고 사야만 한다.

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스트레스를 마다하지 않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게다가 요즘은 현역 시절보다 은퇴 기간이 더 긴 인생 100세 시대다. 이처럼 긴 시간 동안 소득이 없다면 결코 생존을 장담하기 힘들지 않겠는가. 국가와 가족에 의지하기도 힘들어졌다. 국가는 저출산 고령화로 인해 긴 은퇴 기간을 부양하기엔 체력이 달린다. 가족 역시 마찬가지다. 전통적 대가족 제도가 해체된 지 오래고, 부모 부양 의식은 희미한 흔적만 남아 있는 게 요즘이다. 결국 믿을 것은 자신뿐이다.


여성의 경우 직장을 그만두게 되면 지역가입자로 전환해 보험료를 계속 납부하는 것이 유리하다.

연금 3종 세트 최대 활용법

자신을 든든한 ‘믿을맨’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젊었을 때 한 푼 두 푼 모아 연금의 재원을 튼튼하게 구축해 놔야 한다. 무조건 모으기만 해서는 안 된다. 체계적으로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 연금제도를 활용해 체계적으로 노후 자금을 모으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자.

먼저 국민연금이다. 국민연금은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제도이기 때문에 직장 생활을 하는 순간 자동적으로 가입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여기에도 굴곡은 있다. 특히 여성의 경우가 그러하다. 여성의 경우 결혼과 육아 때문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국민연금은 최소 10년을 가입해야 연금을 수령할 수 있는데, 여성의 경우에는 이조차 어려울 수 있다.

이 경우에는 국민연금 납부 예외 신청을 하면 된다. 직장을 그만두게 되면 국민연금공단에서 지역가입자 자격취득신고서를 집으로 보내주는데, 이를 받은 후 유선으로 소득 활동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만 밝히면 납부예외자로 처리된다. 나중에 다시 취업하게 되면 국민연금보험료가 납부되면서 가입 기간이 합산되므로 10년을 넘기기가 한층 수월하다.

만일 남편의 수입이 어느 정도 된다면 지역가입자로 전환해 계속 보험료를 납부하면 훨씬 유리하다. 국민연금은 가입 기간에 비례해 수령액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여성의 평균 수명은 남성보다 평균적으로 6~7세 정도 길고, 혼인 시 평균적으로 3~4세 어리기 때문에 남편 사후 홀로 10년을 보내야 한다. 이 기간 동안에는 국민연금만큼 믿을 만한 것도 드물다.

다음으로는 퇴직연금을 통해 노후 자금을 모으는 방법이다. 앞에서도 말했던 것처럼 퇴직연금의 재원은 기본적으로 퇴직금이다. 퇴직금은 연소득에 비례하기 때문에 연봉을 올리는 게 퇴직연금을 불리는 첩경이지만 이게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퇴직연금을 불리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적립금의 자산 배분을 잘 하는 것이다. 안전한 상품이라고 해서 원리금 보장형 상품에만 올인하는 것도, 기대수익이 높다고 해서 위험 상품에 과도하게 투자하는 것도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

자산 운용의 성과에서 자산 배분이 차지하는 비중이 90%가 넘는다는 과학적 연구 결과도 있지 않은가. 다른 하나는 추가 납입 제도를 활용하는 것이다. 현재는 확정기여형(DC형) 가입자만 추가 납입 제도를 활용할 수 있지만, 개정 근퇴법이 시행되는 내년 7월 이후부터는 확정급여형(DB형) 가입자도 개인형 퇴직연금 계좌를 개설하면 추가 납입 제도를 활용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개인연금을 통해 노후 자금을 차근차근 쌓아가는 방법이다. 세제적격 개인연금에 가입하면 연 400만 원 내에서 소득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데, 소득공제 혜택을 받은 금액을 추가 납입 재원으로 활용하면 개인연금 적립금을 더욱 많이 늘릴 수 있다. 이 경우 중도 해지는 가급적 삼가야 한다. 가입 후 10년 이내에 해지하면 그동안 받았던 소득공제 혜택을 고스란히 반납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실의 삶이 팍팍하다고 연금을 내팽개치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미래의 긴 시간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무리 굶주려도 내년 농사를 위해 씨앗만은 먹지 않았던 조상들의 지혜를 곱씹어 볼 때다. 연금은 세세연년 우리의 생존을 보장하는 씨앗임을 명심하자. 오늘날 튼튼한 연금 3종 세트를 만드는 것은 자신은 물론 자녀를 위해서도 최고의 선임을 잊지 말자.


손성동 미래에셋 퇴직연금연구소 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