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유가증권 시장에 상장된 중국고섬은 상장 9개월 만에 퇴출 위기에 몰리면서 국내 투자자들의 속을 태우고 있다.

국내 증시에 상장된 외국 기업은 총 19개(2011년 10월 16일 현재)다. 2007년 8월 상장한 중국 멀티미디어 기기업체 ‘3노드디지탈’이 최초다. 지난해 7개의 외국 기업이 잇따라 데뷔하며 투자자들의 큰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올해 상장에 성공한 외국 기업은 중국고섬과 완리 두 군데에 그쳤다.

외국사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진 데에는 중국고섬 사태의 영향이 컸다. 지난 1월 유가증권 시장에 상장된 중국 섬유업체 중국고섬은 상장 9개월 만에 퇴출 위기에 몰렸다. 지난 10월 14일 중국고섬은 작년 12월 종료된 회계연도 재무제표에 관한 감사보고서에서 ‘의견거절’을 받았다고 밝혔다.

중국고섬의 회계감사업체인 언스트앤영(Ernst & Young)은 감사보고서에서 “중국고섬 은행 잔고에 관한 회계 기록과 은행으로부터 얻은 정보 사이에 불일치가 있었다”며 중국고섬의 회계 적정성에 의문을 표시했다. 국내 감사보고서에서도 의견거절이 나오면 상장 폐지 절차에 들어가게 된다.

중국고섬은 상장 2개월 만인 지난 3월 싱가포르 증시와 국내 증시에서 거래가 정지돼 투자자들의 속을 태웠다. 국내에 주식예탁증서(DR) 형태로 상장해 1932억 원의 자금을 조달했지만 자금 행로가 미스터리에 휩싸였다. 특별감사인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는 당시 중국고섬의 은행 잔고를 재검토한 결과 중국고섬이 밝힌 11억 위안이 아닌 9300만 위안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중국고섬은 상장 2개월 만인 지난 3월 싱가포르 증시와 국내 증시에서 거래가 정지돼 투자자들의 속을 태웠다.


투자자들 “거래소와 주관사 책임져라” 분노

거래 정상화에 실낱같은 희망을 품었던 투자자들은 분노를 표시하고 있다. 한국거래소(KRX)가 싱가포르 원주의 거래 정지를 파악하고도 방치해 투자자들의 피해를 더 키웠다는 지적이다.

지난 9월 30일 진행된 국정감사에서 국회 정무위 소속 민주당 우제창 의원은 “중국고섬의 부실 징후를 현지에서 먼저 파악한 기관투자자들은 거래 정지 전날 해당 주식을 대량 투매했다”면서 “싱가포르증권거래소(SGX)에서 해당 주식의 거래를 중지시킨 뒤에도 KRX는 15시간이나 상황을 방치했다”고 지적했다. 거래 정지 이후 중국고섬 측은 주주총회 기한을 네 차례나 미루면서 시간을 끌었지만 국내 투자자들이 접할 수 있는 정보는 많지 않았다.

중국고섬의 상장을 주관했던 대우증권과 한화증권도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처지다. 기업공개(IPO) 실적 쌓기에 급급해 기업의 질적인 면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다. 한화증권은 중국고섬 상장 직후 “올해와 내년에 호실적을 이어갈 것”이라면서도 목표주가는 공모가(7000원)보다 오히려 낮은 6700원을 제시해 눈총을 받기도 했다.

소액주주 모임은 KRX와 대우증권 등을 상대로 190억 원 규모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원고 자격으로 참여한 주주는 553명에 이른다. 외부 감사를 담당했던 한영회계법인도 피소됐다. 대우증권은 중국고섬의 의견거절이 공시된 직후 “DR의 싱가포르 원주 전환 등 지원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투자자들의 분노를 해소하기엔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주관사들 역시 대규모 피해를 떠안을 전망이다. 대우증권이 보유한 중국고섬 DR는 830만9314주(8.15%)로 581억 원(2011년 10월 초 현재)에 달한다. 한화증권은 349만7685주(3.43%) 244억 원어치를 보유하고 있다. 대우증권은 지난 6월 말 분기 결산에서 중국고섬과 관련한 장부가액 가운데 235억 원을 이미 손실 처리했다. 투자자 피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손실 규모가 더 커질 가능성도 있다.



외국 기업 현장 실사 강화…외국 기업 신뢰 찾을까?


KRX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지난 10월 5일 KRX가 내놓은 ‘외국 기업 상장 관련 투자자 보호 강화 방안’에 따르면 외국 기업 상장 요건이 크게 강화될 전망이다.

우선 국내 기업에 적용되는 내부 회계관리제도를 외국 기업에 대해서도 상장 요건으로 요구하기로 했다. 또 상장을 주선한 증권사의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공모주식의 일정 수량을 투자하도록 하고 이를 일정 기간 보호예수 아래 둘 방침이다.

상장 주관사는 상장사 회계와 내부 통제 시스템에 관한 기업실사보고서와 사실확인서(컴포트레터)도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한다. 외국 상장사가 상장 후 1년 안에 퇴출 사유가 생기는 등 부실화할 경우 상장주관사를 제재하는 방안도 마련된다.

KRX는 외국 기업에 대한 현장 실사 등 상장 심사를 강화하고 공시 의무 이행 실태 점검 횟수도 연 1회에서 2회로 늘릴 예정이다. 또 지주회사인 외국 상장사가 일정 기간 자회사 지분을 매각하지 못하도록 제한을 두기로 했다.

글로벌 우량 기업이나 국내 기업과 연관된 외국 기업은 상장을 촉진하는 방안을 추가로 검토키로 했다. 기업의 투명성이 보장된 글로벌 500대 기업 등 우량 외국 기업은 심사 기간을 단축하는 ‘신속상장제도(패스트패스)’가 대표적이다. 국내 외국 기업들의 질을 전반적으로 높여 투자자들의 신뢰를 찾고 투자 기회를 다양화하기 위해서다.



‘외국 기업 재발견’ 이뤄질까?

이 가운데 일부 외국 기업들은 편견 깨기에 앞장서고 있어 주목된다. 실적 면에서 국내 기업 못지않은 성장성을 보이는 기업들도 나오고 있다. 지난 10월 코스닥 상장사인 차이나킹하이웨이는 2011 회계연도(2010년 7월~2011년 6월) 매출이 전년보다 55.2% 증가한 1889억 원, 순이익은 37.8% 늘어난 542억 원이었다고 발표했다. 천연 약재 등 건강식품을 판매하는 차이나킹하이웨이는 중국 내 전국 판매망을 구축하고 신제품 판매량이 늘면서 실적이 크게 개선됐다고 밝혔다.

한국투자증권은 차이나킹하이웨이에 대해 “내년 회계연도(2011년 7월∼2012년 6월)에 건강 기능 차 18종을 출시하면서 20%대 성장도 가능할 것”이라며 “독보적인 추출 및 배양 기술을 보유하고 있고 연내 생산시설에 대한 품질 인증도 예상돼 신뢰성이 향상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차이나킹하이웨이는 최근 정기 주주총회에서 한국인 사외이사를 선임하는 등 국내 투자자들과의 소통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투자자들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폐지 재활용업체인 차이나하오란은 3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각각 38.65%와 42.84% 증가했다고 공시했다. 차이나하오란의 주가는 실적 발표 직후 모처럼 상승세를 탔다. 신영자산운용이 최근 지분 5.13%(205만 주)를 새로 취득하는 등 중국 기업에 대한 ‘재발견’ 조짐도 나오고 있다.

중국고섬 사태를 계기로 증권사들은 중국 이외의 기업에 고개를 돌리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호주의 여성복 전문 업체이자 한인 기업인 FFB(Fast Future Brand)를 상장시키는 작업에 돌입했다. 미래에셋증권은 브라질 조선 부품업체의 상장을 준비 중이고, 하나대투증권은 일본 모기지론업체 SBI모기지의 코스피 데뷔를 추진하고 있다.

한 전문가는 “차이나 디스카운트 탓에 외국 기업의 주가 낙폭이 컸지만, 좋은 실적이 바탕이 된다면 밸류에이션(가치 대비 주가 수준) 매력이 부각될 수 있다”며 “투자자들도 상장사의 펀더멘털을 철저히 분석해 외국 기업 가운데 옥석을 가려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KRX는 외국 기업에 대한 현장 실사 등 상장 심사를 강화하고 공시 의무 이행 실태 점검 횟수도 연 1회에서 2회로 늘릴 예정이다.
중국고섬 사태로 부각된 외국 기업 상장제도의 문제점
김유미 한국경제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