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철 자동차 카페 ‘꽃과 어린왕자’ 대표


세상을 등지고 경기도 남양주 산속으로 들어간 지 올해로 14년. 그는 평생의 꿈이자 삶이었던 자동차에 올인했다. 세월도, 돈도, 에너지도 송두리째 던져 넣었더니, 나중엔 세상 사람들이 그를 만나러 산속으로 찾아들더란다. 국내 최초의 자동차 테마 카페 ‘꽃과 어린왕자’의 이종철 대표는 생텍쥐페리가 그려낸 ‘어린왕자’처럼 아직도 그곳에서 꿈을 꾸고 있었다.
부가티 T-35의 레플리카. 부가티의 명성을 만들었던 원조 격 모델이다. 부가티 차량의 상징인 말발굽 라디에이터 그릴을 장착한 첫 번째 모델로 국내에 유일한 차. 이사도라 던컨이 운행 중에 목에 감고 있던 스카프가 뒷바퀴에 감겨 사망한 후 유명세를 탔다.
부가티 T-35의 레플리카. 부가티의 명성을 만들었던 원조 격 모델이다. 부가티 차량의 상징인 말발굽 라디에이터 그릴을 장착한 첫 번째 모델로 국내에 유일한 차. 이사도라 던컨이 운행 중에 목에 감고 있던 스카프가 뒷바퀴에 감겨 사망한 후 유명세를 탔다.
요즘엔 내비게이션이라도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주소만 입력하면, 헤매는 일은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의 몫이니 말이다. 하지만 14년 전에야 어디 그랬으랴.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하고도 용암리 421번지는 그야말로 ‘깊은 산속’이었다.

푹 꺼진 부지를 매입해 무작정 집을 지었다. 당시 터를 잡기 위해 동원된 토사만도 덤프트럭 7000대 분량. 길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슈퍼카들이 당당한 자태를 뽐내며 전시돼 있는 지금의 ‘꽃과 어린왕자’가 완성되기까지 2000평이 넘는 카페 구석구석에는 이종철 대표의 우여곡절이 켜켜이 쌓여 있다.

“한 마디로 허허벌판이었죠. 터만 마련했지 나머지는 모두 다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카페 지하는 제가 사는 집인데 뼈대 짓는 데 꼬박 2년이 걸렸어요. 혼자 지었거든요. 2년 전까진 도인처럼 머리도 기르고 살았으니 지나가던 사람들이 보면 ‘산속에 미친 놈 하나가 있구나’ 하고 생각하기에 충분했죠, 하하하.”



Chapter 1. 다섯 살, 람보르기니의 마술에 걸리다

이 대표는 현재 자동차 카페, 엔터테인먼트회사인 (주)보라이구아나를 비롯해 모바일·웹 콘텐츠 개발회사, 모터스포츠 관련 사업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사업적 기량을 발휘하고 있는 비즈니스맨이다. 시쳇말로 ‘잘나가는’ 사업가가 2년 전만 해도 긴 머리로 도인처럼 살았다는 말이 여간해선 믿기지 않는다. 대체 14년 전 그는 어떤 일을 겪었던 것일까.

“원래는 음악인이었어요. 열 살 때까지 음악을 배우다가 실용음악으론 대학 가기가 힘들다고 판단하고 중학교 때부터 음악과 미술 공부를 병행했어요. 대학 전공은 미술이었고요. 하지만 음악을 포기할 순 없었습니다. 군대에서도 문선대로 활동했고, 제대 후에 결국 음반을 냈죠. 팝 발라드 계열이었는데 두 번째 음반까지 내고 연예계를 떠났어요. 2집에 수록된 ‘사랑할수록’이란 곡은 당시 최고의 음악 순위 프로그램이던 KBS TV <가요 톱10>에 16위까지 올라갔는데, 그게 최고 성적이었어요.(웃음)”

‘제도권’ 내 뮤지션을 포기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초강수를 둔 집안의 반대, 자신의 음악으로는 소통하기 힘들었던 ‘대중’의 높은 벽, 당시 몸담았던 연예계서 느낀 회의…. 두 장의 음반을 끝으로 그는 4~5년의 짧은 연예계 생활을 마감하고 남양주로 들어갔다. 하지만 그 허허벌판은 그가 버리지 않았던 또 하나의 꿈을 실현시키는 데 최상의 ‘무대’가 돼 주었다. 10여 년간의 와신상담(臥薪嘗膽)과 도전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람보르기니 카운타크 레플리카
람보르기니 카운타크 레플리카
“1971년이었으니까 다섯 살쯤이었나 봐요. 제네바 모터쇼에서 첫 선을 보인 람보르기니 슈퍼카를 우연히 보게 됐어요. 문이 옆으로 올라가는 ‘걸윙 도어(gullwing door)’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는데, 이른바 ‘콘셉트 카’였죠. 그때부터 자동차에 꽂혔어요. 당시엔 국내에 자동차 전문 잡지도 없었습니다. 초등학교 때 어깨동무, 새소년 같은 소년지에서 람보르기니 자동차 사진을 본 후로 자동차 사진을 모으게 됐어요. 람보르기니는 저의 ‘드림’이었죠. 그러다 중 3때 청계천에 나갔다가 람보르기니 슈퍼카 대형 브로마이드를 발견했어요. 그 차가 바로 람보르기니 카운타크(countach LP500S)예요. 지금 카페 1층에 걸려있는 브로마이드가 그때 그 브로마이드죠.”
뷰익 포뮬러 F2. 일본 포뮬러2(F2) 경기에서 활동했던 머신으로 2001년 일본 경매회사를 통해 구입했다. 실제 엔진과 성능을 원형 그대로 갖춘 머신으로 제작과 개발비로 65억 원이 투자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뷰익 포뮬러 F2. 일본 포뮬러2(F2) 경기에서 활동했던 머신으로 2001년 일본 경매회사를 통해 구입했다. 실제 엔진과 성능을 원형 그대로 갖춘 머신으로 제작과 개발비로 65억 원이 투자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년 이종철’에게 람보르기니는 ‘신앙’과 같았다. 자동차에 푹 빠져버린 소년에게 람보르기니 카운타크는 평생의 꿈으로 등극한다. 야인(野人)을 자청하며 남양주로 들어가던 1997년, 그는 그 꿈의 엔진에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아니 시도조차 꿈꾸지 못했던 일을 벌였다.

“군대를 제대했을 때만 해도 우리나라 길에서 볼 수 있는 최고의 차는 ‘로열 슈퍼살롱’이라는 2000만 원짜리 차였어요. 그러니 3억2000만 원짜리 람보르기니 카운타크는 구입만 해도 구속감이었죠.(웃음) 돈이 있어도 살 수 없는 차라면 차라리 만들어보자 싶었죠. 부품 2만 개 정도를 구입해서 카운타크 레플리카(replica: 복원 차량)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설계도 하나 없이 사진만 보고 만들다 보니 시행착오가 많았던 탓에 7년이나 걸렸죠. 걸윙 도어가 열리는 각도조차 정확히 모르고 시작했으니까요. 지금 재료값을 생각하면 그냥 오리지널을 살 걸 그랬다 싶기도 합니다. 하하하.”



Chapter 2. 남양주 산속에서 키운 ‘어린왕자’의 꿈

7여 년의 산고(産苦) 끝에 국내 제1호 람보르기니 카운타크 레플리카를 탄생시킨 그는 일단 꿈을 이뤘다. 꽃과 어린왕자 전시공간에 서 있는 빨간색 카운타크는 이 대표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자신과의 싸움의 산물이며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하나를 완성하고 나니까 자신감이 생겼죠. 그 다음엔 람보르기니 디아블로 VT(Diablo VT) 두 대분의 부품을 샀어요. 그런데 디아블로 VT는 너무 어렵더라고요. 저기 전시장 코너에 서 있는 녹슬어 보이는 차가 제가 두 번째로 만들다 만 차체예요. 한 대분 부품은 아직 창고에 그대로 있어요.(웃음)”

‘미완성’의 꿈으로 남아 있던 디아블로는 결국 오리지널로 들여왔다. 디아블로를 손에 넣었으니 다음 시리즈인 무르시엘라고(Murcieelago)에 욕심을 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하나 둘 차를 사 모으다 보니 사람들은 그의 차들을 구경하러 산속으로 찾아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모이니 카페 영업을 시작하게 됐고, 이 대표의 꿈을 격려하며 자신의 꿈을 대리만족하러 오는 사람들을 위해 그는 자동차 수집에 더욱 뜨거운 열정을 쏟아 붓게 됐다.

현재 꽃과 어린왕자에 전시된 차량은 23대 정도. 그가 가진 35대 중 절반 이상이다. 꽃과 어린왕자에 가장 열광하는 사람들은 전국의 자동차 동호회 멤버들이다. 카페에서 정기 모임을 갖는 자동차 동호회만도 200여 군데에 이른다.

람보르기니 슈퍼카 시리즈를 비롯해 부가티 T-35, 뷰익 포뮬러 F2, 포르쉐 PGO 스피드스타 II, 포르쉐 928 S4, 롤스로이스 실버스퍼 리무진 등 한정판 모델들은 자동차 마니아들에게는 듣기만 해도 가슴이 뛰는 드림 카들이다. 차량 구입 경로는 주로 일본, 독일, 미국 등에서 열리는 경매. 가족 단위로 찾아오는 손님도 많아 아이들을 위해 백마(白馬), 원숭이, 사슴도 키우고 있다.

넓은 땅에, 스무 대가 넘는 희귀 차량에, 차량 관리팀까지 꾸리는 그가 어쩔 수 없이 자주 듣게 되는 말이 있으니 “부럽다”라는 말이다. 하지만 1년 보험료만도 1500만 원에 육박하는 람보르기니의 차주(車主)는 할 말도 많다. 워낙 고가의 차량들이다 보니 보안 장치에도 수천만 원이 투자됐다.

“슈퍼카를 국산차 타듯 탄다고 생각하면 곤란해요. 디아블로의 경우 15년 된 차인데 뭐라도 하나 고장이 나면 수리비가 1000만 원이 넘어요. 아무래도 조심스러우니까 저도 맘대로는 못 타고 가끔 탑니다. ‘너희들을 위해 참 열심히 살았으니까 한 번 타 주마’ 하고요.(웃음) 저는 카페 영업이나 다른 사업을 통해 번 돈을 자동차 구입과 관리에 고스란히 투자합니다. 취미가 제 삶이 된 지 오래니까요. 시간, 금전 모든 것을 올인하는 거죠. 밤마다 ‘사라~. 사라~’ 지름신이 강림한답니다. 하하.”



Chapter 3. 내일이 기다려지는 사업가의 오늘

자동차 카페를 두 번째 찾았을 때 그는 기자에게 즐거운 소식을 전했다. 1여 년간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자동차와 자동차 문화를 콘텐츠로 한 프랜차이즈 카페 사업계획서에 굴지의 대기업에서 ‘러브콜’을 보냈다는 것이었다.

동시에 그는 지방에 거주하는 자동차 동호회 멤버들과 자동차 마니아들을 위해 꽃과 어린왕자 같은 공간을 확대해 나갈 청사진을 그려놓고 있다. 적확한 표현일진 모르겠으나, 가능성이 있는 ‘시장’이라는 확신과 함께 자신과 닮은 사람들의 꿈을 대신 이뤄주고픈 ‘어린왕자’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다.

“초기 10여 년간 상업(商業)을 했다면 4년 전부터는 사업을 시작했다고 할 수 있어요. 상업은 망해도 밥은 먹고 살 수 있지만, 사업은 망하면 3대가 어렵다고 하죠.(웃음) 이곳 산속에 살면서 받은 명함이 라면 박스로 8개에 이릅니다. 사업을 위해 준비했던 시간이랄 수 있는데 음악, 미술, 자동차, 모터스포츠까지 제 삶을 이루고 있는 축들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결론이 엔터테인먼트더라고요. ”

대한민국에서 그만이 할 수 있는 사업에 있어 가장 중요한 콘텐츠는 바로 이 대표 자신이다. 자동차 컬렉터로서, 마니아로서, 레이서로서, 밤을 꼬박 새워도 다 뱉어내지 못할 무궁무진한 자동차 지식을 가진 전문가인 그가 살아 있는 콘텐츠인 셈이다. ‘삶의 결론이 엔터테인먼트’라 했던 그는 지금도 금, 토, 일 3일 밤에는 카페 라이브 무대에 선다.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려웠던 적이 있었어요. 오늘과 같이 무료한 내일이 오는 게 싫었었죠. 지금은 내일이 기다려지는 삶을 살고 있어요. 삶이 궁금해서 빨리 늙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죠.”

가벼운 차 한 잔을 함께 한 뒤 그는 미팅이 있다며 빨간색 페라리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지축을 뒤흔들 듯 폭발적인 엔진 굉음에 먹먹해진 귀가 정상으로 돌아오기도 전에 빨간색 페라리는 시야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모처럼 슈퍼카들을 전시장에서 꺼냈다. 포르쉐 PGO 스피드스타 II, 페라리, 람보르기니 디아블로 VT가 한 줄로 선을 보였다.
모처럼 슈퍼카들을 전시장에서 꺼냈다. 포르쉐 PGO 스피드스타 II, 페라리, 람보르기니 디아블로 VT가 한 줄로 선을 보였다.
글 장헌주 기자 chj@hankyung.com 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