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준비 없이 노인이 되는 삶은?

우리나라에서 노후 준비가 제대로 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노인이 된다는 것은 더 이상 기뻐할 수만은 없는 일이 됐다.‘동방예의지국’,‘노인 공경의 나라’였던 한국이 이제는 세계적으로도 노인들이 가장 살기 힘든 나라가 돼가고 있다.

노인 인구 두 명 중 한 명이 빈곤 상태에 빠져 있고, 노인 3~5명 중 한 명은 자녀와 주변인의 학대에 시달리고 있으며 이로 인해 절망에 빠진 75세 이상 노인들이 10만 명 중 160명 꼴로 자살을 선택하고 있다고 한다.

또 한국의 노인 빈곤율(전체 노인 중 중위 소득 미만에 속하는 노인의 비율)은 45%로 34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단연 1위다.

일본 22%, 그리스 23%, 미국 24%의 두 배에 달하고 한국에 이어 노인 빈곤율 2위인 아일랜드 31%보다 14%포인트나 높게 나타나고 있다. 가장 심각한 것은 한국의 인구 고령화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지만, 그 대비는 주요 국가 중 꼴찌 수준이라는 점이다.

미국의 싱크탱크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가 세계 20개 주요국을 대상으로 고령화 준비 상태를 지수화해서 순위를 매긴 결과 우리나라의 ‘고령화 대비 소득 적절성 지수’ 순위는 19위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고 기획재정부가 밝혔다.
맛있는 노후를 위한 은퇴 준비 5대 원칙
맛있는 노후를 위한 은퇴 준비 5대 원칙

그렇다면 나이가 들어가면서 찾아오는 빈곤, 건강, 고독 같은 그늘에서 벗어나 노후 생활이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물론 개인적인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지만 불안하기만 한 은퇴에 대해 걱정만 할 것이 아니라 다음의 5가지 원칙을 마음속에 새기고 착실히 준비해 나간다면 지금의 상황보다 좀 더 나은 노후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 100세까지 살 것으로 생각하자!
맛있는 노후를 위한 은퇴 준비 5대 원칙
100세 시대! 호모 헌드레드(Homo Hundred)가 화두가 되고 있다. 우리의 수명은 지난 100년 동안 일주일에 이틀 꼴로 늘어났다. 수명이 짧았던 시절 우리 생은 일자리를 떠나면서 곧바로 생을 마감하는 직선적인 생이었지만, 지금 우리에게 은퇴는 또 다른 출발, 시작이라는 순환하는 생의 시대를 맞고 있다.

평균 수명이 80세가 넘어가고 있는 요즘 앞으로 노년을 맞는 지금의 40~50대는 최소 90세, 더 나아가 100세까지도 살 것을 생각해야 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 이는 현재 40세인 사람이 90세까지 산다고 생각했을 때 은퇴 후에도 최소 35년의 시간을 더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다. 그렇기 때문에 은퇴 후의 인생을 인생 2막으로 생각하고 삶의 계획을 세워야 한다. 앞으로 은퇴 후 다가올 시간, 삶의 목적을 새롭게 정하고 그 시간을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도 세워야 할 것이다.

우선 퇴직 후 제일 많아지는 것은 시간이다. 아침에 눈만 뜨면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가 대부분의 노년층이 갖고 있는 숙제다. 선진국 은퇴자협회는 하루 24시간 중 13시간을 개인 시간으로 계산해 그 시간을 어떻게 유용하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해 가르친다고 한다. 노년층 의식고취 운동가로 유명한 랠프 롤란드는 “취침 전 머리맡에 내일 해야 할 일을 적어둔 메모지가 꼭 있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한국인이 평균 수명을 산다고 할 때 하루 13시간의 자기 시간은 퇴직 후 14만 시간 이상의 개인 시간을 의미한다. 그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려면 주, 월, 년 단위로 나누어 자금 운용, 건강 등에 관련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은퇴 후 새롭게 시작한 인생 2막이 여유로울 수 있도록 준비할 필요가 있다.



둘, 투자 자산보다 안정형 자산을 늘려라 !
맛있는 노후를 위한 은퇴 준비 5대 원칙
은퇴 후에도 행복하기 위한 필요조건 중 우선 순위는 노후 자금 마련이다. 노후 자금에 대해선 아직 젊은 20~30대는 투자의 위험을 감수해도 이를 만회할 시간적 여유가 있지만 중년층에 접어든 40대 이상은 안정된 노후를 위해 제일 안전하고 확실한 재테크 수단인 안정형 자산을 선택해야 한다. 안정형 자산 중 노후 준비를 위한 대표적인 투자 상품으로 연금과 채권을 권하고 싶다.

연금과 채권은 원금 손실 가능성이 거의 없는 데다 최소 물가 상승률만큼의 이자도 발생하므로 안정된 은퇴 자금 투자처다. 은퇴 설계를 할 때는 공적 연금인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을 비롯해 개인연금을 추가로 가입하는 것이 노후에도 평균 정도의 생활 수준을 보장받을 수 있는 방법이다. 채권 매입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다.

지난 10여 년을 비교해 보면 주식이 채권보다 못한 수익률을 내고 있는 것이 세계적인 현실이다. 아무리 내 친구가 주식으로 대박이 났다고 하더라도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수익보다는 안정성, 환금성,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금융 상품에 기대는 것이 훨씬 더 든든한 노후 준비를 보장할 것이다. ‘아들, 딸’표 저축은 예금자 보호가 되지 않는다.

노후를 위한 주머니뿐만 아니라 자기 개발을 위해 평생교육원에 등록하고 문화원을 드나들며 열심히 남은 인생을 다듬어야 한다. 90세를 넘어 100세도 바라보고 있는 요즘 은퇴는 인생 무대에서의 퇴장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기 때문이다. 끊임없는 자기 개발을 통해 자신의 제2, 제3의 영역을 개척해 가면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노년기가 돼야 한다. 또 물질적으로 나눌 것이 있다면 인생의 선배로서 나눔을 통해 후세들에게 본보기를 보여줘야 할 것이다.



셋, 자식에게 올인하지 말고 자기 미래에 투자하라 !
맛있는 노후를 위한 은퇴 준비 5대 원칙
대부분의 중년 고객을 만나 은퇴 설계를 진행하다 보면 평생 자식 잘되기만을 바라며 뒷바라지하다 보니 정작 본인의 노후 준비는 하지 못했다는 얘기를 많이 듣게 된다. 여성가족부의 한국 청소년들 의식 조사 중에서 26%의 자녀들이 “결혼 후에도 부모가 생활비를 대줄 것이다”라고 답한 결과는 의미하는 바가 크다.

한 지붕 아래서 전혀 생각이 다른 자식과 부모가 살고 있는 셈이다. 자식들을 성인이 되도록 가르치고 보살펴 줬다면 이젠 그들에게 자립심과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가르치면서 독립적으로 살아가게끔 해야 한다. 자식들에게 기대지 않고 독립적인 노년을 살아갈 수 있도록 자기 주머니를 단단히 차야 한다.



넷,눈높이를 낮춰라 !
맛있는 노후를 위한 은퇴 준비 5대 원칙
막상 퇴직 후 일어나는 여러 상황 중 가장 크게 다가오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로 자신의 일터가 없어졌다는 것, 둘째로 명함이 없어졌다는 것, 셋째로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없다는 것이다. 사회에서 괜찮은 직위에 있었던 사람들이 느끼는 세상인심의 변화에 따른 괴리는 때론 처절한 경우도 허다하다.

그런데도 대부분 퇴직자들은 잘나갔던 지난날의 영광에 사로 잡혀 있는 경우가 많다. 전직 대기업 최고경영자(CEO), 고위 공직자 등 과거 몸 담았던 조직의 리더로서 높은 위치에 있었던 사람들은 퇴직 후 과거의 직위에 얽매여 다른 이들과 어울리는 데 애를 먹는 경우가 많다.

특히 정년 퇴직 후 재취업 문제에서는 더욱 그러한 현상이 두드러진다. 베이비붐 세대인 1950년대 생이 지연과 학연 등의 인연으로 인한 채용이 아니라면 재취업 일자리를 얻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도 과거의 위치에 사로 잡혀 체면 때문에 사회생활에 더욱 곤혹을 겪는 분들을 많이 보게 된다.

아직 건강하고 충분히 일할 능력이 되더라도 한국 사회에서 50~60대 퇴직자가 설 자리가 없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은퇴 후에도 경제생활을 하고 싶다면 하루 빨리 세상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고 사회가 원하는 대상으로서 변화해 자신의 공간을 다시 만들고 명함을 만들어 세상을 나서는 용기를 가져야 할 것이다.



다섯, 운동 등으로 건강을 유지하라!
맛있는 노후를 위한 은퇴 준비 5대 원칙
평균 수명이 80세를 넘어선 우리 사회에서 이제는 오래 살되 어떻게 남의 도움을 덜 받고 건강하게 살아 갈 것인가 하는 건강 수명이 주요 화두가 됐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운동 부족, 잘못된 식습관, 흡연과 음주를 노년층 만성질환의 최대 적으로 꼽고 있다.

식습관, 흡연, 음주는 생활습관만 바꿔나가면 개선해 나갈 수 있지만 운동은 규칙적으로 자신의 몸을 움직여야만 신체적 균형을 유지해 나갈 수 있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운동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주 3회 이상 30~40분씩 빠르게 걷는 것 하나만으로도 건강을 충분히 유지해 나갈 수 있다. 또 평소에 많이 걷는 습관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노년기의 지속적인 몸의 움직임과 걷기 운동은 WHO가 추천하는 가장 손쉬운 운동으로 자신의 건강 유지는 물론이거니와 병원 방문 횟수를 줄여 주는 예방책으로 이미 증명된 바 있다.

에티오피아의 구지족은 아버지가 나이 들어 경제생활에서 은퇴할 때 남은 여생을 위해 자신이 가진 재산 중 제일 값진 생산재인 소 다섯 마리를 남겨 놓고 여분이 있으면 장남에게 양도한다고 한다. 나의 행복한 노후를 위해 소 다섯 마리의 준비가 절실한 시대다.
맛있는 노후를 위한 은퇴 준비 5대 원칙
길형민 _ 삼성화재 FP센터 팀장 hyungmin.gil@sams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