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계 경제나 한국 경제 내에서 종전의 이론이나 인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미스터리 현상이 유난히 많이 발생하고 있다. 일종의 ‘미스터리 증후군’이다.

그중에서 세 가지 미스터리 현상이 과연 언제 어떻게 풀릴 것인가가 향후 세계 경제와 한국 경제의 앞날을 좌우할 수 있는 중대한 변수로 대두되고 있다. 하나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대대적인 경기부양책에도 시장의 반응은 왜 냉담한 것인지, 다른 하나는 유럽 재정위기는 1년 반이 지나도록 왜 해결되지 않는지, 그리고 대외 환경이 악화될 때마다 한국 주가만 유독 왜 많이 떨어지는지 하는 점이다.

첫째 미스테리 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 결정적인 한계 때문이다. 무엇보다 오바마의 경기부양책이 법률(AJA·American Jobs Act) 형태를 취했다는 점이다. 지난해 중간 선거 이후 공화당의 입지가 강화된 상황에서 의회 통과가 쉽지 않았는데 월가에서는 이 점을 가장 우려했다.

설령 어렵게 의회를 통과했다 하더라도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하는 점 또한 의문으로 남는다. 더 이상 재정 지출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그 많은 재원을 마련하려면 누군가의 희생이 따라야 한다. 일반경직성 경비를 삭감해 사회간접자본(SOC) 투자에 몰아주는 ‘페이-고(pay-go)’ 정책이나, 부유층 증세를 경기 부양 재원으로 활용하는 ‘미국판 간지언 정책’ 등이 나왔어야 ‘이번 대책이 허구다’라는 수모는 모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더 우려되는 것은 이번 대책을 계기로 오바마 정부가 내거는 각종 공약이나 정책이 ‘미신경제학(voodoo economics)’으로 비쳐지기 시작하고 있는 점이다. 미신경제학은 정부가 공약과 정책을 내걸지만 실제로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경우 ‘이는 국민을 상대로 한 일종의 기만행위나 마찬가지’라는 의미에서 사용된다. 지금과 경제 상황이 비슷한 1980년대 초 공화당 내 레이건의 최대 라이벌인 조지 H. W. 부시 등이 자주 애용해서 유명해진 경제 용어다.

둘째 미스터리는 유럽통합의 근본적인 한계에 비롯된다. 통합과 유로화 위상을 유지하려면 경제수렴조건(economic convergence condition)을 회원국 내 중간 수준에서 설정할 수밖에 없다. 이 조건에 따른 유로화 가치는 경제 여건이 좋은 회원국(good apples) 입장에서는 저평가, 그렇지 않은 회원국(bad apples) 입장에서는 고평가돼 갈수록 전자는 좋아지고 후자는 악화되는 차별화 현상이 심해질 수밖에 없다.
[Market Insight] 세계 경제와 한국 경제 ‘3大 미스테리’ 과연 언제 어떻게 풀리나?
유럽 재정위기가 장기화되는 것은 재정 통합이 안된 것도 결정적 원인

유럽의 재정 통합이 안 된 것도 한계다. 유로화 도입 당시 유로본드 발행 등을 통해 재정 통합을 달성해 놓았다면 지금처럼 특정국 재정위기로 어렵게 달성한 통화통합이 붕괴될 우려에 직면하는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다. 유로본드 발행 등을 통해 뒤늦게 재정 통합을 가져가기에는 통합에 따른 문제점이 너무 많이 노출됐다.

경제 여건과 해외 시각에 별다른 이상이 없는 데도 국내 주가가 크게 떨어지고 있는 셋째 미스터리 현상은 8월 중순 이후 외국 자금 이탈이 유럽계 자금에 의해 주도되는 배경을 곰곰이 따져볼 필요가 있다. 3년 전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발생할 때에도 위기를 피해갈 것이라고 보았던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이 더 많은 피해를 당하는 ‘나비 효과(butterfly effect)’가 발생했다.

유럽 재정위기가 1년 반이 지나면서 유럽 금융사들이 속속 자본 부족 현상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이 닥치면 유럽 금융사들이 마진 콜(증거금 부족 현상)이 발생하는데 디레버리지(자본 회수) 대상으로 어느 국가를 선택하는가를 이해하는 것은 한국 등 역외국에 미칠 충격을 추정할 때 아주 중요하다.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금융사들이 마진 콜을 당했을 때 외부에서 긴급 자금 지원이 없으면 보유 자산을 가능한 적게 처분해 응해야 한다.

이때 시장 상황을 보면 유럽 재정위기가 발생한 국가들은 보유 자산을 팔려는 사람이 많고 사려는 사람은 적기 때문에 대규모 초과 공급이 발생한다. 이 시장에서 금융사들이 마진 콜에 응하기 위해 보유 자산을 처분하면 그 과정에서 가격이 더 떨어지기 때문에 당초 계획 분보다 더 많이 팔아야 가능하다.

반대로 한국, 중국 등과 같은 경제 여건이 좋은 국가들은 팔려는 사람이 적고 사려는 사람이 많아 초과 수요가 발생하거나 최소한 위기가 발생한 국가보다 수급 사정이 좋다. 이 때문에 마진 콜을 당한 금융사들이 이러한 국가들을 디레버리지 대상으로 선택하게 되고, 이들 국가들은 당초 기대와 달리 외국 자금의 이탈로 주가는 떨어지고 환율은 올라가 뜻하지 않는 현상을 맞게 된다. 리먼 사태 직후 아시아 금융시장이 전형적인 예다.

세계 경제와 한국 경제 앞날이 밝으려면 미국과 유럽 관련 미스터리가 풀려야

이런 점을 감안하면 3대 미스터리 가운데 한국 관련 셋째 미스터리는 첫째와 둘째 미스터리가 풀린다면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으로 기대된다. 중요한 것은 미국과 유럽 관련 미스터리가 과연 언제 어떻게 풀릴 것인가 하는 점이다.

대승적 차원에서 오바마 미 대통령의 경기부양책은 의회를 통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에 예정된 대선을 앞두고 반대만 할 경우 공화당도 경기 회복과 고용 창출에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정치적 포퓰리즘’ 차원의 비판을 면할 수 없다. 이 때문에 ‘페이-고(pay-go)’나 ‘미국판 간지언 정책’ 등을 통해 실효적인 재원 확보 방안만 보완된다면 첫째 미스터리는 풀릴 가능성이 높다.

지표상으로 보면 미국 경제는 분명 부진하다. 시장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전혀 예측할 수 없는 ‘팻 테일(fat-tail) 리스크 장세’가 증시뿐만 아니라 금을 비롯한 상품 시장에서까지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

미국 경제 앞날을 보는 시각도 실로 다양하다. 낙관론에도 회복세가 빠를 것이라는 ‘소프트 패치’와 경제주체들이 느끼지 못할 정도로 완만할 것이라는 ‘라지 패치’로 나뉜다. 비관론도 저점이 두 개 형성될 것이라는 ‘더블 딥’에 이어 누니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한 번 더 깊은 골이 찾아올 것이라는 ‘트리플 딥’을 경고했다.

인플레이션과 관련해 경기 침체 하에 물가가 올라갈 것이라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나온 지는 비교적 오래됐다. 최근 들어서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장기화될 것이라는‘슬럼플레이션’우려까지 나올 정도다. 이 상황이 된다면 미국 경제는 1930년대 겪었던 대공황을 다시 겪을 수 있다는 의미다.

지난 3년간 쓸 수 있는 부양 수단을 다 동원하고도 미국 경제가 부진하고 향후 전망도 불투명한 것은 금융과 실물 간의 연계가 복원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위기 이전 미국 국민의 과소비형 구조와 기업인들의 긍정적 사고대로라면 금리를 ‘제로(0)’로 낮추고 돈을 많이 풀면 소비와 투자로 연결돼 경기가 회복될 수 있었다.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도 이 점을 인식하고 기대했다. 하지만 미국 중심의 시대가 도래된 이후 처음으로 위기를 당하면서 미국 국민과 기업인들의 태도는 바뀌었다. 각종 패널 자료를 보면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크게 느끼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때문에 국민은 소비보다 저축을 늘리는 디레버리지를, 기업인들은 투자보다 현금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특정 국가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면 ‘이분법 경제(dichotomized economy)’라 부른다. 금융과 실물이 따로 논다는 의미다. 이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3차 양적완화(QE3) 정책을 섣불리 추진해 돈을 풀면 미국 경제 전망 가운데 최악의 시나리오인 스테그플레이션이나 이 국면이 장기화되는 슬럼플레이션에 빠질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진다.
[Market Insight] 세계 경제와 한국 경제 ‘3大 미스테리’ 과연 언제 어떻게 풀리나?
미국 경제가 회복되려면 금융과 실물 간의 연계가 강화돼야

이 때문에 버냉키 의장의 머릿속에는 QE3 정책이 떠난 지 오래됐을 것이라는 시각도 많다. 벌써부터 종전과 다른 창의적이고 획기적인 대책을 구상하고 있는 것이 연준 주변으로부터 흘러나온다. 새로 구상 중인 대책의 기본 방향은 금융 부문에만 머물고 있는 돈을 실물로 들어가게 할 수 있을까 하는 방안들이다.

경제주체들이 미국 경제와 증시 앞날과 관련해 예의주시해 할 것은 바로 이 대목이다. 금융과 실물 간의 연계성이 언제 복원돼 소비와 투자가 지속 가능하게 늘어나느냐 여부가 미국 관련 미스터리 현상을 확실하게 풀 수 있는 방안이다. 정책당국자와 정책수용층 간의 소통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만큼 시간이 걸리는 문제다.

둘째 미스터리가 언제 풀릴 것인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유럽통합의 근본적인 문제를 점검해 봐야 한다. 유럽통합은 자유사상가들에 의해 ‘하나의 유럽 구상’이 처음 나온 20세기 초를 기점으로 한다면 100년, 이 구상이 처음으로 구체화된 1957년 로마조약을 기준으로 한다면 50년이 넘는 긴 역사를 갖고 있다. 그런 만큼 유럽 국민의 피와 땀이 맺히면서 어렵게 마련한 것이 바로 유럽통합이다.

그동안 유럽통합은 두 가지 경로로 추진돼 왔다. 하나는 회원국 수를 늘리는 ‘확대’단계로 초기 7개국에서 27개국으로 늘어났다. 다른 하나는 통합의 단계를 끌어올리는 ‘심화’단계로 유로화로 상징되는 경제적 통합에 이어 2009년 12월 리스본 협약이 발효되면서 정치적 통합에 대한 기대까지 일어났던 상황이었고, 궁극적으로 사회적 통합까지 달성한다는 것이 위대한 유럽 구상이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언제든지 재정 위기가 불거질 소지는 남게 된다. 특정지에서 단일통화를 도입하려면 회원국 간에 서로 다른 경제 여건을 통일시켜야 가능하다.

유럽 재정위기가 근본적으로 해결되기 위해서는 충격 요법을 동원해야

문제는 유럽 재정위기가 장기화됨에 따라 신규 가입은 고사하고 현재 유로랜드 회원국이라 하더라도 이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무늬만 회원국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이 무늬만 회원국들을 끌어가는 과정에서 이제는 ‘건전한 회원국들’까지 전염되는 임계상황을 맞고 있다.

특히 그동안 최후의 보루 역할을 담당해 왔던 독일이 갈수록 어려운 상황에 몰리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루비콘 강을 넘고 있다. 이럴 때 유럽통합을 지키는 마지막 방법은 현실적인 제약 요건을 감안해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것이다. 여러 방안이 논의되고 있으나 조지 소로스, 앨런 그린스펀 등이 제시하는 투 트랙, 즉 건전한 회원국들은 계속 통합 단계를 밟아가고 차제에 무늬만 회원국들은 탈락시키는 방안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상춘 한국경제 객원 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