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ul Klee 파울 클레

[최선호의 아트 오딧세이] 詩와 음악이 만들어 낸 추상의 세계
파울 클레(Paul Klee·1879~1940)는 음악가의 집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한스 클레는 독일의 탄 태생으로 슈투트가르트 음악학교에서 성악과 피아노, 바이올린을 전공해 1931년까지 베른의 국립음악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어머니 이다 프리크는 스위스 바젤 출신으로 성악을 공부했다.

클레는 1886년 일곱 살 때 학교에 입학해 바이올린을 연주하기 시작했는데 11세에 이미 정기적으로 연주회를 여는 베른음악협회의 명예회원이 될 정도로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다.

음악뿐 아니라 시도 쓰고 그림도 그렸는데, 음악적 재능에 비해 그림에 대한 그의 재능은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음악가가 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기대와는 달리 클레는 음악보다 그림에 더 관심을 가졌고, 화가의 길을 선택했다. 클레의 부인 릴리 슈툼프도 피아니스트로 베른에서 열린 음악회에서 알게 돼 1906년 9월 결혼했다.

결혼 후 클레는 뮌헨으로 이사해 정식으로 화가 수업을 받고 그림을 그리면서도 교향악단에서 바이올린 연주를 했고, 베르너 프렘덴브라트 신문에 연극과 음악회에 관한 글을 썼다.

결국 많은 시간을 연주 활동하는 데 사용했고, 또 그만큼 그림 그리는 데 열중했다. 사람들은 클레의 그림과 연주가로서의 음악 활동을 연관시키지만, 음악가로서의 클레는 고전주의 음악에 충실한 반면, 화가로서의 클레는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미술을 공부했다.

그가 화가의 길을 선택한 것은 창조에 대한 열망과 더불어 음악이 아닌 미술에서 성공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클레는 1920년 10월 바이마르의 바우하우스 교수로 임용돼 바우하우스의 혁신적 미술교육의 일익을 담당하다가 1930년 4월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로 자리를 옮겨 교수로 임용돼 화가로서의 성공을 눈으로 보았다.

클레의 그림은 단순하면서 맑고 투명하다. 클레의 그림을 문학으로 비유하자면 시의 영역이요, 음악으로 말하자면 영국의 작곡가 벤저민 브리튼(Benjamin Britten·1913~1976)의 <심플 심포니>나 프랑스의 신고전주의 작곡가 에릭 사티(Eric Satie·1866~1925)의 <짐노페디>(Gymnopedie) 같은 가볍고 신선한 선율이다.

그가 그린 섬세한 그림은 거칠고 웅장한 스케일의 독일 표현주의 양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그는 학생들에게 추상화를 가르치는 성실한 바우하우스의 추상화가였다.

두려운 얼굴, 1932년, 삼베에 오일, 100.4×57.1cm, MoMA
두려운 얼굴, 1932년, 삼베에 오일, 100.4×57.1cm, MoMA
새로운 추상

클레의 그림은 작다. 대부분 종이나 마포 혹은 캔버스에 그린 그림들로 모두 한눈에 그림의 내용이 다 들어올 정도의 크기다. 그림의 내용도 작품의 크기만큼 단순하다. 여기 <두려운 얼굴>이 있다.

삼베에 그린 연한 에메랄드 주조의 이 그림은 손으로 그은 몇 개의 단순한 선과 면으로 쉽게 다가오는 그림이다. 굳게 다문 입에 두려운 표정과 조심스런 발걸음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제목이 말해주는 은근한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머릿속은 하얗게 질려 있고 열이 나는지 두려워하는지 정신적 고통이 머리를 뚫고 나와 하늘로 뻗치는 화살표와 공포 때문에 반짝 서 있는 머리카락은 그야말로 담담한 가운데 정신적 공황 같은 느낌을 준다.

놀랍게도 장욱진의 그림을 보는 듯하다. 장욱진이 늘 자신을 가리켜 말하던 “나는 심플하다”는 어쩌면 클레를 두고 하는 말인지 모를 일이다. 장욱진 그림의 완성이 시기적으로 보나 제작연도로 보나 클레가 나중이니 그 영향을 짐작하고도 남는 일이다. 예술은 모방이다. 클레 작업에서 얼마나 많은 영감을 세상의 작가들에게 주었는지 그의 작품을 대할 때마다 새삼 실감한다.
회색의 밤에서 솟아올라…, 1918년, 종이에 수채 잉크 은박지, 22.6×15.8cm, 베른 국립미술관
회색의 밤에서 솟아올라…, 1918년, 종이에 수채 잉크 은박지, 22.6×15.8cm, 베른 국립미술관
클레는 섬세한 손으로 기괴한 것, 혼혈아와 같은 것, 몽상적인 것을 창조했다. 그것들은 클레 자신도 인정하는 것처럼 세상에서는 거의 이해하기 힘든 것들이다. 그것은 사상과 초월적인 것에 몰입한 고양된 세계다.

그 세계에서는 어떤 꽃, 어떤 다리, 어떤 산호의 한 조각도 얼굴과 혼을 지니고 있으며, 사물의 근원에서 밝은 데로, 어린이 같고 원시적인, 그리고 확실한 기법의 도움을 받아 그림의 세계로 나온 것이다.

그것은 ‘꿈의 기법’으로 섬세하고 많은 터치, 거미줄 같은 가는 선, 물결치는 아라베스크 문양, 또는 어떤 각도에서 색유리를 투과했을 때 지금까지 상상할 수 없었던 대담한 형태를 낳는 도깨비 혼불과 같은 에메랄드 초록, 주황색, 크롬 옐로 같은 것이다.

실체가 없는 생물, 현실과 상상의 중간 생물이 사는 그림자의 영역인 새로운 추상이 꿈처럼 그려져 있다. 모든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가 뒤섞인다. “그림은 눈에 보이는 것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끔 하는 것”이라고 클레는 말한다.

때로는 추상적으로, 때로는 어린아이 같은 유치함으로, 때로는 대가의 과감한 생략으로, 선으로, 색으로, 면으로 종횡무진 손바닥만큼 작은 세계에서부터 무한한 우주의 영역까지 자유자재로 표현의 영역을 넘나들었다.

카이루완의 풍경, 1914년, 마분지에 수채와 연필, 8.4×21.1cm, 부퍼탈 폰 데어 헤이트 미술관
카이루완의 풍경, 1914년, 마분지에 수채와 연필, 8.4×21.1cm, 부퍼탈 폰 데어 헤이트 미술관
시와 천진, 그리고 점의 세계

클레는 1914년 4월 튀니지를 여행했다. 그는 그곳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발견했다. “태양에는 어두운 힘이 있다. 땅을 비추는 다채로운 빛은 희망으로 가득하다.” 클레는 당시의 풍광을 일기에 적고 있다.

<카이루완의 풍경>에서 그는 튀니지에서 투명한 색을 겹쳐 칠해 수채화로 기하학적 형태의 망에 약간의 세부 묘사를 더해 건물과 풍경을 그렸다. 그의 풍경 속에는 이슬람사원의 모스크가 보이고 사막의 모래, 그리고 푸른 하늘이 들어 있다. 색은 더욱 투명해졌고 이미지는 단순해졌다.

1918년, 클레는 새로운 형태의 ‘시 그림’을 시작했다. 시를 읽고 영감을 얻어 그림으로 표현하는 방식은 중국의 북송시대부터 문인화로 유행하던 하나의 회화양식이다. 하지만 서양회화에서 시를 해석하고 이미지를 표현하는 것은 흔하지 않다.

대상을 충실하게 재현하는 고전주의 회화에서는 더욱 어려운 문제였다. 하지만 클레는 자신의 시적 감수성을 회화로, 그것도 추상으로 표현하고 있다. <회색의 밤에서 솟아올라…>라는 제목의 그림 상단에는 클레 자신이 다음과 같은 시를 적고 있다.

회색의 밤에서 솟아올라

타오르는 불처럼 강렬하고

무겁고 귀한 존재가 돼

신의 기운으로 충만한 저녁에 기운다

이제는 하늘의 푸른빛에 둘러싸여

만년설 위를 떠돈다

별을 찾기 위해

그림은 완전히 기하학적이다. 사각형 그리드에 사이사이 알파벳을 넣어 문양을 만들고 상하 두 단으로 나눈 다음 그 사이에 은박지를 끼워 프레임 했다. 언뜻 보기에 우리네 전통조각보를 보는 느낌마저 든다. 회색의 밤하늘에 별들이 가득하다. 그야말로 신의 기운이 가득한 만년설 위의 밤이다. 그의 손에 시가 그림으로 완성됐다.
인형극장, 1923년, 마분지에 크레용 수채, 52×37.6cm, 베른 국립미술관
인형극장, 1923년, 마분지에 크레용 수채, 52×37.6cm, 베른 국립미술관
클레의 독창성은 <인형극장>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의 그림에는 어린아이의 천진함이 배어있다. 마분지에 크레용으로 선을 그은 다음 수채화 물감으로 색을 올려 완성한 그림에는 아이가 그린 것 같은 유희와 동심이 가득하다.

빨강머리 앤쯤 될까. 아이의 주근깨 얼굴에는 공주 같은 눈썹에 큰 눈을 그리고, 하트로 표현한 소녀의 청순함은 색동으로 마무리했다.소녀의 발치에는 꽃이 피고 당나귀가 걸어가고 해와 달, 집과 그림자, 아이와 정물이 뒤섞인다.

완전한 아이의 세상으로 돌아간 어른의 유희다. 장욱진이 그렸던 천진의 세계가 여기 모두 있다. 그가 연작으로 그린 <검은 왕자>와 <금붕어> 같은 작품에서 클레는 세상 화가들에게 무수한 창작의 영감을 던져주었다.

클레가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 시절 제작했던 점들로 이루어진 그림 가운데 가장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 바로 <파르나소스 산에서>다. 그림 속의 파르나소스 산은 영락없는 모자이크 이슬람 타일이다.

다양한 색으로 이루어진 촘촘한 망 속에 하얀 점을 찍었는데 마치 피라미드 같기도 하고 산 같기도 한 하늘 저 편으로 태양이 저무는 듯 풍경을 보여준다. 떨어지는 태양의 노을이 구름과 사원 입구를 붉게 물들이고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전체적으로 푸른 색조가 마치 수화 김환기의 뉴욕 시절 점 그림을 연상시킨다. 수화가 1960년대 후반 푸른 점으로 그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같은 대작의 영감을 어쩌면 클레의 모자이크 그림을 통해 얻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클레는 이 그림을 젊어서 다녀온 모로코 여행에서 얻은 이미지로 그려내었다.
파르나소스 산에서, 1932년, 캔버스에 오일, 100×126cm, 베른 국립미술관
파르나소스 산에서, 1932년, 캔버스에 오일, 100×126cm, 베른 국립미술관
클레가 1940년 6월 29일 스위스 로카르노에서 사망하자 베른과 뉴욕에서 그를 추모하는 대규모 전시회가 열렸다. 이후 그의 작품은 뉴욕현대미술관(MoMA)과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여러 점이 소장됐고, 그의 혁신적인 화풍은 미국 미술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수화는 뉴욕의 미술관에서 클레의 작품을 보고 영감을 얻어 자신의 기법대로 그려나간다. 물론 클레 그림의 저변에는 이슬람이라는 거대 제국의 아름다운 타일화가 엄연하게 존재하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창조의 핵심
음악가, 1937년, 마분지에 수채 과슈, 27.8×20.3cm, 베른 클레미술관
음악가, 1937년, 마분지에 수채 과슈, 27.8×20.3cm, 베른 클레미술관
1935년, 클레는 피부가 딱딱해지고 세포막의 점액이 건조해져서 치명적인 결과를 야기하는 원인을 알 수 없는 피부경화증에 걸렸다. 유대인이었던 클레는 1933년 1월 30일, 히틀러가 독일의 총통으로 취임하면서 불행이 시작됐다.

‘독일인이나 게르만 혈통을 지닌 사람만이 공직에 임용될 수 있다’고 규정된 법률의 첫 번째 조항에 의해 클레는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 교수직을 하루아침에 내놓아야 했다.

그해 12월 클레는 결국 독일을 떠나 스위스 베른으로 이주한다. 베른에서의 삶은 고단했고 여기에다가 불치병까지 얻으니 클레는 몹시 무기력해졌다.

1936년에는 죽음에 대한 불안과 병고로 25점의 작품만 완성했다. 그러나 마음을 추스른 클레는 생의 마지막 몇 해 동안 다시 창작에 몰두했다. 1937년에는 264점, 1938년에는 그보다 거의 두 배에 가까운 489점을, 생의 마지막 전해인 1939년에는 무려 1254점을 그렸다.

그것은 한 해 동안 그린 작품수로는 최고였다. 비록 몸은 굳어 갔고 고통은 심해졌지만, 그는 여전히 창의 가득한 그림을 그렸다. 그 가운데 하나가 1937년에 그린 <음악가>다. 우는 듯 노래하는 음악가의 표정에서 그는 자기 앞의 생을 말없이 그려내고 있다.

이 그림은 어른 아이처럼 밝은 색조에 굵고 검은 선으로 단순하게 그린 일종의 자화상이다. 그는 아버지의 국적에 따라 독일인이다. 독일 표현주의의 뿌리를 굵은 선묘에서 여실하게 보여준다.
운하에서 뱃놀이 하는 즐거움, 1940년, 마분지에 과슈, 41.5×49.5cm, 하노버 슈프렝겔 미술관
운하에서 뱃놀이 하는 즐거움, 1940년, 마분지에 과슈, 41.5×49.5cm, 하노버 슈프렝겔 미술관
1940년, 생의 마지막 해에 그린 <운하에서 뱃놀이하는 즐거움>은 제목과는 정반대로 죽음의 세계로 명부의 강을 건너는 슬픔을 노래한다. 푸른색의 저승으로 먼 길을 떠나는 사공처럼 그렇게 조용히 생을 마감했다.

“나는 이 세상에서 이해될 수 없는 존재다. 내가 편안하게 머무는 곳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과 죽은 사람들 사이에 있다. 보통의 경우보다는 조금 더 창조의 핵심에 다가가 있지만, 아직 충분하다고 할 만큼은 아니다.”

아들 펠릭스 클레가 아버지의 말을 새겨 넣은 묘비명이다. 창조의 핵심이 무엇인지, 왜 추상의 세계는 멀고 고단한지 새삼 자문해 본다.
[최선호의 아트 오딧세이] 詩와 음악이 만들어 낸 추상의 세계
최선호 111w111@hanmail.net

서울대 미술대학 회화과 동 대학원, 뉴욕대 대학원 졸업.
국립현대미술관, 삼성미술관 리움, 시카고 스마트뮤지움, 버밍햄 뮤지움 등 작품소장.
현재 전업화가. 저서 <한국의 미 산책>(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