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컬렉터 김대현 벤타코리아 대표

벤타코리아는 독일제 공기청정기, 에어워셔 등을 수입, 판매하는 회사다. 이곳의 김대현 대표는 우연한 기회에 그림을 가지게 됐고 지금은 수준급의 컬렉터가 됐다. 미술품 수집을 개인적 기호를 넘어 아트마케팅에도 적극 활용하고 있는 컬렉터 김대현의 이야기다.

김대현 벤타코리아 대표는 부부가 함께 그림을 공부하며 컬렉션을 한다. 시작은 김 대표가 먼저였다. 그는 살림만 하는 아내에게 갤러리를 차려 주기 위해 그림에 관심을 가졌다. 지금은 부부가 함께 컬렉션을 한다. 지난 3년간 수집한 그림을 모아 올 초 김 대표 부부는 ‘갤러리 퍼플’을 오픈했다.

[The Collector] 부부가 같은 취미, 아트마케팅에 적용
사무실 한쪽에 아내를 위해 마련한 갤러리

갤러리 퍼플은 벤타코리아 사무실 한쪽에 마련됐다. 장마가 한창이던 7월 초 벤타코리아가 들어 있는 서울 강남 학동사거리 빌딩 3층에 내려서자 사진작가 한상필의 작품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맞은편에는 사석원의 그림이 벽면을 차지하고 있었다.

사무실 옆에는 갤러리 퍼플이라는 상호가 보였다. 사무실 입구에서 만난 김 대표는 갤러리 구경을 먼저 시켜주었다. 크지 않은 갤러리였지만 전시된 그림은 하나같이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었다.

구본창의 도자기 사진에서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까지 탐나는 작품이 많았다. 두 군데 빈 곳에는 원래 이명호와 한상필의 작품이 걸려 있던 자리인데, 현재 한 백화점에서 하는 전시회에 나가 있다고 했다. 전시장 안쪽에는 관장실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그곳에는 김도균의 나무 작품과 홍승혜의 작품이 걸려 있었다.

“아내가 관장이지만 매일 출근하는 게 아니어서 가끔 혼자 들어오기도 합니다. 스트레스 받을 때 여기 와서 김도균 선생의 작품을 보면서 담배 한 대 피면 마음이 그렇게 편안해지거든요.”

전시장을 둘러본 후 벤타코리아 사무실로 향하며 그가 말했다. 말을 마치고 느긋하게 웃는 그의 얼굴이 푸근했다. 사무실 접견실에 들어서자 공기청정기, 에어워셔, 선풍기 등 벤타코리아 제품이 눈에 들어왔다.

제품들 사이로 제과, 제빵에 쓰이는 제품들도 눈에 띄었는데, 김 대표가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어 개발한 제품이라고 했다. 현재 이마트, 홈플러스 등에 ‘스타 베이커리’라는 브랜드로 판매되고 있다. 김 대표는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된 후 디자인 등에 다양하게 응용하게 됐다고 말했다.

강좌와 전시, 미술 전문 잡지 통해 작품 보는 눈 키워

“어릴 때 그림 잘 그린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미술과는 무관한 삶을 살았습니다. 저는 산업공학과를 나온 공돌이고, 아내는 식품영양학과 출신이거든요. 그런데 아이가 크면서 전업주부인 집사람 걱정이 되더라고요. 어떻게 하면 밖으로 불러서 함께 생활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미술 강좌를 함께 다니게 됐습니다.”

본격적으로 미술 공부를 시작한 지 벌써 5년여가 흘렀다. 지난 3년 동안 부부는 강좌가 있는 목요일이면 새벽 5시에 일어나 함께 강좌를 들었다. 틈나는 대로 전시회를 둘러보고 아트페어에도 함께 갔다.

한편으로는 미술 전문 잡지 세 권을 정기구독하며 이론과 미술시장에 대한 이해를 넓혔다. 미술 공부를 시작하던 초기만 해도 컬렉션까지 생각하지는 않았다. 3~4년 전만 해도 몇천만 원을 주고 작품을 산다는 게 이해가 안됐다. 처음에는 가격이 싼 작품을 샀다. 하지만 미술 공부를 하고 작품 보는 눈을 키우면서 눈이 점점 높아졌고 작품 가격도 높아졌다.

"작품뿐 아니라 작가들을 만나는 일도 즐거운 일입니다."
"작품뿐 아니라 작가들을 만나는 일도 즐거운 일입니다."
김도균, 데미안 허스트와의 인연

김 대표 부부는 주중에는 사무실에서 가까운 청담동, 주말에는 인사동 등지의 갤러리를 순회한다. 갤러리 순례를 하며 새로운 작가도 발굴하고 최근 작품의 트렌드도 눈에 익힌다. 김 대표의 태블릿PC에는 전시 일정이 빼곡하게 기록돼 있었고, 전시회에서 눈여겨본 작품 사진이 가득했다.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으면 사진 촬영을 하고 자료를 모아 아내 앞에서 브리핑을 한다. 작품을 구입하려면 이런 과정을 통해 아내의 제가를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김도균의 작품도 이런 식으로 구입했다.

한 갤러리의 ‘컬렉터 소장전’에서 작품을 보고 아내의 제가를 얻어냈다. 금액이 생각보다 커서 작품 값은 4개월을 분할해서 치렀다. 김 대표는 가격이 비싼 작품은 이런 식으로 구입할 때가 잦다고 했다.

아트페어도 중요한 컬렉션의 장이다. 현재 갤러리 퍼플에 전시된 데미안 허스트의 판화 작품이 아트페어를 통해 구입한 작품이다.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에 관심을 가진 것은 아내였다. 처음 그는 아내의 제안에 부정적이었다.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회화작품과 달리 수십 장의 에디션이 있는 판화나 사진 작품은 이상하게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그림을 공부하면서 그림 보는 눈도 달라졌다. 결국 그는 아내의 의견을 받아들여 그 작품을 샀다. 최근에는 다른 에디션을 가진 영국의 갤러리를 통해 두 점을 더 샀다.

“작품뿐 아니라 작가들을 만나는 일도 즐거운 일입니다. 한상필 같은 분은 인생관 자체가 100점인 분이라 존경하고요, 사석원 같은 분도 인품이 정말 좋습니다. 특히 사석원 선생은 저에게 아트마케팅의 중요성을 가르쳐준 분이세요. 그분이 막걸리를 좋아하거든요. 광장시장 막걸리 집에서 부부 동반으로 막걸리를 마시다 아트마케팅 얘기를 해서 적극 도입하고 있습니다.”

미술과 음악을 통한 아트마케팅

[The Collector] 부부가 같은 취미, 아트마케팅에 적용
벤타코리아는 아트마케팅의 일환으로 작가 임옥상과 함께 설치작업을 준비 중이다. 벤타코리아 제품은 소재가 대부분 플라스틱이다. 플라스틱 제품을 이용한 리사이클 개념의 설치작업을 통해 환경의 중요성 등을 예술 작품으로 표현할 계획이다.

벤타코리아는 이전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미술계를 지원했다. 지난해에는 샤갈전을 후원하고, 그동안 후원해온 학생 50명을 샤갈전에 초대하기도 했다. 관람 당시에는 아나운서 김범수가 도슨트(docent)를 하기도 했다.

또 벤타코리아 후원으로 ‘물과 공기, 자연’을 주제로 한 공모전을 열기도 했다. 벤타코리아와 아트마케팅은 사실 미술계보다 음악계가 먼저였다. 호흡이 중요한 음악계와 공기를 여과하는 제품을 만드는 벤타코리아는 어찌 보면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벤타가 30년 이상 공기청정기를 만들다 보니 호세 카레라스에서 첼리스트 양성우, 소프라노 오은경 등이 주고객이 됐다.

이런 과정을 통해 김 사장은 아트마케팅에 확신을 얻었다. 올 5월 벤타 30주년 기념 파티에서 아트마케팅의 중요성을 얘기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를 아는 벤타 본사에서도 아트마케팅이 돈만 들어가는 일이 아니라 투자라는 사실에 어느 정도 수긍하는 분위기다.

“1995년 본사 회장이 방한했을 때 김창열 전시회를 데려갔었어요. 그때 제가 벤타 카탈로그에 물방울 그림을 그렸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어요. 그 뒤 20주년 기념에 수채화 작가를 시켜서 우리 카탈로그 위에 물방울 그림을 그려서 본사에 선물했죠. 30주년인 올해에는 아내의 사진 작품을 선물했습니다. ‘4대 천왕’ 중 동서를 담당하는 천왕의 모습을 찍은 작품인데 본사 건물에 그 작품이 걸려있어요.”

김 대표는 앞으로 아내와 함께 갤러리 퍼플을 본격적으로 키워볼 요량이다. 이를 통해 한국 미술시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고, 신인 작가들도 발굴해 후원할 계획이다.

글 신규섭 기자 wawoo@hankyung.com 사진 서범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