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생을 둔 부모라면 ‘스펙’이란 말 앞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 ‘스펙’관리는 부모에게도, 당사자인 입시생에게도 어려운 과제일 수밖에 없다. 대학입학사정관제 도입 이후 더욱 치열해진 스펙관리 경쟁이 지금 강남을 더욱 뜨겁게 달구고 있다. 강남 부모들의 자녀 스펙관리 이면을 밀착 취재했다.

지난달 서울 강남 모처에서 열린 한 증권사 VIP 고객을 위한 자산관리 설명회. 30여 명의 VIP 고객만이 참석할 수 있었던 소규모 행사에는 여성 고객들만 자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중·고교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

1부 자산관리 및 신종 투자상품에 대한 설명회가 끝나자 입시 전문가가 등장한다. 알고 보면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합격을 위한 자녀 스펙관리와 입시전략 분석이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 “요즘 VIP 고객 행사는 교육 콘텐츠가 빠지면 참석률이 저조하다”는 것이 관계자의 귀띔이었다.
[Edu Issue] “나는 강남 부모다” 자녀 스펙관리 노하우 천태만상
입학사정관의 마음을 울려라

강남 학부모 A 씨는 요즘 걱정이 태산이다. 명문고에 재학 중인 고3 자녀 때문. 아이는 어릴 적부터 꾸준히 우등생 자리를 놓친 적이 없지만, 수시전형을 노리는 학부모로서는 지금껏 준비한 스펙관리가 성에 차지 않기 때문이다.

A 씨 자녀는 어릴 때부터 영어에 상당한 재능을 보인 바, 여러 차례 영어 스피치대회에 나가 우승한 경력 등이 있어 창의력 분야를 염두에 두고 스펙관리를 해 온 경우. 하지만 A 씨가 걱정하는 건 아이 때문이 아니라 강남의 ‘부모’들 때문이다.

그는 “잘 가르친다는 논술학원은 8월 강의가 몇 달 전에 마감될 정도다. 새벽 한두 시 반까지도 수강신청 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 학원 주차장은 새벽에도 아이를 기다리는 엄마들 차로 북새통을 이룬다”며 “좀 유명하다는 강사에게 개인 과외를 상담한 적이 있는데, 입시 전까지 석 달 동안 1억 원을 요구했다.

터무니없는 수업료에 어이없어 하자 그는 ‘촌스럽다’며 돌아가라 했다”고 전하며 강남 사교육 현실에 한숨을 내뱉는다. 시키자니 천정부지 수업료가 어이없고 안 시키자니 불안한 것이 솔직한 심정이라는 것.

강남에서 특A급으로 통하는 모 강사는 수학 한 과목을 석 달에 1억 원, 논술 역시 몸값 비싼 강사는 한 달에 보통 1000만 원을 요구한다고. 특A급 강사의 경우 상담 스케줄 잡는 데도 몇 달이 걸린다는 전언. 이른바 강남 최고의 강사는 재력만으로도 마음대로 모실 수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 대학입학사정관제(http://uao.kcue.or.kr)는 우수한 성적 외에도 소위 ‘스펙’관리가 중요한 게 현실이다. 대학입학사정관제란 성적 위주의 획일적 선발 방식에서 벗어나 학생의 잠재력과 해당 대학의 설립이념, 모집단위 특성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한 선발 방식을 말한다.

이는 현재 전국 118개 대학에서 채택한 선발방식으로 학교생활기록부, 수능 성적, 각종 서류 등 다양한 전형요소를 해석해 활용할 수 있는 대입전형 전문가(입학사정관) 활용 체제를 구축하기 위함이 그 목적이다. 스펙관리에 총력을 기울이는 이유가 바로 이 입학사정관 때문인 셈. 지원자는 지원하는 대학이 찾는 가장 ‘이상적’인 인재상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미애 샤론 코칭&멘토링 연구소 대표는 “입학사정관제는 환경과 진로에 관계된 자연스러운 결과물을 요구한다”고 설명했다.

‘스펙’이라는 단어가 어색한 ‘아버지’들을 위해 잠시 입시에 필요한 언어와 수학 관련 스펙을 간단히 살펴보면, 영어공인성적(IBT·TEPS), 제2외국어 공인점수(신HSK·JLPT·DELE 등), 수학 관련(국내외 경시대회 등), 경제 관련(경시대회·AP 등), 과학 관련(올림피아드·경시대회·프로젝트 등), 한국사·한국어·한문, 봉사활동(환경·진로와 관련), 교내 활동(임원·동아리·교내 경시 수상 경력 등) 등을 꼽을 수 있다. 연세대 글로벌 리더 전형이나 고려대 특별전형을 준비한다면 IBT 등 영어 관련 공인성적 관리를 해야 한다는 답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된다.

이렇게 관리해야 하는 스펙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보니 입시가 다가올수록 발등에 불이 떨어져 조급한 부모들이 속출한다. 공인성적을 제외한 스펙에서 경쟁이 가장 치열한 분야가 봉사활동.

800시간을 채우기 위해 주말마다 학생들이 봉사활동에 나서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하는데, 스토리텔링도 중요해 전문 사진작가에게 활동 이모저모에 대해 촬영을 의뢰하는 것도 요즘 트렌드 가운데 하나.

부모들이 디지털 카메라로 찍는 사진은 밋밋해 보이기 때문이라는데, 왜 그러느냐는 질문에 그들은 “입학사정관의 마음을 울려야 한다”고 대답했다. 또한 워낙에 경쟁이 가장 치열한 스펙이다 보니 남들과 비슷해서는 경쟁력이 없다는 이유도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자기 소개서 대리 작성 한 것이 300만 원을 호가한단다.

보다 유니크하고 매력적인 아이로 만들어라

이미애 대표는 사교육의 중요성도 인정했으나, 자녀 스펙관리에 관해서만큼은 “결코 화려하거나 돈으로 도배하는 스펙은 필요 없다. 필요 없는 시간 낭비, 돈 낭비를 하지 말라”고 일침을 놓는다. 스펙은 관리해야 할 숙제이기도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아이가 입학사정관의 눈에 얼마나 유니크하고 매력적인 학생으로 보일 수 있겠느냐는 것.

연 70만 명이 한 판 붙는 ‘입시 전쟁’에서 소위 SKY에 합격하기 위해서는 전국 1만 등 안에 드는 성적을 유지해야 한다는 현실을 감안할 때 스펙관리는 제쳐둘 수 없는 딜레마다. 따라서 부모의 확실한 교육철학 정립과 시간적, 재정적 뒷받침은 사실상 ‘필요조건’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입학사정관의 눈에 보다 유니크하고 매력적인 지원자로 보이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강남에서 활동하는 입시전문가 또는 멘토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강조하는 포인트는 ‘자신의 적성과 처한 환경에 가장 충실한 스펙을 만들라’는 것이다.

실제 인터뷰에 응해준 강남의 한 학부모는 “스펙관리가 좋은 대학 입학을 위한 ‘안심보험’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자신의 계획에 아이를 맞추려 했던 시간이 후회스럽다. 아이의 타고난 기질과 성격적인 조건을 고려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이미애 대표는 “현재 우리나라 입시전형의 2대 롤 모델이 서울대 특기자 전형과 민사고 전형”이라고 설명하면서 “이 두 가지 전형을 충족하는 학생이라면 SKY뿐만 아니라 해외 명문 대학도 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가 강조한 두 가지 전형에서 중요시하는 것은 국어·한국사·영어토론대회 수상 경력과 협동심, 체력 등이다. 코칭 & 멘토링 전문가로서 그가 제안하는 ‘전략적’ 코스는 유치원부터 시작된다.

보통 ‘엘리트 코스’라고 하면 영어유치원-사립초-국제중-특목고-SKY를, ‘리더 코스’는 영어유치원과 일반유치원의 혼합-일반초(2년 정도 영어권 조기유학)-일반중-특목고-SKY를 일컫는다.

이미애 대표는‘엘리트 코스’보다는 ‘리더 코스’를 추천했다. 너무 스페셜한 학교만 다닐 경우, 학년이 올라갈수록 아이들이 힘들어한다는 것이 이유. 일반 중학교에서 여러 부류의 친구들과 지내며 다양한 경험을 하되, 고등학교는 명문고를 선택해 미래의 경쟁자 혹은 동문들과 함께 지내게 해주는 것이 이상적이라는 설명이다.

SKY를 겨냥하는 경우라면 일찌감치 네트워크 관리가 동반돼야 한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말이다. 그는 외국어고나 자립형 사립고 재학생일 경우 방과 후 과정에 스펙관리를 할 충분한 커리큘럼이 마련돼 있으므로 학교 밖에서의 사교육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고 권고했는데, “방학 때 학원만 돌리기보다는 일주일 이내의 가족여행을 하며 견문을 넓혀 놓는 것이 입학사정관과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특별하고 매력적인 지원자가 될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귀띔했다.

한편 이재혁 미국유학닷컴 대표는 자녀의 스펙관리에는 자녀와 부모 사이의 충분한 커뮤니케이션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보통 우리나라 부모들의 자녀 유학 시기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 정도.

60%가량은 미국 유학을 선택하는데, 미국은 한국보다 거주지에 따른 부의 편중 현상이 더욱 심해 지역에 따라 학교의 수준도 한국보다 차이가 더 큰 편이란다. 이재혁 대표는 “미국에서의 직장생활을 원한다면 미국 내 중·고등학교를 추천하지만, 한국으로 돌아와 기업 활동이나 취업을 할 계획이라면 한국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편이 낫다”고 설명했다.

또 만일 한국에서 소위 ‘명문’ 대학 입학이 어려운 경우라면 미국 커뮤니티 칼리지에 2년 정도 입학했다가 주립대로 편입하는 루트가 오히려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재혁 대표는 또 “강남구와 강북의 평창동, 송파구의 초등학교에서 방학 때 해외 캠프를 안 가본 학생을 거의 찾을 수 없다”면서 “프로그램에 따라 현지 초등학교 수업에 참여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 경우 학생 스스로가 외국 유학에 대해 체험할 수 있어 이후 유학을 결정할 때보다 주체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고 조언했다.

한 입시 코칭 전문가는 “강남 부모들의 가장 큰 문제는 자식이 자신에 비해 뒤떨어진다고 생각한다는 사실이다. SKY 출신이 많은 강남 전문직 부모들에게는 자녀가 부족해 보일 수 있으나, 사실 과거 그들이 치렀던 학력고사와 현재의 입시제도는 하늘과 땅 차이”라고 일갈했다.

부모가 명심해야 할 것은, 부족해 보이는 자녀의 스펙관리에 지나친 비용을 투자할 것이 아니라 자녀의 성격과 환경에 맞는 스펙관리를 전략적으로 할 수 있도록 가이드 역할을 해 줘야 한다는 것.

의사 아버지를 둔 학생이 가업을 물려받기보다 경영대 쪽으로 지원할 생각이 있다면 아버지의 네트워크랄 수 있는 여러 병원장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이 병원을 성공적으로 경영하는 노하우를 리포트로 만들어 제출하는 것이 훨씬 경쟁력 있고 현실감 있는 스펙관리가 될 수 있다는 것.

입학사정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스펙관리, 그것은 멀리 있을 수도 가까이 있을 수도 있다. 단, 이왕 한다면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아이가 관심을 보이는 분야에 대한 기록을 차곡차곡 쌓아두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조언이다.
[Edu Issue] “나는 강남 부모다” 자녀 스펙관리 노하우 천태만상

미국에 있는 한국인 부모들은 어떻게 하나?
캘리포니아주 교포 제이 리 씨의 자녀 스펙관리

제이 리 씨는 대학교 재학 당시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소재 명문 사립대로 유학을 떠난 케이스. 대학을 졸업하고 다양한 이력을 쌓은 중년의 아버지로 현재 미국 회사에서 중견 간부로 근무 중이다.

이 씨를 섭외한 이유는 그의 두 자녀가 미국 굴지의 대학에 진학했기 때문. 첫째는 전미 대학랭킹 14위인 노스웨스턴(Northwestern)에 재학 중이고, 둘째는 랭킹 39위의 캘리포니아주립대 데이비스 캠퍼스(UC Davis)에 입학허가를 받아놓은 상태다.

이 씨는 미국에서 명문대를 보내기 위한 스펙으로 GPA(평균학점), SAT(미국 수학능력시험), 봉사활동과 과외활동 등을 꼽았다. 특히 학교 안팎에서의 다양한 경험과 활동을 위해 아버지의 입장에서도 전폭적인 지원을 했다는데, 큰아이의 경우 학교 내 적십자클럽을 만들어 회장으로 활동하도록 조언하는가 하면 10종에 이르는 학력경시대회 준비팀에 들어가게 해 전국 챔피언이 되도록 도왔다.

도심에서 떨어진 밸리(valley) 지역까지 봉사활동에 필요한 식사를 나르고 중학교 때부터 지역 풋볼팀 선수로 활동했던 둘째를 위해서는 지역을 가리지 않고 쫓아다니며 격려하고 응원했다.

결국 그러한 부모의 지도와 노력으로 두 자녀 모두 명문대에 진학할 수 있었지만, 이 씨는 “아이들은 가풍으로 크는 것”임을 강조한다. 최소 1년에 세 번은 국내외 여행을 다니고 견문을 넓히는 것, 박물관 등에 함께 다니며 상식을 넓히고 함께 시간을 보냄으로써 아이들이 정신적으로 성숙하도록 돕고 가족 간의 유대감을 공고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인터뷰 말미에 이 씨는 “미국에서 대학은 들어가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대학에 진학해서 스스로 공부해 졸업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 ‘만들어진’ 아이들은 설령 하버드를 간다 해도 제대로 졸업하기 힘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도움말
이미애 샤론 코칭&멘토링 연구소 대표
이재혁 미국유학닷컴 대표


글 장헌주 기자 c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