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덕 북바인더스·FIKA 대표

‘터치와 클릭’, ‘지저귐’까지 가세해 소통하는 디지털 시대에 손으로 꾹꾹 눌러쓰는 일기장과 다이어리를 파는 가게가 있다. 누군가의 마음 깊은 곳을 나지막이 건드리는 아날로그적 감성이 충만한 디자인 문구회사 북바인더스와 스웨디시 카페 피카(FIKA)는 강퍅한 성격의 서울 소시민에게 북유럽 골목길을 여여하게 산책하는 기분을 선사한다. 박종덕 북바인더스·FIKA 대표는 서울 도심에서 ‘북유럽 디자인’이라는 우물물을 길어 올리는 중이다.
[Spot Interview] 서울 속 ‘작은 스톡홀름’을 짓다
‘디자인 민주주의’라 불리는 북유럽 디자인은 한 시즌 패션, 인테리어 숍을 장식하는 유행쯤으로 치부하면 곤란하다. 돌, 나무, 흙 등 자연에 뿌리를 둔 북유럽 디자인은 트렌드가 아닌 ‘클래식’이고 패션이나 인테리어 등의 외향을 포장하는 장치가 아니라 개인의 삶을 업그레이드 해주는 ‘철학’으로 통용된다.

20세기 초 탄생한 바우하우스(Bauhaus)를 모태로 한 북유럽 디자인 철학이 박 대표에겐 삶의 씨실과 날실이다. 서울 한복판에서 북유럽 디자인의 감성이 조용히, 그러나 강한 울림으로 퍼지는 그의 두 가게를 찾았다.

북유럽 디자인 문구류를 만날 수 있는 80년 전통의 스웨덴 브랜드 ‘북바인더스’와 국내 최초의 스웨덴 콘셉트 카페 ‘피카(FIKA)’를 운영하는 그에게 북유럽 디자인의 ‘컬처 쇼크’는 다른 이들보다 일찍 찾아왔다.

해외여행 자유화가 이뤄졌던 1988년도, 대학 신입생 시절 유럽 배낭여행을 가기 위해 반포 청과물상가에서 짐을 날라 유럽행 비행기 티켓을 마련했다. 3개월간 하루에 1달러로만 여행했던 이때의 경험으로 한국에 돌아온 뒤 국내 여행사의 유럽 여행 인솔자로 모셔(?)졌다.
[Spot Interview] 서울 속 ‘작은 스톡홀름’을 짓다
북유럽 감성 한국과 잘 맞아

방학 때마다 공짜로 유럽을 제집처럼 드나들었던 경험은 훗날 대학 졸업 후 제너럴모터스(GM)의 사브와 캐딜락 마케팅 매니저를 거쳐 홍콩상하이은행(HSBC)의 프리미엄 마케팅 총괄 담당자 등 이력의 바탕이 됐다.

남들보다 이른 나이에 마케팅 스페셜리스트로 승승장구하며 세계 각지로 출장을 다니던 박 대표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인테리어 숍인가 싶어 들어가 봤던 인상적이었던 디자인 문구숍 북바인더스를 방문한 뒤 ‘내 손으로 한국에 들여가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결국 동료와 주변의 만류에도 당시 두 배의 수수료를 제안했던 국내 대기업과의 경합을 물리치고 북바인더스의 최고경영자(CEO)와 창업주를 설득해 국내로 들여오게 됐다.

“2006년 가로수길에 숍을 오픈했을 당시엔 손님들이 들어와 ‘여기 뭐 하는 곳이냐’ 묻곤 했지요. 대박 나는 사업 아이템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수가 열광하는 디자인 문화만이 팽배한 한국에서 문화적 다양성과 콘텐츠를 제공하는 장소로 만들고 싶습니다.”

실제로 숍 안에는 군더더기 없이 심플하면서도 아름다운 컬러의 다이어리와 앨범이 인테리어 오브제처럼 진열돼 있다. 스웨덴 장인들이 100% 핸드메이드로 만들고 아름다운 컬러와 디자인으로 북유럽 감성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각종 문구류들을 만날 수 있다.

국내 문구업계 대부분이 젊은 여성층을 타깃으로 한 반면, 데스크 액세서리에 대한 니즈를 갖고 있는 남자들을 위한 선택의 폭을 넓혀주었다. 그 덕분에 고객의 30% 이상이 남자이고 재구매율이 상당히 높다. 북바인더스 매장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위치한 스웨디시 카페 피카는 2년 전 오픈한 곳으로 박 대표의 스웨덴 감성을 입으로 즐길 수 있는 곳이다. 현재 서울에만 4개가 있다.

스웨덴 왕실에 납품되는 ‘린드발가’ 원두를 내린 커피, 스웨덴 국민이 사순절에 먹는 빵 ‘셈라’ 등 새로운 것을 찾는 트렌드세터들에게 인기몰이 중이다. 아메리카노와 이탈리안 커피 문화에 지친 이들에게 달걀흰자를 넣어 마시는 ‘에그 커피’도 이 집의 명물로, 주한 스웨덴 대사 부부도 고향의 맛을 맛보기 위해 자주 찾는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매개로 누군가와 친구가 되고 대화할 수 있는 이 공간들이 내겐 행복”이라고 말하는 박 대표. 나이 들면 디자인 전문 서점을 하며 책에 파묻혀 살고 싶다는 그에게, 명함 종이 한 장으로 한 사람을 판단하는 한국 사회는 좁은 곳일 것이다.

글 이지혜·사진 이승재 기자 wisdo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