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는 기회다’라는 말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것을 기회로 반전시킬 수 있는 길이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위기가 닥치면 당장 벗어나기 급급하지 이것을 기회로 삼는다는 게 현실적으로 수긍하기 어려운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만약 이 위기가 경기침체나 금융위기처럼 개인이 아닌 다수가 동시에 겪는 상황이라면 어떨까. 각자의 상황에 따라 방어에 급급할 수도 있지만, 도리어 오랜만에 찾아온 타이밍을 놓치지 않기 위해 노심초사하며 짜릿한 긴장을 풀지 못하는 투자자들도 있을 것이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위기 상황 그 자체에 몰입하는 것과 달리 위기 속에서 기회를 찾기 위해 골몰한다. 최근의 금융위기에서도 이런 사례들이 목격되고 있다.

아직 진행 중인 이번 금융위기는 이미 리먼브러더스(Lehman Brothers)나 베어스턴스(Bear Stearns)처럼 오랜 전통을 가진 대형 금융기업의 몰락을 불러왔다. 하지만 2009년 이후로 300개가 넘는 부실 은행의 폐쇄를 기회로 삼아 문을 닫는 은행을 인수하며 오히려 자신들의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는 금융업체들도 많다.

이번 금융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기업들의 선택은 크게 세 가지 방법으로 나눠진다. 결국 폐쇄되지 않을까라고 염려했던 씨티그룹(Citigroup)은 정부의 지원과 지분 참여, 그리고 대규모 감원과 계열사 스미스바니(Smith Barney)를 처분하는 등 회사 규모를 축소하고 잘라내는 고통을 감수하는 길을 선택했다.

역시 같은 위기를 겪고 있는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대형 주택융자업체 컨트리와이드 파이낸셜(Countrywide Financial)과 한때 세계 최대의 증권업체였던 메릴린치(Merrill Lynch)를 인수했다.

BoA는 직간접적인 정부의 지원 아래 부실업체의 파산으로 인한 충격을 완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더불어 경기침체에서 안정세나 성장으로 돌아설 때에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한편 보수적 경영으로 조용히 영역을 넓혀 온 유에스뱅크(U.S.Bank)는 주목을 받는 규모의 인수를 피하면서 2000년대 초 업계 8위에서 어느덧 업계 5위로 떠올랐고, 금융위기 초기인 2007년에 2518개였던 지점 수도 2010년에 3031개로 늘렸다.

자산규모 면에서는 아직 4위의 웰스파고뱅크(Wells Fargo Bank)와 큰 격차를 보이고 있으나 꾸준한 성장을 보이다 지난 3년 동안 성장 속도에 박차를 가하며 이번 위기를 적절히 기회로 반전시킨 대표적 경우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특히 부동산 시장의 침체가 장기화되면 BoA의 컨트리와이드 인수 건에 대한 부작용은 끊임없이 BoA를 괴롭힐 것으로 예상된다. 그럴 경우 씨티그룹처럼 과감한 수술을 시도한 기업이 더 나은 결단을 내린 것이라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물론 승자는 유에스뱅크처럼 탄탄한 기반을 쌓으며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위기를 기회로 삼을 수 있는 힘을 모아둔 기업이 될 것이다.

지난 10년간 유에스뱅크의 성장 과정이나 자연스러운 경영진 교체, 그리고 무리 없는 인수·합병(M&A)을 보면 거물급 세계적 금융업체로의 도약 과정을 보고 있는 듯하다. 유에스뱅크 외에도 미국의 금융위기로 인한 은행가의 구조조정에서 조용히 두각을 나타내는, 살아남기뿐 아니라 성장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삼고 뛰는 작은 규모의 은행들은 하나 둘씩 동네에 들어와 폐쇄된 은행의 간판을 갈아치우며 금융계의 ‘차세대 씨티그룹’이 되고자 하는 꿈을 키우고 있다.

투자자들에게도 증시의 큰 움직임은 이젠 주기적으로 겪는 일이지 결코 뜻밖의 일이 아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증시에 늘 따라가는 자세로 허둥댈 것이 아니라 큰 이익을 보기 위해선 조금 앞에서 먼저 준비하고 기다리는 포트폴리오 운영을 해야 할 것이다. 보수적 경영을 지겨워하지 말고 새로운 백만장자가 탄생하는 위기를 반가워할 수 있는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Up-Front in US] 씨티그룹에서 우리가 배울 것들
김세주

베어스턴스(Bear Stearns) 투자 컨설턴트
찰스슈왑(Charles Schwab) LA 한인타운점 지점장
모건스탠리(Morgan Stanley) 투자 컨설턴트
현재 엑셀랑스 애셋 매니지먼트 상무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