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와 바람이 창조한 첨탑 궁전
누구나 살아가며 홀로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특히 이른 아침, 홀로 깨어 대자연의 평원에 어리는 안개와의 마주함과 지평의 틈을 뚫고 비추는 햇살 줄기와도 맞서보아야 한다. 브라이스 캐니언(Bryce Canyon)의 신비로운 기운과 오묘한 자연이 잠자던 영혼을 깨운다.
미국의 유명한 자연 사진작가 언셀 애덤스(Ansel Adams). 미 서부의 아름다운 자연을 섬세하고 서정적으로 담아낸 그의 사진집을 보면 지금도 가슴이 떨려온다. 그의 사진들은 미 서부의 자연이 가진 순수하고도 원시적인 아름다움을 잘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태초에 생성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그랜드 캐니언(Grand Canyon), 브라이스 캐니언(Bryce Canyon), 데스밸리(Death Valley) 등 모든 곳의 아름다운 신비가 소중하게 다가온다.
그것은 자연이 빚어낸 하나의 걸작품이자 ‘후두(hoodoo: 기형의 바위기둥)’라는 미스터리한 이름으로 불리어지는 협곡이다. 단지 아름다운 관광명소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세계로부터 탈출해 자아를 되찾게 되는 영지로서도 유명한 곳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화려한 색상을 간직한 곳을 꼽는다면 바로 미국 유타주에 있는 브라이스 캐니언 국립공원일 것이다.
1875년 최초의 예수그리스도 후기성도교회(모르몬교) 정착자인 에벤자 브라이스(Ebeneezer Bryce)가 이곳에 정착하게 됐는데, 이 아름다운 캐니언에 자신의 이름을 붙여 부르게 된 것이 정식 명칭이 돼 버렸다.
날씨가 맑은 날에는 100마일 멀리까지 뻗어있는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비지터 센터에서 레인보 포인트(Rainbow Point)까지 남쪽 드라이브 길은 보통 1100피트의 고지를 달리고 있으며 도중에 소나무, 전나무, 미루나무 등이 멋지게 늘어서 있는 모습도 만나게 된다. 전망 좋은 곳들은 모두 도로의 동쪽에 자리하고 있다.
나바호 루프 트레일 트레킹
공원 입구에서 선라이즈 포인트와 최고의 절경을 자랑하는 브라이스 포인트를 먼저 만나보고 선셋 포인트에 위치한 나바호 루프 트레일(Navajo Loop Trail) 탐험에 나섰다.
전망대 마다 높이가 다르고 포인트마다 경치의 변화가 다르기 때문에 가능하면 한두 코스를 선택해 계곡 아래로 트레킹을 떠나보자. 퀸스 가든 트레일(Queen’s Garden Trail)과 나바호 루프 트레일 모두 1.5마일 코스로 왕복 1시간 반이나 2시간 정도면 충분하므로 계곡 아래의 변화무쌍한 별천지를 호흡해 보자.
수만 개를 헤아리는 기기묘묘한 첨탑 하나하나는 수억 년 세월의 비와 바람, 물과 공기가 깎아낸 자연의 조각품일 것이다. 바다 밑 토사가 쌓여 형성된 암석이 지상에 우뚝 솟은 후 빗줄기와 강물에 의해 본래의 토사는 씻겨 내려가고 비교적 단단한 암석만 남아 지금의 첨탑군을 형성하게 된 것이리라.
1시간여를 내려왔지만 공원 계곡 아래는 아직도 해발 2000m나 된다. 계곡 사이로 향나무의 일종인 시더나무 몇 그루가 진분홍의 대지와 강한 대조를 이루며 하늘로 쭉쭉 뻗어있다.
계곡을 향해 내려갈수록 경사가 심해지고 첨탑 사이의 간격도 비좁아지면서 환하던 세계는 어둠으로 바뀌고 세월의 풍화로 빚어진 암석의 풍상을 읽을 수 있었다.
오랫동안 풍화와 침식작용을 받은 브라이스 캐니언은 연한 분홍빛을 띤 수천의 절벽들이 한데 어우러져 고요히 서있다. 마치 로마의 원형 경기장처럼 원시적인 분지를 형성하며 한편의 드라마를 연출할 듯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분홍빛의 첨탑들과 어우러져 시시각각 변해가는 일몰과 일출의 광경은 가히 신의 작품이라 아니할 수 없다.
빛의 파동으로 인한 다양한 색채가 뿜어내는 황금빛 파노라마는 평생 잊지 못할 장엄한 추억이 될 것이다. 거대한 자연 앞에 서면 누구나 고요히 침묵하며 자신을 돌아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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