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마쓰시타, 경영의 神들에게 듣는 위기극복론

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과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 마쓰시타전기산업 창업자는 한·일 양국을 대표하는 ‘경영의 신’이다. 두 사람은 일반인과 DNA부터가 다른 ‘위대한 경영자’라는 점 외에도 여러 면에서 닮은꼴이 많다.

불굴의 의지로 숱한 위기를 돌파한 것은 물론 사업보국(事業報國)의 정신으로 국가에 기여한 것도 공통점이다.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않고 하나의 목표로 정진하도록 직원들을 독려하면서 독특한 기업 풍토를 만들어낸 점 역시 비슷하다.

두 경영인은 기업 경영을 ‘단순한 돈벌이’가 아니라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종합예술’로 승화시켰다는 점에서 한·일 양국은 물론 전 세계 경영인들 사이에서 존경받고 있다. 최근의 글로벌 경제 위기를 두 기업인은 어떻게 바라볼까.

이병철과 마쓰시타, 두 위대한 경영인들이 생전에 남긴 어록과 기고문, 자서전 등을 토대로 가상대담을 꾸며봤다.
일러스트·이경국
일러스트·이경국
사회 : 글로벌 경제가 기로에 서있습니다. 이번 경제 위기를 두고 대공황 이후 100년 만의 위기라고들 하는데 두 분은 20세기 초반의 대공황 때 어떤 경험을 하셨습니까.

마쓰시타 : 저는 한국 학제로 치면 초등학교 4학년 때 화로 가게 점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자전거 가게 종업원, 시멘트 회사 운반원을 거친 뒤 22세인 1910년 오사카전등회사 검사원으로 발탁됐지만 워낙 약골인 탓에 얼마 안 돼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죠.

제가 1918년 오사카시 기타구 오비라키 1번가 2층 목조가옥에 마쓰시타 전기기구제작소라는 간판을 내걸고 사업을 시작한 것은 솔직히 체력이 약해서였습니다. 대신 출발은 좋았습니다.

처음 내놓은 상품이 연결 플러그였는데 현대적인 감각에 경쟁사 제품보다 30% 싸게 공급하니 시장의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그러나 1929년 말 불어 닥친 경제 불황으로 제 모든 꿈이 산산조각 나는 듯했습니다.

재고는 쌓여가고 자금은 부족한 상황에 처하다 보니 주변에선 “구조조정밖에는 답이 없다”고 말했죠. 하지만 저는 생각이 달랐습니다. 기업은 사람이 전부니까요. 그래서 직원들에게 “오늘부터 생산량을 반으로 줄인다.

직원은 한 명도 줄이지 않고 월급도 전액 지급한다. 대신 모두 휴일을 반납하고 재고품 판매에 힘쓰자”고 말했습니다. 직원들의 노력 덕분에 두 달 만에 재고를 처리하고 공장을 재가동할 수 있었습니다.

이병철 : 마쓰시타 회장께서 고생하실 때 저는 와세다대 정치경제학부 학생이었습니다. 그 당시 일본은 좌우익 간 대립으로 사회 전체가 뒤숭숭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대공황 여파로 기업이 줄도산하면서 경제는 최악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당시 학생이었지만 집에서 부쳐주는 돈만 축내며 일본에서 공부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931년 학교를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간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습니다.

사회 : 두 분을 후대 사람들은 ‘경영의 신’이라고 추앙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난관도 적지 않았을 텐데 각자 어떤 실패가 가장 기억에 남으십니까.

이병철 : 제가 씨앗을 잘 뿌리고, 제 아들 이건희 회장이 기업을 잘 경영하면서 삼성이 오늘날 글로벌 기업의 반열에 올랐지만 시작은 정말 미약했습니다. 1936년 마산에 협동정미소라는 간판을 내걸고 사업을 시작했는데 시작부터 삐걱거렸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마산에서의 실패는 제 인생에 많은 가르침을 줬죠.

1938년 대구시 수동(지금의 인교동)에 826㎡(약 250평) 규모로 가게를 마련해 삼성상회를 시작할 때는 마산에서의 실패가 밑거름이 됐습니다. 그 뒤에도 6·25 전쟁, 4·19 혁명, 5·16 군사정변 등 역사의 큰 고비 때마다 시련을 겪었습니다.

특히 정치적 변혁기에는 한국 특유의 반기업 정서로 다른 기업인들과 함께 부정축재자로 몰려 재산을 반강제로 헌납하는 등 곡절이 많았죠.

마쓰시타 : 이 회장님의 말씀을 들으니 같은 경영인의 입장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공감이 됩니다. 저 역시 난관이 참 많았습니다. 전후 일본 경제 부흥의 여파로 회사는 급성장했지만 그러다 보니 주위에선 ‘공공의 적’으로 간주되곤 했죠.

1970년에는 우리의 정가판매제를 흔들기 위해 소비자단체들이 TV 불매운동을 벌인 적도 있습니다. 특히 당시 일본 유통을 좌지우지하던 나카우치 이사오(中內功) 다이에이 회장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우리의 판매 정책을 비판하면서 마쓰시타에 대한 여론이 더욱 악화되기도 했습니다.

사회 : 마쓰시타 회장님의 불황 극복론이 요즘 일본 내에서 많이 회자되고 있는데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마쓰시타 : 제 경험상 불황일수록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들에겐 더 많은 기회가 찾아옵니다. 이를 위해선 편안할 때 위험에 대비해야 하며 무엇보다 ‘저수지식 경영’이 필요합니다. 신규 사업을 하는 데 1억 엔이 필요하다면 1억2000만 엔을 준비하고 만약 1억 엔밖에 조달할 수 없다면 사업계획을 수정해 8000만 엔 수준으로 낮춰야 합니다.

늘 2000만 엔이라는 여유자금이 있어야 합니다. 설비투자 시 가동률을 90% 수준으로 맞추고 수요가 급증할 때를 대비해 일정량의 재고를 확보해 두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죠. 힘들다고 해서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 없습니다.

차라리 쉬십시오. 해고를 통한 인원 감축보다는 휴식의 기회를 늘려 조직 역량을 재충전하는 것이 다시 올 호황기에 엄청난 성장 동력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마쓰시타는 1965년 일본에서 가장 먼저 주 5일제를 시행했습니다.

당시 저는 “국가 간 경쟁에서 승리하려면 직원 모두가 능률을 2~3배로 올려, 서구 일류 기업에 조금도 뒤지지 않아야 한다. 그러자면 미국처럼 5일 동안 일하고 이틀은 쉬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사회 : 이 회장님께서도 후대 기업인들에게 한 말씀 해주시죠.

이병철 : 1982년 미국 보스턴대에서 저에게 명예 박사 학위를 주겠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학위 수여식에서 저는 “나는 항상 새로운 사업을 개척하고자 하는 열망을 갖고 있다. 내가 뭔가 새로운 것에 도전해서 성공을 거두면 다른 많은 사업가들에게 새로운 기회의 문이 열린다.

나는 조국이 필요로 하는 사업을 성공적으로 해내는 것이 사업가가 조국을 위해 할 수 있는 최대의 기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했던 말은 제가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가졌던 좌우명이고 지금의 기업인들에게도 전해주고 싶은 얘기입니다.

사회 : 경영인이 지녀야 할 덕목에 대한 두 분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이병철 : 위대한 기업인은 시대를 꿰뚫어보는 안목, 갈고 닦은 국제 감각, 무엇이 국가·사회·인류에 유익한가를 식별하는 확고한 가치관, 믿는 바를 단호히 추진해 나가고 실천하는 강한 의지와 신념, 고결한 품성이 조화를 이뤄야 합니다. 이익을 만들어내는 능력은 기본입니다. 적정한 이익을 내지 못하는 경영자는 존재할 이유가 없죠.

현실에 대한 안주는 경영자에겐 독과 같습니다. 기업을 통해 국가에 기여한다는 사업보국이 좌우명인 저에게 현실 안주는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인간의 가장 고귀한 가치가 뭡니까. 바로 봉사입니다.

기업의 사명은 국가, 국민, 인류에 봉사하는 것입니다. 기업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한편, 국가에는 세금을 납부하는 것이 사명입니다. 주주에게 배당금을 지급해야 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마쓰시타 : 이 회장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제가 현직에 있을 때 제 스스로 숱하게 반문했던 것은 ‘우리 회사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내 경영의 목적은 무엇인가’였습니다. 무릇 참된 경영인이라면 이 물음에 확고한 신념이 서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소신입니다.

이 회장님의 말씀처럼 ‘나는 사회를 발전시키는 한 명의 구성원이다’라는 사업관과 인생관이 CEO부터 말단 직원까지 확고하게 세워져 있다면 그 기업은 반드시 성공합니다. 희망과 꿈을 심어주지 못하는 사람은 리더로서 자격이 없습니다.

사회 : 두 분은 인재 양성에도 남다른 혜안을 가지셨다고 평가되는데요.

마쓰시타 : 개인적으로는 불경기야말로 인재 육성에 가장 적합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기업이 호황일 때는 너무 바쁘고, 현업에 매달리느라 인재 육성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히려 중소기업에 인재 육성은 더욱 절실한 부분입니다.

대기업 사원들은 능력을 70% 밖에 활용하지 못하지만 중소기업은 100%, 방법에 따라서는 120%를 활용해야 하지 않습니까. 이점이 바로 중소기업의 강점입니다. 간혹 경영자라면 ‘개인을 중심으로 생각해야 하는가, 아니면 조직을 중심으로 생각해야 하는가’라고 판단해야 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만일 어느 한쪽으로 선택해야 한다면 저는 인재를 선택할 것입니다. 조직이야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바꿀 수 있지만 인재는 그러지 못하기 때문이죠. 제가 개인 경영 형태였던 회사를 1935년 주식회사 체제로 바꿔 회사를 9개 조직으로 개편했을 때 일입니다.

당시로선 획기적인 방식이다 보니 조직이 처음부터 삐걱거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믿고 맡겼습니다. 마쓰시타전기가 일본 최초로 사업부제라는 분업화된 조직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도 부하 직원에 대한 신뢰 때문입니다.

마쓰시타정경숙을 설립해 미래 일본을 책임질 인재를 만들어내고자 한 것도 ‘사람만이 희망’이라는 생각에서였습니다. 한번은 젊은 직원에게 “마쓰시타전기는 무엇을 만드는 곳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때 “마쓰시타전기는 사람을 만드는 곳입니다. 그리고 상품도 만들고 있습니다. 전기제품도 만들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인사가 만사입니다.

이병철 : 사람들은 저를 성공한 사업가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비결을 묻습니다. 저는 그때마다 고용하는 사람, 즉 사람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그 비결이라고 주저 없이 말합니다.

1년의 풍요를 바란다면 곡식을 기르고, 10년의 풍요를 바란다면 나무를 심고, 100년의 풍요를 바란다면 사람을 키워야 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혈연, 지연, 학연을 타파하고 최고의 인재를 등용해 왔습니다. 아울러 평생고용이라는 원칙은 제 경영의 요체입니다.

기준에 미달하는 직원이 있다면 해고가 아니라 적합한 일자리를 주거나 추가적인 업무 훈련을 시켜야죠. 의심나는 사람은 쓰지 말되, 쓴 사람은 절대 의심해서는 안 됩니다.

공채를 통해 대졸 신입 사원을 선발할 때 저는 직접 면접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습니다. 저는 이 시간이 결코 아깝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소중한 인재를 절대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회 : 두 분의 인생을 뒤바꾼 터닝 포인트를 꼽으신다면.

마쓰시타 : 사실 6·25 전쟁 직전에 우리 회사는 경영 상태가 최악으로 치달았습니다. 하지만 6·25 전쟁 발발로 미국으로부터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당시 우리 회사의 화두는 국제화였죠. 네덜란드 필립스와 기술제휴를 위해 교섭에 들어간 게 1952년 무렵이었습니다.

필립스와의 제휴로 마쓰시타는 전기회사에서 전자회사로 변신했습니다. 1960년 일본 내 TV 생산 누계가 100만 대를 돌파하며 업계 1위로 올라선 것은 물론 가전 브랜드를 내쇼날, 파나소닉, 테크니크, 퀘이사로 다각화시켜 제품개발에 나선 것도 바로 이때였습니다.

이병철 : 제 인생의 터닝 포인트라면 1969년 1월 삼성전자공업을 설립했을 때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당시 삼성은 한국비료를 정부에 헌납한 시기였죠. 물론 한국비료나 삼성그룹의 모태가 된 제일제당도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만 오늘날 삼성을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만든 삼성전자공업 설립은 제겐 숙명과 같았다고 생각됩니다.

마쓰시타와 마찬가지로 저희도 산요전기와 신니폰(NEC)과의 기술제휴를 통해 전자산업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일본 전자회사들은 벤치마킹 대상이었습니다. 반도체가 10년 후 삼성의 미래를 지켜줄 등불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한 것도 일본 기업과의 합작제휴 직후였죠.

당시 삼성이 반도체사업을 한다니까 사람들의 비웃음이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습니다. 다가오는 21세기에 대한민국이 무엇으로 먹고 살까. 석유 한 방울 나지 않지 않는 이 나라가 일본을 뛰어넘는 길은 반도체 밖에 없다는 생각이었죠.

사회 : 후대 경영인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무엇을 꼽으시겠습니까.

마쓰시타 : 사업은 반드시 성공해야 하며 또 성공해야만 진정한 사업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사업이 실패했다면 그건 모두 경영자의 책임이죠. 지금의 경기 불황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찾아올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상식과 통념에 의지해서는 어려움을 극복하기 힘듭니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죠. 그러기 위해선 자신이 모든 것을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말단 직원에게서라도 작은 것 하나를 배우는 자세로 나선다면 지금의 위기가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이병철 : 제가 1982년에 이미 지적했지만 앞으로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 간 경제협력은 더욱 강화될 것입니다. 지정학적인 위치에서 볼 때 우리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가 펼쳐지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또 한 가지 지적하고 싶다면 사업가는 늘 머릿속에 신규 사업이 펼쳐져 있어야 합니다. 전 살아오면서 늘 10가지 이상의 프로젝트가 소용돌이치며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게 오늘날 삼성을 만든 비결입니다.
[가상 대담] “인재 양성·역발상 전략이 살 길이다”
송창섭 기자 reals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