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경국
일러스트·이경국
스포츠 구단의 재정을 지원하는 차원에서 복권 판매 허용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국기(國技)’라 할 수 있는 미식축구(NFL)가 지난 시즌부터 매 경기마다 ‘스크래치식 즉석 복권(lottery)’ 판매를 허용했다.

1930년대 경제 불황 이후 최대의 경기 침체를 겪으면서 새로운 ‘돈줄’을 찾던 NFL 구단주들이 오랫동안 금기시해 오던 ‘엄격한 비(非)도박 정책(strict no-gambling policy)’을 포기하기에 이른 것이다.

미국의 경제 위기는 그동안 음성적으로만 마케팅을 할 수밖에 없었던 ‘도박 자금’을 모두 양성화하는 계기가 됐다. 메이저리그, 프로 농구(NBA)에 이어 최대 인기 스포츠 종목인 NFL까지 이 자금을 끌어들임으로써 미국의 프로 스포츠 시장에는 기업들의 마케팅 활동을 위한 어떤 규제도 사실상 존재하지 않게 됐다.

미국의 ‘로터리’ 사업은 각 주의 관할 아래 이뤄진다. 연방정부처럼 미국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복권사업 주체는 없다. 1840년 첫 등장한 로터리는 음성적인 형태로 발달하다가 각 주에서 운영하는 지금의 방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1964년 뉴햄프셔주에서 처음으로 복권사업을 합법화한 뒤 42개 주에서 로터리를 공식화했다.

1985년부터는 각 주들끼리 서로 연계해 ‘파워볼(Powerball)’, ‘메가 밀리언스(Mega Millions)’ 등의 이름으로 복권사업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로터리의 주된 수입원은 각 프로 스포츠 구단들이 도입한 즉석식 스크래치 복권이다.

지난해 5월 NFL이 즉석 복권 판매 허용을 발표하자마자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가 매사추세츠주 복권회사와 첫 계약을 맺은 이래 전체 32개 팀 가운데 절반이 넘는 20여 개 팀가량이 복권 판매 계약을 체결했다.

신시내티 뱅골스와 클리브랜드 브라운스는 오하이오주 복권회사와 계약했고 테네시 티탄은 테네시주, 그린베이 패커스는 위스콘신주, 댈러스 카우보이와 휴스턴 텍슨스는 텍사스주, 뉴욕 자이언츠와 뉴욕 네츠는 뉴저지주, 볼티모어 레이븐스는 메릴랜드주, 워싱턴 레드스킨스는 버지니아주, 시애틀 시호크스는 워싱턴주 로터리 등과 각각 손을 잡았다. 협상 중인 팀들도 많아 조만간 거의 대부분의 팀들이 즉석 복권을 판매할 전망이다.

대부분 5달러짜리인 즉석 복권에는 각 팀의 ‘헬멧 로고’가 15∼20개씩 새겨져 있다. 이 부분을 벗기면 바로 당첨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1등 당첨 금액으로는 주로 10만 달러를 책정하고 있다. 시애틀 시호크스는 워싱턴주 로터리와 1등 상금으로 50만 달러, 워싱턴 레드스킨스는 버지니아주 로터리와 100만 달러를 내걸기도 했다.

‘첫 번째 찬스’에서는 현금이 주어지고 현금과 별도로 다양한 상품이 걸린 ‘두 번째 찬스’에도 도전할 기회가 주어진다. 두 번째 찬스에 당첨되면 평생 시즌 티켓, 2010년 시즌 티켓, 사인 볼, 사인 기어, 유니폼 등 팀에서 판매하는 티켓과 각종 상품을 받을 수 있다.

프로 스포츠 구단들이 즉석 복권 판매 수입을 모두 챙기는 것은 아니다. 수익금의 일부를 지역사회 복지 기금으로 돌린다. 복권 판매를 통해 구단들은 새로운 재원을 확보하고 각 주는 지역 발전 기금을 마련하는 ‘윈윈(win-win)’ 비즈니스인 셈이다.

NFL 구단들은 복권 판매 대가로 얼마나 벌어들일까. 최근에 계약을 맺은 댈러웨이 카우보이스는 텍사스주 로터리와 이번 시즌 기간 1700만 장의 즉석 복권을 판매키로 하고 420만 달러를 받기로 했다. 이 가운데 145만 달러가 텍사스 주민들에게 돌아간다.

즉석 복권 판매 수입은 두 가지 경로를 통해 입금된다. 텍사스주 로터리는 즉석 복권 판매 계약을 맺은 댈러스 카우보이에 ‘라이선싱’ 대가로 115만 달러를 지불한다. 그리고 비현금 상품이 걸린 ‘두 번째 찬스’ 당첨자들에게 지급할 각종 티켓 등의 구입 명목으로 305만 달러를 추가로 전달한다.

필라델피아 이글스와 피츠버그 스틸러스는 펜실베니아주 로터리와 총 4300만 장의 즉석 복권을 팔기로 하고 두 팀이 합쳐 790만 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메릴랜드주 로터리와 손잡은 볼티모어 레이븐스는 즉석 복권에 팀 로고를 사용토록 해주는 대가로 100만 달러를 받았고 20년 시즌 티켓을 포함한 각종 티켓 구입 판매 대금으로 100만 달러를 별도로 챙겼다. 구단 입장에서는 수익도 챙기고 장기 티켓을 판매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둔 셈이다.

즉석 복권은 메이저리그에서 먼저 허용했다. 지난 2006년에 보스턴 레드삭스가 매사추세츠주 로터리와 가장 먼저 즉석 복권을 팔기 시작했고 이어 프로 농구의 보스턴 셀틱스도 즉석 복권을 팔았다.

매사추세츠주 로터리는 총 7600개의 대리점을 갖고 있으며 가장 왕성하게 로터리사업을 전개하는 곳이다. 1971년에 설립된 매사추세츠주 로터리는 지난 2005년 기준으로 연간 총 44억 달러의 매출 수입을 올렸고 이 가운데 9억3600만 달러를 주내 351개 도시와 타운에 배분했다.

지난 2006년 보스턴 레드삭스의 복권 판매 수입 현황을 보면 구단들이 복권을 통해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지 가늠해 볼 수 있다. 보스턴 레드삭스와 매사추세츠주 로터리는 5달러, 10달러, 20달러짜리 즉석 복권을 팔았는데 3년간 총 6억320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 가운데 매사추세츠주가 가져간 돈은 8300만 달러이고 운영비는 평균 2.1%인 1320만 달러가 소요됐다.

그래도 미국의 프로 스포츠는 영국 프리미어리그에 비하면 아직도 보수적인 편이다. 미국은 즉석 복권 판매는 허용했지만 경기 결과에 돈을 거는 것은 도박성이 강하다는 이유로 여전히 불허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영국의 프리미어리그는 도박 자금이 가장 주된 수입원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마권업자인 베트프레드는(Betfred)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공식 마권업자다. 베트프레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들에게 자체 온라인 스포츠 베팅 포커·카지노·로또 사이트 등을 제공한다. 심지어 볼튼, 웨스트햄, 위건, 울버햄튼 등은 내년 시즌 ‘유니폼 스폰서’로 도박회사를 선정해 이들 회사의 이름을 가슴에 달고 뛴다.

국내는 도박이나 복권 등이 사행성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배척하는 풍토가 아직 강하다. 하지만 이제는 전향적으로 이를 받아들일 시점이 됐다. 매년 적자에 허덕이고 있는 국내 프로 스포츠 구단들의 재정을 지원하고 경기의 질을 높이는 차원에서 즉석 복권 판매 허용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국내에서 프로 스포츠를 운영하는 기업들은 ‘이윤 창출’이라는 기업 목적과는 정반대로 ‘사회 공헌’ 차원에서 팀을 운영하고 있다. 적자 운영에 허덕이는 기업들은 미국의 프로 스포츠 구단처럼 여러 기업들로부터 자금을 끌어들일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결국 정책적인 지원을 받아야만 악순환 구조를 끊을 수 있다.

미국 프로 스포츠 전 종목에서 일반화된 스크래치식 즉석 복권 판매가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각 프로 단체별로 당첨 금액 상한을 정하도록 하고 지나치게 도박성이 강조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즉석 복권을 운영토록 하면 팬들은 경기를 보는 즐거움에다 복권 당첨의 행운이 곁들이게 되고 구단들은 관중 동원과 수익 개선에 큰 보탬이 될 것이다.

마이애미(미 플로리다주)=한은구 한국경제신문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