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트리티니 홀딩스 김현수 대표

‘미국 호떡’으로 이룬 성공 신화
4년 전 여름. 서울 청담동에서 문을 연 팬케이크 가게에 ‘이변’이 일어났다. 개장 첫날 현수막을 떨어뜨린 후 만석이 되기까지 걸린 시간이 10초도 되지 않았던 것. 이후 들어서는 손님들은 하는 수 없이 긴 줄로 늘어서야 했다.

갑작스런 컴퓨터 오류로 메뉴판도 완비되지 않은 가게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가게 대표마저도 이해하기 어려웠던 이 전설(?)은 미국 가정식 팬케이크가 주 메뉴인 ‘버터핑거 팬케익스’의 이야기다. 팬케이크 신화의 주인공, 더 트리니티 홀딩스 김현수 대표의 이야기다.

김현수 대표를 만난 곳은 얼마 전 문을 연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에 위치한 델리 레스토랑‘델리. 하인즈버그(Deli. HeinzBurg)’. ‘델리. 하인즈버그’는 그의 첫 번째 홈런인 ‘버터핑거 팬케익스’에 이어 두 번째로 출시한 델리 레스토랑 브랜드다. 감색 슈트에 서류가방 대신 백팩(back pack)을 매고 나타난 그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상가 갈 때 아니고는 입지 않는 슈트예요. 영 어색한데요. (웃음)” 생각보단 젊었다. 또 서른 후반의 한국 남자치곤 다소 튄다. 미대 출신이 경영학 석사(MBA) 과정을 밟고 결국 ‘미국 호떡’ 장사를 하게 된 사연, 그 드라마 같은 이야기가 시작됐다.

“아버지, 호떡도 사업입니다”

“사업계획서를 탄탄히 준비해서 아버지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는데 아버지가 대뜸 ‘MBA 하고 와서 미국 호떡 장사를 하겠다고? ’그러시더라고요. 그래서 호떡도 사업이고, 단순한 호떡 장사가 아니라 프랜차이즈 사업이라고 설득을 했죠.”

온 나라를 허덕이게 했던 1990년대 후반의 외환위기. 미국에서 MBA를 마친 둘째 아들이 하필이면 그때 귀국했다. 서울에는 시쳇말로 ‘MBA 출신 폐인’들이 즐비했던 시절, 그래도 백수는 될 수 없다며 글로벌 기업에 취직을 했다.

하지만 월급쟁이로 늙기는 억울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아들이 처음으로 벌인 ‘미국식 팬케이크 사업’ 프레젠테이션은 아버지의 호통 끝에 그렇게 용두사미로 끝이 났다. 자연 아버지에게 기대했던 사업자금 지원도 수포로 돌아갔다.

“IT 기업에 한 2년 다니다가 영어학교를 하겠다고 준비만 하다 1년 만에 접고 수입차 회사 홍보팀에서 일하기도 했어요. 아버지 덕분에 꽤 비싼 수입차를 탔는데, 한번은 차 사고가 크게 났는데 수리비 견적이 제 연봉을 넘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월급쟁이는 아니다 싶었죠. (웃음)
그러던 어느 날 동생 집에 갔는데 그때가 일요일 오후였어요. 월요일에 처리할 회사 일 준비로 서둘러서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더니 동생이 신발을 신는 제 뒤통수에 대고 대뜸 ‘그게 형 회사야? 형 일을 찾아서 그렇게 해’ 그러는 겁니다. 그 말에 신던 신발을 벗고 제수씨한테 밥상에 숟가락 하나 더 놔 달라고 했어요. 내 인생을 살아야겠다 싶었죠.”

자신은 인정하지 않지만 사실 그는 사업가적 DNA를 타고난 듯하다. 빼어난 사업가인 아버지의 피를 받아 삼형제 모두 지금은 입지를 확실히 굳히고 있기 때문. 맏형은 서울에서 꽤 유명한 치과원장이고 막내는 IT기업 ‘트리니티 소프트’ 대표다. ‘자기 일’에 뛰어들기는 둘째인 김 대표가 가장 늦었다.

2006년. 미국 MBA 출신, 글로벌 기업 근무 등 화려한 이력과 달리 사업 직전 그의 통장 잔고는 200만 원이 채 안 됐다. 일단 랩톱 컴퓨터를 하나 장만하고 아는 선배의 회사 한편을 비집고 들어갔다. 혼자서 기획서를 쓰고 또 썼다.

첫 프레젠테이션을 아버지에게 보기 좋게 ‘물’먹은 뒤 김 대표는 친구도, 친척도 아닌 사람을 투자자로 물색했다. 결국 모 은행에 다니던 행원 부부가 주식회사 설립 자본금인 5000만 원을 투자했다. 팬케이크에 대한 그의 열정과 참신한 아이디어가 인정받은 결과다. 그때 메뉴 개발이 시작됐다. 역삼동 원룸촌, 프라이팬 하나 들고 입주한 작은 방이 조금 포장해 표현하자면 ‘연구·개발(R&D) 센터’의 효시였다.
‘미국 호떡’으로 이룬 성공 신화
남들이 하지 않는 일, 브랜드 인큐베이터

“어느 날 친구들이랑 영화를 봤는데 영화 속에 팬케이크가 등장했어요. 영화가 끝나고 제가 운전대를 잡았는데, 한 친구가 ‘우리 팬케이크 먹으러 갈까’ 그러더라고요. 저도 미국에서 먹던 팬케이크가 갑자기 너무 먹고 싶던 터였는데, 막상 ‘어디로 갈까’ 하니 아무도 팬케이크 파는 곳을 모르는 겁니다. 서울에 제대로 된 팬케이크 전문점이 없다는 걸 깨달았죠.”

첫 사업 아이템이 마치 운명처럼 다가왔다. 한국인의 입맛보다는 미국의 보통 가정에서 만드는 팬케이크를 목표로 지인들과 팀을 짜고 준비에 착수했다.

“초기 1년간의 에피소드는 말로 다할 수가 없어요. 애초엔 세 명이 사업 파트너였는데, 그중 한 명은 ‘바다이야기’ 도박에 빠져 중간에 그만뒀어요. 원룸에서 직원 두 명을 데리고 반죽을 개발하는데, 반죽을 치대다가 졸린 나머지 반죽에 얼굴을 박고 자는 바람에 곰팡이 효소가 코로 들어가 일주일간 숨을 못 쉬기도 했죠. (웃음)

프랑스의 요리학교인 르 코르동 블루에 버금가는 미국 CIA출신 직원에게 제가 얼마나 스트레스를 줬던지 하루는 쓰레기 버리러 갔다가 야구 방망이를 하나 주워 와선 자기를 실컷 때리라고 하더군요. 실컷 맞고 그만두면 덜 미안하니 빨리 때리라는 겁니다. 하하하 .”

그러던 어느 날 ‘유레카’를 외치며 반죽의 비법을 발견했고, 이후 팬케이크, 와플 등 메뉴 하나하나가 탄생했다. 미술을 전공한 김 대표가 로고에서 매장 인테리어, 포장지 하나까지 직접 디자인했음을 물론이다. 작은 원룸에서 주말마다 외국 생활 경험자를 대상으로 한 ‘오픈하우스’ 시식회는 보다 미국적인 팬케이크 맛을 창출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이 따위로 만들려면 때려치워라” 하는 쓴소리를 수없이 들으며 1여 년을 고전한 결과, 2006년 7월 청담동에 ‘버터핑거 팬케익스’ 1호점을 오픈했다. 개장 첫날부터 탄 입소문은 무서운 속도로 퍼졌고 이후 강남점과 분당점을 속속 개장했다. 지난해 매장 세 곳의 총 매출액은 70억 원. 최근에는 독일식 버거, 치즈, 식재료를 판매하는 델리 레스토랑인 ‘델리. 하인즈버그’ 1호점을 오픈했다.

“버터핑거 팬케익스는 가맹점 문의가 줄을 이었지만 직영점 세 곳이 끝입니다. 가맹점 내고 싶다고 찾아오는 분들에게 저는 오히려 하지 말라고 설득을 합니다. 마진율이 생각보다 많지 않고, 변기가 막혔을 때 자기 손으로 변기 구멍 뚫을 준비가 되지 않은 분이라면 이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제 궁극적인 꿈은 브랜드 인큐베이터예요.

브랜드 하나를 탄생시켜서 누가 맡아도 시스템에 전혀 문제 없이 운영될 수 있을 정도로 만들어 주는 것이 브랜드 인큐베이팅이죠. 더 트리니티 홀딩스 역시 요식업 회사라기보다는 브랜드 인큐베이팅 회사인 셈이죠.”

김현수
더 트리티니 홀딩스 대표
미국 오클라호마시티대 서양화 전공
오클라호마시티대 MBA
SAS 근무
메르세데스 벤츠 코리아 근무
현재 더 트리니티 홀딩스 대표

글 장헌주·사진 이승재 기자 c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