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중순 이후 2개월 이상 세계경제와 한국경제를 짓눌러 왔던 ‘G3’ 리스크(중국의 긴축불안, 미국의 은행규제안, 유럽의 재정위기)가 지난달 중순을 고비로 해소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중국의 기준율 인상을 계기로 불거졌던 긴축 우려는 이달부터는 줄어들 전망이다. 지난달에 열렸던 전국인민대표자대회 국정연설에서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급격한 출구전략보다 종전의 성장정책을 지속해 나갈 뜻을 비췄기 때문이다.

전인대 이후 추진될 긴축정책은 성장을 유지해 나가되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작용만 치유해 나가는 미세 조정책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대형 은행규제안은 소강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와 월가 금융사 간 ‘세기의 대결’이라 불릴 만큼 여전히 관심을 모으고 있으나 법제화 과정에 상당한 난항이 예상된다. 11월에 있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지지도를 다시 끌어올리지 못하면 ‘안’ 그 자체로 그칠 것이라는 게 월가의 시각이다.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유럽의 재정위기도 해결 기미를 보이고 있다. 그리스가 최선을 다한 추가 긴축안과 이에 대한 긍정적 평가로 애초 계획보다 많은 국채를 비교적 낮은 금리로 발행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독일, 프랑스 등의 자금지원이 없어도 추가 긴축안을 성실히 이행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채발행을 계속해 나간다면 국가부도 사태에 대한 우려는 빠르게 잦아들 것으로 예상된다.
원자바오 총리가 참석자들과 악수하고 있다.
원자바오 총리가 참석자들과 악수하고 있다.
4월 이후 환율 움직임, 그중에서 위안화 절상 가능성을 주목해야

‘G3’ 리스크가 해소된다면 그 다음 세계경제와 한국경제에 복병이 될 수 있는 변수로 ‘환율 움직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이달 말 미국 의회에 제출할 중국 등 개도국에 대한 환율보고서 발표를 앞두고 한국 등 대외의존도가 높은 국가를 중심으로 환율 움직임에 심한 변동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위안화 절상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 간 마찰이 어떻게 될 것인지가 주목된다. 작년에도 오바마 행정부는 위안화 절상에 대해 강한 의지를 갖고 있었지만 당면한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각국 간 협조가 절실하다고 보고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지 않았다. 이러한 미국의 선택은 금융위기와 세계경기를 이 정도까지 개선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올해는 사정이 다르다. 4월 말 미국 의회에 제출할 개도국에 대한 환율보고서에서 이미 오바마 행정부는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려는 강한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무역불균형 해소’라는 명분도 있지만 불과 1년 만에 ‘슈퍼맨’에서 ‘클라크’라 불릴 만큼 낮아진 오바마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이 방안이 가장 설득력이 높아서다.

이에 대해 중국은 ‘위안화 평가절상 불가론’을 견지하고 있다. 양국이 위안화 절상이나 이에 상응하는 대안을 찾지 못하고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경우 행정명령으로 발동되는 ‘슈퍼 301조’를 부활해 전방위 통상압력을 가하는 수순이 예상된다.

이 경우 보호주의 물결이 확산되면서 세계경기가 다시 어려워질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미국 국채보유 규모를 지난해 11월 이후 줄이고 있어 그동안 우려했던 ‘금융핵무기 시나리오’를 사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낳고 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미 프린스턴대 교수와 대니얼 아이켄신 워싱턴 케이토연구소 무역정책연구센터 부소장 등은 “앞으로 미국과 중국이 무역전쟁을 한다면 중국은 가장 먼저 미국 국채 덤핑판매를 무기로 내세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위안화 절상 놓고 마찰…양국 간 무역불균형 해소가 관건

최근 몇 년간 무역불균형과 위안화 절상, 해외자원 확보, 지구온난화, 중국 내 인권문제 등을 둘러싼 양국 간의 갈등요소는 축적돼 왔다. 가장 큰 갈등요인인 무역불균형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해소되는 기미를 보이고 있으나 그 규모는 여전히 큰 상황이다. 지난해 중국의 대미 무역흑자는 줄어들었지만 미국의 전체 무역적자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60%를 넘는다.

미국은 이런 무역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위안화가 큰 폭으로 절상돼야 하고 중국의 성장체제가 수출 주도에서 내수 중심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계속 주장해 왔다. 지난해 10월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Peterson Institute for International Economics)는 위안화가 15∼25% 정도 저평가돼 있다는 연구보고서를 발표했다.

반면 중국은 저축률을 높이고 재정건전성을 확보하려는 미국의 노력이 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위안화 절상 요구에 대해 2008년 이후 위안화가 대부분의 통화에 대해 절상됐다는 점과 미국과 중국 간 제품경합도가 낮아 위안화 절상만으로는 미국의 무역적자 해소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 등을 근거로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혀왔다.
미·중 마찰과 중국의 ‘금융핵무기’ 시나리오
해외자원 확보 등 양국 마찰 확산

해외자원 확보를 위한 양국의 경쟁도 갈수록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그동안 미국은 군사력과 외교력을 바탕으로 중동, 중앙아시아 등 산유국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는 한편 민간 메이저 기업을 앞세워 세계 자원시장을 주도했다. 특히 미국계 메이저 기업들은 풍부한 자금과 기술, 정보력 등을 토대로 세계 자원시장을 장악해 왔다.

중국도 2000년대 중반 이후 해외자원 확보를 위해 자원 부국에 대해 인프라·산업단지 건설 등과 같은 지원을 대폭 늘리고 국영기업 등을 통해 자원개발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아프리카, 중남미, 동남아에 대한 투자와 원조활동을 강화한 점이 눈에 띈다.

아직까지 해외자원 확보를 둘러싼 양국의 직접적인 마찰은 없으나 중국의 자원 확보전략이 핵확산 저지, 테러 전쟁 등 미국의 대외정책과 부딪히는 사례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과 적대 관계에 있는 이란, 수단 등과 자원개발 등을 위한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유엔에서 이란 핵개발 제재 움직임에도 소극적이다. 또 미국의 핵확산 저지, 테러 전쟁 등 대외정책을 기본적으로 지지한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으나 자국의 해외자원 확보 정책을 보다 중시하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갈수록 국제사회의 가장 중요한 이슈로 부각되는 지구온난화 문제와 관련해서도 미국과 중국의 견해차가 크다. 지난해 12월 코펜하겐 기후변화협약 회의에 앞서 개최됐던 양국 정상회의에서 온실가스 감축방안에 대한 사전합의에 실패했다. 코펜하겐 기후변화협약 회의에서도 미국 등 선진국들의 온실가스 감축의무 부과안에 대해 중국이 강력하게 반발했다.

중국의 아킬레스건인 인권문제를 놓고 마찰이 심화될 조짐
미·중 마찰과 중국의 ‘금융핵무기’ 시나리오
중국의 인권문제는 미국이 양국 수교 이후 꾸준히 거론해온 중국의 아킬레스건이다.

미국은 연례 인권보고서를 통해 중국 내 인권문제를 비판해 왔는데 지난해 2월에 발표했던 ‘2008년 인권보고서’에서는 죄수들에 대한 탈법적 살인과 고문, 티베트·신장 위구르 지역의 문화와 종교 탄압 등을 지적하면서 인권문제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미국이 중국의 인권문제를 거론하는 것에 대해 중국은 미국이 이중잣대를 적용한다고 역공한다.

중국은 ‘2008년 미국 인권기록(2009년 2월)’에서 미국의 강력범죄 발생건수, 노숙자·마약중독자·자살자 증가, 아동학대, 최대 무기수출국, 이라크 전쟁 등을 거론하면서 미국이 자신의 인권문제를 깊이 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주도권 문제와 관련해 미국은 중국을 G2로 대우하면서 국제사회에서 중국이 적극적인 역할을 해줄 것을 강조하고 있으나 중국은 G2 용어 사용에 반대하는 등 미국의 요구를 부담스러워하는 입장이다.

중국은 시장경제, 민주주의가 글로벌스탠다드로 자리 잡고 있는 국제사회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할 경우 정치·경제체제에 대한 개혁 요구가 대내외에서 증대될 가능성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의 외교정책은 미국의 패권주의와는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인근 아시아와 일부 자원부국을 중심으로 자유무역협정(FTA), 투자와 원조 확대 등을 통해 영향력을 꾸준히 확대하는 전략을 추진해 왔다. 당분간 중국은 이런 입장을 견지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미·중 관계 어느 쪽으로 풀어갈 것인가?

역사적으로 새로운 강대국이 부상할 때 초기에는 기존 강대국과 협력관계를 유지하다가 종국에는 충돌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최근 새로운 강대국으로 떠오르고 있는 중국과 기존 강대국인 미국이 어떤 관계로 발전할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현재로서는 미국과 중국 간에 존재하는 많은 갈등요인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은 이유로 두 나라 관계가 크게 악화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양국 경제가 밀접하게 연관돼 있어 협조와 양보만이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양국 정부가 다같이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무역불균형이 계속 확대될 경우 장기적으로는 중국에도 이득이 되지 않으므로 이를 시정하기 위한 조치를 단계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중국은 위기를 겪으면서 수출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성장전략이 한계를 드러낸 만큼 장기적인 관점에서 내수 확대를 위한 정책을 추진할 방침을 이미 확정해 놓고 있다. 지난해 12월에 감소하긴 했어도 앞으로 미 국채를 매각할 경우 중국의 대외 자산가치가 크게 저하될 위험이 있어 이를 자제해 나가고 지난달 전인대에서 이 같은 방침이 재확인됐다.

미국도 내적으로는 중국자본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재정적자 감축 노력을 지속하는 한편 무역불균형 해소를 위한 위안화 절상 요구를 적절한 선에서 자제하는 등 지나치게 중국을 자극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중국도 위기의 와중에서 2008년 7월부터 위안화를 사실상 달러화에 페그(peg)시켜 왔으나 경제가 예상보다 빨리 회복됨에 따라 점진적으로 페그제를 철회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구온난화 등 글로벌 쟁점을 미국과 중국의 G2체제가 아닌 G20, 유엔 등 다자간 협의채널을 통해 협의할 경우 두 나라 간의 잠재적인 갈등과 충돌 가능성은 낮아질 전망이다. G2라는 개념이 표면화되면서 중국 내부에서도 자국의 향후 발전방향, 미국과의 관계 등에 대해 다양한 견해가 나오고 있으나 미국과 심각한 갈등과 충돌을 일으킬 정도로 중국이 성장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중국은 전체 경제규모, 1인당 국내총생산(GDP), 군사비 지출규모, 혁신적 개발능력 등 많은 측면에서 미국에 뒤처진다는 점을 인정한다. 따라서 중국은 세계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주체(global actor)가 될 수는 있지만 미국과 같이 세계경제를 이끄는 리더(global leader)가 되기는 원하지 않고 있다.

이처럼 미국과 중국의 경제는 앞으로도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되 협조와 양보를 통해 불균형을 시정해 나가는 방향으로 발전하겠지만 일부에서는 양국의 충돌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공식화하고 있지는 않으나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군사 면에서도 최강국으로 부상하려는 것이 중국의 궁극적 목적이다.

중국은 경제나 군사력 면에서 미국에 뒤처지는 것이 사실이나 반미정서가 강한 지역에 큰 영향력이 있어 미국에 대항할 수 있는 무기를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은 중국과 새로운 냉전(new cold war) 시대가 전개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으므로 무역불균형과 같은 경제적인 갈등해소에만 주력할 것이 아니라 중장기적인 중국의 국가전략을 정확히 인식하고 이에 맞추어 중국에 대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상춘 한국경제신문 객원 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