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의 네이밍과 레이블의 유래

업이 직업이다 보니, 주변 지인들에게 어떤 위스키가 좋은 위스키냐는 질문을 많이 받곤 한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쉽게 대답할 수 없어 뜸을 들이곤 한다.주류 회사에서 오랜 시간 동안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위스키의 원산지도, 맛도, 향도 즐기고 와인처럼 고상하게 그 레이블을 읽으며 위스키의 역사를 떠올리는 천상 ‘위스키 애호가’가 돼 버렸다. 입맛과 취향은 사람마다 모두 다른 법. 내가 지인들이 좋은 위스키에 대해 물을 때마다 종종 하는 위스키의 역사와 레이블에 얽힌 유래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한다.현대 사회에서 소비자가 구매하는 것은 제품이 아닌 브랜드다. 나 역시 처음 제품을 고를 때 그 기준은 당연히 브랜드였다. 위스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미국, 캐나다, 일본 등에 있는 유명한 증류소에서 오랜 기간 숙성되고 마스터 블렌더의 손길을 거쳐 고유의 맛과 향을 내는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아닌 발렌타인, 조니워커, 킹덤, 커티삭 등과 같은 브랜드를 구매하는 것이다.고대의 한 통치자가 생산된 제품에 문제가 있을 경우 책임을 묻기 위해 사용했던 브랜드가 세월이 지나며 경쟁 제품과의 차별화의 수단으로 발전했고, 더 나아가 사람처럼 개성을 가진 존재로까지 인식되고 있다. 목표 고객과 지속적이고 강력한 관계를 맺고자 하는 기업들에게 브랜드는 가장 중요한 무형 자산이자 경쟁력의 원천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위스키를 고르는 중요한 가치 중 하나인 브랜드는 과연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국내 위스키 애호가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발렌타인(Ballentine’s)은 1827년 조지 발렌타인이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에서 식료품 및 주류 판매점을 개업하면서 판매된 위스키로 180여년의 전통을 가진 위스키의 명가이다. 특히 발렌타인의 레이블에는 1938년 스코틀랜드 문장원에서 수여 받은 문장이 새겨져 있다. ‘모든 인류에게 친구’라는 뜻의 ‘Amicus Humani Generis’. 이 문장은 스카치위스키의 본고장인 스코틀랜드 국가와 위스키 제조의 네 가지 핵심 구성 요소인 보리와 물, 증류기, 오크통이 그려져 있다.전 세계적으로 하루에 79만 잔씩 소비된다고 하는 커티삭(Cutty Sark) 또한 재미있는 유래를 가지고 있다. 커티삭은 19세기에 빠르기로 유명한 범선의 이름을 딴 위스키로 ‘커티삭’이라는 단어는 게일어로 ‘짧은 치마’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커티삭이라는 단어는 18세기 유명한 시인인 로버트 번스(Robert Bums)의 시 ‘Tam O’Shanter’에서 유래됐다. 게일어로 바람같이 빨리 달리는 한 젊고 아름다운 마녀가 입고 있던 ‘짧은 치마’를 의미하던 이 말은 19세기 가장 빠른 한 범선의 이름으로 사용됐고 바로 이 범선의 이름이 1923년에는 베리 브라더스 앤 러드 (Berry bros & Rudd Spirits)사가 커티삭 이름으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여느 위스키와는 다른 선명한 노란색 라벨로 차별화되는 커티삭의 상표는 선장 출신의 유명한 예술가 제임스 맥베이가 구상한 것으로 처음 연한 크림색이었으나 인쇄자의 실수로 밝은 노란색을 띠게 됐고 그것이 오히려 파격적인 효과를 나타내 오늘날까지 유지되고 있다고 한다.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위스키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는 조니 워커(Johnnie Walker)는 1820년 잡화점을 운영하던 존 워커가 시작, 알렉산더 워커, 조지 워커로 이어진다. 존 워커의 아들 알렉산더 워커에 의해 1867년 조니 워커의 트레이드마크인 비스듬한 레이블이 만들어 졌다. 조니 워커의 또 하나의 아이콘인 ‘스트라이딩 맨’은 1909년 창업자의 손자인 조지 워커가 당시 유명한 만화가였던 톰 브라운과 점심을 먹다가 선물 받은 그림으로 실크햇을 멋들어지게 쓴 신사가 지팡이를 들고 씩씩하게 걷고 있는 모습과 함께 ‘1820년에 탄생해 아직도 계속 가고 있음(Born 1820 Going Striding)’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한국인들의 입맛에 맞춰 특별히 만들어진 프리미엄 스카치위스키 킹덤 또한 레이블과 병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스카치위스키 최고의 명가 에드링턴 그룹에서 만든 킹덤은 스코틀랜드 최고의 블렌드 마스터 존 람지가 은퇴하기 전 마지막으로 블렌딩한 위스키이다. 존 람지만의 위스키 블렌딩 노하우를 결집해 만들어낸 최고의 위스키라는 뜻의 ‘King of Whisky’와 존 람지의 위스키 인생의 왕국을 세운 위스키라는 의미를 담아 ‘킹덤’이라고 이름 지어졌다. 킹덤은 ‘명예는 나의 생명이다’라는 모토를 가진 스코틀랜드의 유명한 왕가의 문장을 레이블로 삼았고 ‘Adveniat Regnum Tuum’라는 라틴어로 ‘나라에 임하옵시며’라는 주기도문의 일부가 새겨져 있다. 킹덤의 병 역시 스코틀랜드의 기사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킹덤은 왕이 머리에 왕관(캡)을 쓰고 어깨에 망토를 걸친 형상을 기본 디자인으로 사용했고 각 년산별로 레이블, 곡선 등을 달리 했다. 12년산에는 남작(Lord), 17년산에는 백작(Count) 그리고 21년산에는 공작(Duke) 등 각 년산별로 작위를 별칭으로 부여했다.이 밖에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대관식에 헌정하려고 만들어져 ‘여왕의 술’이라는 별칭을 가진 로얄 살루트는 ‘왕의 예포’라는 뜻을 가졌고, 헤이그스는 보조개처럼 움푹 파인 병 모양으로 인해 출시 이후 딤플이라는 애칭을 얻게 돼 애칭이 브랜드가 된 경우이다.이처럼 다양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위스키. 과연 소비자들에게 오랫동안 사랑 받기 위해서 브랜드가 지향해야 하는 궁극적 가치는 무엇일까? 명품적 가치, ‘이름 명’의 명품이 아닌 ‘밝은 명’의 명품, 브랜드를 구매하고 이용하는 소비자를 밝게 빛나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진정한 명품의 가치가 아닐까. 처음 와인을 접했을 때 소믈리에나 주위의 권유에 의해 브랜드를 선택하다가 점점 각자의 취향에 맞는 와인 브랜드를 가지게 되는 경우가 있다. 위스키도 나의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명품 브랜드를 한두개 쯤은 가져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그것이 꼭 스카치 위스키가 아니어도, 높은 연산이 아니어도, 고가가 아니어도 좋으니 말이다.장병선 하이트-진로그룹 하이스코트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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