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리아를 아는가. 오스트리아의 남부 지방으로 주도가 그라츠이다. 그라츠는 386들이 꿈꾸던 곳이다. 80년대에 대학을 다녔다면 이문열의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를 읽었거나, 그 영화를 보았을 것이다. 소설의 여주인공이 숨어들었던 곳으로 소개된 그라츠는 그녀에게 안식을 주고 평화를 맛보게 했다. 그라츠는 오스트리아에서 비엔나 다음가는 대도시이지만, 우리 대도시와는 달리 인구가 25만 명밖에 되지 않는다. 이런 그라츠가 속한 스티리아 지방의 와인은 고품질을 증명해 보이면서 점차 세계시장에 알려지고 있다. 특히 소비뇽 블랑의 수준이 돋보이는 스티리아는 뉴질랜드의 소비뇽 블랑 맛에 질린 소비자들에게 신선한 대안으로 다가오고 있다.스티리아는 오스트리아의 토스카나로 불린다. 삼림이 울창하고 굴곡이 다채로운 산간 지대이기 때문이다. 산 정상에 곧게 나 있는 포장도로를 달리면 좌우로 양조장이나 호텔들이 이따금 모습을 보이는데, 대부분 단정하고 깔끔한 풍모를 지니고 있다. 차를 타고 양조장에 와인을 사러 오는 지역민들을 자주 목격하지만, 이탈리아에서 보는 것처럼 벌크와인을 사러 온 게 아니라 병입 와인을 사러 온 점이 다르다. 아무래도 오스트리아가 이탈리아보다는 유복한 것 같다. 산간 지역이라도 먹을거리는 비엔나 못지않다.스티리아는 서부 스티리아, 남부 스티리아, 남동부 스티리아로 구분된다. 우리 강토의 전남과 경남 사이에 있는 지역을 떠올리면 되는 오스트리아의 남단에 있다. 서부 스티리아는 검은 포도 블라우어 빌바허로 만드는 로제 와인 ‘쉴허’가 유명하다. 1840년 합스부르크 대공 요한이 슈타인츠성을 구입하고, 이듬해 성 주변에 블라우어 빌바허를 심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토착 품종인 블라우어 빌바허는 타닌이 잘 여물지 않아 레드로는 승산이 없었지만, 특유의 신맛이 강렬하여 로제로 탈바꿈했다. 생기 있고 활기찬 신맛으로 무장한 쉴허는 오스트리아의 아페르티프로 각광을 받고 있다. 남서부 스티리아는 화산토양에 자라는 게뷰르츠트라미너의 향기가 특색 있다. 소도시 클뢰크는 스파이시한 게뷰르츠트라미너의 중심지이다. 주위 산간 마을에서 키우는 토종닭 ‘박헨들’을 튀겨낸 요리에 그걸 곁들이면 KFC와 콜라의 극상위 버전으로 느낄 만큼 맛깔스럽다. 그들은 닭도 포도처럼 혈통을 보존하기 위해 품종 이름을 부여하고, 그럼으로써 부가가치를 고양시키고 있다.남부 스티리아는 스티리아 와인의 중심지이며, 특히 소비뇽 블랑이 유명하다. 19세기에 프랑스 루아르 지방에서 들여온 소비뇽 블랑이 이 지역에서 활짝 피고 있다. 미네랄이 풍부하고, 오크 향기가 강한 루아르와는 달리 스티리아의 소비뇽 블랑은 부드러움 속에 단단함을 지닌 피네스가 돋보이며, 복숭아, 자몽 등의 쾌활한 아로마가 인상적이다. 뉴질랜드 말보로의 시퍼런 풀 향기 맛은 좀처럼 나지 않는다. 일조량이 좋은 경사면에 밭을 조성해 빛의 광합성을 통해 생리학적으로 완전히 숙성된 포도를 얻는다. 그렇게 해서 아로마와 질감 그리고 뒷맛이 순차적으로 느껴지면서 전반적으로 하모니를 잘 이룬다. 마치 비엔나 필하모닉의 연주처럼.스티리아의 간판 양조장은 테멘트(Tement)이다. 이곳은 와인지 폴스파프가 매년 펴내는 <오스트리아 와인가이드(The Ultimate Austrian Wine Guide)>에서 스티리아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별 다섯의 평점을 받았다. 양조장 바로 아래 있는 포도밭 치렉(Zieregg)에서 대표적인 싱글 빈야드 소비뇽 블랑이 잉태된다. 2007 치렉은 맛의 깊이가 남다르다. 투명하고 순박한 청량감이 있고, 흰 꽃이나 노란 과일류의 향내가 난다. 시음을 하는 당일이 마침 자신의 생일이라며 양조장 오너 만프레드 테멘트(Manfred Tement)는 1997년 치렉을 추가로 개봉했다. 황금색의 빛깔을 띠고 있었고, 보르도 화이트의 뉘앙스가 풍겼다. 잘 숙성되어 화려한 과일 향기를 냈고, 삼켜도 여전한 산미는 싱싱하게 느껴졌으며, 앞으로 십 년 이상 묵을 거라며 기대해 보라고 했다. 그 와인은 소비뇽 블랑의 다채로운 아로마가 잘 표현되는 빈티지였다.양조장 발터 스코프(Walter Skoff)를 소개하자면, 여기는 오랜 전부터 가족이 영위하고 있던 것을 1984년부터 본격적으로 상업화했다. 친족들이 양조장을 중심으로 레스토랑, 호텔도 경영하여 관광객을 끌어 모은다. 해발 400m에 있는 포도밭들이 여기저기에 흩뿌려져 있는 것은 작업하는 데 불편하지만, 서로 다른 환경에 심은 같은 품종 간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어 좋다고 발터는 말한다. 그는 또 “이 근방의 와인 문화는 그저 얼른 마시는 와인 양조에만 관심이 있었으며, 한 십여 년 전부터야 비로소 와인의 숙성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며 올드 빈티지 시음은 곤란하다고 말했다.발터의 소비뇽 블랑으로는 오벡(Obegg)과 로얄(Royal)이 최고다. 둘 다 수확 후 2년차에 출시한다. 오벡은 싱글 빈야드 와인이다. 2007년산은 화려하고 풍성하다. 이국적인 과일향이 나고, 숙성 기간의 90%는 프랑스 바리끄에서, 나머지는 대형 오크통에서 숙성한다. 바닐라 아이스크림의 맛이 나며, 미디엄 버디를 지닌다. 이 포도밭은 해가 질 때까지 비쳐 매년 완숙된 포도를 얻을 수 있다. 발터와 만프레드 둘 다 스펙트럼이 넓은 스티리아식 소비뇽 블랑을 통해 세계 와인 산지에 고향인 스티리아 이름을 새긴 양조가다.1. Skoff 양조장 건물2. 스티리아의 소비뇽 블랑3. Skoff 양조장 호크슐츠, Credit Walter Skoff4. 테멘트 치렉, Credit Manfred Tement조정용, 올댓와인II 저자 ilikewin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