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투신운용 백재열 팀장

한국투자삼성그룹적립식 펀드는 국내 펀드역사에 한 획을 그은 상품으로 평가 받는다.시가 1400선 안팎에서 지지부진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증시만큼 펀드 시장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올 들어 이어진 베어마켓 랠리로 증시는 많이 회복했지만, 주가가 더 오르지 않자 그동안 손실을 참던 투자자들이 이를 기회로 삼아 하나둘 펀드 시장에서 발을 빼고 있는 분위기다.이럴 땐 어떤 투자 전략을 가져야 하는 걸까.‘날고 기는’ 전문가들은 “좋은 주식에 주구장창 묻어두라”고 권한다. 투자자들도 이러한 사실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어떤 주식에 얼마나 넣어둬야 하는지 감을 잡기란 힘들기만 하다.이러한 상황에 딱 맞는 펀드가 있다. 한국투자삼성그룹주펀드다. 국내 펀드 시장 최초로 2004년 11월 만들어진 이 펀드엔 3조4000억 원이 넘는 돈이 몰렸다. 뒤에 이어진 시리즈는 제외하고 처음으로 설정된 ‘한국투자삼성그룹적립식1’만 그렇다.‘좋은 주식을 오래 묻어둬라’는 조언에 맞는 주식은 대부분 삼성그룹주라는 점에 착안해 만들었다는 이 펀드는 국내 펀드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상품으로 평가 받는다. 단일 펀드로는 유명한 ‘미래에셋솔로몬’이나 ‘3억만들기’ 등을 제치고 가장 많은 돈이 모인 것이다.한국투자삼성그룹주펀드 시리즈를 만들어 운용하고 있는 백재열 한국투신운용주식운용1팀장(사진·43)은 펀드 출시 배경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IMF 외환위기를 겪고 나서 한국 기업들의 재무구조와 회계 투명성이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주가도 쌌죠. 다시 태어난 한국 기업들 가운데 우량 기업을 사서 오래 가져가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해당되는 기업들을 찾아서 모으다 보니 삼성그룹주들이 모두 들어가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것만 편입하는 펀드를 내놓으면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결과는 성공이었다. 자금이 모인 것을 보면 짐작할 수 있겠지만, 이 펀드는 놀라운 수익률을 기록 중이다. ‘한국투자삼성그룹적립식1’ 펀드의 설정 후 수익률은 6월16일 기준 177.98%로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 상승률(80%)보다 2배가 넘는 수익을 내고 있다. 특히 이 펀드는 적립식으로 운용되기 때문에 설정 후 가입하고 꾸준히 자금을 납입했다면 더 높은 수익을 낼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이 펀드가 히트를 치자 유사 펀드도 쏟아졌다. 다른 자산운용사들에서 삼성그룹주펀드를 내놓는가 하면 SK그룹주펀드 CJ그룹주펀드 등 그룹주펀드들이 잇따라 등장한 것이다. 여기에 삼성그룹 계열사인 삼성투신운용은 최근 ‘삼성이 하면 다릅니다’라는 광고 문구를 앞세워 삼성그룹주펀드를 내놨다. 이에 대해 백 팀장은 “삼성그룹 계열사라고 그룹 내부정보를 알 수 있는 환경도 아니다”며 “뭐든 원조가 낫듯이 그동안의 노하우로 삼성그룹주펀드는 한국투신운용이라는 말이 나오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그가 말하는 노하우는 다름 아닌 가치투자다. 평소 여가 시간엔 경제와 사회관련 서적을 즐겨 읽는다는 그는 독서도 가치투자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사회의 구조와 흐름을 알면 투자에도 도움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백 팀장은 행정학을 전공하고 대학원도 행정대학원을 나왔다.“그렇다고 주식시장의 대가들처럼 특별한 운용철학 같은 건 없습니다. 기업을 보는 시각에 도움이 되고 이것이 대가들이 말하는 30~40년간 보유할 만한 종목을 찾는 데 도움을 줍니다. 삼성그룹주펀드도 이런 독서 도움으로 나오게 된 것입니다.”투자 대상이 삼성그룹주로 제한돼 있으니 운용하는 데 답답할 법도 했다. 3조4000억 원이 넘는 자금을 삼성그룹주에만 쏟아 붇는 것도 대단히 어려운 일이란 생각도 들었다.백 팀장은 “국내 유가증권시장의 시가총액이 700조 원쯤 되는데 이 가운데 삼성그룹주를 모두 모아 보면 20%가량인 140조 원 정도 된다”며 “3조 원짜리 펀드로 140조 원 시장을 상대하는 것이므로 자금 운용에 불편한 점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다만 종목 선택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삼성그룹주만을 투자 대상으로 제한하면서 펀드가 추종해야 할 벤치마크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추종하는 인덱스가 있다면 성과가 분명하게 나타나겠지만 벤치마크가 없으니 잘하고 있는지를 시장과 비교해야 된다”며 “종목 비중을 가져가는 것도 기준이 없다는 점도 그렇다”고 설명했다.종목 선정은 백 팀장이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이 펀드를 운용하는 2명의 매니저를 포함해 투자위원회 등의 결정이 필요하다. 우선 이 회사의 애널리스트들이 탐방이나 분석을 통해 종목을 선정하면 매니저들끼리 회의를 소집한다.종목을 추리면 김영일 주식운용본부장이 위원장으로 있는 투자위원회에서 편입 여부와 비중을 결정한다. 위원회에서 회의를 하지만 다수결은 아니고 위원장인 김 본부장이 최종 결정한다. 이러한 회의는 1년에 두 번 정도 하고 이는 가이드라인으로 남아 향후 운용의 기준이 된다.이 과정에서 삼성그룹주들은 투자 매력도에 따라 5등급으로 나뉜다. 최고 등급으로 자산의 10% 이상 넣을 수 있는 S등급부터 D등급까지다. 순전히 운용 철학대로 성장 지속 가능한 종목들이 좋은 점수를 받는다. 백 팀장은 이 펀드 외에도 일종의 사회책임투자펀드(SRI)인 ‘더좋은지배구조’펀드도 운용을 맡고 있다. 성장 지속 가능한 종목과 관련해서 최근의 삼성그룹이 녹색 산업에 주력하려는 움직임을 백 팀장은 높게 평가했다. 이 부분을 설명하면서 그는 ‘고릴라 게임’이라는 책을 소개했다.“고릴라 게임이라는 책의 내용은 초기엔 수많은 원숭이가 살고 있다가 모두 도태되고 한 마리의 고릴라가 살아남는다는 내용입니다. 증시에서도 테마는 항상 있어 왔고, 그게 산업 발전의 원동력이 됐습니다. 녹색 성장 테마도 이와 비슷합니다. 단순 테마가 아니라 산업 발전을 이끌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는데, 문제는 살아남는 회사가 어디냐는 겁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자본과 기술을 보유하고 뛰어난 인재를 많이 확보한 삼성그룹 기업들이 녹색 성장 단계에서도 살아남을 확률이 매우 높다고 봅니다.”백 팀장은 작년처럼 삼성그룹에 문제가 있을 때엔 주식을 더 늘려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그는 “주가는 결국 기업 실적을 따라가게 마련인데 기본적으로 작년 삼성사태는 이와 관련이 없었다”며 “이 문제로 주가가 빠진다면 이는 사야 한다는 신호”라고 했다.글 김재후 한국경제신문 기자 ·사진 이승재 기자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