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 휴게소 우동의 원조, 동성식품의 이용택 대표

동성식품은 1987년 창립한 이후 면, 떡, 소스 등을 만들어 360억 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는 강소 식품기업이다.

2001년 창업주 고(故) 이동균 대표가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당시 스물여덟 철부지였던 아들 이용택(40) 대표가 가업을 이어받았다. 방황도 잠시, 그는 동성식품의 수장을 맡은 지 12년 만에 5배에 달하는 수익을 내고 있다. 회사의 비전을 새롭게 쓰던 10년 전 어느 날, 흔들리던 청춘은 2세 경영인으로 거듭났다.
[SUCCESSOR] 연매출 67억 회사를 14년 만에 5배 키운 사연
이용택 대표를 만나기 위해 찾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의 동성식품 공장. 면(麵)류를 생산하는 공장답게 입구에서부터 밀가루 반죽 냄새가 진동을 했다. 공장을 지나 2층 그의 집무실에 당도하니 이 대표가 환한 얼굴로 취재진을 반겼다. 마흔의 나이에 걸맞지 않는 앳된 외모였다. 식품 업계가 불황의 직격타를 맞고 있는 가운데서도 매년 꾸준히 회사를 성장시키고 있는 12년 차 최고경영자(CEO)의 여유가 묻어났다.

“밀가루 반죽 냄새는 아주 어릴 적부터 맡아왔어요. 이제 그냥 공기처럼 익숙하죠. 가끔 이 냄새가 안 나면 이상할 정도니까요. 면 맛은 눈을 감고도 그 차이를 구분할 수 있습니다. 제가 ‘면가(麵家)의 아들’ 아닙니까.”

이 대표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 단상 하나, 온 가족은 거실에 둘러 앉아 메밀껍질 벗기는 작업을 했다. 겨울엔 메밀껍질로 메밀베개를 만들었고, 여름에는 메밀가루를 팔았다. 메밀 사업은 곧 면 사업으로 이어졌다.

동성식품은 1991년 고속도로 휴게소라는 특수 시장에 뛰어들며 본격적으로 성장했다. 고 이동균 전 동성식품 대표는 일본 출장에서 발견한 냉동 면을 들여와 ‘향미암’이라는 우동 전문 외식 브랜드로 90여 곳 고속도로 휴게소에 우동을 납품했다. 당시 전국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판매되고 있던 우동은 푸석푸석하고 뚝뚝 끈기는 숙면이었다. 냉동 면은 냉동 보관해 놓은 면을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즉석에서 해동해 끓여 먹을 수 있도록 하는 방식으로, 숙면보다 훨씬 쫄깃쫄깃하고 감칠맛이 있다. 여기에 가쓰오 풍미의 진한 국물이 특징인 일본 사누끼 우동의 맛을 그대로 재현해 향미암 우동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향미암은 1세대 휴게소 우동 브랜드예요. 동성식품은 고속도로 휴게소 비즈니스에서 가장 오랜 역사와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1990년대 초반엔 냉동 면으로 회사 매출을 최대 80억 원까지 끌어올렸죠. 당시에 향미암과 (지금은 없어진) 털보네국수가 휴게소 우동의 양대 산맥이었는데, 나이 드신 분들은 아직도 그때를 기억하고 저희 브랜드를 찾아주십니다.”

1995년 10월 고속도로 민영화 사업이 시작되면서 한 차례 어려움도 겪었다. 상향세를 보이던 매출은 절반 이상으로 떨어지고 외환위기까지 겹치면서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경제 한파는 회사를 부도 직전까지 몰고 갔다. 납품하던 대기업은 물량 거래를 끊었다. 사업 자금을 대던 집은 담보로 들어가 있었다. 그 무렵부터 아버지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건강이 쇠약해졌다. 평소 앓던 만성 간염이 악화돼 간암 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3개월 만에 유명을 달리했다.


밀가루 반죽이 익숙한 ‘면가’의 아들
스물여덟에 가업을 잇다

아버지의 준비 없는 죽음 앞에서 그는 망연자실했다. 생전에 누구보다 강직하고 자존심이 강한 아버지였다. 경영 수업은커녕 가족들에게 회사와 관련한 이야기도 잘 하지 않았기에 이 대표는 더욱 막막했다. 그는 고려대에서 경영학과 경제학을 전공한 후 대기업 영업기획 부서에서 실무를 익히고 있었다. 아버지의 사업에는 별로 흥미가 없었다. 그에게 ‘힘들고 폼 안 나는’ 동성식품 후계자 자리는 그다지 매력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남겨진 가족들을 위해 자신이 무엇이든 해야 했다. 다행히 그에겐 자수성가하신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깡’이 있었다.

“스물여덟짜리가 경영에 대해 뭘 알았겠어요. 회사 안팎에서는 어린애가 부모 잘 만나서 어쩌고저쩌고 하는 말이 나돌았습니다. 저는 저대로 일을 모르겠으니 진퇴양난이었죠. 회사는 휘청거리는데도 저는 방황만 했습니다. 평소엔 가지도 않던 만화방을 들락날락했어요. 오후 4시경에 사무실을 빠져 나와 양복을 입고 만화방 드나드는 일을 1년간 계속 했지요.”

이 대표는 2002년 동성식품 부대표를 맡은 첫해를 그렇게 보내고, 이듬해부터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승부수를 띄워 보자고 생각했다. 처음엔 역부족이었다. 자존심에 금이 갔다. 그러나 3년 차가 되자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계속되던 회사의 위기를 기회로 삼자고 발상을 전환하니 상황도 그에게 유리한 쪽으로 턴어라운드가 됐다.

“기업가에게 철학과 비전이 필요하다는 것을 경영학 서적에서 무수히 읽었지만 가슴으로 느끼지는 못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정신이 번쩍 드는 겁니다. 내가 ‘어떤 회사를 만들어 어떻게 이끌고 가야겠구나’ 생각을 하니 ‘무엇을 해야겠다’는 게 정리가 됐어요. 저는 직원들을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이 나의 가장 큰 책임이라고 생각했어요. 이것은 생전에 아버지께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셨던 부분이기도 하고요.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에 초점을 맞추고 회사의 방침을 바꾸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리더에게 비전을 명확히 하는 일이 왜 중요한지 그때 깨달았죠. 저처럼 젊은 나이에 갑작스레 2세 경영인이 된 경우엔 특히 더 중요합니다. ‘그냥 맡겨진 일이니까’가 아니라 내가 왜 이 일을 해야만 하는지 그걸 스스로 찾아야 해요. 외부 (경영) 컨설턴트들이 절대로 대신해 줄 수 없는 일이죠.”
[SUCCESSOR] 연매출 67억 회사를 14년 만에 5배 키운 사연
이용택 대표는…
1975년생.
2001년 고려대 경제학·경영학 학사
2008년 고려대 경영학 석사
2010년 서울디지털대학 상담심리 학사
2000년 두산 식품BG 근무
2002년 동성식품 대표이사(현)
2013년 강남대 경영학부 겸임교수(현)


비전을 정하니 가야 할 방향이 보였다. 그는 먼저, 1년의 시간을 두고 열정이 없는 인력들을 정리했다. 그 대신, 열정이 있으면 정년 없이 일할 수 있도록 했다. 직원들의 마음을 헤아리기 위해 사이버대학에서 상담심리학 자격증도 취득했다. 사업 다각화를 위한 투자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2012년 용인에 소스 공장을 짓고 이듬해 1월부터 가동하기 시작했다. 식품 업계에서도 면류나 떡류 사업은 손익계산서가 그다지 좋지 않은 반면, 소스 사업의 경우 수익률이 꽤 높았다. 이 대표는 소스 시장의 성장세를 확신하고 60억 원을 쏟아 부었다.

우동 제조 27년 역사를 바탕으로 휴게소 시장에서는 ‘향미암’이 확실하게 자리매김을 했다. 그밖에 고속도로 휴게소의 타 외식 매장에 자사 제품을 납품하고 있다. 단체 급식용 브랜드 ‘소담방아’ 제품은 삼성에버랜드, CJ프레시웨이, 아워홈 등 국내 대기업 단체 급식 및 식자재업체들에 들어가고 있으며, 2005년부터는 육군에 면류를 납품한다. 또 미국과 홍콩, 중국 등지로 냉동 면과 떡류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몇 년 전까지 운영하다 지금은 접은 프랜차이즈 사업도 곧 재개할 생각이다. 최근에는 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B2C)에도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싱거운 밥상’이라는 브랜드로 대형 마트에 떡과 면류를 납품한다.

“과거 휴게소 사업이 힘들어졌을 때 회사가 크게 휘청하는 것을 보고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휴게소 사업의 비중은 과거 최대 70%에서 45%로 줄었지만 매출은 오히려 2~3배 늘었죠. 군납 사업은 전체 6% 정도 비중이지만 현금 결제를 받을 수 있는 거래처인 데다 고정비를 벌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에요. 처음 2년은 적자가 났지만, 3년 차인 올해부터는 나름 효자가 됐습니다.”


2018년까지 1000억 원 매출 목표
“이순신처럼 죽을 각오로 경영할 것”

동성식품은 이러한 사업 다각화 노력의 결과, 2000년 67억 원에 그쳤던 회사 매출이 올해 360억 원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그야말로 강소(强小)기업이다. 이 대표는 2018년까지 매출을 1000억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각오를 세웠다.

“굉장히 어려운 목표치란 걸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목표는 높게 잡아야죠. 앞으로는 연평균 7% 성장을 향후 10년간 유지한다는 계획입니다. 저희는 국내 중소 면, 떡, 소스 등의 식품 제조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제조 공정 전체의 위생과 안전성을 인증하는 해썹(HACCP) 인증을 획득했는데, 이처럼 무조건 덩치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내실을 다지는 것이 중요하죠. 일상에서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는 전통식품을 제조하는 기업으로서 전 직원들이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할 겁니다.”

이 대표는 수도권의 한 대학교에 출강하고 있다. 경영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리더십 강의나 중소기업 2세 경영자로서 맞닥뜨려야 했던 시련과 극복 과정을 들려주기도 한다. 가업승계 과정에서 겪었던 지난 10년간의 시행착오들을 책으로 엮고 싶은 생각도 있다. 그는 얼마 전 명량해전을 다룬 영화 ‘명량’을 보면서 한 조직의 수장 역할이 왜 중요한지를 새삼 깨달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버지를 떠올렸다. 창업주로서 얼마나 외롭고 힘든 길을 걸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자, 오랫동안 대중의 사랑을 받는 식품기업으로 살아남아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죽을 각오로 달려들어야죠.”

‘죽으려 하면 반드시 살고, 살고자 하면 반드시 죽는다.’ 성웅 이순신의 외침 ‘사즉시생 생즉시사(死卽是生 生卽是死)’는 동성식품을 100년 기업으로 이끌고 나가야 할 그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메시지일지도 모르겠다.


이윤경 기자 ramji@hankyung.com│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