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민섭 동국대 LA캠퍼스 총장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자리 잡은 동국대 LA캠퍼스(DULA) 한의과대학은 한의학 글로벌화의 전진기지나 다름없다.더구나 ‘연방 건강보험 개혁법’에 따라 침술 치료가 보험 혜택을 받고, 한의사도 전문 의료인으로 인정받으면서미국 사회에서 한의의 비중은 점점 높아질 전망이다. DULA를 나와 미국 한의사로 성공한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지난 7월 황민섭 DULA 총장을 만나 세계 최대 의료시장인 미국에서 ‘글로벌 한의학’을 어떻게 구현하고 있는지 들었다.
[GLOBAL INTERVIEW] “한의학 글로벌화의 초석을 닦겠습니다”
한의학의 글로벌화는 가능할까. 국내 유명 한방병원들이 미국, 러시아 등 해외 진출에 나서고 있고, 지난 6월 대한한의사협회와 보건복지부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유라시아 의학센터’를 설립하는 등 한의학의 글로벌화가 본격화되고 있다. 하지만 이미 글로벌화에 성공한 중국 중의학과 비교하면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대한한의사협회에 따르면 중의학은 1990년대 초부터 적극적인 해외 시장 개척에 나선 덕에 약 22개국에서 250조 원 시장을 만들었다고 한다. 기업 비즈니스나 문화 등의 글로벌화는 성공 경험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삼성전자의 성공은 수많은 국내 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이끌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 기업들의 글로벌화는 자연스레 이뤄졌다. 골프선수 박세리의 성공은 수많은 한국 골퍼들의 미국 행렬로 이어졌다. 한국 여자 골프가 세계 최강으로 우뚝 서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한의학도 마찬가지 아닐까. 누군가 성공의 길을 걷는다면, 그 성공 경험은 들불이 번지듯 확산될 것이다. 국내 한의과대학 최초로 미국에 진출한 동국대 LA캠퍼스(DULA)를 주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대학 황민섭(44) 총장은 동국대 한의과대학 교수와 동국대 경주 한방병원장을 지낸 뒤 2010년 미국으로 건너가 올 초 DULA 총장에 취임했다.


DULA의 미국 진출 계기가 궁금합니다.
“1979년 설립돼 소규모로 운영돼 오던 로열 한의과대학을 1997년 인수했습니다. 당시 미국 한의학은 침구학 중심의 중의학이 주류였어요.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론 기반이 탄탄한 한국 한의학을 미국 사회에 전파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입니다.”


한의학에 대한 미국인들의 관심은 어느 정도인가요.
“미한의사협회(AAAOM)의 자료에 따르면 미국 전역의 한의사 수는 약 3만5000명으로 추산됩니다. 대부분 캘리포니아나 뉴욕, 플로리다 등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나머지 지역에서는 아직 한의가 자리 잡았다고 할 순 없습니다. 미국에서 한의 치료를 경험한 환자는 3억 명의 인구 중 약 5% 내외(150만 명)라는 통계 자료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최근 분위기가 아주 좋아요. 대체의학의 일환으로 한의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는 데다, 미국 정부가 국립보완대체의학센터(NCCAM)를 통해 수억 달러의 연구비를 지원해 가며 한방 연구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기 때문입니다. 최근 미국 증시에서 아시아 한방 관련 기업들(China Traditional Chinese Medicine Co. Ltd.)의 주가가 급등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를 알 수 있습니다.”


관건은 의료보험 적용 여부가 아닐까요.
“주마다 다르지만 캘리포니아에서는 연방 건강보험 개혁법(Affordable Care Act·ACA), 일명 ‘오바마 케어’에 따라 2014년부터 필수건강혜택(EHB)에 침술 치료가 포함됐어요. 통증 등을 치료하기 위한 목적의 침술 치료가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에요. 이를 계기로 한의가 정식 의료 시스템에 공고히 자리를 잡게 될 것이고, 당연히 한의학의 위상은 점점 높아질 것으로 전망합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DULA.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DULA.
DULA는 한국의 한의과대학을 그대로 옮겨놓았다고 보면 되나요.
“교육 과정이 조금 다릅니다. 한국의 한의과대학들과 비교할 때 가장 큰 차이점이자 장점은 병원 인턴십(Clinical Internship) 프로그램입니다. 한국은 학사 과정을 마치고 난 뒤 면허를 취득하고 나서야 인턴, 레지던트 과정을 통해 환자를 진료할 수 있습니다만, 캘리포니아 주의 한의과대학을 졸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환자를 치료한 경험이 선행돼야 해요. 캘리포니아 주 한의사위원회(California Acupuncture Board·CAB)는 학생들이 환자 200명의 진료를 관찰(observation)해야 하며 추가로 350명의 환자를 본인이 직접 진단하고 치료(in-take and treatment)할 것을 요구합니다. 이 과정을 인턴십이라고 하는데, 3단계로 분류됩니다. 우선 ‘인턴십 레벨1’으로 지도교수가 환자를 진단, 치료하는 과정을 관찰하는 단계입니다. 둘째는 ‘인턴십 레벨2’로 환자를 진단, 치료합니다. 이때는 지도교수의 입회 아래 진행돼야 합니다. 셋째 단계는 ‘인턴십 레벨3’로 레벨2와 다른 점은 지도교수 없이 독립 치료를 하는 겁니다.”


미국 현지에서 설립된 한의과대학들도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이들 대학과는 어떻게 다른가요.
“우리 대학의 강점은 학생들이 한국 한의학을 직접 접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는 것입니다. 사실 미국의 한의학은 TCM(Traditional Chinese Medicine)이라고 일컫는 전통 중의학이 대다수예요. DULA는 한국 동국대 한의대와의 전면적인 교류를 통해 중의학 외에 한국 한의학의 특징인 사암침법, 체질의학 등을 교육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한국 교수들이 직접 LA에 거주하며 강의와 진료를 맡고 있지요. 동국대 일산한방병원에서 진료 과정을 직접 참관할 수 있는 것도 DULA의 장점이지요. 동국대 병원장 및 학장님들의 특강도 주기적으로 열고 있고요. 미국에서 한국 한의대의 강의를 듣고 진료 기술을 배울 수 있는 유일한 대학입니다.”


주로 어떤 학생들이 입학하나요.
“연령은 20대 초반부터 70대까지 다양합니다. 미국의 명문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도 적지 않고요. 또 현직 변호사 같은 의외의 직업부터 수의사, 간호사, 카이로프랙터(척추지압사), 그리고 파라메딕(paramedic) 등 광범위의 의료업 종사자들도 많습니다. 한국에서 온 유학생들도 적지 않아요. 이들은 졸업 후 미국이나 유럽, 중남미 등에서 한의사로 일할 목적으로 입학합니다. 한국에서 해외 취업 붐이 일면서 한국 학생들의 수가 늘고 있는 추세입니다.”


입학 자격은 까다롭지 않나요.
“미국에서 한의과대학은 석사 과정으로 입학 자격은 전문대 졸업 이상의 학력 또는 일반 대학에서 최소 60학점(2학기제 60학점· 4학기제 90학점)을 평균 평점 2.25 이상으로 이수해야 합니다. 수업료는 학점당 125달러이며, 임상 실습은 시간당 9달러입니다. 따라서 12학기(1년 4학기제)의 순수 학비는 대략 3만5000달러 정도입니다.”


외국인 학생들도 많나요. 이들을 위한 교재와 커리큘럼은 별도로 운영하고 있는지요.
“한의라는 한 가지 프로그램을 세 개의 언어(영어·중국어·한국어)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주제를 자신들의 모국어로 공부할 수 있는 셈입니다. 개별 언어 프로그램별로 교수들과 직원들을 채용하고 있습니다. 언어권별로 학생들의 비율을 보면 영어, 중국어, 그리고 한국어 프로그램이 각각 40대20대40입니다. 따라서 비한국계 학생은 60% 정도입니다.”
[GLOBAL INTERVIEW] “한의학 글로벌화의 초석을 닦겠습니다”
DULA는 영어, 중국어, 한국어 등 3개 언어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DULA는 영어, 중국어, 한국어 등 3개 언어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미국에서 한의사로 성공할 확률은 어느 정도인가요.
“2010년 환자 보호 및 오바마 케어가 통과되면서 의료인으로서의 법적 지위가 한 단계 높아졌습니다. ACA에 따르면 법안 발효 이전 의료인의 정의는 MD(의사)나 DO(정골요법의사) 및 이에 준하는 전문인이었어요. 이젠 ‘모든 면허를 가진 의료 전문 인력’으로 변경되면서 한의사 역시 정식 의료인으로 인정받게 됐습니다. 캘리포니아의 경우 한의대를 졸업하고 박사 과정을 이수한 경우‘Dr.’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있어 전문 의료인으로서의 한의사들의 입지가 강화됐다고 할 수 있어요. 이렇듯 최근 미국에서는 한의학의 치료 효과와 한의사의 전문성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졸업생들의 진로가 궁금하군요.
“한마디로 다양합니다. 일반적으로 한의원을 개원하거나 대형 병원에 취업하죠. 또는 박사 과정에 진학하거나, 의료 선교 활동(지역 사회 봉사)에 나서는 졸업생도 적지 않습니다. 한의사로 활동하는 졸업자 중에서 한의원을 개원하는 비율은 약 60% 정도인데, LA의 할리우드, 비벌리힐스, 오렌지카운티 등은 물론 중남미까지 진출해 있습니다. 취업도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종합병원에서부터 한인 교포가 운영하는 중소 규모의 병원들까지 한의사를 고용하고 있습니다. 카이로프랙터 또는 의사들과의 협업으로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는 사례도 늘고 있습니다. 학생비자로 미국에서 체류하는 유학생들의 경우, 졸업 후 보장되는 1년 정도의 OPT(Optional Practical Training·졸업 후 직업연수 과정)를 통해 취직 및 이를 통한 취업비자나 영주권을 해 줄 직장을 찾는 것이 우선돼야 합니다. 물론 대학에서 도움을 드립니다.”


병원을 찾는 환자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알다시피 미국 제1의 인구는 백인이며, 2위는 히스패닉(미국 내에서 스페인어를 자신의 모국어로 말하는 모든 민족), 3위는 흑인입니다. 아시아인과 미국 원주민이 그 뒤를 잇고 있습니다. 현재 본원 클리닉에 내원하는 환자는 백인 및 흑인이 40% 정도이며, 히스패닉이 30%, 아시안이 25%, 기타 인종이 5% 정도입니다.”


총장님께서 취임하신 후 가장 중점적으로 추진하신 일은 어떤 건가요.
“가장 중요한 것은 강의 및 진료 수준을 높여 대학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고 이를 통해 졸업생들의 안정된 진로를 열어 주는 것입니다. 그 일환으로 DULA의 장점인 한국 동국대 한의대와 연계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동국대 일산한방병원 참관 프로그램 도입, 온라인을 통한 동국대 도서관의 자료와 문헌 검색 및 출력, 동국대 한의대 학장 및 병원장 특강 개최, 한국 한의학의 특징인 사암침법 및 체질의학 강의 및 영문 번역 등의 일들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한국에서의 한의학 강의를 온라인을 통해 학습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도입할 계획입니다.”


국내 한의학계의 숙원인 한의학의 글로벌화는 어떻게 이뤄야 할까요.
“한의학의 과학화와 근거 중심의 한의학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미국국립보건원(National Institutes of Health)은 침술의 효과를 검증하기 위해 전문가 패널을 구성하고 1970년부터 1997년까지 발표된 관련 논문 2302개를 검토했는데요. 성인의 수술 후, 그리고 화학요법 치료 후 발생하는 오심과 구토, 치아 수술 후 통증에서만 침술의 효과가 입증됐습니다. 그리고 약물 중독, 뇌졸중, 두통, 생리통, 테니스 엘보, 섬유조직염, 근막통증, 퇴행성관절염, 요통, 수근관증후군, 천식 등에 효과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추정했습니다. 이것은 침술 효과를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데 있어 위약효과를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이 마땅치 않은 탓에 보다 많은 증거가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일 수 있어요. 중요한 점은 과학적 방식으로 검증을 할 수 있는 부분은 치밀하게 수행해야 세계화 및 대중화의 길이 열릴 것입니다. DULA는 박사 과정의 학생들과 침술 치료를 비롯한 한의학의 효과를 임상 논문과 문헌 자료의 분석을 통해 논문으로 발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들이 한국 한의대와 협력을 통해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때 한의학의 위상 제고와 이를 통한 세계화를 이뤄 낼 것으로 기대합니다. 또한 미국으로 지역을 국한해서 본다면 사실 미국의 한의학은 모두 중의학의 내용만 배우며 가르치고 있는 상황에서 DULA는 한국 한의학의 서적을 번역, 출간함으로써 다양한 한의학의 내용을 미국에 소개하는 역할을 통해 글로벌화에 이바지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LA(미국)=권오준 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