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리 피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부의장은 최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렸던 경제 컨퍼런스에서 “미국 경제가 지속적인 대(大)침체에 빠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과연 대침체론은 현실화될 것인가.


빠르면 올해 4분기에 조기 금리 인상 가능성까지 거론됐던 미국 경제에 느닷없이 ‘대침체(great recession)’ 가능성이 제기돼 종전의 낙관 분위기가 급랭하고 있다. 스탠리 피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부의장은 최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렸던 경제 컨퍼런스에서 “미국 경제가 지속적인 대(大)침체에 빠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6년 전에 발생했던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미국 경제 대침체 가능성은 이번에 피셔 부의장 이외의 많은 학자들이 경고해 왔다. 특히 지난해 11월 래리 서머스 전 재무장관은 “미국 경제가 6년 전 발생했던 글로벌 금융위기가 재발할 위험보다 대침체기에 진입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주장했다.

미국 경제 대침체론이 잇달아 제기됨에 따라 재정과 통화정책 면에서 긴축보다 다시 완화 기조로 가야 되지 않느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이 중 통화정책에 있어서는 지금 추진하고 있는 양적완화 규모 축소, 즉 테이퍼링을 중단하고 ‘4차 양적완화(QE) 정책’을 추진하지 않겠느냐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MARKET INSIGHT] 스탠리 피셔의 미국 경제 대침체론
피셔 부의장이 경고한 미국 경제 대침체 가능성을 단순생산함수인 y=LK로 설명해 보면 금융위기 이후 노동생산성(L)과 자본생산성(K)이 크게 제고되지 않는 상황에서 경제가 성장하려면 노동참가율과 자본투여율이 높아져야 가능하다. 미국 기업들은 토빈 ‘Q’ 비율(Tobin Q ratio: 증시에서 평가된 시장가치를 실물자본 대체 비용으로 나눈 것으로 이 비율이 ‘1’보다 높으면 해당 기업은 적은 비용을 들여 높은 주식가치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투자를 늘린다)이 현재 1.07이므로 ‘1’보다 커 투자를 확대할 여력이 충분한 데도 금융 불안 등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투자하지 않고 있다.

특히 피셔 부의장이 미국 경제 대침체기를 우려한 것은 금융위기 이후 노동시장 참가율이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점을 들고 있다. 실업률 등 다른 고용 지표가 개선되더라도 잠재 성장 기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노동시장 참가율은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사상 최저 수준에 근접했다. 이 때문에 그동안 미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은 3% 내외로 알려져 있으나 피셔 부의장은 이보다 1%포인트 떨어져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대외적으로는 세계 경제가 갈수록 성장률이 하향 조정되는 등 저성장 국면에 들어가고 있는 것도 미국 경제가 대침체기에 빠지는 요인으로 지적했다. 전통적인 수출국인 유럽 경제의 최후의 보루인 독일 경제의 2분기 성장률이 마이너스 수준으로 떨어짐에 따라 그동안 우려해 온 ‘디플레이션’이 기정사실화 되는 분위기다.

일본 경제도 2분기 성장률이 전기비 연율 -6.8%까지 추락하는 등 아베노믹스가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함에 따라 아베 신조 총리의 ‘조기 하야론’까지 고개 들고 있다.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 경제도 개별 국가별로 차이가 있으나 전체적으로는 금융위기 이후 보여 준 세계 경제의 주도력이 약화되는 추세다.

최근처럼 위기 극복과 경기 회복이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힌 상황에서 피셔 부의장의 경고대로 대침체기가 올 것인가는 ‘애프터 크라이시스’를 얼마나 잘 극복하느냐 여부에 좌우된다. 이 문제를 과민하게 대응해 1930년대처럼 ‘에클스의 실수(Eccles’s failure)’를 저지르면 당시에 겪었던 대공황(great depression)처럼 대침체기에 빠진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만약 ‘애프터 크라이시스’가 심하게 나타나는 상황에서 경기 회복과 위기 극복을 지나치게 낙관해 금리 인상 등 통화정책을 성급하게 긴축 기조로 돌리면 모처럼 어렵게 돋은 싹(green shoots)이 다시 노랗게 질려 시든 잡초(yellow wee ds)가 될 수 있다. 실물경기가 회복되는 데에 불안요인이 해소되거나 회복 국면에 깊숙이 진입한 후 금리 인상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도 이 때문이다.
[MARKET INSIGHT] 스탠리 피셔의 미국 경제 대침체론
결국 위기를 완전하게 극복하지 못한 상황에서 조기에 출구전략을 추진하면 미국 경기가 ‘대침체기’가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게 하는 큰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는 조기 금리 인상 문제를 놓고 논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가운데에서도 재닛 옐런 Fed 의장이 계속해서 금융완화 기조를 재천명해 왔다.

피셔 의장의 대침체기 경고에 따라 월가에서는 최소한 2분기 성장률 발표 이후 거세게 불고 있는 조기 금리 인상 가능성은 물 건너갔다는 분위기다. 오히려 연초부터 추진해 왔던 테이퍼링을 중단하고 4차 양적완화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시각까지 제기되고 있다.

주요 통화정책 현안에 대한 조기 금리인상론자(매파)와 저금리 유지론자(비둘기파) 간에 의견차를 정리하면 입장 차가 가장 명확한 노동시장과 관련해 매파들은 6%대 초반으로 떨어진 실업률을 들어 예상보다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고 보는 반면, 비둘기파들은 개선되고 있는 것은 맞지만 5가지 노동시장 슬랙 지표(개선이 아주 느린 노동시장 참가율·경제활동참가율·임금상승률·이직률·파트타임 근로자 수 및 장기 실업률 등의 지표를 말하며 시장에서는 옐런 의장의 게시판이라고 부른다)가 있다고 주장한다.

향후 인플레이션 전망에 대해 매파들은 임금인상률 확대로 높아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지만, 비둘기파들은 임금상승률이 저조해 상당 기간 안정세가 지속된다는 입장이다. 갈수록 논쟁이 심해지고 있는 자산 거품에 대해 매파들은 거품으로 인한 금융 불안이 우려되므로 통화정책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갖고 있는 반면, 비둘기파들은 자산 거품이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며 금융 불안은 거시건전성 정책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Fed의 금리정책 운용 방향과 관련해 매파와 비둘기파는 각국의 적정금리 산출 방법을 근거로 다른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매파들은 테일러 준칙(Taylor’s rule)을 따를 경우 현재 정책금리 0∼0.25%는 지나치게 낮은 수준이라고 평가하고, 빠른 시일 안에 적정금리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테일러 준칙을 개발한 존 테일러 스탠퍼드대 교수는 현재 미국의 적정금리 수준은 1.25%로 현 정책금리 수준보다 훨씬 높다고 추정했다.

하지만 비둘기파들은 여전히 불확실한 주택 부문과 노동시장의 5가지 슬랙 등 심각한 역풍에 직면한 상황에서는 ‘최적통제준칙(optimal control rule)’에 따라 장기간 초저금리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반박한다. 오히려 매파들이 적정금리 산출 모델로 삼고 있는 ‘테일러 준칙’이나 ‘수정된 테일러 준칙’은 정책금리가 금융위기 이후처럼 제로(0) 수준에 제약돼 있는 상황에서는 부적합하고 평가했다.

‘최적통제준칙’에 따른 경우 정책금리를 내년 하반기까지 ‘0’%로 유지해야 하는데, 수정된 테일러 준칙에 비해서는 약 4분기, 테일러 준칙에 비해서는 수년간 더 통화 완화 기조를 유지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앞으로 옐런 의장이 ‘최적통제준칙’에 따라 통화정책을 운용할 경우 ‘제로’ 금리를 바탕으로 초저금리 정책은 가능한 오랫동안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7월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미국 경제학자 42명을 대상으로 정책금리 최초 인상 시점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응답자중 68.1%가 내년 2분기 이후에나 정책금리가 인상될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하지만 올해 2분기 성장률 발표 이후 조기 금리인상론자들이 주장했던 올해 4분기나 내년 1분기에 정책금리가 올라갈 것으로 보는 응답은 21.3%에 불과했다. 실제로 채권시장에서도 조기 금리인상론이 거세게 부는 가운데에서도 미국의 10년물 국채 금리는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
[MARKET INSIGHT] 스탠리 피셔의 미국 경제 대침체론
당초 예상보다 일찍 금리 인상 문제가 불거짐에 따라 옐런 의장은 3년 전 벤 버냉키 전 Fed 의장과 폴 크루그먼 당시 프린스턴대 교수 간 격렬하게 벌어졌던 ‘인플레이션 타깃팅’ 논쟁에 대한 자신의 입장도 매듭지을 전망이다. 당시 크루그먼 교수는 울트라 금융완화정책의 효과를 누리기 위해서는 너무 엄격하게 설정돼 있었던 인플레 타깃팅 선인 2%를 4%로 상향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버냉키 전 의장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반박했다.

금융위기 이후 경제변수 간의 정형적인 틀이 깨짐에 따라 미국 중앙은행(Fed)을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이 통화정책 추진에 어려움을 겪어 왔다. 대표적으로 우리의 경우에도 성장률을 올라가는 데도 불구하고 물가는 떨어지는 전형적인 디스인플레이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전통적인 성장과 물가 간 관계가 흐트러지는 통화정책 여건에서 물가가 안정됐다고 계속해서 제로 금리나 양적완화를 오래 끌고 가다간 자산시장 거품을 유발시키거나 특정 시점을 지나면 갑작스럽게 경제주체들의 기대 인플레가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

이때 선제성이 중시되는 통화정책 특성상 뒤늦게 금리를 올리거나 유동성 회수에 나선다 하더라도 의도했던 효과를 거둘 수 없게 된다. 오히려 통화정책 추진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경기순응성’을 심화시킬 우려가 높다. 이 때문에 전통적인 성장과 물가 간의 관계를 감안해 설정해 놓은 물가 목표 선을 여건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는 소위 ‘인플레 타깃팅’ 논쟁이 거세게 일고 있다.

‘인플레 타깃팅’ 논쟁은 각국 중앙은행 통화정책 운용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문제다. 간단한 예로 미국 경제처럼 5월 이후 2개월 연속 소비자물가상승률이 2.1%를 기록할 때, 인플레 목표 선을 2%로 설정해 놓은 상황에서는 이미 물가가 부담이 되기 때문에 초저금리 정책의 근간이 약화되게 된다. 하지만 인플레 목표 선을 4%로 상향 조정해 놓는다면 2.1%는 물가가 안정된 상태이기 때문에 금리를 조기에 올릴 필요성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한상춘 한국경제 객원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