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나 유럽의 나라들에 비해 국내에 비교적 덜 알려진 중동 지역의 음식. 종교적인 색채가 짙은 데다 강한 향신료를 떠올리다 보니 뭔가 심리적 거리가 멀게 느껴지지만, 깊숙이 들여다보면 이 나라 사람들의 식문화는 우리와도 꽤 비슷한 점이 많다.
[TASTE THE WORLD|ARAB] 먹고 기도하라, 영혼과 육체의 안녕을 위하여!
‘사프란’의 모함마르 아크바르 셰프.
‘사프란’의 모함마르 아크바르 셰프.
서아시아와 북아프리카 등 아랍 국가에서는 종교(이슬람)가 인간의 삶을 관장한다. 무슬림들은 아침에 눈을 떠서 밤에 눈을 감을 때까지 모든 행위를 하느님의 뜻에 따른다.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먹는 일’이라고 다르랴. 라마단(이슬람교에서 행하는 약 한 달가량의 금식 기간)에 하루 5번 기도하며 금식하는 것부터 할랄(halal: 무슬림 관행에 따른 도축법) 인증을 거친 식품만 먹는 것이라든지, 오른손 엄지, 검지, 중지 세 손가락으로 직접 음식을 먹는 수식(手食) 문화, 남성과 여성이 함께 음식을 먹지 않는 풍습 역시 이슬람 율법에 따른 것이라 할 수 있다. 전 세계 아라빅(아랍인)들은 광범위한 지역에 흩어져서 살면서도 음식 문화나 식습관의 동질성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놀라움을 자아낸다. 서울 명동에 위치한 정통 아랍 음식 전문점 사프란의 아티크 을 라흐만 사장은 “대부분의 아랍 음식은 수백 년 전 선조들이 즐기던 요리들이 그대로 전해지고 있으며, 국가별, 지역별로 사용하는 재료만 조금씩 다르다”고 말했다.

아랍의 식문화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점이 많다. 먼저, 서구처럼 각자의 음식을 먹는 1인 1식이 아니라 밥과 반찬을 한 상에 놓고 여럿이 함께 식사하는 점이나 찌개처럼 자작하면서도 매콤한 커리(curry)류를 즐긴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특히 이슬람 율법에 따라 ‘식사의 집단주의’가 강조되는데, 되도록 많은 사람이 둘러앉아 밥 먹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며 친구와 친척집을 식사 시간에 갑자기 방문해도 전혀 실례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모던화된 중동 요리를 선보인 ‘더믹스드원’의 에드워드 권 셰프.
모던화된 중동 요리를 선보인 ‘더믹스드원’의 에드워드 권 셰프.
할랄식 양갈비 밥과 함께 먹어…향신료 사프란은 ‘화룡점정’
각 가정의 식탁에서 가운데를 차지하는 것은 대체로 육류다. 종교적인 이유로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아랍 국가에서는 양고기를 메인 요리로 활용한다. 주로 굽는 요리법을 많이 사용하는데, 생고기를 긴 쇠꼬챙이에 꽂아 구워 먹는 케밥이나 고기를 갈아 햄버거스테이크로 즐기는 것이 보통이다. 찰기 없는 안남미로 만든 볶음밥 요리(캅사)이나 발효 밀가루를 얇게 구워낸 빵(난)은 육류와 곁들이는 일종의 사이드 메뉴다. 아랍 음식의 화룡점정은 붓꽃의 암술을 말린 향신료 사프란. 거의 모든 아라빅 요리에 들어가는 사프란은 과거 왕족들만 즐기던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향신료다. 라흐만 사장이 사프란을 넣어 갓 만들어 내온 양갈비 커리와 볶음밥을 시식했다. 은은한 향이 밴 양갈비를 촉촉한 볶음밥과 함께 먹으니 입 안 가득 고급스러운 풍미가 번졌다. 그는 “아랍 음식은 인도 음식과 달리 향이나 맛이 강하지 않다”며 “자극적인 향신료가 들어간 인도 음식은 중동 사람들도 잘 못 먹는다”고 말했다.

이들이 요리에 쓰는 고기는 반드시 할랄 인증을 받은 것이어야 한다. 고기는 바싹 익혀 ‘웰던(well-done)’식으로 먹는데, 우리가 육즙을 즐기기 위해 스테이크의 굽기를 미디움이나 레어로 주문하는 것과 반대다. 두바이 버즈 알 아랍의 수석 주방장 출신 에드워드 권 셰프도 처음 두바이에 가서 이 같은 식문화에 당황했다고 한다. 아랍 지역은 50도에 육박하는 무더운 날씨 탓에 예로부터 고기 보관에 어려움이 있어 바싹 구워 먹는 습관이 남아 있는 데다 피를 먹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어서다. 하지만 이러한 문화도 젊은 층을 중심으로 차츰 변하고 있다. 에드워드 권 셰프는 “요즘엔 중동 사람들도 스테이크를 레어로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양갈비를 적당히 익혀 달라고 주문하는 경우도 점차 늘고 있다”고 말했다.
[TASTE THE WORLD|ARAB] 먹고 기도하라, 영혼과 육체의 안녕을 위하여!
아랍 사람들이 즐겨 먹는 양고기 스테이크와 호무스.
아랍 사람들이 즐겨 먹는 양고기 스테이크와 호무스.
아랍은 거의 모든 끼니에 양고기와 소고기, 닭고기를 먹을 정도로 육식을 즐기면서도 술은 입에도 대지 않는 독특한 문화를 지녔다. 라흐만 사장은 “한국 사람들은 고기 먹는 데 술을 안 마시면 무슨 재미냐고 하지만 우리는 오히려 기도와 금식, 건강식으로 삶의 활력을 찾는다”고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양고기를 비롯한 아랍 음식 대부분은 건강식이다. 양젖으로 만든 요거트는 물론 병아리콩(칙피)으로 만든 호무스(hommos)는 ‘내 몸의 독소를 씻어내는 물’의 저자이자 디톡스 전문가인 제인 스크리브너도 극찬할 정도로 영양 덩어리다. 물에 불린 병아리콩을 쪄서 으깬 뒤 버터와 올리브오일, 오이와 가지, 마늘과 소금 등을 넣어 만들어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아랍 사람들은 호무스를 빵에 발라 먹거나 오이나 당근 등 채소 스틱을 찍어 먹는다. 식사가 끝난 뒤에는 식이섬유가 풍부한 대추야자 몇 알과 아라빅 차로 입가심을 한다.

이처럼 고단백 저지방의 가벼운 식사를 하는 아랍 사람들은 비만이 적고, 성인병이나 암과 같은 질병과도 거리가 멀다. 하루 다섯 번 기도로 영혼의 허기를 채우고, 음식으로 몸의 영양을 채우니 아랍 사람들, 재미는 없을지언정 진정으로 삶이 안녕한 민족이다.



아랍 음식은 여기서…
더믹스드원 뷔페 다이닝(분당구 서현동 031-709-2788)
사프란(명동 02-6361-8644)
라얄리두바이레스토랑(이태원 02-702-5887)
두바이레스토랑(이태원 02-798-9277)
마라케쉬나이트(이태원 02-795-9441)
아랍팔라스(인천 중앙동 032-766-6006)


이윤경 기자 ramji@hankyung.com│사진 김기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