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 경방 사장의 ‘The Classic’ 9th

역사에 ‘만약’이라는 단어는 없다지만 가끔 생각해 본다. 만약 몇몇 연주자들이 일찌감치 유명을 달리하지 않았더라면 클래식의 역사는 어떻게 됐을까. 한창 빛나던 시기 삶을 마감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연주자들은, 그러나 필자를 비롯해 클래식 팬들의 가슴 속에 아직도 반짝반짝 빛나는 별로 남아 있다.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파스칼은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더라도 세계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표현에 비유하자면 지금부터 거론할 몇몇 이름들이 좀 더 오래 클래식 음악계를 이끌었더라도 아마 클래식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다. 짧은 생을 살며 연주자로서 지휘자로서 충분히 제 빛을 다 발휘하지 못한 그들의 음악은 그래서 더 강렬하기만 하다. 클래식 애호가라면 꼭 기억해야 할 이름, 그들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어쩌면 클래식 역사를 바꿨을 이름들
그전에, 시대적으로 한참 뒤를 살고 있는 필자가 그들을 기억할 수 있는 건 레코딩 덕분이니 참으로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고 보면 클래식이 지속 가능할 수 있는 것도 모두 레코딩으로 인해 남은 명반의 힘. 여기서 한 가지, 오케스트라의 ‘역할론’을 짚고 넘어가보자. 많은 오케스트라들의 레코딩이 남아 있고 그 덕분에 클래식 애호가들은 행복하지만, 사실 오케스트라의 꽃은 ‘무대’다. 따라서 대부분의 오케스트라가 무대 공연을 목적으로 설립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다만 오케스트라의 성격에 따라 레코딩 비중이 다른 건 사실이었다.

오케스트라의 종류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비엔나 필하모닉, 베를린 필하모닉, 뉴욕 필하모닉 등 무대 콘서트를 위해 활동하는 오케스트라다. 이들에 대해서는 별도의 설명이 필요 없을 듯. 둘째는 오페라 공연에서 반주를 담당하는 오케스트라다. 대표적으로 비엔나 국립오페라,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영국 코벤트가든 로열오페라, 밀라노 스칼라오페라 등 세계 4대 오페라가 있는데, 비엔나 필하모닉이 오페라 반주까지 맡아 하는 비엔나 국립오페라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각각 오페라단에 소속된 오케스트라가 따로 있다.

그러나 오페라 반주를 하는 오케스트라라고 해서 퍼포먼스가 떨어진다고 생각하면 오산. 클래식의 꽃이요, 종합예술인 오페라 반주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일례로 피아노 연주가 중에서도 독주를 하지 않고 반주만 하는 연주가가 있을 정도다. 영국 피아니스트인 제럴드 무어가 대표적인 예. 그는 특히 성악 반주로 유명한데, 내로라하는 명성악가들에게 무어의 반주는 곧 대단한 영광이었다. 마지막으로 방송 활동을 위해 설립된 방송 교향악단이 있다. BBC·NHK·NBC 심포니 오케스트라 등이 그것. NBC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설립 이유이자 주체인 토스카니니가 레코딩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료가 많이 남아 있는 것도 NBC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방송용 음원 등을 통한 레코딩 작업 때문이었으니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비운의 여성 첼리스트 재클린 뒤 프레.
비운의 여성 첼리스트 재클린 뒤 프레.
다시, 일찍 세상을 떠나지만 않았더라도 어쩌면 클래식 역사를 바꿨을지도 모를 그들의 얘기로 돌아간다. 비운의 여성 첼리스트인 재클린 뒤 프레(1945~1987)는 짧은 생에도 불구하고 커다란 존재감으로 남아 있는 대표적 인물이다. 풍부한 지식과 인간성, 거기에 미모까지 여성 첼리스트로서 모든 걸 갖췄던 그를 죽음으로 몰아간 사인은 루게릭병. 어릴 때부터 뛰어난 천재 소리를 들었던 그인지라 16세의 나이로 일찌감치 데뷔했지만 몸이 점점 굳어가고 마비돼 가면서 1973년부터는 아예 첼로를 손에서 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정작 무대에서 활동한 시기는 10년 남짓. 같은 연주자였던 남편마저 곁을 떠나고, 가장 화려한 절정의 시기에 질병과 사투를 벌이다 쓸쓸히 삶을 마감한 그의 음악적 자취는 음반으로 남아 있으니 엘가의 ‘첼로 콘체르토’, 드보르작의 ‘첼로 콘체르토’ 등은 명연주 중에 명연주다.

또 한 명, 좀 더 살았더라면 아마도 NBC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해체되는 일은 없었을 인물이 있으니 바로 이탈리아 지휘자인 귀도 칸텔리(1920~1956)다. 그는 독선적이고 완벽주의자인 토스카니니가 유일하게 후계자로 지목한 지휘자로 토스카니니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았지만, 토스카니니보다 먼저 30대 후반 비행기 사고로 요절했다. 보통 지휘자들이 35세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하는 데 반해 20대 중반 일찌감치 발탁돼 세계적인 지휘자 반열에 오른 그는 밀라노 스칼라오페라를 비롯해 뉴욕에서도 지휘자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며 한창 유명세를 타고 있었다. 아마도 사고가 아니었다면 토스카니니로부터 NBC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물려받아 토스카니니에 버금가는 거장이 됐을지도 모를 일. 브람스, 베토벤, 멘델스존 등 그가 남긴 음반들을 들어보면 알겠지만, 정확하고도 분명한 스타일이 토스카니니와 무척이나 닮아 있다.

프랑스의 천재 바이올리니스트인 지네트 느뵈(1919~1949)의 운명을 가른 것도 역시 비행기 사고였다. 프랑스가 자랑하는 대표적인 바이올리니스트이기도 한 그는 미국 연주 도중 오빠와 함께 비행기 사고를 당해 삶을 마쳤다. 그 어떤 연주자도 따라올 수 없는 다양성을 갖춘 것으로도 높은 평을 받았던 그의 연주는 드뷔시, 크라이슬러의 곡 등 낭만 음악으로 남아 있다.

이 세 명에 비하면 비교적 오래 산 편이긴 하나, 헝가리 지휘자 이스트반 케르테스(1929~1973)도 40대 후반에 이스라엘 연주 여행 중 수영을 하다가 파도에 휩쓸리는 사고로 사망했다. 주로 영국을 중심으로 활동한 그는 런던 필하모닉과 함께 국내에서 연주하는 등 몇 차례 내한하기도 했던 터라 국내 팬들의 안타까움이 컸다.
토스카니니가 유일하게 후계자로 지목했던 귀도 칸텔리의 음반 표지.
토스카니니가 유일하게 후계자로 지목했던 귀도 칸텔리의 음반 표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위대한 연주자
연주자 이야기가 나왔으니, 반드시 기억해야 할 몇몇 이름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할까 한다. 일명 ‘카잘스 트리오’라 불리는 파블로 카잘스(첼로), 알프레드 코르토(피아노), 자크 티보(바이올린) 등으로 이들은 ‘역사적 3중주단’이라 불릴 정도다. 그중에서도 파블로 카잘스의 존재감은 독보적이다. 지휘에 토스카니니, 바이올린에 프리츠 크라이슬러, 소프라노에 마리아 칼라스, 테너에 엔리코 카루소가 있다면 첼로엔 단언컨대 파블로 카잘스다. 첼로 연주사상 최대의 거장이라 불리는 파블로 카잘스는 스페인 출신으로, 첼로가 바이올린보다 떨어진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그렇지 않다는 인식을 심어 준 사람이었다. 프랑코 정권의 독재에 반대해 망명생활을 했던 그는 이후 스페인 시골에 정착해 카잘스 페스티벌을 만들기도 했다. 수많은 명연주자들과 팬들이 그와 함께 연주하거나 연주를 보기 위해 스페인의 시골까지 찾아갔다니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고 남을 정도. 연주도 연주지만 인격적으로도 훌륭한 데다 후진 양성에도 힘을 쏟는 등 클래식계에 미친 영향이 적지 않은 그다. 특히 그가 연주하는 바하의 ‘무반주’ 첼로는 반드시 들어 봐야 할 리스트 중 하나.

트리오로 함께 활동한 피아니스트 알프레드 코르토는 ‘낭만 음악의 대가’로 잘 알려져 있다. 쇼팽에 관한한 천재라는 평까지 받았던 그는 시인의 감성과도 같은 맑고 경쾌한 연주라는 평을 받았다. 자크 티보 역시 프랑스 바이올리니스트의 대명사로 꼽히는 인물. 그의 미학적 연주는 금세기 최고로 평가받는데, 그 또한 70대 초반에 비행기 사고로 삶을 마감했다.

‘꼭 기억해야 할’이라는 단서를 달고 몇몇 연주자들을 거론했지만, 빛나는 클래식의 역사를 지탱해 온 이들이 어찌 이들뿐일까. 수많은 별들이 우주를 밝히듯 클래식계에도 이름 모를 수많은 별들이 존재하는 법이다.


정리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