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력의 공간 1, 렌탈하우스 ‘토리코티지×크리스토프 초이’ in 제주

“2, 3일을 머물고도 더 있고 싶다고 느낀다면 실패한 공간이다.” 이 임팩트 강한 한 줄 안에 이 공간의 능력이 숨어 있다. 아주 잠깐 입지만 평생 기억되는 웨딩드레스처럼, 그 웨딩드레스를 매일 입고 살 수는 없는 것처럼 짧고도 특별한 호사 뒤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것이 토리코티지×크리스토프 초이의 어메이징 능력이다.
[SPECIAL REPORT] 특별해서 불편한 웨딩드레스처럼 일상을 빛내는 이벤트
웨딩드레스처럼 특별한 공간을 입는다
이야기의 시작은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모어 댄 스테이(more than stay)’를 지향하며 다양한 형태의 ‘머물 곳’을 세상에 내놓고 있는 (주)토리의 이창길 대표는 여성을 위한 공간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고민의 여지없이 떠오른 사람이 바로 웨딩드레스 디자이너 크리스토프 초이. 런던 유학 시절을 함께 보내며 막역한 사이였지만 그게 이유의 전부는 아니었다. 언젠가 크리스토프 초이의 쇼를 봤을 때의 강렬한 기억, 거기다 웨딩드레스를 입고 환하게 웃는 여자들의 모습을 보는 게 좋아 드레스를 만든다고 했던 그의 얘기를 떠올리니 그야말로 ‘딱’이었다.

웨딩드레스 디자이너의 이름을 내걸었으니 콘셉트는 명확했다. 웨딩드레스를 입듯 행복한 공간을 입히자는 것. ‘여성의 아름다움이 극대화되는 공간, 여성의 행복을 공간으로 입힌다’는 한 줄의 명제는 그렇게 건축 안으로 녹아들었다.
[SPECIAL REPORT] 특별해서 불편한 웨딩드레스처럼 일상을 빛내는 이벤트
옥상에 마련된 데크와 노천탕. 규모가 꽤 넓어 어린 아이들의 경우 수영장으로도 이용할 수 있다. 한밤에 조명을 켠 채, 혹은 깜깜한 어둠 속에서 파도 소리를 들으며 즐기는 스파가 백미.
옥상에 마련된 데크와 노천탕. 규모가 꽤 넓어 어린 아이들의 경우 수영장으로도 이용할 수 있다. 한밤에 조명을 켠 채, 혹은 깜깜한 어둠 속에서 파도 소리를 들으며 즐기는 스파가 백미.
멀리 바다가 보이는 서귀포시 남원, 약 991㎡(300평) 규모의 귤 밭 한가운데 들어선 ‘토리코티지×크리스토프 초이’의 미션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귤 밭과 주변 농가 등 외부적 환경에서 너무 튀지 않는 건축이라야 했고, 안으로는 단 며칠이라도 여자들의 삶을 아주 특별하게 만들어 주기 위한 모든 것들이 담겨야 했다. 다시 말해 건축의 물리적 속성과 스토리를 함께 완성시킨다는 지극히 추상적 작업을 실체로 만들어 내는 일이었다.

외관의 실현은 유럽 고택의 느낌을 살리는 모던과 클래식의 조화로 이뤄냈다. 모든 공간에서 바라보는 뷰(view)를 각각 다르게 하기 위해 매스를 삼각형으로 채택하다 보니 그 자체로 모던해진 외형은 클래식한 느낌의 벽돌로 보완했다. 다만 삼면이 모두 벽돌일 경우 무거웠을 텐데 전면만, 그것도 출입문 쪽을 제외하고 커튼을 치듯 벽돌 마감을 하면서 절묘한 대비를 만들어 냈다.
원래 계획에 없었지만 고객들의 요청에 따라 만들게 된 바비큐 시설. 온통 귤 밭에 둘러싸인 이곳에서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풍경을 만끽하며 즐기는 바비큐는 그 어떤 곳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함이다.
원래 계획에 없었지만 고객들의 요청에 따라 만들게 된 바비큐 시설. 온통 귤 밭에 둘러싸인 이곳에서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풍경을 만끽하며 즐기는 바비큐는 그 어떤 곳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함이다.
가구에서 패브릭까지 모든 소품들은 크리스토프 초이가 직접 엄선했다. 특히 패브릭은 메종드룸룸에서 콘셉트에 맞게 제작해줬다고.
가구에서 패브릭까지 모든 소품들은 크리스토프 초이가 직접 엄선했다. 특히 패브릭은 메종드룸룸에서 콘셉트에 맞게 제작해줬다고.
비현실적 공간에서 깨닫는 일상의 소중함
삼각형이라는 특수한 형태만 제외하면 지극히 현실적인 이 건축물은, 그러나 안으로 들어가면 비현실적인 공간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펼쳐지는 풍경에서 모두가 감탄사 한 번. 메인이 되는 왼쪽 공간은 거실을 지나 주방, 그리고 침실까지 시선이 이어지며 하나의 완벽한 라이프스타일을 말해 주고 있고, 오른쪽으로는 유럽식의 높고 큰 창문으로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펼쳐진 기다란 회랑을 지나 침실 안에 욕조까지 놓인 또 하나의 비밀스런 공간과 만난다. 로맨틱과 클래식으로 대비되는 전혀 다른 이 두 갈래의 내부가 뻥 뚫린 한 공간 안에 어우러져 있으니 그 자체로 특별하고도 재밌는 경험. 더구나 각각의 공간이 벽과 슬라이딩도어, 그리고 창을 통해 때론 열린 공간으로 때론 폐쇄된 공간으로 변신하면서 만들어 내는 다양한 이야기는 일상을 잊게 하는 신비한 힘마저 발휘한다.
[SPECIAL REPORT] 특별해서 불편한 웨딩드레스처럼 일상을 빛내는 이벤트
20m가량의 컬렉션 갤러리를 지나면 비밀스런 방과 만난다. 통 창으로 햇살이 쏟아지는 가운데, 영화 속 주인공처럼 목욕도 즐길 수 있으니 그야말로 로맨틱의 극치.
20m가량의 컬렉션 갤러리를 지나면 비밀스런 방과 만난다. 통 창으로 햇살이 쏟아지는 가운데, 영화 속 주인공처럼 목욕도 즐길 수 있으니 그야말로 로맨틱의 극치.
디테일도 놓치지 않았다. 가구에서부터 패브릭, 조명, 수저 하나까지 색상, 디자인, 배치 등 크리스토퍼 초이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는데, 심지어 바람이 불 때 창밖으로 커튼이 어느 정도 날려야 한다는 것까지 머릿속 그림을 그대로 실현해 낼 정도였다.
메인 홀의 주방과 침실. 침실 쪽 문을 닫으면 두 공간은 완벽히 분리된다. 의자의 색감이며 배치까지 철저히 기획한 주방은 크리스토프 초이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
메인 홀의 주방과 침실. 침실 쪽 문을 닫으면 두 공간은 완벽히 분리된다. 의자의 색감이며 배치까지 철저히 기획한 주방은 크리스토프 초이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
침실은 욕실을 사이에 두고 또 하나의 방과 뚫린 채로 맞닿아 있다. 그러나 모든 문을 닫으면 두 개의 침실은 각각 프라이빗한 공간이 된다.
침실은 욕실을 사이에 두고 또 하나의 방과 뚫린 채로 맞닿아 있다. 그러나 모든 문을 닫으면 두 개의 침실은 각각 프라이빗한 공간이 된다.
가구와 패브릭이 어우러진 거실 공간. 이곳은 2개 층을 올려도 됐을 만한 층고지만 귤 밭 풍경을 최대한 안으로 들이기 위해 1층으로 설계했다고.
가구와 패브릭이 어우러진 거실 공간. 이곳은 2개 층을 올려도 됐을 만한 층고지만 귤 밭 풍경을 최대한 안으로 들이기 위해 1층으로 설계했다고.
이 비현실적인 공간이 갖는 절대 능력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로 인해 현실의 소중함을 일깨운다는 점이다. 사실 이 대표와 크리스토프 초이가 공간을 기획하고 디자인하면서 처음부터 비현실을 지향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모든 여자들이 꿈꾸는 로망이라는 건 그 자체로 어쩌면 현실을 벗어나야만 가능한 것일 터.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현실을 잊고 환상 가득한 꿈을 꿀 수 있다면 그것으로 이 공간의 실험은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 대표의 말처럼 이곳은 머물면 머물수록 불편해야 하는 공간이고, 그럼으로 인해 평범한 일상, 반복되는 평화로운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깨닫는 공간’이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인생에서 가장 화려한 그날의 기억이 평생 가지만, 웨딩드레스를 입고 매일같이 지낼 수는 없는 것처럼 ‘토리코티지×크리스토프 초이’는 그렇게 다를 것 없는 일상에 아주 특별한 이벤트가 돼 준다.



공간 메이커, 크리스토프 초이 미니 인터뷰
[SPECIAL REPORT] 특별해서 불편한 웨딩드레스처럼 일상을 빛내는 이벤트
“사소한 것까지 특별하게 해 주는 능력이 있는 공간”

건축과 웨딩드레스 디자이너의 컬래버레이션이라는 자체가 흥미롭습니다.
“웨딩드레스를 처음 입고 나올 때 여자분들의 표정은 대개 한결같아요. 너무나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죠. 제가 패션디자인을 전공한 후 웨딩드레스를 만들고 있는 이유도 거기 있어요. 누군가 삶의 가장 행복한 순간 제 드레스를 입고 있는 것처럼, 그런 공간을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물론 제 이름을 걸고 만드는 공간인 만큼 부담도 컸고 고민도 많았어요. 하지만 드레스를 만들 때의 그 마음가짐으로 진정성을 가지고 공간을 만들어 낸다면 여성분들이 먼저 알아봐 줄 거라고 생각했죠.”


공간에 대한 구체적 아이디어는 어떻게 탄생했나요.
“직업상 많은 여자들을 만나는데 그분들에게 리서치를 했어요. 숍에 오는 예비신부들, 강의 나가는 대학의 여대생들, 그리고 제 주변의 많은 분들에게 어떤 집에 살고 싶은지를 물어봤죠. 그런데 재밌게도 나이에 상관없이 꿈꾸는 공간이 비슷하더군요. 마당이 있고, 큰 창으로 햇살이 쏟아지고, 커다란 식탁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등 일상적으로 보이지만 일상적이지 않은 공간 말이에요. 이번 프로젝트는 그 이야기들의 실현이었던 셈이에요.”


공간 디자인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한계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물론 그랬죠. 하지만 최대한 제가 구상한 디자인을 현실화했어요. 그러느라 다른 건축물에 비해 시간이 많이 걸린 것도 있고, 현실화 과정에서 협업한 건축가들과 이견도 있었어요. 실제로 건물 외관에 쓰일 벽돌을 두고 꼭 해야 한다는 저와 현실적으로 제가 찾는 느낌의 벽돌을 구할 수 없다는 건축가의 의견이 충돌해 한동안 일이 진행되지 않기도 했죠. 다행히 중국 고성에서 해체한 벽돌을 구하면서 해결됐지만요. 회랑을 만드는 것도 양보할 수 없었던 아이디어였죠. 햇빛이 드는 기다란 창을 따라 난 복도에는 제 드레스 화보 액자들이 걸려 있어 그야말로 낭만 가득한 곳이에요. 복도 끝에 마주치는 침실에선 영화 속 장면처럼 햇살 받으며 목욕도 즐길 수 있어요. 집에선 절대 불가능한 경험이죠.(웃음)”


가장 마음에 드는 공간 포인트가 있다면요.
“건축을 완성한 후 이창길 대표와 함께 며칠간 직접 머물러 봤는데, 아침에 눈부신 햇살과 새 소리에 잠이 깨더군요. 그것만으로도 일단 환상적이었죠. 옥상에 마련된 자쿠지도 좋은데, 한밤에 조명을 켠 채 혹은 깜깜한 어둠 속에서 파도 소리를 들으며 즐기는 스파도 ‘강추’입니다. 또 하나 주방의 식탁에 둘러앉은 그 평범한 시간마저 특별하게 느껴질 거예요.”


여자를 위한 공간이면 남자들이 소외되지 않나요.
“보통 머물 곳을 고르는 건 여자들이잖아요. 그리고 남자들은 여행지에서의 집에 대해 이렇다 할 로망이 있는 사람도 많지 않아요. 특별한 공간에서 여자들이 행복해하면, 동행하는 남자는 그걸로 되지 않나요. 게다가 남자들은 스트레스를 풀 공간도 많고 기회가 많은 반면 여자들은 일하랴 육아하랴 그럴 시간이 없잖아요. 어쩌다 한 번 이런 공간을 경험하면서, 그다음 날을 잘 살아갈 에너지를 얻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 | 사진 이승재 기자, 토리코티지×크리스토프 초이 제공